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노동시간 단축이 간과한 중년 여성의 삶과 노동(1)

이소진

* 본고는 필자의 석사학위논문 “표준노동시간 단축이 중년여성의 일과 생활에 미치는 영향 – B대형마트 캐셔를 중심으로” 연구와 그에 대한 필자의 소회를 다룬다.

1.

여성학은 나에게 항상 엄마의 삶을, 나의 삶을 이해하는 언어였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엄마가 살아내는 삶이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독립을 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엄마의 어깨 위에 얹혀 있는 ‘나’라는 존재의 무거움을 덜기를 바랐다. 엄마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버스 안내양을 거쳐 금성에서 일하다 결혼하여 아주 잠시 잠깐 전업주부의 삶을 살다가 쇼핑백을 접는 부업을 시작했다. 이후 옷가게 점원, (노동강도가 심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는) 함바집, 김밥집 아줌마를 거쳐 지금은 화장품 공장에서 화장품을 주입하고 포장한다. 엄마의 삶은 흔한 노동계층 중년여성의 삶 그 자체다.

철야. 엄마는 지금이라면 고등학교에 다녔을 나이부터 공장에서 일했다. 토요일마다 자주 철야를 했다고 한다. 아침에 회사를 들어가, 다음날 해가 뜰 때야 집에 돌아오곤 했단다. 어린 나이의 소녀들이 그렇게 자신의 몸을 갈아 넣어, 다섯 개의 별을 밝게 빛나게 했다. 그때 엄마의 몸은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젊었기 때문이었나? 그럼 지금 엄마의 몸은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온종일 서서 화장품을 충전하다 집에 와서도 서서 요리해야만 하는,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그 삶의 무게가 나는 너무 싫었다. 덜 벌고 덜 쓸 수는 없나? 그러나 엄마는 일평생을 그리 살았다. 내가 상상조차 못 하는 삶을 그리 살아내었다.[1]

[1] 본 글에서는 주부로 재현되는 중년여성의 노동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러한 방식으로 글을 썼으나, 나는 그녀의 삶을 ‘착취’로만 점철된 피해의 서사로 재현하는 것에 거리를 두고자 한다. 그녀들은 그렇게 일하던 와중에도 여행을 가고 동료들과 모임을 하면서 젊음을 즐겼다(그녀들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왔을까?).

그리고 지금도 엄마는 시간을 통제하지 못하는 삶을 산다. 철야가 선택이 아니었던 것처럼, 수많은 여성이 일하는 노동 현장에서 시간에 대한 통제권은 노동자들이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권리가 그녀에게는 사치이다. 엄마의 회사는 공장이 몰려 있는 곳에 있다. 허허벌판에 공장만이 있는 곳. 가끔 사람들이 강아지를 유기하는 곳. 그러니까,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인 동시에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에 대중교통도 다니지 않는 곳에 통근버스를 타고 들어가 마찬가지로 통근버스를 타고 나온다. 이런 현장에서 노동시간은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두 시간 잔업을 하겠다고 회사가 공표하면 그대로 해야 한다. 밖으로 나올 버스가 없으니까. 추가 노동은 선택이 아닌 강제이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그와 발맞추어 대기업인 H그룹[2]이 자사 노동자들의 근무시간을 주 40시간에서 주 35시간으로 줄이겠다, 고 했을 때 처음 나는 그들의 생활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알지도 못한 채 책에서 읽은 것만을 생각하며 드디어 한국에도 이런 회사가 생기는구나, 하고 기뻐했다. A사는 임금을 깎지 않겠다고도 말했다. 임금감소 없는 표준노동시간 단축. 연장근무가 아닌 표준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회사는 내가 알기로 처음이었다. 엄마에게 매일의 한 시간이, 그 한 시간이 주는 여유가 달콤했던 만큼 압축적인 시간을 살아내는 그녀들에게 있어서 마트에서 매일 혹사를 당하는 다리를 쉴 수 있게 하는 한 시간이 주는 여유가 궁금했다. 그녀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2] H그룹은 B 대형마트를 비롯하여 백화점, 호텔 등을 운영하는 국내의 대기업이다. H그룹은 24시간 영업을 해야 하는 호텔과 같이 고유 업무의 특성이 있는 계열사를 제외하고, 2018년부터 대부분의 계열사의 주당 노동시간을 주 40시간에서 35시간으로 단축하였다.

2.

이런 궁금증에서 내 논문은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 나의 예상과 달리, 그녀들은 한 시간의 반납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었다. 임금이 감소했다고 했다. A사는 임금 감소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임금이 감소했다고 했다. 한 시간이 줄어든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도 했다. 임금을 감소시키려는 꼼수라고도 했다.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가 취직을 했을 나이의 그녀들에게 아직도 돈이 중요한가? 우리 엄마는 지금도 1시간의 잔업(노동자들에게 야근은 ‘잔업’이다)을 억지로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가? 나는 아직도 나를 중심으로 사고하는가? 내가 상대적으로 여유롭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나는 모든 것이 궁금했다.

그 인터뷰에서 나는 일하지 않고서는 이들의 말을 오롯이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서비스직 알바를 전전한 나에게 캐셔 일은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워 보이는 지점에 이력서를 냈다. 연락이 오지 않아 초조해질 무렵, 마트에서 연락이 왔다.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면접을 하고 바로 그 다음 주부터 일을 시작했다. 주말 알바였지만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이 있는 날에는 평일 하루를 대체하여 근무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분명 면접관은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라고 했지만, 현장에 투입되고 보니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평일 대체 근무를 하지 않을 것이라면 그만두어야 했다. 그래서 의무휴업이 있는 주에는 평일에도 근무했다.

직접 일을 해보니 일을 하는 것보다도 내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시간이었다. 해당 마트에는 본업이 없다고 적었지만, 내 본업은 엄연히 존재했다. 나는 대학원생이었기에 수업을 들어야만 했으며 교내 연구원에서 조교 업무도 맡고 있어 근무도 해야 했다. 그러나 매니저는 스케줄을 미리 알려주는 법이 없었다. 스케줄은 한 번에 2일에서 3일 치가 나왔고 그마저도 근무 하루 전날에 공지되기 일쑤였다. 내가 일을 하지 못한다고 매니저에게 말했던 날에도 어김없이 근무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날도 많았다. 매번 근무시간은 변경되었고, 그래서 나는 주말에 약속을 잡기가 어려웠다. 아침에 일하는지, 저녁에 일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고작 주말과 평일 하루였지만, 다른 노동자들은 하루하루가 이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오전/중간/오후 팀이 나누어져 있었고 교대로 근무 스케줄이 변동되었지만, 그것은 대략적인 출근 시간을 알려주는 것일 뿐이었고 정확한 출근 시간은 스케줄 표가 나와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걸 하루 전날에 알려주다니!

일도 문제였다. 첫날부터 나는 일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30분 정도 간단한 계산법을 배웠을 뿐이었다. 대형마트는 할인되는 카드도 많고, 쿠폰도 많고, 결제 방법도 가지각색이어서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습득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도 나는 바로 현장에 투입되었다. 소비자가 대형마트에서 소비하지 않는다더니, 바쁘지 않은 시간이 없었다. 주말은 특히 그랬다. 사람이 미어터졌다. 나는 계산을 하면서 고객의 질문에 답도 해야 하고, 고객이 아무런 말 없이 주는 각종 쿠폰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머리를 굴려야 했다. 행사는 매주 바뀌었는데, 가끔 출근하는 나는 그 내용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럴 때면 나는 가끔 내 앞/뒤에 배치된 다른 전일제 노동자에게 질문하고는 했다. 그녀들은 바쁜 와중에 나의 질문에도 대답해야 했고, 나의 질문에 대답하는 와중에도 여기 계산대 일이나 처리하라는 고객의 짜증을 받아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더는 묻지 않았다. (그리고 고객에게 웃으며 ‘저는 알바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교대시간 사이에 주어지는 휴게시간은 또 얼마나 짧은지! 사전인터뷰에서 노동자들은 내게 노동시간 단축 이후 30분이었던 교대 시간이 20분으로 줄어 힘들다고 호소했다. 그때 노동자들은 대형마트가 얼마나 큰 줄 아냐며 휴게실로 걷다 보면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마트가 얼마나 크다고 그게 그렇게 차이가 있나?, 하고 그 불평과 불만을 믿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쇼핑할 때의 나는 무한한 시간을 가지고 넓은 공간을 탐구했지만, 노동자가 되어 20분이라는 제한 시간에 쫓기자 공간의 크기가 달라졌다. 캐셔는 일단 개인 돈통을 소지하며 계산대를 옮겨 다녀야 해서 교대 시간에는 돈통(틸)을 돈통 사물함에 넣어야 했다. 화장실에 가든 볼일을 보려면 일단 휴게실 옆에 있는 돈통 사물함을 들려야 했다. 마찬가지로 교대 시간이 끝나고 계산대로 돌아갈 때도 돈통 사물함에 들려 돈통을 찾아야 했다. 교환할 지폐라도 부족한 날이면 화장실에 갈 틈이 없었다. 나는 늘 종종걸음을 치며 시계를 확인했다. 내 인생 처음으로 ‘1분’이 소중했다.

H그룹은 B 대형마트의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추가 인력을 배치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기존 인력을 압축적으로 일하게 만들겠다는 말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사무직 노동자에게는 문제가 없었다. 의미 없는 보고용 문서와 회의를 없애고, 회의가 필요하다면 중요한 안건만을 빨리 처리하도록 하여 본인의 업무에 주력하도록 하겠다는 뜻이니까. 실제로 인터뷰한 H그룹 본사 사무직 직원들은 노동강도가 강해지기는 했지만 그런데도 퇴근 후 개인적인 시간을 1시간 더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좋다고 답했다. 자율적으로 노동강도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B 대형마트 유통직의 주된 업무의 성격은 육체노동이었다. 캐셔 노동이 감정과 정신, 육체가 모두 혼재된 양상을 띠기에 가장 힘든 것은 나의 ‘몸’이었다. 노동시간이 단축된 이후 그녀들의 삶에서 1시간의 여유는 사무직의 1시간과는 달랐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노동시간보다 길게 영업을 해야만 하는 대형마트의 특성상 대형마트 일자리는 교대제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상상하는 교대제와는 다른 양상을 띤다. 예를 들어, 제조업의 교대제는 고객의 수요가 아닌, 생산을 목적으로 하기에 조별로 출퇴근 시간을 고정하여 근무를 교대하는 방식으로 노동력을 운영한다. 그러나 대형마트는 생산하는 일이 아니라 고객을 응대하는 일이 주된 업무이고, 주말이나 특정한 시간대에 바쁘기 때문에, 특별히 바쁜 시간대에는 많은 노동력을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출퇴근 시간대가 고정된 조를 통해 교대되는 제조업과는 달리 조는 정해져 있지만, 개별 노동자에게 각기 다른 출퇴근 시간을 부여하여 노동력을 유연하게 운영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대제 운영 방식으로 인해 노동시간 단축 이후 노동시간은 30분 단위에서 10분 단위로 세밀하게 조정되었고, 이에 노동자들은 매일매일 시간이 바뀌는 교대제 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녀들은 노동시간 단축 이후 언제 출근을 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게 되었고, 교대 시간은 줄어 분 단위로 시간을 체크해야 했고, 거기다가 각종 수당이 사라져 실질 임금 또한 감소하였던 것이다.[3]

[3] 노동시간 단축 이후 노동 현장의 변화는 지점마다 다르게 관찰된다. 이에 대해서는 논문을 참조하시길.

3.

마트 노동자들의 거의 전부는 경력단절 여성이다. 그녀들은 나의 엄마와 마찬가지로 결혼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었으며,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자 다시 노동시장으로 진입했다. 그녀들은 한때 그녀의 이름으로 불렸고, 그러다 00 엄마로 불렸고, 이제는 여사님으로 불린다. 그녀들에게 일터는 단순히 임금을 획득하는 장소 이상의 의미가 있다. 엄마가 되면서 포기해야 했던 사회생활, 사회생활을 통해 형성되던 사회적 자본의 재획득은 그녀들의 부족한 임금을 채우고 있었던 보이지 않는 자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 현장의 변화로 그녀들의 삶 또한 변화되었다. 8시간 근무를 하던 당시에는 노동시간 자체가 이렇게 변칙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계획을 해서 여가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다른 노동자와 수다를 떨며 일터에서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도 있었다. 일이 끝나고 마음이 맞는 동료와 함께 술[4]을 마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노동시간이 단축된 이후에는 일터에서 노동자들과 얼굴을 마주하지 못할 때도 있고, 각자 출퇴근 시간이 다르다 보니 다른 노동자와 시간을 맞추어서 모임을 하기도 어려워졌다. 임금의 부족분을 메우고 있었던 일터에서의 사회적 자본은 1시간과 맞바꾸어 사라져 버렸다.

[4] 블루칼라 노동자에게 ‘술’은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술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전자의 경우 누적된 육체적 피로를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노동주의 성격을 띠지만 후자의 경우는 접대와 사회생활(업무의 연장)의 성격을 띤다. 특히 블루칼라 노동 사업장의 경우에는 유의미한 승진체계가 존재하지 않아 대부분의 노동자가 평사원이기에 동료들이나 매니저와의 술자리가 ‘접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일례로, 사무직 노동자에게 회식은 일의 연속으로 인식되지만, B 대형마트 노동자에게 회식은 동료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음껏 먹는 행사로 의미화되었다. 참여관찰 당시 있었던 지점 전체 회식에 대하여 교대근무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던 노동자들은 매우 큰 아쉬움을 표현하였다.

(다음주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