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카봇〉이 만드는 안전한 세계, 그 안에 갇힌 엄마들

🥟 만두

토종 가족 애니메이션, <헬로! 카봇>의 흥행

‘디즈니, 지브리 게 섰거라! 토종 애니메이션이 간다!’ 국산 애니메이션이 흥행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문구다. 지금, 국산 애니메이션에 이 문구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헬로! 카봇>이라고 대답한다면, 아마 현시점에서 가장 타당하면서도 대세에 뒤처지지 않는 대답이 되지 않을까.


<헬로! 카봇>(이하 카봇)은 ‘내 옆에 멋지고 힘센 비밀 친구가 있다면… 그 비밀 친구가 자동차 변신 로봇이라면?!’이라는 콘셉트를 바탕으로 하여, 평범한 초등학교 1학년 소년 ‘차탄’이 할아버지가 보내주신 큐브를 돌리면 나타나는 변신 자동차 로봇 ‘카봇’과 비밀 친구가 되어 일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해간다는 줄거리를 가진 에피소드 형식의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카봇>에는 차탄과 카봇들 외에도 차탄의 가족, 즉 엄마인 ‘전다해’, 아빠 ‘차산’, 그리고 강아지 ‘바둑이’가 주역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미 어린이 매체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대체 언제 적 카봇이야?”라고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카봇>의 TV 애니메이션 첫 시즌이 방영된 것은 2014년으로, 벌써 6년이나 진행 중인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봇>은 2019년 현재 TV 애니메이션 방영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극장판과 뮤지컬로도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특히 올해 9월 개봉하여 개봉 첫 주 예매 1위를 기록하며 눈길을 끈 <극장판 헬로카봇 3: 달나라를 구해줘!>를 비롯한 세 편의 극장판은, 모두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 순위 10위권에 들며 <카봇>의 안정적인 캐릭터 프랜차이즈로서의 가능성을 증명했다는 평가를 끌어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카봇>이 같은 변신 로봇 장르의 선발주자인 <변신자동차 또봇>도, 무서운 완구 판매 돌풍을 일으켰던 후발주자 <터닝메카드>도 제치고 가장 오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요인 가운데서도, 여기서는 <카봇>이 무난한 ‘가족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카봇>의 흥행을 분석할 때에 자주 등장하는 수식은, ‘가족이 다 함께 보기에 좋은’, ‘부모가 함께 보기에도 재미있는’, 또는 ‘어른 관객까지 사로잡은’과 같은 말들이다. 이는 한편으로 <카봇>이 주인공 차탄의 또래 친구보다는 가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며, 또한 동시대 어린이 애니메이션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어른 입맛에 맞춘 재미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카봇>의 꾸준한 인기는 ‘아빠, 엄마, 나, 바둑이’로 이루어진 친근하고 익숙한 가족의 일상 코미디에 집중한 데에서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이 시대의 한국 사회가 어린 세대에게 보여주고 있는, 또한 보여주길 원하는 세계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어떤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이러한 <카봇>의 서사와 인물 조형을 분석함으로써, <카봇>이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한국 사회의 가족 및 젠더 규범의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차탄, 걱정하지 마. 내가 구해줄게!”

어린이 로봇·변신 애니메이션 장르에 있어 <카봇>을 비롯한 00년대 이후 제작 및 방영된 작품들이 이전 시기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서사적 특성은, 대개 절대 악을 상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껏 어린이 로봇·변신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하는 전형적인 ‘악당’들은 대개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외계인,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망의 독재자, 정체불명의 악의 무리 등으로 지칭되는 사악하고 강력한 힘을 가진 외부자들이었다. 따라서 이야기는 주로 정의롭지만,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주인공 무리가 어떻게 성장하고 협동하여 악을 무찌르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카봇>을 비롯한 최근 작품에서 나타나는 악당은 대개 주인공의 일상과 밀착되어 있으며, 사소하고, 때로는 유약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므로 작품의 주된 서사는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힘과 욕망을 가진 존재들과 경합하는 과정으로 그려지게 된다. 이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들어 국가와 민족과 같은 집단적 이데올로기가 시장에 의해 밀려나고, 공동체가 해체되었으며 더는 대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체념이 팽배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의 시대에 와서 가시화되는 악은 권력 구조의 상층부가 아닌, 경쟁상대로서의 이웃이다.

<카봇>은 이러한 ‘피지배계급 내의 쟁투’가 무엇보다도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카봇>의 고정적인 악당으로서 시즌 2부터 등장하는 ‘라인 4남매’는 민폐 덩어리, 좀도둑, 말썽꾼 등으로 지칭되며, 뚜렷한 대의 없이 그저 사람들을 귀찮게 하고 괴롭히기만을 추구한다. 특히 리더격인 ‘S라인’의 경우, 영웅을 꿈꿨으나 민폐만 끼치게 되고, 이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삐뚤어졌다는 설정이다. 이는 이 시대 한국 사회에서 두드러지는 혐오와 폭력의 주체들이 스스로가 시장경쟁에서 도태되었다는 자의식, 일명 ‘루저 정서’를 근간으로 두고 있음을 고려할 때 대단히 현실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카봇>에는 악당이 아님에도 시즌 1부터 꾸준히 주인공과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바로 차탄의 옆집에 사는 친구 ‘장군’과 그의 가족들이다. 차탄 가족과 장군이네는 일상에서 마주칠 때마다 서로 경쟁하는데, 그 쟁점이란 대개 누가 더 여유롭게 사는가, 누가 더 좋은 물건을 쓰는가, 누가 더 힘이 센가? 따위의 세속적인 문제들이다. 이제껏 늘 장군이네에게 밀리던 차탄은 카봇들을 만나고 나서 그들의 힘을 빌려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이는 피지배계급 내의 경쟁을 무마시키는 강력한 권력을 기대하는 이 시대 사람들의 은밀한 욕망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전 시기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나타났던 힘센 변신 로봇들이, 이제는 동네 강아지를 쫓아내고 옆집 아이와의 눈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까지 동원되게 된 것이다.

한편, <카봇>이 재현하는 문제 상황은 모두 신자유주의 시대 사회 구성원들의 불안 심리에 닿아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시장 논리가 사회를 지배하면서, 정부와 기업은 안전보장의 의무를 비용 절감이라는 명목으로 방기하거나 외주화하였다. 이에 따라 사회적인 신뢰 체계가 붕괴하고, 안전은 개인의 책임 영역이 되었다. 개개인의 책무가 제대로 수행되지 않으며, 비용을 지불하고도 정당한 대가를 얻지 못하고 ‘기만당하는’ 상황은 <카봇>의 서사에서 매우 중요한 모티프가 된다. 사회 안전망 붕괴를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지표는 재난사고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차탄 가족이 경험하는, 그리고 차탄과 카봇의 활약으로 수습되는 사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역시 다양한 인재(人災)이다. 건물이 무너지고, 노후화된 관광용 잠수함에 갇히거나, 정전으로 놀이기구가 멈추고, 동물원의 맹수가 탈출하며, 부주의로 인해 산불이 나는 등의 상황은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발생했던 대형 재난 사고들과 그로 인한 사회 구성원들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킨다. 이러한 재난들은 어떤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행한 악이라기보다 굳이 책임을 지고, 선을 행하려는 의지가 없는 데에서 발생하는 ‘나약한 악’[1]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며 오직 수동적인 방어만이 가능한 것이다.

[1]  김현경(2015). “신자유주의 시대의 멜로드라마적 상상력”, 『여성학논집』, 제32권 2호, 15쪽.

“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오직 내 가족만을 믿을 뿐이지.”

사회적인 신뢰 체계가 깨진 상황에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개인들의 방어 전략은 개인주의, 또는 폐쇄적인 가족주의이다. <카봇>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추동력 역시 가족주의이다. 이는 시즌 1 10화에 등장하는 전다해의 “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오직 내 가족만을 믿을 뿐이지”라는 대사에서 잘 드러난다. <카봇>은 오직 차탄의 가족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차탄의 파트너인 카봇들 역시 ‘할아버지가 보내주신’ 친구들이라는 점에서 확장된 가족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카봇>의 서사에는 우호적인 동료, 친구, 이웃들과의 연대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차탄은 카봇의 존재를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서 은밀하게 문제를 해결해나가며, 이를 통해 지키고자 하는 대상 역시 ‘우리 집’, ‘가족’, 그리고 ‘일상’으로 수렴된다. 이러한 폐쇄성과 불신주의는 이전 시기 아동 매체에서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미덕이었던 우정, ‘우리는 모두 친구’라는 관념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으로서 신자유주의 시대 생존주의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카봇>은 투쟁의 장으로서 위험한 ‘외부세계’와 대비되는 ‘내부’로서의 가족을 어떤 모습으로 상정하고 있을까. 이는 확장된 가족으로서 카봇들이 차탄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살펴봄으로써 보다 분명해진다. 어느 날 갑자기 차탄의 곁으로 온 카봇들은 큐브를 가진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에게 봉사하고, 그를 보호한다. 차탄은 새로운 카봇을 찾아내거나, 친구로 만들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할 필요가 없다. 큐브 속 세계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카봇이 등장하고, “안녕, 차탄. 나는 ○○이고, ~하는 능력이 있지.”라는 식의 짧은 자기소개를 마친 뒤에는 곧바로 그의 든든한 아군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번거롭게 스스로에 대하여 이해시킬 필요도 없고, 갈등을 일으키거나 협상하려 들지도 않는 편리한 존재. 무엇보다도 ‘가성비 좋은’ 관계가 바로 <카봇>이 상정하는 가족이다. 물론, 이러한 가족은 현실과 동떨어진 일종의 판타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안온하고 행복한 가족’이 누구에 의하여 기능하고, 유지되어야 한다고 간주 되는지의 문제이다. 이 사회에서 가정은 여전히 여성, 그중에서도 ‘엄마’의 공간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사회불안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고 위안을 주어야 할 의무를 충분히 다하지 못하는 여성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사실상 <카봇>의 서사는, 바로 이러한 여성에 대한 질책과 처벌로서 읽힌다. 애초부터 주인공 차탄은 ‘바쁜 부모님 때문에 친구는 언제나 바둑이뿐이던’ 아이로 소개되며, 차탄이 마주하는 문제 상황은 많은 경우 엄마인 전다해가 일을 하기 위해 자리를 비워 혼자 남겨지거나, (위험하고 믿을 수 없는) 남에게 맡겨질 때 발생하는 것이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카봇은 결국 ‘원래 엄마가 수행해야 했던 역할’을 채우는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카봇은 애니메이션 속 환상의 존재이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현실 속의 ‘카봇이 없는 차탄들’에게는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카봇>의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던 셈이다.

“우리 엄마는 자격증이 500개도 넘는다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카봇> 가족 중심의 이야기이며, 따라서 가장 높은 비중으로 등장하는 여성 인물은 차탄의 엄마인 전다해이다. 그러므로 <카봇>이 재현하는 여성상과 젠더 규범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전다해의 인물 조형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전다해의 캐릭터성은 제작사 측에서 제공하는 서너 줄 남짓의 등장인물 소개에 전부 드러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전문을 인용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뭐든지 다 하는 엄마. 차탄의 엄마로, 이름처럼 다 할 수 있다고 달려드는 행동파. 자격증도 많고 능력도 뛰어나서 ‘슈퍼우먼’을 꿈꾸지만, 급한 성격 탓에 결과가 안 좋아 현실은 그냥 ‘우먼’인 신세.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귀여운 아줌마다. 옆집 장군이 엄마와는 라이벌 사이.” 작품의 대상 연령층이 읽을 것을 전제로 쓰인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는 이 소개문에는, 대상 인물을 조롱하는 동시에 연민하는 어조가 짙게 깔려있다. 조롱과 연민의 양가적 태도는 모두 그 대상을 열등한 지위로 간주할 때에 나타날 수 있는데, 이는 작중 남성 인물, 특히 주인공의 아빠에 대한 소개에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귀여운 아줌마’라는 수식은 아동에게 인물의 특성을 소개한다기보다 남성적 시선으로 대상화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소개에 드러난 바와 같이 전다해는 능력이 뛰어난 여성으로 그려지며, 그녀의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는 ‘500개도 넘는다는’ 자격증이다. 그러나 전다해의 자격증은 사건이 시작되도록 하는 역할만 할 뿐, 결코 해결하거나 끝내지는 못한다. 그것은 주인공 차탄과 카봇들의 역할로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전다해가 미술품관리 자격증에 특수운송 자격증, 태권도 3단이라는 자격을 가지고 귀중한 조각상을 비밀리에 운송하는 업무를 맡지만, 실제 관리와 운송 과정은 허술하기 그지없어 결국 빼돌려진 조각상을 차탄과 카봇이 찾아온다는 식이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무수한 자격증이라는 소재는, 성적 또는 스펙만 좋고 실무에는 뒤떨어진다는 여성 노동자에 대한 전형적인 편견을 연상시킨다. 전다해는 업무 분야와 특성을 막론한 다양한 업무에 끊임없이 뛰어들고, 이는 차탄과 카봇이 가족 외의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무궁무진한 사건에 휘말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 작중 전다해가 수행한 업무는 명시적으로 드러난 것만 살펴보아도 건물 청소, 귀중품 운송, 환경보호 NGO, 연구 보조, 음식 조리 및 배달, 동화작가, 스턴트, 산모 도우미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이는 오직 가사노동에만 종사하는 것으로 묘사되던 ‘엄마’ 캐릭터의 전형을 탈피한 것으로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전다해가 수행하는 모든 업무가 비정규적이고 주변적이라는 사실이다. 전다해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녀가 수행하는 업무는 단지 일시적인 ‘아르바이트’로만 지칭된다. 이는 그녀의 남편이자 주인공 차탄의 아빠인 차산이 형사라는 공무원직, 즉 가장 안정적인 축에 속하는 직업에 종사하며 그의 작중 역할 또한 대개 그의 직업에 기반을 둔다는 점과 대조된다. 경제활동의 비중도, 일정도 일정하지 않은 전다해의 여유시간은 육아와 가사노동으로 채워져, 그녀는 가사분담의 면에서도 거의 전업주부와 다름이 없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전다해라는 인물은 뛰어난 능력이 있음에도 비정규직에 머물며, 경력이 단절되고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게 되는 여성의 실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전다해가 그토록 뛰어난 능력이 있는데도 왜 그에 걸맞은 금전적 대가와 안정적인 고용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있느냐는, 당연하게 떠오를 수밖에 없는 질문에 대하여 <카봇>은 그녀의 개인적 결함으로서 덜렁대고 성급한 성격 때문이라는 무책임한 대답을 내놓는다. 그럼으로써 그녀가 처한 구조적 위치, 차별받는 여성이라는 위치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카봇>의 여성 인물 묘사는 작품의 주 시청 연령이 자신의 어머니가 경력단절의 문제를 겪고 있을 확률이 높은 미취학 아동이라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되는데, 아동이 자신의 어머니의 입장을 이해하는 과정에 심각한 왜곡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전다해는 집 밖에서의 일을 수행할 때 급한 성격과 과도한 의욕으로 인해 번번이 실패하며, 이를 수습하고 보완하려 애를 써야 하는 이는 아들인 주인공 차탄이다. 반면 그녀가 가사와 육아를 수행하는 장면에서는 어떠한 문제상황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러한 재현은 차탄에 이입하는 어린이 시청자가 ‘엄마’, 즉 여성이 가정 내에 머무는 상황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느끼도록 유도하며, 많은 경우 전다해와 마찬가지의 문제를 겪고 있을 그들 자신의 여성 양육자의 능력과 가치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태도를 품도록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작품 안에서 더 다양한 여성 인물들이 그려진다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카봇>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 가운데 전다해만큼 입체적인 캐릭터성과 출연 비중을 보이는 인물은 없다. 적게나마 등장하는 다른 여성 인물은 대개 악역이기에, 전다해는 역할 규범으로서의 여성상을 과대대표하게 된다. 따라서, 전다해가 재현되는 방식으로 인해 형성되는 여성의 역할에 대한 편견은, 작중에서 해소될 여지조차 없는 것이다.

아동 애니메이션이 성장을 포기할 때 

결론적으로, <카봇>이 작품 안과 밖에서 지키고자 하는 가치는 익숙함으로부터 오는 보수적인 ‘안전’이라고 볼 수 있다. <카봇>은 낯선 타자와의 만남과 교류, 그를 통한 새로운 세계에의 탐색이라는, 기존 아동 애니메이션이 시청자 어린이들과 우리 사회에게 던져왔던 과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 대신 지금 이 사회의 오늘날의 위험과 불안 심리를 그대로 재현하며,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익숙한 판타지, 가족으로 회귀하고 있다.

아빠는 든든하게 바깥일을 하고, 엄마는 부지런히 아르바이트와 집안일을 하며, 바둑이와 카봇들이 자신을 지켜주고 함께 놀아주는 안온한 정상가족 규범의 틀 안에서 차탄은 성장하지 않는다. 스스로 갈등을 해결하는 법도, 부조리에 저항하는 법도 알지 못한 채, “헬로, 카봇!”을 외치며 새로운 ‘비밀 친구’가 눈앞의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이러한 ‘차탄들’을 키워내는 사회에서, ‘전다해들’에게 지워진 구조적 차별과 혐오의 시선이 해소될 길은 요원해 보인다. <카봇>이 만드는 안전한 세계 속에서, 전다해는 “엄마 대단해요.”, “우리 엄마 최고!”와 같은 위로가 공허하게 울리는 가운데 ‘그냥 우먼’의 자리에 갇혀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 김현경(2015). “신자유주의 시대의 멜로드라마적 상상력”, 『여성학논집』, 제32권 2호, 3-28쪽.
  • 이나영‧허민숙(2014). “한국의 젠더폭력과 신자유주의 젠더질서”, 『가족과 문화』, 제26권 4호, 58-90쪽.
  • 정희진 외(2018).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X민주주의』. 파주: 교유서가.
  • Faludi, Susan. (1991). Backlash: The Undeclared War Against American Women, New York: Crown Publishing Group, 황성원 옮김(2017), 『 백래시』, 서울: 아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