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까’ 정치학에 대한 소소한 회고

🎨 윤소이

1.

모든 페미니스트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고,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시절이 있다. 인생 최대 관심사가 페미니스트 친구들 사귀기, 페미니스트 선생님 만나기였기 때문에, 트위터에서 덕질을 하더라도 반드시 ‘페미니스트’인 덕후들하고만 맞팔을 했었고 일상적인 인간관계 거름망의 기준은 ‘정희진을 아느냐 모르느냐,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었냐 안 읽었냐’였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쓰까 페미”라는 ‘조롱’이 한남충들이 아니라 ‘자칭’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만들어진 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그렇게까지 충격받을 일인가?’ 싶지만, 그때의 나는 “어떻게 ‘너’가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안티 페미’들이 친구들과 나를 향해서 ‘학교 망신시키는 메갈년들’이라고 욕하는 것보다 (당연하게도 친구일 것이라 믿었던) 몇몇의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쓰까페미’, ‘쓰까충’이라는 조롱과 비난을 듣게 되는 상황을 견디는 것이 더 힘들고 화가 났다. 정말 많이.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교차 페미’의 목소리를 변호하고, ‘쓰까’라는 욕을 나의 페미니스트 ‘정체성’으로 승화하는 데에 굉장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며 몰두했었다.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솔직히 말하면 그때의 나는 너무나 이해받고 싶었다. 어차피 ‘한남충’이나 ‘느개비’한테는 기대가 없다. 하지만 ‘같은’ 여자라면? ‘같은’ 페미니스트라면? 그들에게만큼은 이해받고 싶었다. 내가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없는 사람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내가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사람이 나를 이해하지 못했을 때는, 내 안의 온갖 감정이 요동쳤다. 

2.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서, 어떤 방식으로 ‘쓰까’의 페미니즘을 써 내려갔는가? 어떤 경험이나 욕망이 나의 ‘쓰까-페미니즘’에 영향을 주었을까?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들이 뒤섞여 있겠지만, 나는 당시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자존심’ 중 하나가 ‘인식론적 올바름’에 기반한 ‘도덕적 정당성’이었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로서 그때의 나를 지탱하는 ‘자존심’은 ‘더 많이 알수록 더 올바르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여기서 ‘더 많이 안다는 것’의 의미는 페미니스트로서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에 관한 지식을 생산하는 동시에 ‘모두’를 위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의 여부와 관련되었다. 그것은 그때의 내가 알던 지식 중에서 ‘완벽하고 올바른’ 페미니즘에 가장 근접한 무언가로 보였다. 완벽하고 올바르기만 한 페미니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전두엽에 입력했음에도, 나는 ‘정치적 올바름’에 가깝고자 하는 어떤 욕망에 쉽게 홀리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캠퍼스 내의 ‘한 줌’ 페미판이 조금이라도 더 화력을 키우고 학내의 ‘안티 페미’들에게 대항하려면 학내의 ‘남페미’들이나 ‘게이들’과도 당연히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내에서 장애인권운동을 하는 남성들, 노동운동을 하는 남학생들이라고 하더라도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고, 나의 말을 들으려 하고, 공부할 의지가 있으면 그들과도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언어로 그들과 대화하고 연대할 것인가? 당시의 나에겐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교차성’이라는 키워드였다. 그래서 주디스 버틀러 다음으로 많이 인용하고, 참고문헌으로 삼았던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킴벌리 크랜쇼였다. 내가 활동하던 학내 인권단체에서도 크랜쇼의 글을 읽고서 장애인권, 성소수자인권, 여성인권, 인종주의 등을 함께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를 논의하는 것이 토론의 주요한 주제였다. 그때의 나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여성들 내부의 더 많은 차이들을 가시화하면서, ‘소수자성’이라는 것이 단순히 양적인 소수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권력의 문제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설득하고 전달하는 논의들이었다. 

당시의 내 작은 머리통 속에서 이러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교차성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페미니즘의 논리는 “페미니즘은 여성 우월주의잖아, 메갈은 이기적인 년들”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안티 페미’들에게 백전백승할 수 있는 기적의 논리요, 무적의 방패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굳이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집단적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거나 ‘여성 신체의 특수한 경험’을 강조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더욱더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사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이렇게 ‘차이의 다양성을 축복하기’를 강조했던 교차성의 정치학이 과연 웬디 브라운이 지적하는 ‘다문화 제국주의’의 통치성으로서 ‘관용’ 담론과 얼마나 다르고 어떻게 포개어질 수 있을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모두’는 여전히 ‘특수한 것’과 대립적인 관계 속에서 정의되는 ‘보편성’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었을지 의심[1]하게 된다. 

[1] 예컨대 브라운(2010[2006])은 후기자본주의라는 구조적 조건을 특징으로 하는 90년대 후반의 미국사회에서 부상하기 시작한 ‘관용 담론’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관용담론’의 특징은 (보편의 대립항으로 정의되어온) 차이를 부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긍정적으로) ‘인정’할 것에 대한 주장을 전유하여, 차이를 적극적으로 허용함으로써 기존체제를 합리화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브라운이 생각하기에 “오늘날 관용은 차이를 그저 묵인하면서 이를 향한 적대행위를 줄이고, 모든 차이를 절대적으로 동등하게 존중하는 동시에, 기존의 지배와 우월성을 안전하게 보존하려는 시도(브라운, 2010: 8)”인 이유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의심을 가질 시간 자체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때의 나는 나를 이해할 마음이 전혀 보이지 않는 ‘랟펨’들에게 분노하기에도 24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말을 하거나 하지 않을 때 내가 왜 하필 그에게 상처받았다고 느끼는가를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보단, 그저 나에게 상처 주었다고 생각하는 상대방에게 먼저 따져 묻는 것이 쉬웠으므로. 내가 나 자신과 대화하는 방법을 몰랐고, 너무 어렸고, 서툴렀으므로 나는 분노했다. 그렇다면 나의 말을 이해 못 하는 상대방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는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던 일은 무엇이었는가. 나 자신과 질문을 주고받는 법이 익숙하지 않았을 때, 나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로 되돌아가서 나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나를 위로했다.

3.

내가 ‘쓰까 페미’와 ‘랟펨’의 관계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이러한 대립구도를 유지하는 전략 자체가 페미니스트 임파워링에 있어서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처음에 ‘쓰까’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래 내가 쓰까다’라는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나는 나의 페미니즘을 하겠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쓰까’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언젠가부터 나는 계속해서 나아가지 못하고 화만 많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랟펨’들의 입장이나 주장에 동의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비판하고 토론하며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건데, 상대방에게 분노하다 못해 미워하는 마음에 발목을 잡혀서 어제의 그 자리로 되돌아와 매번 똑같은 말(‘생물학적 여성을 못 버리는 페미니즘은 철 지난 정체성 정치이다’. ‘여성들 내부의 차이를 가시화해야 한다’)만 반복하는 감각. 이런 권태로운 감각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쓰까’라는 ‘욕’을 스스로의 페미니스트 ‘정체성’으로 승화하려 했던 나의 전략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재검토는 내가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해야 했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랟펨들이 문제야”라고 말하면서 문제적인 현실에 대한 분석적인 설명을 제공하기보단, 그렇게 문제라고 손가락질하는 ‘나’의 정치적 올바름과 도덕적인 당파성을 정당화하는 데에 더 큰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닌가? 나는 ‘정체성 정치는 정말로 문제야’라고 말하면서도 그 누구보다 (‘쓰까’ 라는) 정체성을 정치적 자원으로 삼는 데에 앞장섰던 사람은 아닌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나 아닌 것’으로 밀어내는 상호작용을 통해 유지되는 ‘부정의 변증법’을 반복 재생산 해온 것은 아닌가. 어쩌면 ‘쓰까’와 ‘랟펨’의 대립이라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극혐’하지만 정작 상대가 없으면 ‘나’도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관계이자, ‘너’에 대한 ‘안티’로서 ‘나’를 주체화 해내는 상호작용의 산물은 아니었을까. 동시대 페미니스트로서 ‘쓰까’들과 ‘랟펨’들이 공유하고 있는 조건들과 그것의 복잡성에 대해 설명하려 하기보다는 쓰까/랟펨을 구분하는 기준이나 경계들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데에 기여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경계들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스스로 ‘다른’ 사유의 가능성들을 차단하고 ‘잘못된 안티테제[2]’로 미끄러진 것은 아닐까. 예를 들면, 대문자 ‘여성’이라는 기표를 폐기하지 않거나 생물학적 조건으로서 ‘신체’에 대한 이야기를 강조하는 페미니즘은 그 자체로 여성들 사이의 차이를 사상하면서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부정하는 논의와 다르지 않다는 전제. ‘성차화된 몸을 말하고자 하는 욕망’과 ‘트랜스젠더/트랜스섹슈얼의 삶을 긍정하는 지식생산’은 양립 불가능하다는 전제. 이 같은 전제에 따르면, 전자의 욕망을 폐기함으로써만 후자의 지식생산에 참여할 수 있고, 후자를 배신해야만 전자의 욕망을 긍정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두 가지 정치학의 의제를 양립 불가능한 관계로, 상호배제적이고 대립적인 관계로 설명하는 사유는 과연 문제가 없는가? ‘성차화 된 몸을 말하고자 하는 욕망’은 언제나 이미 여성 범주를 ‘물화’함으로써 여성들 사이의 차이들을 사상하고 버틀러가 그렇게 비판했던 ‘본질의 형이상학’을 복원하는 결과를 불러올 운명인가? 반대로 ‘트랜스젠더/트랜스섹슈얼’의 존재를 설명하고 긍정하기 위해서는 성적차이를 체현한 신체들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논의들을 부정하거나 배제해야만 하는가?

[2] ‘잘못된 안티테제(false anti-thesis)’는 페미니스트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1995)가 페미니스트 이론가들 사이에서 ‘비판이론’과 ‘후기구조주의’라는 두 가지 철학적 패러다임을 상호대립적인 관계로 간주하는 문제를 지시하기 위해 만든 용어이다. 프레이저에 따르면,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담론적으로 구성되었고, 복잡하고, 집합적인 행동들을 가능하게 만들고, 근대적 담론들을 탈신비화할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하다. 따라서 프레이저는 페미니스트들이 주체를 사유하는 과정에서 주체의 ‘비판적인 사유능력’과 그것의 문화적인 구성물로서의 성격을 동시에 인식하기를 촉구하면서 ‘비판이론의 날개(주체성의 재구조화)’와 ‘후기구조주의의 날개(주체성의 탈구조화)’를 통합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레이저는 이 같은 본인의 관점을 절충적이고(eclectic) 신-실용주의(neo-pragmatic)적인 접근방법이라고 설명한다.

4.

나는 ‘성차화 된 몸을 말하고자 하는 욕망’을 다르게 사유하는 과정에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참고문헌 중 하나로, ‘언어적 전회’로부터 ‘물질적 전회’로의 전환을 제안하는 로지 브라이도티의 논의를 나누고 싶다. 로지 브라이도티가 생각하기에 ‘섹스는 언제나 이미 젠더’라는 패러다임에 따르면 ‘신체’라는 것은 규범이 일방적으로 ‘각인’되는 텅 빈 캔버스이거나 담론의 생산적 효과로 환원되어버리고 만다. 그런데 브라이도티가 보기에 ‘섹스’를 자연에, ‘젠더’를 문화에 위치시키는 사유방식은 그 자체로 ‘자연/문화’ 이분법을 반복한 결과일 뿐만 아니라, 담론의 효과로 환원 불가능한 ‘역량’으로서 신체의 물질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적이다. 

브라이도티와 마찬가지의 맥락의 질문을 갖고 있는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은 신체의 물질성과 존재론적 지위에 관한 물음을 이론화하여 ‘물질적/존재론적 전회’에 관한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담론을 통과하지 않고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렇게 인식된 세계가 ‘이미지’, ‘재현’, 그리고 ‘언어적인 것’들로 환원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이들 연구자는 ‘신유물론’, 혹은 ‘물질주의’라는 패러다임으로 불리곤 한다. 

이 패러다임에 따르면, 신체는 더 이상 “의식을 위한 장소”(이성을 담는 그릇 혹은 영혼의 감옥)이거나 “유기적으로 결정된 실체”로 파악될 수 없다. 오히려 몸이란 변이하는 욕망과 정동을 생성하는 해내는 ‘역량’의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육체의 문제를 ‘부정성’이나 ‘결핍’으로 규정하고자 했던 철학적 전통과 결별하고 몸이 가진 역량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고양 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요컨대, 브라이도티는 남성의미화경제와 변증법적 이분법(A/~A)을 통과하지 않는 방식으로 ‘여성/주체’를 정의할 수 있는 가능성에 관심을 갖고, ‘페미니스트로서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에 관한 대안적인 형이상학이자 새로운 상징체계를 이론화하고자 하는 입장에 속한다. 

과연 어떻게 하면 보편-남성(A)의 대립항에 해당하는 비남성(~A)으로서 ‘특수-여성’이 아닌 방식으로 ‘여성’을 정의할 수 있는 걸까. 브라이도티는 그러한 작업이 주체 내부의 차이들, 불연속적인 에너지들의 흐름과 강도가 만들어내는 변이들을 ‘긍정(affirmation)’하는 대안적 주체화의 양식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그것은 자기동일적이고 일관적인 자유의지의 산물로서 ‘진정한 나’라는, ‘정체성’의 서사가 가정해온 안정성, 고정성, 투명성의 환상이 은폐해온 ‘나’ 안의 타자성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가 우리 자신에 의해서 결코 투명할 수 없다는 진실, 의식을 넘어서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일어나고 생겨나는 불투명한 욕망들의 존재를 ‘나-아닌 것(~A)’으로 밀어내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근대적인 환상을 적극적으로 망각(counter-memory)하기. ‘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언제나 이미 타자였다는 사실을 긍정하기. 이것이 바로 오직 계속해서 달라지기 위해 변신(metamorphosis)할 수 있는 ‘유목적 주체’로의 되기(becoming)이다.

카린 셀버그(2009)는 브라이도티의 유목적 기획이 트랜스섹슈얼을 설명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이때 ​“움직임이자 강도의 연속체”​로서 트랜스섹슈얼을 파악한다는 것은 “신체가 살아있는 되기의 과정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입장을 의미한다. 셀버그에 따르면, 트랜스젠더를 ‘수행성’ 개념으로 설명할 경우, 트랜스젠더의 ‘체현된 몸’이란 단지 ‘드랙’을 반복 수행한 결과물로만 여겨질 수 있기에 문제적이다. 버틀러의 논의에서 젠더란, 기원 없는 모방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생산된 우연적인 규범(norm)이다. 그리고 버틀러가 트랜스젠더들에게 주목하는 순간은 그들이 ‘드랙’으로서 이 규범의 우연성을 폭로하는 ‘패러디’를 수행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셀버그가 보기에 버틀러의 논의를 받아들일 경우, 트랜스젠더의 신체는 규범과 불일치하는 담론적인 효과로서’만’ 정치적인 의미를 갖게 될 뿐, 드랙을 벗어난 일상적인 삶 속에서 그가 경험하는 젠더화 된 자아정체감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는 오히려 마련되지 못한다.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셀버그는 트랜스섹슈얼의 주체성을 논할 때에 욕망을 고정적이고, 본질적으로 이분적인 개념으로 간주하는 입장(존 카메론 미셸의 ‘헤드 윅’에 대한 조디 존스의 비평)을 비판하면서, 브라이도티의 유목적 주체 논의를 통해 ‘헤드 윅’을 다르게 독해하고자 한다. 셀버그에 따르면, 헤드윅의 캐릭터는 일관적이고 안정적인 주체성으로 읽힐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피상적인 탈 본질화된 캔버스로 읽힐 수도 없다. 그는 헤드윅을 수많은 주체화된(subjectified) 경험들과 현장들(loci(locus); locations)를 통과하며 시간 여행을 하는 몸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트랜스젠더의 신체가 규범과 불화하고 규범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몸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주장(‘패러디’하는 비체들)에서 더 나아가, 신체 내에서 차이를 생산해내는 ‘역량’으로서 퀴어한 신체 경험과 실천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5.

내가 이 글을 통해 그 간의 분노를 상대화하면서 ‘쓰까’의 정치학과 ‘정체성 정치’의 관계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야기를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무엇보다, 꼼꼼한 피드백을 통해서 이 글을 더 나은 글로 만들어준 Vol 4 기획 팀원들과 Fwd 필진들에게 감사하다. 사실, 이 글은 Vol 4를 기획하기 위한 기획 준비 세미나 과정에서 내가 느끼고 생각한 바에 대한 소감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체성, 정치 그리고 정체성 정치’라는 주제를 통해 저마다의 페미니즘을 되돌아보고, 각자가 속한 시공간에서 ‘여성’이라는 이름이 어떠한 가능성과 곤경을 동시에 제기하는지 나누었던 경험은 언제나 즐거웠다. 끝으로, 페미니스트 시인 오드리 로드가 남긴 문장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인용하며, 이 글과 함께 Fwd의 네 번째 기획을 닫으려 한다. 이번 기획에 관심과 지지, 때로는 비판적 질문을 던져준 모든 독자들에게 감사드리면서, 동시대 페미니스트들이 언젠가 서로의 눈을 온전히 마주하기(eye to eye)를 기대하는 마음이 무사히 가닿길 바란다. 

“내가 아는 언어로만 당신에게 다가가려 한 것은 아닌가?
당신은 당신만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언어로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우리 사이의 차이를 가로질러 당신의 말을 경청 하려 한다면,
당신도 나의 말을 경청하게 될까?”
(Lorde(2018[1984]): 317.)


참고문헌

  • 브라운,웬디 (2006), 이승철 옮김(2010).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 갈무리.
  • Braidotti, R. (1994). Nomadic Subjects: Embodiment and Sexual Difference in Contemporary Feminist Theory, Columbia University Press, 박미선 옮김(2004), 『유목적 주체: 우리시대 페미니즘 이론에서 체현과 성차의 문제』, 여이연(여성문화이론연구소).
  • Lorde, A.(1984). Sister Outsider, Ten Speed Press, 박미선, 주해연 옮김(2018), 『시스터 아웃사이더』, 후마니타스. 
  • Sellberg, K (2009). TRANSITIONS AND TRANSFORMATIONS, Australian Feminist Studies, 24:59, 71-84, DOI: 10.1080/08164640802645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