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wd 창간호 「백래시」를 닫으며

⚓️오온

1.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는 지난 겨울에 시작되었습니다. 섹슈얼리티 세미나를 함께하던 대학원생 여섯 명이 공부하면서 생긴 문제의식을 글로 엮어 발행할 방법을 찾던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페미니즘 학술서를 읽으면서, 우리는 페미니즘 이론이 가진 깊이와 다층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해방 또는 종속’이라는 이분법으로 단순히 설명되지 않는 여성들의 복잡한 현실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페미니즘 이론의 언어를 우리가 자리한 현실에 접근하는 데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의 페미니스트이자 대학원에 재학 중인 연구자로서, 대중과 연구자의 사이에 서서 페미니스트 대중의 이야기와 페미니즘 이론의 언어를 잇는 글을 쓰고자 했습니다. 에세이보다는 분석적이면서 학술논문보다는 가벼운 글을 통해, 페미니즘을 둘러싼 대중적인 논쟁의 장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우리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첫 기획의 주제를 ‘백래시’로 잡은 이유는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백래시’라고 일컬을 수 있는 현상들이 우리의 일상에 넘실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간호가 발간되는 동안 점화된 ‘장학썬(장자연, 김학의, 버닝썬의 약자)’ 사건은 한국에서 여성 몸에 대한 폭력 및 여성 섹슈얼리티의 자원화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드러내는 동시에 이를 고발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쉽게 침묵되고 부인되는지를 보여줍니다. 피해를 고발하고 혐오를 지적하며 불평등에 항의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소거하고자 하는 사회적인 욕망은 오세라비가 중요한 발화자로 주목받게끔 했고, 대학 사회에서 총여학생회 폐지 흐름을 만들어냈습니다. 낑깡의 글 <오세라비는 ‘어떻게’ 떴나?>는 오세라비가 ‘한국 페미니즘’을 진단하는 권위 있는 발화자로 등장하게 된 맥락과, 그 맥락에서 작동하는 권력구조를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해당 글에서 오세라비를 부각시킴으로써 오히려 안티페미니즘의 언어를 실체화하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우려가 남습니다. 앞으로는 안티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 전문가로서 호출되는 장이 형성되는 과정 그 자체에 비판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자 합니다. <총여학생회 폐지에 관한 소고>에서 상상과 미현은 ‘탈정치화’된 학생사회에서 총여학생회 폐지 흐름이 어떻게 ‘정치화’되고 있는지를 분석했습니다. 학생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대학 내 페미니즘 정치는 무엇을 어떤 형태로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대학 사회 내부와 외부의 페미니스트들이 어떻게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을지 또한 고민입니다.

기획 전반부가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현상에 접근했다면, 기획 후반부는 페미니즘에 대한 대중적인 논의가 주로 진행되고 있는 온라인 장에서 ‘백래시’가 사용되고 있는 양상에 주목했습니다. 기획의 변(링크)에서도 밝혔듯, “최근 한국의 맥락에서 ‘백래시’라는 말은 페미니즘 운동을 무화시키기 위한 사회적인 움직임과 페미니즘 운동의 목표에 배치된다고 여겨지는 개개인의 행동을 모두 지칭하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 베일 쓰기, 화장하기와 같은 개인의 특정한 행위가 ‘백래시’의 전형으로 규정되는 방식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란 여성들의 베일 쓰기 행위가 놓인 역사적인 맥락과 한국 페미니스트들의 ‘탈코르셋’ 운동을 둘러싼 서사가 만들어지고 있는 맥락에 각각 구체적으로 접근하고자 했습니다. <베일은 언제나 어디서나 백래시인가?>에서 젊은쥐는 이란혁명 시 다중적인 의미를 담은 기표로 사용된 베일이 서구에 전유될 때, 베일을 벗는 행위만이 ‘진보’로 강조되고 베일을 착용하는 다른 동기들은 삭제되는 양상을 살펴보았습니다. 현재 이슬람 혐오가 과열되면서 베일 쓰기를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고 있는 데 반해, 다른 한편에서는 베일이 ‘다문화’와 ‘관용’의 상징으로 비치고 있습니다. 베일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차용한 다국적기업의 마케팅과 같이, 베일과 소비문화가 만나는 양상에 대해 추후 비판적으로 접근하고자 합니다. <‘탈코르셋’과 이분화된 몸의 서사>에서 송유진은 탈코르셋을 둘러싼 담론이 여성 몸의 이미지를 이분화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더 많은 몸들에 대한 상상을 요청했습니다. 사실 SNS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운동의 일면일 뿐입니다. 추후 연구에서는 탈코르셋 운동이 젊은 여성들의 몸에 대한 이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보다 자세히 읽어내고, 이를 토대로 문화운동으로서 탈코르셋 운동이 갖는 의의와 효과를 정리하는 방향으로 글을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2.

창간호의 기획이 모두 발간된 지금, Fwd를 향한 크리틱을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창간호의 글들이 ‘맥락을 보자고 이야기하면서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한다’, ‘여성들이 처한 위험한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요지의 비판을 접했습니다. 백래시의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지금 ‘구체적인 맥락을 보아야 한다’, ‘다층적인 결을 읽어야 한다’는 등의 말이 공허한 당위처럼 느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성들 사이의 차이가 아니라, 여성들의 공통된 억압에 대해 이야기하고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당면한 억압과 착취를 개선하는 데 가장 급박하게 요구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억압 및 착취가 존재한다’ 혹은 ‘OOO은 여성에 대한 억압 및 착취이다’라고 단언한 뒤 그 안의 세밀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페미니즘이 비판하는 바로 그 공허한 당위에 멈추게 되고 마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습니다. 다나 해러웨이는 페미니스트 지식이 해방을 가장하지 않고, 모든 억압의 소멸이라는 종결성의 정치에 저항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지식은 몸이라는 장소의 가변성과 취약성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은 항상 변화하는 다양한 맥락과 권력의 장에 놓여 있기에, “단 하나의 페미니스트 입장이란 없”습니다(Haraway, 1988). 해러웨이는 우리 모두가 분열된 정체성과 부분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여성’이라는 총체성에 도전합니다. 부분적 시각이란 특정한 맥락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의 시각이며, 억압받고 종속된 이들이라는 정당성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설명가능성account-ability을 요청받아야 하는 시각입니다.

따라서 다양한 결을 고려하자는 말은 “중립적인 입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지식이 부분적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성찰적으로 접근하자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주장하는 지식에 대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여성 억압 및 착취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위해 ‘구체적인 맥락을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로 그 여성 억압 및 착취를 말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맥락을 살펴보자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다양한 여성들이 위치한 맥락을 사상시키고 그들의 경험을 단 하나의 언어로 추상화하는 것이야말로 “유보적 태도”이자, “거리두기”는 아닐는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성 해방’이라는 단일한 기치를 위해 집단 내외부에서 발생하는 차이를 미처 살피지 않는다면,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역량은 그 단일한 기치에 의해 질식되고 맙니다. 따라서 페미니스트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여성 및 소수자들을 타자화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피해와 고통을 운동이나 연구의 자원으로 착취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처한 구체적인 현실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들 사이의 차이에 대한 섬세한 접근이야말로 페미니즘이 요구하는 윤리이자 정치라고 믿습니다. 해러웨이가 말했듯, 페미니스트 지식 생산은 여성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account for 동시에 이 설명에 책임accountability을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성 및 소수자 들의 목소리에 응답response하고 이에 책임responsibility을 지는 페미니스트 지식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자 합니다.

처음엔 여섯 명으로 시작했지만 차츰 멤버가 늘어 열여섯 명이 함께 Fwd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세 달 정도 준비하고 두 달 동안 글을 열 편 정도 발행하면서, 서로서로 많이 배우고 성장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창간호를 읽어주신 분들께 모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의 기획도 관심 가지고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더불어 기고 또는 후원으로 Fwd와 함께 해주시면 더욱더 감사하겠습니다.


참고 문헌

  • Haraway, Donna(1988). “Situated Knowledges: The Science Question in Feminism and the Privilege of Partial Perspective”. Feminist Studies, 14(3). pp. 575-5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