[2021 SIWFF] 20주년 특별전 〈고양이를 부탁해〉 대담

<고양이를 부탁해>(정재은 감독, 2001) 영화 이미지

올해로 23회를 맞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팬데믹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동시에 상영되었습니다. Fwd 필진들은 지난 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특집에 이어 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세 편의 영화를 함께 관람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세 번째로 이야기해 볼 영화는 개봉 20주년 기념으로 특별전이 마련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2001)입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IMF 시대를 배경으로 스무 살 여성들의 현실과 고민, 관계를 세심하게 그려낸 영화입니다. 고교 동창의 단짝 친구인 다섯 명의 여자아이들, 태희, 혜주, 지영, 비류와 온조는 고교 졸업 후 사회에 나와 각자의 길로 향해갑니다. 무급으로 집안일을 돕는 태희, 커리어우먼을 꿈꾸는 야심가지만 말단 고졸 여사원의 불안정한 위치에 머무르는 혜주, 유학을 꿈꾸지만 가난하고 무너져가는 집에서 좌절하는 지영, 차이나타운에서 공예품 노점을 하는 비류와 온조의 이야기는 모두 불안한 20대 여성의 삶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1. ‘고양이’를 부탁해?

주영: 고양이 많이 나오는줄 알고 이 영화를 선택했는데 아니더라고요.(일동 웃음)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불안했어요. 고양이가 죽거나 무슨 일이 생길까 봐요. 클럽에서 지영이 혜주 생일선물로 고양이를 선물할 때부터, 고양이가 화면에서 사라지면 ‘죽은 건 아니겠지’ 싶어 불안했어요.

연화: 사실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제목 때문이기도 했는데요. 고양이가 어떻게 나오려나, 하는 기대감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영이 혜주에게 선물을 주고, 선물상자를 받고 “두둑한데?” 하면서 흔들었는데 그 상자 속에서 고양이가 나오는… 상상도 못 한 고양이의 등장에 너무 놀랐어요. 초반에는 다른 모든 서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요. 고양이가 화면에 등장했을 때부터, ‘야 이거 지금 틀었으면 동물단체에서 난리 났겠다’ 싶었어요. (웃음) 클럽에서는 고양이 청력이 걱정되고, 내내 고양이 안위만 걱정되더라고요.

주영: 그 클럽 장면에서 혜주는 고양이를 받고 또 좋아해요. 아무도 클럽에서 선물로 고양이를 준다는 것에 놀라지 않고, 소중한 친구가 소중한 고양이를 줬다는 사실에 감동하고요. 그런데 또 혜주는 다음날 출근길에 “나 못 키우겠어” 이러면서 선물 받은 고양이를 곧바로 돌려줘요. 고양이는 “우리 우정 영원해”라는 마음이었는데, 혜주의 지금 삶에서 우정은 중요한 것이 아닌 거죠.

미현: 하이틴 로맨스 소설 〈청바지 돌려입기〉에서 친구들끼리 청바지를 돌려 입거든요? 고양이를 서로 돌아가면서 돌보는 것이 마치 청바지 돌려 입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고양이의 삶은 계속 임시보호의 삶인 거잖아요. 저는 이 영화에서 고양이가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알겠어요. 안정되지 않은 삶을 고양이로 표현하겠다는 것일 텐데요.

연화: 우리가 고양이를 보면서 유발되었던 불안감이 20대 여성들이 느끼는 그 불안감이 아니었을까요? 고양이의 이동을 보면 얼떨결에 누군가에게 주워졌다가, 갑자기 선물 상자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집 나가기 전에 캐리어에 숨겨지기도 하고. 굉장히 동선이 불안정하잖아요. 불안한 20대의 삶이 고양이와 연결되는 것 같아요.

주영: 고양이가 20대 여자들의 삶을 상징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잖아요. 물론 고양이가 많은 경로로 불안정한 삶의 느낌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지만, 이 영화에서 고양이의 불안정은 20대 여자들의 불안정한 삶에서부터 오기 때문에, 고양이를 하나의 상징으로 영화를 해석하기 시작하면 그 해석은 실패할 거예요. 

미현: 그러면 고양이는 왜 나온 거죠?

연화: 저도 고양이가 어떤 비유일까? 상징일까?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고양이를 친구들끼리 주고받잖아요. 처음 길에서 고양이를 주워 온 지영에서, 혜주에게 갔다가, 혜주가 다시 지영에게 반납하고 다시 태희에게 갔다가, 태희가 다시 쌍둥이 자매에게 키우라고 하죠. 

주영: 고양이의 이동은 인물들의 사정의 변화이지만, 서사의 이동으로 이어지지 않아요. 영화의 인물들이 고양이를 만나고 떠넘기고 공유하는 과정은 매우 불안하지만, 고양이를 불안의 상징 혹은 20대 여성의 삶으로 보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럼 고양이는 너무 억울하죠. 고양이가 여고 친구들 관계 안에 초대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고양이는 죄 없고 고양이는 고양이인 거죠.

연화: 왜 영화 제목이 〈고양이를 부탁해〉인지 모르겠는 거예요. 아무도 고양이를 ‘부탁’ 안 했거든요. 지영으로부터 시작되어 쌍둥이 자매에게 가기까지, 그냥 떠맡겨진 거 아닌가요? 전 이해가 안 돼서 영화 비평을 좀 찾아봤어요. 고양이에 집중하면 해석에 실패하는 것 같은 게, 비평에서 고양이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비평들은 당시의  20대의 상황이 이렇게나 자세히 묘사된 적 없었다는 점에 집중했어요. 영화에는 다양한 위치의 20대 여성들이 나오잖아요. 집이 없고, 혹은 집이 있지만 떠나가고 싶은 곳이거나, 그곳에서 악착같이 버티는 인물과 그냥 사는 쌍둥이 자매와 같은 다양한 인물 양상에 대한 비평이 중심이더라고요.

지윤: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봤는데 감독이 그냥 고양이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양이로 다른 영화도 찍으셨더라고요.

모두: 아! (깨달음)

2. 배경에 관한 이야기들: IMF와 코로나, 재난과 20대 여성의 삶

주영: 영화 배경이 2001년이잖아요. 무대는 서울과 가깝지만 서울은 아닌 인천이죠. 2001년이면  IMF이후잖아요.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고양이를 부탁해〉를 하나의 세션으로 할애한 것은, 재난 이후의 여자들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IMF라는 재난,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재난 상황의 노동시장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은 여성들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고양이를 부탁해〉는 재난으로 직장을 잃고 고양이와 어떻게 사는지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일자리를 잃거나, 잃을 위기에 처하거나, 착취를 당하거나 하는 취약성을 드러내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미현: 그 당시에서는 이런 시도가 리얼리즘적일 수 있었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IMF 이후 서사가 가정 중심이었잖아요. IMF로 가정의 가장이 무너졌다고 했을 때 가장은 아버지로 상정되는데, 지영같이 가장 역할을 맡아야 하는 여성도 있고, 가부장 아래 가족 안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태희 같은 여성도 있었으니까요.

주영: 태희가 그나마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태희도 사실 아버지 찜질방에서 무급으로 일하면서 착취당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거잖아요. 지영은 정말 집이 말 그대로 지붕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조부모를 돌보기 위해 어떤 직장이라도 구해야 하는 상황이고, 가장 현실적이고 속물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혜주는 직장에서 계속 잔심부름이나 해야 하는 위치죠. 비류와 온조는 직접 만든 목걸이나 팔찌 같은 액세서리를 차이나타운에서 팔고 있어요. IMF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IMF 이후를 그린 전형적인 서사였던 가장이 아버지로서 먹고살기 힘든 문제 말고, 20대 여성들이 생존하는 문제를 그린 것 같아요. 결국 마지막에 태희와 지영이 선택하는 것이 호주 워킹홀리데이잖아요. 그것도 상징적인 것 같아요.

미현: 감독에게 물어보고 싶은 건, 영화가 나오고 2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위안을 받길 바라는지, 혹은 어떤 감상을 하길 바라는지 궁금해요. 제가 초등학생 때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본 기억이 있는데, 포스터가 정말 귀엽잖아요. 그래서 귀여운 청춘 영화인 줄 알았어요. 

지윤: 포스터 디자인과 문구가 상업적인 것 같아요. 영화 내용이랑 전혀 상관없는 자극적인 문구로 관심을 끌려고 했던 게 나름의 상업적인 포인트였으려나요.

연화: 저도 포스터의 카피가 “스무 살, 섹스 말고도 궁금한 건 많다.”라서 청춘 영화인 줄 알았죠.

주영: 너무 말도 안되는 게, 포스터가 영화를 하나도 설명해 주고 있지 않아요. 심지어 포스터의 장면에서 공간, 의상부터 분위기까지 모두 영화에 나오지도 않아요. 적어도 대표 문구라도 영화를 설명해 줘야 하는데, 막상 영화를 보면 “스무 살, 섹스 말고도 궁금한 건 많다”가 아니라 “스무 살, 섹스 생각할 틈도 없다”죠.

지윤: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고등학생들이 꺄르륵 웃는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전형적인 청춘영화 같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영화 전개와 결말은 ‘아프니까 청춘이다’, ‘불안하지만 아름답다’처럼 청춘의 어려움을 쉽게 봉합해버리는 메시지로 흐르지 않고, 청춘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생각했어요. 20대 여성의 모습을 담은 영화 중에서 연애가 아닌 여성 청춘의 다양한 측면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미현: 이 영화가 2021년을 배경으로 한다면 어떤 인물 유형이 등장할지 궁금해요. 최근 조용한 학살이라거나 20대 여성의 우울에 대한 담론이 많이 나오는데요. 영화에서 20대 여성들의 불안정과, 그 불안은 각자 의미가 다르다는 걸 드러낸 게 의미가 있다 생각하고요. 2021년 배경이라면 코로나 이후 여성들의 불안과 경제적인 안전망 없음, 돌봄 없음에 대해서 다층적으로 이야기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고양이 말고 사람만 나오도록(웃음).

주영: 팬데믹에서 젊은 여성의 자살이 증가하는 점이나, 직장에서의 임금 격차, 승진에서의 차별 등 모두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2000년대 초반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2021년을 배경으로 한다면, 캐릭터의 모습이나 직업이 달라지겠지만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노동 환경이라는 커다란 맥락은 비슷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동시대에 이러한 서사의 영화들이 나오면 조금 더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3. 인물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들: 친구하고 싶은 친구, 친구하기 싫은 친구

연화: 인물이 다섯 명이 나왔잖아요. 그 다섯 명이 다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고, 각자 가지고 있는 불안감들이 충분히 이해될 만 했어요. “이 중에 네가 공감하는 무언가가 있겠지. 골라잡아보아라.” 하는 것 같다 싶을 정도로 다층적인 부분들을 잘 묘사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에 극단적인 장면 연출이 없어서 좋았어요. 더 정확히 말하면 일부러 극적으로 만들지 않아서요. 집이 무너질 때도 매우 비극적인 상황임에도 잔잔하게 보여주니까, 생각을 멈추지 않고 영화에 끼어들 수 있는 틈이 많이 마련되어 있었다고 생각을 해요. 

미현: 맞아요. 저는 혜주가 회사에서 울 때 성희롱을 당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걸 자세히 보여주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위로의 대사들로 넘어가는 부분이 괜찮았어요. 오히려 그대로 보여준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혜주 캐릭터를 왜 저렇게까지 싸가지 없이 만들었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감독이 캐릭터 각자에게 어떤 서사를 부여하고 싶어 했다는 건 이해가 되는데요. 여혐 프레임으로 비춰질 수 있는 캐릭터를 왜 만들었을까요? 도시 깍쟁이일  수도 있고, 쌍년?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여러 명의 등장인물 중에 그런 캐릭터를 왜 넣었을까 궁금해요.

지윤: 회사에서 혜주의 위치가 불안하잖아요. 나이가 들거나 결혼을 하면 잘릴 직장에서, 대리에게 잘 보여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인물처럼 보였어요. 혜주가 그냥 ‘공주병’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위태로운 위치에 있기 때문에 생존전략으로서 성형수술을 받고 싶어 하고, 외모를 꾸미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동시에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니?’ 하면서 커리어 우먼으로서 자신의 생활을 은근히 뽐낼 때도, 혜주의 위태로운 위치성이 오히려 부각되는 것 같았어요. IMF 이후 한국의 상황과 저부가가치 직업으로 분류되는 혜주의 직업을 알고 있잖아요. 저는 혜주가 그렇게 깍쟁이처럼 잘난 척할 때마다, 아니길 바라지만 경력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혜주의 미래가 자꾸만 겹쳐 보이더라고요. 대리가 같이 영화 보자고 했을 때도, 너무 많이 나간 상상이긴 하지만 대리와 결혼한 혜주, 결국에는 퇴사 혹은 정리해고당한 혜주, 그리고 20대 때 자신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주부가 된 혜주의 이미지가 순식간에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 같아요. 영화 보는 내내 혜주가 얄밉기는 했지만, 몇 년 뒤 혜주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했어요. 일에 욕심이 있는 인물이라는 걸 아니까 더 마음이 쓰였던 거 같아요.

주영: 혜주는 매우 속물적인 인물이라 오히려 더 쉽게 이해되거든요. 자신의 욕망이 확실하고, 자신이 놓인 상황과 현실 안에서 전략을 짜는 인물이라 가장 이해가 쉬웠어요. 상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증권사에 다니면서, 저부가가치가 아닌,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물이요. 미래 남편상의 얼굴을 깨진 거울 속에서 찾으려는 순진한 모습에서는 결혼에 대한 기대도 보이고, 평탄한 중산층으로 계층 상승을 원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오히려 태희가 너무 짜증 났어요. 태희랑은 친구 못할 듯요. 현실 감각이 너무 없어요. 왜 월미도에서 미얀마 남자들이랑 소개팅을 하자고 하냐고요. 그게 또 왜 안되는지 설명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뒷목이 당겨요. 혜주는 우선 그런 일을 안 만들고, 설명해 주지 않고 눈만 마주쳐도 알 것 같아요.

미현: 그래도 태희가 항상 먼저 연락해서 덕분에 친구들이 모일 수 있잖아요.

주영: 태희 친구는 그게 문젭니다. 사실 친구들이 만나서 즐겁기야 하겠지만 나쁜 정동을 적잖이 일으켜요. 혜주랑 지영이는 맨날 싸우고, 태희는 중간에서 또 말리고 연락하잖아요. 제가 태희를 최악의 장면으로 꼽는 부분은 찜질방 전단지 돌리다가 갑자기 어느 사무실로 들어가서 원양어선 취직을 시도한 장면인데요. 어떻게 보면 씩씩해 보일 수 있는데, 거길 가려면 적어도 쌀 포대 몇 개는 거뜬히 들 수 있어 보여야 취직을 시켜주던지 말던지 할 거 아닙니까? 저라도 돌려보냈을 것 같아요. 물론 아무리 다부져 보여도 스무 살 여자애는 거절당할 확률이 높지만요. 김승옥 소설 <환상수첩>에서도 여대생이 사무소에 들어가 야간 경비원 일을 할 수 없냐고 묻는 장면이 나와요. 여기서도 여자는 당연히 내쫓기죠. 그런데 <환상수첩>의 여대생은 소설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성노동뿐이었어요. 남자들의 일로 여겨지는 직접에 20대 여자가 문을 두드린다는 것, 그건 절박함일 수도 있고 혹은 새로운 시도일 수도 있는데, 태희는 대체 뭔지 모르겠어요. 정말 본인이 원양어선을 탈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연화: 그런데 혜주도 그렇고, 태희도 그런데 저는 지영이가 제일 답답했어요. 지영이를 너무 극한으로 밀잖아요. 하룻밤 사이에 집과 가족이 없어지는,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캐릭터를 밀고 가는 게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싶었어요. 고양이를 줍는 것도 지영이부터 시작했고, 지영이가 텍스타일 공부를 하러 유학 가고 싶다고 할 때 혜주가 “돈 있는 사람들이나 유학도 가지. 일자리 소개해 줄 테니까 돈이나 모아.” 하잖아요. 그래서 현실은 팍팍하지만 꿈을 갖는 캐릭터인가? 했는데, 나중에 집이 없어지고, 취조에서 묵묵부답해서 결국 소년원에 가고, 나와서 해외로 ‘탈조선’을 하는 이 상황이 매우 숨 막혔습니다. 그리고 쌍둥이 자매 이야기가 많이 안 나온건 아쉽긴 했거든요. 영화 초반에 선물을 들고 외갓집에 가잖아요. 조부모는 중국어로 문전 박대하고, 쌍둥이는 한국어로 대답하고요. 

주영: 엄마가 집을 나왔거나 혹은 어떠한 연유로 부모와의 사이가 단절됐고, 엄마는 딸들을 통해 소통을 시도하는 상황인 거 같아요. 

연화: 그런 추측이 가능할만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들의 서사가 딱 거기에서만 멈춰있고, 더 풀어지지는 않아서 궁금하더라고요.

미현: 배경이 인천이잖아요. 차이나타운의 화교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아니면 일종의 진짜 감초 같은 역할, 혜주를 좋아하는 남자애가 다른 여자랑 지나가는 장면을 본다거나 그런 역할로 등장한 게 아닌가 싶어요.

주영: 저는 쌍둥이 자매가 가장 현실성 없는 인물 같아요. 정말 환상 속에 있는 친구요. 필요할 때 고양이 맡아줘, 손재주 있고 웃기고, 같이 있으면 재밌는 친구인 듯요. 사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할 것 같은 인물은 태희인 것 같긴 해요. 가장 밝고 사랑스럽긴 하잖아요. 하지만 친구들이 계속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태희가 아니라 오히려 쌍둥이 자매 친구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비류와 온조 아니면 진작에 흩어졌을걸요. 

연화: 비평 보니까 여성들 간의 연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주영: 근데 연대가 안됩니다. 만나서 잘 된 게 하나도 없어요. 인천에서 모이기로 했으면 월미도에서만 놀 것이지, 두타는 또 왜 가서 싸울까요? 

연화: 넷이서 쌍둥이 집에 모여가지고 달달 떨면서 칼 물고 미래의 남편 보고 그런 장면들은 재밌었어요. 가장 사이좋아 보이는 장면이요. 2000년대에 영화에 자주 나오는 장면인지 모르겠는데, 아웅다웅하고 친구들끼리 노는 장면이라거나. 태희가 “나룻배 타고 여행하고 싶어 그게 나의 꿈이야.”라고 말하고 그런 게 되게, 전반적으로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안정감이 느껴지는 장면이었어요. 

주영: 근데 또 신발 빼가지고 문 잠겨서 밤새 집에 못 들어가잖아요. (신발 누가 뺐어? 또 태희야?) 또 태희야.

미현: 영화에서 진짜 뭔가 연대의 장면? 이라고 한다면 그거잖아요. 지영이가 소년원 가기 전에 갇혔을 때 면회 가고 데려다주고 하는 거요. 태희는 그런 역할을 했어요.

연화: 주인공 캐릭터들은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본인이 속한 상황과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몰래 돈을 들고 집을 가출하는 대담한 선택을 하기도, 현재의 구조에서 잘 적응하기 위한 선택을 하기도 하죠.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다 강해서 다들 주목했던 장면이나 인물이  달라서 이야기할 거리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위기의 상황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치열한 모습들이 굉장히 구체적이고 담담하게 그려낸 영화 같아요.

재난은 어떤 사람들의 삶을 ‘위기’로 만들고 있을까요? 위기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누구이고, 동시에 누구로 전제되고 있을까요? 재난 상황이 가져오는 고용충격의 여파는 불안정 저임금 노동을 하는 여성에게 가장 가혹하게 몰아닥칩니다. 재난이 가져오는 사회 불안과 돌봄 위기 속에서, 재생산 영역의 보이지 않는 노동에 동원되는 여성들은 실제적인 생존의 위협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사회가 재난을 ‘고개 숙인 가장의 뒷모습’으로, ‘투기에 뛰어드는 중산층의 광기’로,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는 삼포 세대’의 모습으로 드러낼 때 이러한 여성들의 실제적 삶은 보이지 않게 됩니다. 

영화 속 IMF 경제위기와 코로나19의 위기가 교차하면서, 위기 속 여성들의 삶을 떠올리게 됩니다. 만약에 이 영화가 지금 다시 만들어지면, 우리 여성들의 삶은 어떻게 그려질까요? 

정리: 낑깡, 주영, 미현, 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