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기기/씌우기’의 정치학: 부르키니와 샤넬 히잡

🐹젊은쥐

1. 새로운 명품 소비자 무슬림 여성을 겨냥하라

샤넬, 구찌, 돌체 앤 가바나에서 히잡을 선보였다. 무슬림 여성들을 겨냥한 제품이었다. 2016년, 이탈리아 브랜드인 <돌체 앤 가바나>는 ‘아바야 컬렉션(Abaya Collection)’을 통해 소위 서구 명품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히잡을 런웨이에 세웠다. 아바야는 아랍지역 여성들이 어깨와 머리를 가릴 수 있게 사용하는 천을 뜻하며 주로 검은색이지만, <돌체 앤 가바나>는 화려한 패턴이 가미된 히잡을 선보였다. 혹은 다소 밋밋해 보이는 히잡을 보완하기 위해 가방과 액세서리, 옷이 소개되었다. 돌체 앤 가바나는 새로운 이 컬렉션을 “중동의 모래언덕과 하늘의 몽상, 아라비아의 매혹적인 여성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이어지는 여러 해 동안 돌체 앤 가바나는 매번 새로운 컨셉으로 히잡 컬렉션을 발표했다.

돌체 앤 가바나 외에 프랑스의 샤넬, 그리고 구찌의 다소 생뚱맞은 히잡까지. (2018년 FW 구찌 컬렉션을 찾아보라(페이지 보기).) 명품 로고나 고급스러운 재질, 혹은 화려한 장식이 히잡의 몸값을 좌우한다. 스와로브스키 쥬얼리가 박힌 히잡은 800만 원에 달한다(기사 보기). 오늘날 서구의 명품 회사들은 소비력을 입증하는 데 성공한 무슬림 여성들을 겨냥하기 위해, 작지만 확실한 틈새시장 전략으로 히잡을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명품 회사들의 히잡 출시에 대해 찬사와 비판이 오갔다. 한쪽에서는 명품 회사들이 돈에 눈이 멀어 여성의 젠더 분리와 억압을 의미하는 ‘히잡’을 지지하고 재생산한다고 비판했다. 다른 한편 럭셔리 브랜드들이 소비자를 서구 백인 여성으로 상정하고, 그에 따른 미적 기준만을 고수했던 그간의 관행을 탈피해 드디어 다양한 ‘여성상’을 그리기 시작했다며 다소 섣부르게 명품의 ‘다문화주의’를 이야기했다. 어쨌든 자기표현의 일종으로 독특한 명품 히잡들이 주목받았고, 무슬림 여성들이 적극적인 소비 주체로 호명되었던 것은 분명해 보였다.

2. 부르키니와 샤넬 히잡

명품은 계급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기호이다. 의복으로 드러나는 가난과 부는 히잡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서구 명품 브랜드들의 히잡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히잡 사이엔 위계가 존재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무슬림 여성들은 천차만별인 직물 앞에서 더 많은 선택권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서구 브랜드들이 선보이는 럭셔리 히잡은 가격과 계급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바로 서구라는 거대한 정치체이자 문화체에서 한쪽은 히잡을 금지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히잡 착용을 용인하며 심지어 히잡을 통한 자기표현을 찬양하고 있다는 것이다.

[1] 2016년 프랑스 니스 해변에서 발생한 일명 부르키니 사건. 부르키니를 벗을 것을 요구하는 경찰관과 한 무슬림 여성이 사진에 포착되었다(기사 보기).

2016년 프랑스에서 발생했던 부르키니 사건을 떠올려보자. 이 사건은 휴양지로 익숙한 프랑스 남부 도시인 니스(Nice)의 한 해변에서 발생했다. 해변을 돌던 경찰은 한 무슬림 여성에게 그녀가 입은 부르키니(부르카+비키니)를 벗으라고 요구했다. 부르키니는 무슬림 여성들이 신체를 노출하는 기존의 수영복을 새롭게 고안해 자신들의 필요(수영)에 맞게 제작한 스포츠의류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벌금형을 받는 다소 강한 제재를 받았는데, 주변 시선 또한 곱지 않았다고 한다. 사건을 목격한 한 목격자는 그곳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그 여성을 향해 ‘집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치며 경찰을 향해 박수를 쳤다고 증언했다. 이후 부르키니를 ‘벗긴’ 경찰은 그녀가 도덕(good moral)을 어겼기에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이 있음을 주장했다. 그가 말한 모호하고 광범위한 ‘도덕’에는 프랑스 특유의 강력한 세속주의 전통과 반종교적인 정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경찰이 테러리즘에 대한 대중의 불안을 잠재울 의무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부르키니를 입은 여성은 테러의 위험을 담지한 ‘위험분자’였다.

히잡에 대한 서구의 과도한 집착은 그들이 이슬람 문명과 접촉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2000년대 히잡의 맥락은 다르게 흘러갔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을 포함한 서구 국가들은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이라는 이유로 무슬림에 대한 검열을 시행하였다. 2004년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에 제정된 ‘공립학교 내 종교적 상징물 금지법’과 2010년 ‘부르카 금지법’이 가시적이다. 유럽에서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은 ‘동화의 실패’이자, 국가의 관점에서는 ‘사회통합의 실패’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세속적이어야 하는 서구 국가에서 ‘과도한’ 종교적 상징물인 ‘히잡’은 불편했고, ‘인권 지향적이어야 하는’ 서구 국가에서 ‘히잡’은 너무 ‘가부장적’이었다.

프랑스의 히잡 문제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온 여성 사학자 스콧(2019)은 무슬림 여성의 몸을 인식하는 서구의 지배 담론에 주목했다. 히잡에 대한 서구의 병적인 히스테리에는 국가 정체성과 안보의 관점도 분명 있지만, 스콧은 몸을 가린(covered) 무슬림 여성과의 대비를 통해 형성된 ‘(서구)여성의 자유’ 담론이 자리 잡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 담론에 따르면, 여성의 ‘신체 자기 결정권’은 드러낸(uncovered) 몸을 통해 획득되며, 이러한 ‘성적 자율성’만이 진정한 ‘성적 평등’을 의미한다. 유럽의 근대적인 시민권이 ‘이성적인 사고’에 바탕을 두었다면, 무슬림 인구의 가시화 이후에는 드러내는 몸을 통한 욕망이 정상성 규범 내에 있으며 그 욕망의 행위만이 시민권에 적당한 것으로 확정되었다.

2004년 일명 ‘히잡 금지법’이 제시한 무슬림 여성의 ‘올바른 여성 시민 되기’는 히잡을 벗는 것이었다. 국가는 적극적인 자기 전시를 하며 자기 신체에 투자하는 여성에게 자본주의와 소비주의를 실현하는 경제적 주체이자 정치적 시민권자가 될 수 있다고 속삭였다. ‘성적해방이 곧 젠더 평등이라는 공식’이 무슬림 여성들에게 투영되었을 때, 국가가 나서서 무슬림 여성의 히잡을 벗김으로써 ‘인권 국가’로서의 면모를 다질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시민권에 적합한 욕망하는 몸은 ‘벗은’ 몸에만 있을까. 2010년대, 히잡을 선보인 명품 브랜드들이 설정한 ‘히잡을 벗지 않은’ ‘주체적인’ 무슬림 여성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어떤 히잡은 또 다른 시민의 가능성으로 간주되는 것은 아닐까.

3. 히잡을 벗기고 씌우며 올바른 ‘시민’ 만들기 

히잡은 무슬림 여성의 ‘정숙함(modest)’을 위한 의복이다. 스콧은 이러한 히잡의 의미 때문에 ‘욕망’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무슬림 여성들이 주체성을 상실한 것처럼 그려진다고 파악했다. 하지만 무슬림 여성이 ‘감싸되’ ‘벗은 여성’만큼 돈을 투자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까? 2010년대 서구 명품 브랜드들은 임파워링된 멋진 신여성으로 (시크하고 값비싼)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을 내세우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 이성을 대체한 ‘욕망’이라는 개념이 무슬림 여성의 타자화에 적용될 때 꼭 히잡을 벗는 것으로 발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의 히잡은 금지되며, 누구의 히잡은 장려되는 것일까. 다소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무슬림 여성에게 히잡 착용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은 ‘자본’인 듯하다. 프랑스에서 이주민 세대들은 불안정한 지위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정치적 시민권은 있으나, 사회에 소속되었다는 감정인 성원권은 얻기 힘들다고 여겨진다. 프랑스가 설정한 보편 시민의 기준이 역사적으로 매우 협소하게 규정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 이주민에 대한 국가 정책은 엄격해지며, 동시에 시장은 소비자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국경은 봉쇄되고 자국민 중심적인 정책은 힘을 얻지만, 초국적 브랜드들의 여성주의적/다문화주의적 마케팅들 역시 동시대에 행해지고 있다.

이러한 (국가의) 엄격함과 (시장의) 유연함은 소수자를 분화하면서 이루어진다. 그 나라의 얼굴과도 같은 명품 회사들이 페미니즘과 다문화주의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같은 소수자와 관련된 정책에 관해서는 매우 보수적인 태도가 이를 증명한다[2]. 국가와 시장에게 ‘여성’은 같은 ‘여성’이 아니며, ‘무슬림’은 같은 ‘무슬림’이 아니다. 이들의 타겟은 ‘소비 가능한’ ‘무슬림 여성’이다. 

[2] 손희정(2019년 7월 15일). “[직설]나이키 페미니즘을 타고 넘기”. 경향신문 .

즉, 언뜻 충돌하며 모순되어 보이는 ‘히잡 금지’와 ‘히잡 씌우기’라는 이중 전략은 서구 시민의 자격인 ‘주체성’은 ‘누구’에게 주어질 것인가에 따라 매번 다르게 적용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두 가지의 시민 만들기 방식은 경제적인 것으로부터 정치적 주권을 부여하는 신자유주의적 통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구매/소비력을 통한 자기 계발과 경쟁이 가능한 ‘무슬림 여성’의 히잡은 국가가 자랑할 만한 문화자본이 되며, 이주민의 가난은 손쉽게 범죄나 국가 정체성의 위기와 결부되어 그/녀의 종교적 정체성은 제거되어야 하는 요소로 지목받는다.

초국적 기업인 샤넬이 히잡을 선보이며 설정한 ‘소비 가능한’ 여성은 언뜻 보기에 프랑스 자국 내 무슬림 여성과 어떤 관련도 맺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령 샤넬은 국가 경계에 얽매인 소비자가 아닌, 전 세계를 자유롭게 떠도는 코스모폴리탄을 겨냥한 듯 보인다. 서구 명품 브랜드는 글로벌 시장에 최적화된 무슬림을 분류하고, 그들에게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며 국민국가에서 자유로운 ‘유연한 시민권’을 부여한다. 꼭 명품 브랜드는 이 무슬림 여성에게 프랑스의 ‘히잡금지법’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처럼 속삭인다. 당신은 공공장소에 있다고 해서 니스 해변의 여성처럼 부르카를 벗을 일은 없을 것이라 장담한다. ‘샤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센(1996)이 밝히듯, 경제의 전지구화는 정치의 민족주의화와 짝을 이룬다. 자본의 흐름과 축적에 바탕을 둔 신자유주의는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그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국민, 특히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복지 삭감과 이주민에 대한 통제를 불러온다. 다양성 전략을 펼치는 나이키의 이면에 개발도상국 여성들의 노동 착취를 외면할 수 없듯, 샤넬이 구성한 ‘코스모폴리탄 무슬림 여성’에게서 프랑스의 반이슬람적이며 반이민적인 정책과 담론을 떼어내기란 힘들다. 오히려 서구 명품 히잡들은 이주민들의 계급과 소비능력만이 그들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방법임을 우회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참고 문헌

  • Scott, Joan W.(2019). Sex and Secular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 Sassen, Saskia(1996). Losing Control? Sovereignty in an Age of Globalization,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 손희정(2019년 7월 15일). “[직설]나이키 페미니즘을 타고 넘기”. 경향신문.
  • Ben Quinn(2016.8.24). “French police make woman remove clothing on Nice beach following burkini ban”. The Guard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