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워킹홀리데이를 온 쯔쉬엔의 이야기 (2)

👻 보라돌이


한국 입국 수속을 마친 쯔쉬엔은 인천공항 수화물 찾는 곳에서 ‘웅-’하고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민 가방 같은 거대한 캐리어가 나왔다. 쯔쉬엔과 위에팅의 짐은 다른 사람들의 짐보다 월등히 컸기 때문에 그들은 단번에 자기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인천공항 입국 게이트를 나서자, 형광등 불빛과 바깥 봄 햇볕이 섞인 나른한 봄 조명이 쯔쉬엔을 반겼다.  ‘아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1. 한국어를 못하는 쯔쉬엔이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국에 온 지 일주일 만에 연남동에 1년 동안 살 집을 구한 쯔쉬엔과 위에팅은 처음으로 마음 편히 누웠다. 그리고 몇 주 동안은 홍대, 명동, 동대문, 경복궁, 남산 등 유명한 관광지를 방문하여 관광객 모드로 “홀리데이”를 만끽했다. 한국 드라마에 나온 곳을 찾아가 드라마 주인공처럼 사진을 찍고, 인터넷에서 찾아본 잘 꾸며진 카페에 찾아가 예쁜 디저트들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했다. 유명한 한국 화장품 브랜드 제품을 대만 친구에게 국제 택배로 부치기도 했다. 쯔쉬엔은 자신의 SNS에 남겨진 친구들의 댓글을 읽어보았다. “와~ 한국 워킹홀리데이 완전 놀러갔네!” “좋겠다~ 부러워 나도 가고 싶어!” 

하지만 그 댓글들을 보면서 왜인지 쯔쉬엔의 마음 한편에서는 어떤 불안감이 모락모락 올라오기 시작했다. 쉬면 불안한 워커홀릭의 자아가 일어나 안에서 쿡쿡 찌르는 것 같았다.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놀아도 되는 거니? 시간 낭비하고 있는 거 아닌가? 1년 동안 다른 경험을 하고 뭔가 배워가야 하는데!’ 쯔쉬엔은 벌떡 일어서 재한 대만인들의 일자리 정보공유터 ‘韓工社[1]’에 접속했다.

[1] ‘한국에서 일하는 이들의 모임’이라는 뜻의 ‘韓工社’는 한국에 워킹홀리데이를 온 대만사람들이 직업이나 집을 구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이다. 이 페이지는 일자리와 집 정보 뿐만 아니라 일상 한국 정보 교류, 중고 벼룩시장 등이 활발하다. (사이트 보기)

쯔쉬엔은 며칠 동안 이 페이지에 올라오는 구인구직 광고를 섭렵했다. 대만 사람을 구하는 곳은 대부분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는 홍대, 명동, 동대문 등지였다.  사실 한국어를 거의 할 줄 모르고 기타 경력도 없는 대만 젊은 여성이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거의 정해져 있었는데, 이는 중국인과 대만, 홍콩, 동남아 등지에서 온 중국어로 소통이 가능한 사람들을 대하는 일이었다. 크게 분류하자면, 게스트 하우스, 홍대나 명동 등 관광지의 면세점, 화장품, 옷가게, 동대문 의류시장, 한복대여점, 중국회사, 여행사, 게임회사 등이다. 

사스키아 사센(Sassen)은 세계도시에는 금융, 기술뿐만 아니라 관광, 숙박,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같이 발달하며, 여기에 필요한 단순 저임금 노동을 할 여성 서비스 인력의 수요가 같이 증가한다고 주장한다(Sassen, 2000). 그런데 보통 이 자리는 이주 여성으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쯔쉬엔이 홍대나 명동에서 한국인만큼 많은 외국인들에 놀랐던 것처럼, 서울은 관광산업이 발전한 도시이다. 특히 최근 쯔쉬엔 또래가 한류의 영향을 받아 한국 여행을 오는 것처럼 한류의 영향으로 많은 젊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고 있다. 중국어가 가능한 젊은 여성이라는 쯔쉬엔의 신분은 중국의 유커(遊客)[2]와 대만, 홍콩, 마카오, 동남아시아 화교 등의 중화권 관광객이 고객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의 관광 서비스 산업[3]에 딱 맞았다.

[2] ‘유객’ 즉, 구경하고 놀러다니는 여행객이라는 중국어로 중국인 관광객을 뜻하는 말이다. 이제는 ‘요우커(youke)’라는 고유명사가 될 정도로 중국인 관광객은 전 세계 관광 산업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사드 배치 이후 경색된 한중 외교 관계의 영향으로 크게 줄기는 했지만, 그 전까지는 한국 관광 산업의 큰 손 역할을 했다. 
[3] 2018년 외국인 관광객의 국가별 순위는 1위 중국(479만명·31.2%), 2위 일본(295만명·19.2%), 3위 대만(112만명·7.3%), 4위 미국(97만명·6.3%), 5위 홍콩(68만명·4.5%) 등 순이었으며, 이는 10년 전인 2009년과 비교했을 때, 4위였던 대만이 미국을 추월해 3위로 올라섰고, 홍콩도 6위에서 5위로 한 계단 높아지는 등 동아시아 국가 지역에서의 한국 관광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기사 보기)

(1) “밤 8시에 출근해서 새벽 5시에 퇴근한다고요?” – 동대문 의류도매시장

쯔쉬엔은 구인공고 중에서 동대문 의류시장에서 중국어 가능자를 구한다는 공고를 발견했다. 하는 일은 중국, 대만에서 온 의류 도매상과 바이어를 대하는 일이었다. 패션에 관심이 있는 쯔쉬엔은 그 공고를 유심히 보았다. 특이한 것은 근무시간이 밤 8시부터 새벽 5시라는 것이었는데, 쯔쉬엔은 올빼미 스타일이므로 신경 쓰지 않았다. 

쯔쉬엔이 동대문 의류시장에서 새벽에 하는 일은, 한국에 옷을 도매로 사러 오는 중국, 대만, 홍콩 출신의 도매상들에게 옷을 소개하고, 그들이 주문하는 품목을 잘 정리하고 짐을 나르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小幇手’라고 했다. 

대만에서 예쁜 의류 샵이 있는 동취(東區)이든, 야시장에서 저렴하게 파는 옷이든, 인터넷 쇼핑몰에서 파는 옷이든 간에 쯔쉬엔은 ‘Made in Korea’, ‘韓風(한국 스타일)’이 달린 옷이 인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자기가 그 현장에서 일하게 되어보니, 자기가 대만에서 온 도매 상인에게 아무거나 대고 “이거 지금 한국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이에요” 해도 그들은 영혼 없이 그 옷을 떼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에겐 그저 ‘한국산’이라는 게 중요해 보였다. 

‘아… 저거 또 대만에서 한국 스타일이라면서 비싸게 팔리겠지… 정말 싫다.’ 

(2) “젊은 날의 경험”으로 “퉁쳐지는” 노동유연화

여느 날처럼 저녁 8시에 출근하여 가게 안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던 쯔쉬엔에게 한 여성이 갑자기 포스트잇을 전해주고 갔다. 포스트잇 안에는 중국어로 다음과 같이 쓰여있었다.

“나 여기서 일했던 사람이에요.  여기 사장 몰래 나한테 연락해요. Line ID: XXXXX12”

‘뭐지?’ 어리둥절한 쯔쉬엔은 포스트잇에 쓰여있는 아이디를 추가하여 연락했다. 

“저에요. 저 어떻게 아셨어요?”

알고 보니, 쯔쉬엔에게 몰래 포스트잇을 주고 간 그 사람은 이 가게에서 예전에 일하던 대만인이었는데, 월급을 못 받고 그만두었다고 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 사람은 자기 말고 피해자가 몇 명 더 있다고 했다. 그들 역시 워킹홀리데이로 한국에 온 사람들이었고, 학생비자로 ‘불법’으로 일하다가 못 받은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 여성은 쯔쉬엔을 다른 피해자들이 있는 단체 채팅방으로 초대했다. 

채팅방에서 월급을 못 받았지만 한국어도 못하고 무서워서 신고하지 못했다는 사람, 어학연수 학생비자라서 알바한 것이 걸리면 안 되기 때문에 신고하지 못했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쯔쉬엔은 점점 겁이 났다. ‘일한 지 곧 한 달이 되어가는데, 나도 못 받으면 어떡하지?’

며칠을 고민한 쯔쉬엔이 내린 결론은, “한 달만 일해보자”였다. 쯔쉬엔은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지자이기 때문에, 만약 이번에도 임금체불이 일어나면, 피해자들과 함께 경찰에 신고할 계획도 세웠다.   

월급 날이 되었다. 그 주가 시작되자마자 긴장했던 쯔쉬엔은 일하는 내내 사장님이 월급 얘기를 꺼내나 안 꺼내나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사장은 정말 아무 소리 없이 지나갔다.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임금체불이 곧 자신의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 같자, 쯔쉬엔은 너무 무서웠다.

주말에 쯔쉬엔은 용기를 내어 구글 번역기까지 사용해가며 “월급을 언제 주시냐”라고 문자를 보냈다. ‘위잉-’ 하는 소리에 깜짝 놀란 쯔쉬엔은 자기가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긴장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사장에게서 온 답장을 구글 번역기에 돌리자 황당한 답변이 나왔다. “사고가 났는데 다리를 다쳐서 오늘은 못 주겠다”라는 내용이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위에팅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한국 은행 계좌도 있는데 인터넷 뱅킹으로 송금을 못해주는 거야..? 손가락만 있으면 보낼 수 있잖아! 진짜 웃겨.”

쯔쉬엔은 결국 다음 주에 월급을 받았다. 그러나 사장은 약속한 액수를 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0월 0일, 0월 0일, 0월 0일 000을 못 했기 때문에, 또 000의 주문 액수를 잘 못 받아 적어서”라고 했다. 단체 채팅방에 있는 사람들과 위에팅은 분노했지만, 이미 마음이 지친 쯔쉬엔이 할 수 있는 것은 “어차피 한 달인데… 그냥 경험했다고 생각하자. 그냥 공짜 저녁 먹은 거 치면 쌤쌤이라고 치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만두는 것뿐이었다.

한국의 여행, 숙박, 관광업은 영세한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사업장이 영세할수록 계약서를 제대로 갖춘 경우가 많지 않으며, 노동 환경에 대한 규칙이 시스템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장의 임의에 더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생활 경험도 적고 한국어에 서툰 외국인은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받기 더욱 힘든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특히 쯔쉬엔과 같이 자기계발에 익숙해진 신자유주의 청년세대는 외국에서의 인권 침해나 열악한 노동환경을 “젊은 날의 경험”으로 정당화하기 쉽다(김현미, 2010).

 2. “대만에서는 쳐다보지도 않을 일, 한국에서는 가능한 이유가 뭐야?”

동대문 의류도매시장에서 겪은 나쁜 기억 때문에 마음이 위축되었던 쯔쉬엔은 한 달 뒤 한 게스트하우스에 면접을 보았고, 직원으로 일하기로 했다. 다시 일하기 무서웠지만, 가져온 돈이 거의 다 떨어져가는 상황에서 일을 안 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합정의 한 2층짜리 주택을 리모델링하여 만든 게스트하우스는 작지만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사장님은 한국인과 대만인 젊은 부부였다. 거기에는 이미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와서 일하고 있는 대만 출신 켈리(29) 언니가 있었는데, 켈리 언니는 멋지고 쿨한 스타일이어서 언니를 보고 있으면 현실의 자잘한 고민들을 잊을 수 있었다. 

“켈리, 켈리는 한국에 어떻게 왔어요?” 

“나? 하하하. 난 ‘지금 아니면 언제 나가보겠어?’ 하는 생각으로 왔지. 직장 다니면서  ‘방의 노예(屋奴)’로 살다가 지겨워서 다 때려치우고 온거야. 내가 대만에서 몇 년 동안 열심히 다닌 회사에서 월급을 2만 5천 원(한화 약 100만 원) 정도 받았거든. 근데 웃긴 게 뭔지 알아? 한국에서는 이거 게스트하우스 맨날 하면 한 달에 130만 원 번다?”

쯔쉬엔은 어서 머리 속으로 한화 130만원이 대만 돈으로 대략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 보았다. 환율 등락을 고려하더라도 대만 돈으로 3만 원이 넘는 돈이었다. 

“한국에서 그 30만 원은 월세 낸다고 치면, 나머지는 대만 월급이랑 똑같은 건데. 그러면 차라리 돈 조금 더 보태서 한국에서 살지. 내가 대만에 있고 싶겠니? 호호호. 근데…”

켈리 언니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대만에 있으면 안 하겠지 이런 일… 게스트하우스 청소 일을 하겠니, 내가? 사장님한테는 말하지 마. 크크크. ‘그냥 1년만 버티자~’ 이런 거지! 그치만 대신 여행할 수 있잖아. 다른 나라에서 산다는 거~”

쯔쉬엔은 집에 돌아와서 켈리 언니의 말이 맴돌았다. ‘대만에서라면 거들떠도 안 볼 청소 일이, 외국에서는 괜찮아지는 이유는 뭘까? 대신 여행을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사실 켈리 언니는 게스트하우스 매니저라서 자리도 비우지 못하잖아? 그냥 외국에서 사는 기분만 내는 거지…’ 쯔쉬엔은 정말 궁금해졌다. ‘게스트하우스 청소 일을 참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단지 외국에서 산다는 것 때문일까? 1년만 참으면 되어서? 그 1년 동안 뭘 얻을 수 있지?’

3.  한국 워킹홀리데이가 쯔쉬엔에게 남긴 것

2020년 2월 한국에서 COVID-19이 확 번지면서 외국 손님들의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4월까지의 스케줄이 텅 비어버리자,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켈리와 쯔쉬엔에게 일단 일을 나오지 말라고 했다. 코로나로 마음대로 외출도 어려워지고, 대만에서 한국발 비행기의 입국을 막을 수도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결국 쯔쉬엔과 위에팅은 1년 계약한 방도 정리하지 못한 채로 부랴부랴 3월 초에 귀국하고 말았다.

‘몰라… 4월에 한국 벚꽃 피면, 엄마도 놀러 오겠다고 했는데… 마지막 4, 5월은 정말 홀리데이를 즐기려고 했는데. 이게 뭐야.’

코로나는 쯔쉬엔에게 강제로 14일 동안 방 안에서 한국 워킹홀리데이를 돌아보고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자가격리 시간을 주었다. 10개월간의 한국 생활이 머릿속에서 영화처럼 펼쳐졌다. 영상을 검사하는 감독처럼 쯔쉬엔은 그 재생되는 영상 하나하나에서 의미를 찾아내려 애썼다.  

쯔쉬엔은 한국에서 생긴 재주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화장 실력, 그리고 말 안 통하는 곳에서 혼자 다 해냈지. 예전의 나로는 상상도 못할 만큼 독립적인 사람이 되었어.’ 하지만 쯔쉬엔은 이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1년 전 암담한 취업시장을 찾을 것을 생각하니 뿌듯한 자신감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10개월간의 한국 워킹홀리데이 경험은 확실히 쯔쉬엔을 그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바꿀만한 경험을 하게 했지만, 그렇다고 실질적으로 경제학과 전공을 살릴 경험도, 커리어로 인정될 ‘스펙’으로 남은 것은 아니었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빨리 취직하고 결혼해야지! 거기 갔다오면 뭐가 달라지냐?” 1년 전 쯔쉬엔이 한국에 워킹홀리데이를 간다고 말했을 때의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갔다 와서 얻은 것이 무엇일까? 나의 1년은 시간 낭비였을까?” 

4. 워킹홀리데이, “청년 실업 돌려 막기”

여기까지가 쯔쉬엔의 짧고도 긴 10개월 동안의 한국 워킹홀리데이 경험이다. 장쯔쉬엔이라는 가상인물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해보고자 한다. 

워킹홀리데이는 참 재미있는 비자이다. 노동과 비노동, 여행과 일상이라는 분리된 개념의 경계를 흐리는 후기 근대적인 이동 양식이며, 동시에 여행과 방황이 허락된 젊은이들만을 위한 비자라는 점은 워킹홀리데이를 멋지고 낭만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연구를 하면서 워킹홀리데이는 사실 교묘하게 진화하는 신자유주의와 더 “세련되어진” 글로벌 노동 유연화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좋은 예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워킹홀리데이를 간 청년 개인에서 시야를 더 넓혀 워킹홀리데이 협정을 맺은 국가 대 국가 차원으로 생각해보자. ‘워킹홀리데이’ 협정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OECD 국가나 그에 상응하는 경제 단계에 오른 홍콩과 대만은 청년 실업이 심각하며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는 곳이다. 이러한 국가들은 이민자들을 정착시키는 비용, 늙어서도 복지비를 지원해야 하는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부담을 떠안기보다는 “일정 기간만 사용하고 보내버리는 편리한” 단기 이주 노동자 정책을 선호한다(김현미, 2010). 이런 맥락에서 ‘워킹홀리데이’는 청년을 내보내는 나라의 입장에서는 과잉 청년 실업인구를 해외로 내보낼 수 있어서 좋고, 외국 청년을 받는 나라는 자국의 사정에 서툴러 불만 제기가 어려운 “안전하고도 건강한 젊은 노동력”을 제공받아 서로에게 ‘유익한’ 제도이다. 그렇다면 워킹홀리데이는 나가는 청년 또한 크게 모아둔 돈이나 학교 졸업장 없이도 쉽게 해외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윈-윈-윈 정책인가?

분명 그러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쯔쉬엔의 경험처럼 해외 생활에 대한 꿈과 기대를 가지고 워홀국에 첫 발을 내디딘 청년은 그 나라에서 가장 유연화된 노동장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언어와 문화가 서툰 외국인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워킹홀리데이 비자 자체가 허락하는 노동도 내국인의 취업, 고급 인력 외국인의 노동과 겹치지 않는 단순노동 위주의 직종이기 때문이다. 나는 연구를 하면서 많은 친구들이 한 나라에서 워킹홀리데이가 끝나고 나면, 또 다른 곳으로의 워킹홀리데이를 꿈꾼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해외에서 자유롭게 일하며 글로벌하게 여행하는 이미지의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얻을 것으로 기대했던 문화 자본들, 이를테면 해당국의 언어 실력, 현지인과의 관계 형성은 언어와 정보 부족으로 자국 커뮤니티 안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얻을 수 없고, Instagram에서 볼 법한 “삐까뻔쩍한 여행과 외국 생활”은 저임금 비숙련 노동을 반복하는 워킹홀리데이를 통해서는 경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채워지지 않은 해외 생활에 대한 갈증은 또 다른 곳으로의 이동 열망을 낳게 된다. 

쯔쉬엔의 이야기를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내가 얻은 것은 뭐지?”라는 물음으로 끝낸 것은 나 또한 연구하면서 만났던 대만 여성들의 워킹홀리데이 경험을 무어라 명확하게 결론짓기 어려운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나타난지 얼마 되지 않은 현상을 “이거다!”라고 단정 지을 수 없어 논문을 마무리해야 할 때까지 애를 먹었던 것 같다. 쯔쉬엔이 중간중간 던졌던 질문들, 예를 들면 “대만에서도 안 할 일이 한국에서는 괜찮아지는 이유가 뭐지?”는 내가 이 연구를 하면서 들었던 질문이다. 또한 너무나 직관적으로 워킹홀리데이를 설명하는 말이지만 아무데서도 쓰지 못했던, “워킹홀리데이는 OECD 국가들의 “청년 실업 돌려 막기” 정책은 아닐까?”라는 질문 역시 ‘워킹홀리데이’라는 생소한 주제를 끝까지 놓지 않고 연구를 하게 해준 고마운 의심이었다. 쯔쉬엔이 던진 마지막 물음의 의미는 아마 쯔쉬엔이 살아가면서 계속 바뀌고 분명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를 따라가기 위해 나도 제2의, 제3의 쯔쉬엔을 따뜻하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계속 지켜볼 것이다.


참고 문헌

  • 김현미(2010), “국경을 넘는 노동자들과 이주 통행세”, 김현미 외(2010),『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 서울: 도서출판 이후.
  • Sassen, Saskia(2000). “Women’s Burden: Counter-geographies of Globalization and the Feminization of Survival”, Journal of International Affairs, 53(2), pp.503-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