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the Republic save Us ? – 한 무슬림 여성의 내셔널리즘

🐹 젊은쥐

1.드러내거나 감추거나: 서방세계에서 무슬림의 삶

카밀라 샴지의 소설, 『홈 파이어』는 무슬림 개개인들의 복잡한 삶의 선택 경로를 추적해 보여준다. 소설 속 주인공은 첫째 누나와 쌍둥이 남매이다. 부모가 파키스탄인인 이들은 파키스탄계 영국인이다. 큰누나 이스마는 독실한 믿음을 가진 탓에 삶의 방향을 말씀 구절에서 찾는다. 반면 쌍둥이 여동생은 히잡을 쓰긴 하지만, 누나와 쌍둥이 남동생은 그녀가 “(너무나도)영국다운” 삶을 산다고 불평을 할 정도로 사생활에 있어선 굉장히 개방적인 성향을 가졌다. 여기서 쌍둥이 남동생은 굉장히 공을 들여 읽어야 하는 인물인데, 그는 주류사회가 이민자에게 보이는 혐오 감정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동시에, 자매들에게 갖는 일종의 자격지심을 IS(Islamic State)를 통해 극복하려 했기 때문이다. 비록 여기서 그를 자세히 다루진 않겠지만, IS의 유토피아적 세계관이 담고 있는 왜곡된 젠더관이 젊은 남성과 심지어 여성들에게 어떻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지, 이것이 현대 서구-이슬람 문명 담론과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지 꼭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카마라트가 있다. 소설 속 그는 영국의 구 식민지였던 파키스탄 출신으로 이민자로서는 최초로 내무장관이 된 ‘성공’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는 ‘성공한 이민자’는 인정했지만 ‘성공한 무슬림’이라는 타이틀은 한사코 거부했는데, 그는 자신을 ‘(영국인과 다를 바 없는)세속주의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론을 의식하듯 모스크 출입을 자제하고 세속적인 생활양식을 강조했다. 여기 카마라트가 한 학교에서 무슬림 학생들을 상대로 연설을 한 장면이 인상적이다.

“(생략) 여러분은, 우리는, 영국인입니다. 그건 영국이 인정하고 있는 사실입니다…그러나 여러분 중에서 이 사실에 의심을 품고 계신 분들을 위해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이 옷을 입는 방식과 생각하는 방식, 고집스레 따르고 있는 고리타분한 행동방식, 그리고 충성을 바치고 있는 이념을 여러분의 정체성과 분리하려 하지 마십시오. 분리하려 하기 시작하면, 사람들로부터 다른 대우를 받게 될 겁니다. 인종차별이 여전하기는 하지만, 그런 것과 관련된 문제가 아닙니다. 이렇게 다민족적이고 다종교적이고, 그야말로 잡다한 우리의 영국에서 자기 자신의 다름만 고집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p.124)”

여기서 카마라트가 말한 무슬림 학생들이 옷을 입는 방식은 이슬람식 복장, 주로 히잡을 말할 것이고, 이들이 생각하는 방식은 종교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고집스레 따르고 있는 고리타분한 행동방식, 충성을 바치고 있는 이념 모두 이슬람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카마라트는 이러한 정체성을 가진 무슬림에게 가해지는 사회의 차별과 편견은 어쩌면 자신이 초래한 결과일 수 있다며 막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그의 강인하고 주저 없는 언어는 다문화주의 정책을 폐기한 한 국가의 원수인 내무장관으로서의 발언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파키스탄계 이민자이자, 무슬림이(었으)며, 모스크에 출입한 사진 하나로 여론의 엄청난 몰매를 맞은 경험이 있는 그가 오히려 이러한 사회적 편견이 정당하다고 방어한 건 어떻게 보아야 할까. 자신의 정체성을 캐내고 그 정체성에 모욕감을 주는 사회를 어떻게 옹호할 수 있을까. 그에게 주어진 운명, 구식민지 출신이 과거 식민 모국의 총리가 된다는 그 운명 앞에 카마라트가 고를 수 있었던 선택지는 매우 한정적이었을 것이다. “한 나라의 원수 자리에 앉힐 ‘무슬림’”은 모종의 국민적 합의에서 만들어졌고, 그 선택된 ‘무슬림성(muslimness)’을 지키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또 다른 과업이었다. ‘같은 무슬림’들에게 쓴소리를 해줄 ‘계몽된’ 무슬림으로서 말이다.

비록 소설이지만 이 안에는 세속적/종교적 무슬림, 이민자 2세, 원리주의자 등 라벨링 속에 매몰된 개인들의 인생사가 잔인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담겨있다. 오늘 살펴볼 프랑스는 영국과 이민정책에 있어 역사적/문화적으로 또 다른 경로를 밟아왔다. 프랑스는 일찍부터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이민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했지만, 국가적으로 단 한 번도 다문화주의를 국가정책으로 채택한 적 없다. 다양한 인종, 민족 정체성의 시민사회를 가진 국가들이 한 번쯤은 실험적으로 다문화주의를 고려한 것과 달리, 프랑스는 이민 문제가 대두될수록 특수한 정체성 없는 추상적 개인들로 이루어진 공화주의 사회의 꿈을 더욱 단단히 붙들었다. 이민자들의 종교, 피부색, 심지어 아랍식 이름까지 모든 것들이 추상적 개인이 될 수 없는 어떠한 특수성으로 분류되었다. 이러한 사회 풍토 속에서 이민 2세대들이 이러한 사회와의 괴리감, 사회와 구성원의 서로 다른 기대 등을 어떤 식으로 협상 및 타협의 과정을 통해 극복해나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 소설 속 카라마트와 같으면서도 다른 상황을 보여주는 한 여성이 있다.

2. 이중부재(double absence)그리고 국가정체성과의 협상

2000년대 초, 방리유[1]의 한 여성이 프랑스 사회의 큰 주목을 받았다. 1964년 프랑스 중서부 한 도시 외곽에서 태어나 자란 아마라(Fadela Amara)라는 여성이었다. 그는 경찰의 무자비한 폭행으로 남동생이 사망한 계기로 오랫동안 반인종주의 운동을 해온 경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민자 운동권 내부에서 반성 없는 성차별이 이어지고, 여성 구성원이 손쉽게 주변적인 위치로 몰리는 모습을 목격하며 큰 회의감에 빠졌다. 2002년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이 발생한다. 방리유에 살았던 벵지엔느(Sohane Benziane)라는 이름의 어린 여성이 성관계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전 남자친구에게 불에 타 죽은 것이다. 아마라는 기존 이민자 운동이 다루지 못하는 한계를 직시했다. 무언가 행동을 해야 했다.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이 끔찍한 페미사이드를 끊어낼 목소리를 내야 했다.

[1] 프랑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명 ‘영광의 30년’ 기간 동안 안정된 소득을 가진 인구들에 주택공급을 하기 위해 주로 파리, 리옹과 같은 대도시의 외곽지역에 대규모 주택을 지었던 것이 시초이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이 지역에 살던 중산층 인구가 열악한 조건의 외곽지역을 벗어나고자 했고, 이 빈 곳에 저소득층과 이민자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말 그대로 버려진(Ban) 장소(lieu)로서 방리유의 이미지가 고착화 되었다. 단순히 도시의 외곽이 아닌, 주변화된 사람들이 살아가는 버려지고 배제된 공간으로 표상되기 시작했다.

<사진1> – 2015년 칸 영화제에서 <디판Dheepan>이라는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내전에 휩싸여 우여곡절 끝에 망명에 성공한 스리랑카 이민자(주인공)는 파리 외곽에 위치한 한 임대주택에 거주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공간의 풍경이 대표적인 방리유의 전형이다.

아마라의 언어는 명확했고, 복잡한 이론은 없었다. 그는 방리유의 무슬림 남성이 가장 큰 문제라고 명확하게 지적하였다. 그가 보기에 이민자 공동체 내 가부장제와 성차별의 뿌리는 상당 부분 알제리 문화나 이슬람 관습에 있었으며, 그러한 ‘전통’에 유독 집착하는 ‘무슬림 남성’들은 세속적인 프랑스 사회를 망가뜨릴 터였다. 그는 무슬림 여성들을 이 시궁창에서 꺼낼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국가’의 힘뿐이라 믿었다. 당시 프랑스는 공립학교에서 무슬림 학생들의 히잡을 금지하는 법안이 논의 중이었고, 사회는 온통 이민자(주로 무슬림) 여성의 히잡이 프랑스 국가 정체성에 어떻게 흠집을 내는지 주목했다. 이 사회적 열기 속에서 아마라의 발언은 빠르게 이목을 끌었다. 아마라에게 히잡은 거두절미하고 ‘여성억압적’인 의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프랑스 내 무슬림 여성들을 무슬림 남성으로부터 보호하는 유일한 길은 ‘인권 국가’인 프랑스가 나서서 법안을 제정하는 것뿐이었다. 당사자라는 신뢰성을 확보한 그는 범당파적인 지지를 받으며 페미니스트뿐만 아니라, 생전 이민자 권리에 일말의 관심도 없던 프랑스인까지 이민자 여성의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사진2(기사 보기)> – 2004년 2~3월 아마라가 조직한 NPNS단체의 행진. 이 단체는 “프랑스 공화주의 투어”라는 이름으로 행진을 조직했다. 여성차별과 성폭력 근절, 그리고 성평등을 위해 필요한 가치로 “라이시테(세속주의)”, “평등”, “(남녀)혼성”을 꼽았다.

그러나 아마라에 대한 비판 역시 거셌다. 국가에 기대는 소수자의 모습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 국가는 적합한 해결사가 될 수 없다는 어떠한 축적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잠시 이러한 비판 장에서 벗어나 아마라의 삶과 그가 믿는 이념을 살펴보자. 아마라는 동질적이지 않은 이민자 집단의 성격을 드러내며, 시민권에 대한 이민자 개인의 갈증이 국가 및 사회와 관계를 맺는 방식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여준다. 국민국가는 공통된 기억과 역사를 구성해 이것을 기반으로 국민을 만드는데, 프랑스 역시 국가란 동일한 문화와 정체성을 공유한 국민(시민)의 집합이라는 강력한 신화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이민자의 정체성과 부딪혔을 때 ‘종교’가 크게 문제점으로 언급된다. 프랑스인들은 공화국의 개인들이 추상적이고 보편적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비종교적인(세속적인) 사회에 있다고 믿으며, 특정 문화나 종교로 형성된 공동체를 분리주의의 전초로 보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국가나 사회 및 문화가 비종교적인 형태라고 했을 때, 종교 특히 이슬람을 믿는 이민자들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 종교를 버려야 할까. 되도록 감춰야 할까. 종교를 갖고 드러내면서도 충분히 프랑스 사회에 ‘동화’되었다고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마그렙(북아프리카의 다른 이름) 출신이라는 이름을 벗어던지고 혹은 가진 채로 프랑스인과 똑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을까. 만약 가난과 종교성이 연관된다면, 세속적인 삶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이민자들을 가까이서 연구해온 사이아드(Abdelmalek Sayad)는 위와 같은 질문들이 이민자 2세대들에게 공통으로 이중적인 부재(double absence)를 통해 드러난다고 밝혔다. 이민자(그리고 후손)들은 새로운 문화권 혹은 하나의 동질화된 문화가 강한 곳에서 적응하며 혼란을 겪는다. 이민자는 고향에선 이방인이면서도, 자신이 사는 사회(host society)에서도 아웃사이더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존재감을 획득하고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정체성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이민자들은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은폐하고, 때로는 더 강력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태어난 곳이 프랑스더라도 자기 민족 정체성을 부모의 나라에 두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나는 알제리-프랑스인으로서 자랑스럽다’는 식이다. 종교도 이민자들의 중요한 정체성 지표이다. 오늘날 공적-사적인 영역의 구분이 모호한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아랍어와 히잡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슬림인 이민자는 ‘프랑스인’이 될 수 없다는 무언의 사회적 압박 속에 어떤 이민자들은 오히려 이민자 공동체에 적대적이고, 국가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아마라는 어떤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시민권은 생득적인 권리가 아니라는 것, 따라서 ‘프랑스’의 가치를 익히고 실천하면 엄연한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믿음엔 현실적인 배경이 크게 작동했다. 국가는 방리유를 방치하고 이민자에 대한 차별을 용인한 사회에 어떤 구조적인 처벌을 내리지 않았고, 방치된 방리유에서 자라난 종교 극단주의와 남성들의 마초이즘 역시 구조적 원인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민자 출신 아마라가 기댈 수 있는 건 ‘보편인권(더 나아가 여성인권)’을 약속한 국가밖에 없었다. 2003년 아마라가 조직한 ‘공화국 행진(Tour de France Républicain)’은 국가와 이민자 양쪽에게 건넨 일종의 요청이었다. 페미니스트 국가는 이민자 여성들의 ‘인권’을 지켜주어야 하며, 이민자는 철저히 사회에 동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마라는 프랑스 역사 속에서 발전해온 ‘자유와 평등’, 그리고 ‘진정한’ 성평등의 의미를 이해한 무슬림 여성이라는 수식을 만족스러워했다.

3. May the Republic save Us ?

아마라를 둘러싼 해석은 치열하게 경합했다. 무엇보다 무슬림 남성에 대한 아마라의 기소는 많은 논란을 낳았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라는 여론에는 이민자 남성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물씬 담겨있었다. 무슬림 남성은 대테러 정책의 연장 선상 위에서 위험분자로 치환되어 공적 사회장에서 쉽게 배제되기 일쑤였다. 반면 무슬림 여성에 대한 국가의 태도는 약간 미묘했다. 프랑스가 히잡을 국가정체성의 위기로 지명한 데에는 무슬림 이민자 여성에 대한 몰이해도 있지만, 일단 무슬림 여성들이 히잡만 벗는다면 그들을 ‘시민’으로 인정해주겠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 맥락에는 유럽에서 양육 및 요양, 가사노동과 같은 젠더화된 노동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민자 여성을 사회 재생산 노동 수단으로 남겨놓으려는 심산이 놓여있다. 이민자-무슬림 여성의 동화 가능성을 주목하고 방리유의 도덕적 붕괴를 무슬림 남성 개인 탓으로 돌리는 사회의 일면에 이러한 정치경제적인 욕망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방리유 남성들은 윤리가 결여되어있다’는 아마라의 발언들은 어딘가 모르게 기시감을 느낀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아마라는 방리유 남성들을 성차별주의자, 시민사회를 어지럽히는 분리주의자, 반유대주의자, 호모포비아, 그린 파시스트[2]로 묘사했다. 아마라의 묘사는 1990년대 이래로 프랑스 사회가 그려내는 무슬림 남성의 전형과 완전히 일치했다. 이 호명은 실재를 얼마나 적확히 묘사했는지를 떠나 큰 담론적 파장을 일으켰다. 내부자의 확언으로 다시 한번 국가권력이 (재)생산하는 고정관념은 확고해지고, 이슬람과 프랑스의 구분은 명확해졌다. 프랑스인과 이민자 각자의 정체성과 경험은 고정되지 않으며 복잡한 관계의 망 속에 엮여있음에도, 확산하는 반무슬림 담론은 서로가 서로를 절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타자로 규정해 나갔다.

[2] 이슬람 원리주의자를 파시스트로 비유한 것.

아마라는 프랑스가 전적으로 성소수자 친화적이며 페미니즘에 열려있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핑크워싱(Pinkwashing)’전략과 일치한다(원문 보기). 이 전략은 젠더평등이나 성소수자 이슈를 전면에 내세워 국민국가가 저지르는 또 다른 식민주의/제국주의적 맥락을 삭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컨대 이스라엘이 인권 담론을 장악하면서 팔레스타인 점령이라는 추악한 현실은 잊힌다. 푸아(Jasbir Puar)가 언급했듯 국민국가는 국민국가와 서구 자유주의의 틀에 맞는 ‘소수자의 몸’을 허용하고, 이러한 허용된 주체들은 그 문명을 증언하는 증거가 된다. ‘성소수자 인권에 동의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문명과 야만은 줄 세워지는데, 소수자들이 그 담론을 지지할수록 효과는 더욱 커진다. 토박이 프랑스인보다 이민자 출신이 묘사하는 ‘야만’이 더욱더 자극적이고 변치 않는 사실로서 받아들여지며, ‘문명사업’의 정당성을 입증해주기 때문이다. 국가정체성이 시험대에 올랐던 2003년, 아마라가 빠르게 정계로 입문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그가 앞으로 이어질 프랑스의 문명사업에 큰 지지자가 될 수 있으리라는 정치인들의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사진3> – 2003 유색인종 여성들로 구성된 마리안느 전시회가 열렸다. 마리안느(Marianne)는 프랑스공화국의 상징이다. 왼쪽 사진엔 “마리안느는 무엇보다도 여성이다. 그녀는 폭력에 의한 관계를 용인하지 않는다”고 적혀있다. 비폭력과 젠더평등이 공화국의 가치로 재탄생한 부분이다. 아마라가 의회와 함께 기획을 담당했다.

동시에 아마라는 방리유 출신 여성으로 방리유의 끔찍한 여성살해를 눈으로 보고 들은 당사자였다. 그렇기에 필자는 이민자 개인의 삶에 맞추어 아마라의 상황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아마라의 부모는 조용히 세상 기준에 맞춰 살며 이민자 정체성을 가린 채 살아가던 1세대였고, 그 자식들은 그런 부모처럼 살고 싶지 않아 했다. 부모들이 어눌하게 프랑스어를 구사하고 대학 학위가 없었다면, 2세대들은 프랑스어가 모국어였으며 학위를 보유하는 비율도 그 전 세대에 비해 훨씬 높았다. 하지만 점점 프랑스다움(frenchness)은 이민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유럽인 조부모’로부터 내려오는 ‘서구적 가치’로 점철되어 갔다. 또한 가난한 이민자 남성은 누이와 여동생들 통제함으로써 종교 믿음을 회복할 수 있다는 유혹에 시달렸다. 『홈 파이어』 속 쌍둥이 남동생은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하며, 여성을 지배하는 보호자다’고 쓰인 꾸란의 구절을 읊으며 자신을 위로하던 장면이 나온다. 아마라에게 그러한 종교 원리주의자로부터 자신과 동료 여성들을 보호하는 길은 요원해 보였을 것이다.

따라서 아마라와 같은 2세대 이주민들은 다다를 수 없는 국민 정체성일지라도 그것을 공적 발화함으로써 시민으로서의 정체성 감각을 발전시키는 전략을 사용한다. 국가는 공화국의 문명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이민자에게 더 큰 권력을 부여함으로써 이민자들에게 같은 선택을 종용할 것이다. 아마라에 대항하기 위해 페미니스트 단체가 조직될 정도로 아마라는 좌파와 식민주의를 기억하는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큰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일원화된 해방 모델과 포함과 배제의 동력으로 작동되는 시민권의 논리 앞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건 오로지 비백인, 비토착 프랑스인이라는 것이다. ‘국가는 우리를 구원해줄까?’라는 질문 앞에 상기된 아마라의 얼굴이 떠오르는 듯하다. 그 상기된 얼굴엔 국가가 우리를 배신해왔던 역사를 마주하고서 국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를 깨달은 부끄러움과 동시에, 이민자들에게도 기회가 평등한 사회를 기대하는 흥분이 서려 있다.


참고 문헌

  • Dikec, Mustafa(2007). Badlands of the Republic: Space, Politics and Urban Policy, Wiley-Blackwell.
  • Farris, Sara R.(2017). In the Name of Women’s Rights: The Rise of Femonationalism, Duke University Press Books.
  • Fernando, Mayanthi L.(2014). The Republic Unsettled: Muslim French and the Contradictions of Secularism, Duke University Press Books.
  • Shamsie, Kamila(2017). Home Fire, Riverhead Books, 양미래 옮김(2020),  『홈 파이어』, 북레시피.
  • Puar, Jasbir K.(2007). Terrorist Assemblages: Homonationalism in Queer Times, Duke University Press 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