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wd Vol.4 “정체성, 정치” 기획의 변

🎨윤소이

1.

반 년 만에 돌아온 Fwd의 네번째 기획은 필자들의 공통된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했다. 그것은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의 한국사회에서 ‘정체성 정치’가 이해되고 도전받는 방식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리부트’란 ‘연속과 단절’의 역사를 동시에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개념으로, 문화평론가 손희정에 따르면 “영화에서 ‘리부트’란 기존 시리즈의 연속성을 버리고 몇몇 기본적인 설정들을 유지하면서 작품 세계를 완전히 새롭게 구성하는 것(손희정, 2017: 47)”을 뜻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메르스 갤러리’와 ‘강남역 살인사건’이 ‘온라인’ 공간에서 대중적으로 이슈화된 ‘2015-16년’은 한국사회의 페미니스트 액티비즘이 ‘리부트’된 국면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정체성 정치’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조직화 방식으로서의 정체성 정치는 일부 사회 집단이 억압받는다는 생각과 밀접하게 연관한다(Heyes, 2020[2018]: 11).” 그리고 이 사회집단의 구성원으로서 개인들은 다른 구성원들과의 ‘동일시’를 통과하여 비로소 ‘나’라는 주체로 거듭나게 된다. 여기서 ‘동일시’란, ‘나’와 ‘너’가 완벽하게 동일해지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라는 이름으로 동일해질 수 있다고 보는 일종의 ‘믿음’이다(정희진, 2018: 212)[1]. 예컨대, 1970-80년대 미국의 제2물결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이 고안해낸 ‘여성 정체화된 여성(woman identified woman)’이라는 개념은 ‘보편’으로 대표되어온 남성과의 동일시를 그만두고, 보편의 ‘타자’로 정의되어온 ‘자매들’과의 동일시를 통해 ‘나’를 규정하기 시작했을 때에 새롭게 태어난 ‘우리’로서 여성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이 용어는 여성들이 남성사회와의 관계를 통과하지 않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는 새로운 ‘이름’이었으며, 초기 레즈비어니즘의 언어적 자원으로 활용되기도 했다(로드, 2018)[2]. 그러나 훗날 이 용어는 여전히 ‘인종’에 관한 날카로운 비판이 부재한다는 점에서, ‘여성 정체화된 여성’이라는 이름과 그에 기반한 ‘자매애’만으로 ‘우리’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시스터-아웃사이더’들의 도전(“누가 여성인가?, 나는 여성이 아닌가?”)에 직면하게 된다.

[1] “정체성은 개인이 특정 집단과 동일시함으로써 자기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모든 인간은 단 한명도 동일하지 않으므로, 동일성의 공유는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인간이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과정에는 반드시 타인, 타인과의 관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동일함이 아니라 동일시(同一視)이다. 동일하다는 ‘생각’이 자아를 형성하는 것이다. 정체성의 정치는 ‘동일성’의 정치가 아니라 ‘동일시’의 정치이다. 정체성의 정치의 유용성과 한계는 같은 원리에서 발생한다. 바로 절대로 동일하지 않은데 동일’시’하는 세계를 산다는 것이다(정희진, 2018: 212-213).” 
[2] “1970년대 초 급진 페미니즘의 발흥과 더불어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이 남성 중심주의에서 모든 사람이 남성에 동일시하게 되는 점에 저항하며 여성 스스로 정체화할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주창한 용어다. 여성은 오랫동안 오로지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서, 그리고 남성과의 관계에 따라 딸, 아내, 어머니 역할로만 정의되었다. 하지만 “여성으로 정체화한 여성”은 남성 지배의 사회구조를 참조하지 않고(즉 남성과의 관계에 따라서가 아니라), 여성 스스로의 내적 자아감에 따라,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여성 공동체와의 관계에 따라 스스로를 정의한다. 또한 이 용어에는 당시 레즈비언 낙인의 정치적 위력을 피하면서 자매애를 강조하려는 의도도 있었다(로드, 2018: 61).”

2.

페미니즘 대중화의 흐름 속에서 ‘정체성 정치’에 대한 비평적 논의는 주로 ‘생물학적 여성들’을 정치적 주체로 인식하고 호명하는 페미니즘 정치에 대한 문제제기와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형법 상 ‘인공임신중절금지’ 조항의 전면폐지를 요구했던 ‘검은시위’(2016년)에서 “노자궁 노발언”이라는 구호가 등장했던 순간, 성폭력사건을 가시화하고 공론화하면서 세미나를 조직했던 몇몇 여자대학교에서 ‘시스-젠더 여성만 참가가능’하다고 홍보했던 사건 등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여성이라는 정체성’의 근거를 ‘자궁’의 유무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2018년 혜화역에서 있었던 ‘불법촬영편파수사규탄시위’에서의 시위참가자격이 ‘생물학적 여성’이었던 것을 계기로하여, 여기서 말하는 ‘생물학적 여성’이 지시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생물학적 여성의 권리’와 상호배제적인 대립물로 ‘트랜스젠더 여성의 권리’를 재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의문들이 폭발하였다. 이렇게 피해자로서 당사자성을 강조하는 시위참가자격이 고통을 위계화하는 경쟁문화를 재생산할 가능성에 대한 논쟁이 점화된 것이다. 이러한 논쟁의 중심에는 ‘정체성 정치’가 ‘우리’의 경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어떤 ‘폭력’이나 ‘혐오’를 반복할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그만큼 ‘여성 범주’의 구성방식 및 정치적 주체의 경계짓기를 정당화하는 문제가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그 어느때보다도 핵심적인 관심사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일 뿐만 아니라, ‘정체성 정치’의 가능성만큼이나 그 한계에 대한 깊은 인식이 강력하게 뒤따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사실은, ‘생물학적 여성만’을 정치적주체로 삼는 기획을 ‘정체성 정치’의 한계로 다루는 논쟁에서 그 대안으로 ‘교차성에 대한 관심’이 강조된다는 점이다. 사실, 여성주의 개념사의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교차성’이라는 개념 자체는 ‘정체성 정치’의 반댓말이라기보단 ‘정체성 정치’의 문제의식을 보다 완전하게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흑인페미니즘의 언어이다. ‘억압받는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진정한 나-우리의 목소리를 가시화하기’라는 정치적 기획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젠더 정체성’ 뿐만 아니라 ‘인종’이나 ‘계급’을 토대로 구성되는 ‘정체성’들이 어떻게 상호교차(intersects)하면서 ‘나’라는 주체와 ‘억압’의 연결고리들을 만들어내는지 주목해야한다고 요청한 것이 ‘교차성’ 이론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 다른 ‘정체성’들이 상호교차할 때에 구성되는 ‘억압받는 나’의 체현된 위치성(positionality)과 그에 입각하여 인식된 세계에 대한 ‘지식의 객관성’을 어떻게 정당화 할 것인가의 문제를 다루고자 했던 논의들(콜린스, 1990; 하딩, 1991)이 등장하게 된다. 

따라서, ‘교차성’이라는 개념은 ‘정체성 정치’에 대한 대립물이나 ‘정체성 정치’를 넘어서는 무언가라기보다는 ‘정체성’을 정치적 주체화의 핵심자원으로 삼는 모델의 연장선으로 독해되는 편이 적절하다. 재스비어 푸아(2016)의 경우 정체성의 ‘교차성’ 모델과 들뢰즈의 ‘배치’ 개념을 비교하는데, 그는 ‘교차성’ 모델이 “인종, 계급, 성별, 섹슈얼리티, 국가, 연령, 종교 등의 구성 요소를 구별 가능하고 해체될 수 있는 부품으로 간주(푸아, 2016:101)”한다는 점에서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정체성에 대한 인식, 명명, 안정화를 요구”하고, “정체화(identification, 동일시) 과정에 담긴 허구성과 수행성을 부정하는 진보의 서사를 만들어낸다(푸아, 2016:101)”고 비판한다[3]. 

[3] “우리가 하나의 정체성이 된다고 할 때, 어디에서나 매끄럽고 안정적인 정체성이라는 허구를 공고히 다져주는 건 초시간성이다. 교차성은 다양성을 관리하는 도구이자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가 외는 주문으로서, 인구조사, 인구통계, 인종 프로 파일링, 감시 같은 규율적 국가 장치와 공모한다. 정체성이라는 어지러운 것을 판에 박힌 체계 안에 밀어 넣어버리려고만 하는 구조 안에 “차이”를 포섭시켜버린다는 차원에서 말이다. 배치는, 또렷이 보이고 들리고 읽히고 만져지는 하나의 정체성 혹은 양식으로서의 퀴어성을 대신하여, 우리가 사건, 공간 그리고 육체에 내재하는 강도, 감정, 기운, 정동, 질감 등에 익숙해지도록 한다. 교차성이 명명, 가시성, 인식론, 재현 그리고 의미에 특권을 부여 한다면, 배치는 감정, 감촉, 존재론, 정동, 그리고 정보를 강조한다(푸아, 2016:101).”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의 한국사회에서 ‘정체성 정치’와 ‘교차성’이라는 개념은 대립적인 역사를 지닌 것으로 이해될 뿐만 아니라, ‘당신이 어떤 페미니스트인지’를 감별하고 서로의 ‘스탠스’를 확인하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기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위 ‘쓰까’라고 불리는 ‘교차페미’들이 스스로를 인식하고 호명하는 과정에서 ‘정체성 정치’는 ‘생물학적 본질주의’와 동의어로 정의되는 동시에, ‘교차성’이라는 개념은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가장 올바른 페미니즘이자 ‘정체성 정치’의 한계에 대한 처방전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필자들의 관심은 이렇게 ‘교차성’ 개념이 ‘정체성 정치’를 넘어서는 대안으로 인용될 때, 소위 ‘교차페미/랟펨’이라는 대립구도가 반복되면서 ‘교차페미’와 ‘랟펨’의 정치학이 상호배제적인 ‘반(Anti)-담론’으로 의미화되는 효과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즉, ‘정체성 정치’를 ‘생물학적 본질주의’와 동의어로 간주하거나 단순히 ‘철지난 것’으로 여기는 협소한 방식의 이해는, 서로의 ‘스탠스’를 확인하고 ‘우리 편’을 경계짓는 당파싸움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특히, 이와 같은 대립구도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정체성 정치’를 지탱하는 논의들이 페미니스트들에게 어떠한 가능성과 곤혹스러움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었는지를 탐색하고 검토할 수 있는 비평적인 거리를 확보하기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3.

따라서 필자들은 Fwd의 네번째 기획을 통해서 특정한 ‘정체성’이 너무나 주요한 정치적인 자원이 되어버리는 구체적인 ‘의제’나 ‘사안’, ‘국면’을 조망할 수 있는 글쓰기를 시도하고자 한다. ‘교차 페미/랟펨’이라는 대립구도와 그것이 전제하는 ‘정체성 정치’의 용법을 반복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체성’을 정치적 주체화의 핵심자원으로 삼는 기획이 페미니스트들에게 최초의 의도를 넘어서서 ‘아이러니[4]’로 경험되는 다양한 국면들을 글로 써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렇게 아이러니로 경험되는 ‘정체성 정치’의 가능성을 페미니즘의 ‘방해물’이나 ‘퇴행’의 원인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나 변수에 따라서 운동의 잠재력을 급진화하기도하고 탈정치화하기도 하는 힘으로 바라보고자 하였다. 요컨대, ‘정체성 정치’에 ‘반대’하거나 ‘폐기’를 선언한다고 해서 더욱 ‘정치적으로 올바른’ 페미니스트가 된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오히려 ‘정체성 정치’가 여전히 현실세계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과 그것이 갖고 있는 잠재력이 미끄러지는 순간들을 이해하고 설명할 책임을 떠맡는 것으로부터 다른 이야기들이 가능해질 수 있지 않을까?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필자들은 “‘정체성 정치’를 넘어서야 한다”라는 당위적인 요청이나 ‘교차성’을 정교하게 이론화하기를 시도하기보단,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즉, ‘정체성 정치’는 얼마나 다양한 권력관계들과 결합할 수 있으며, ‘정체성 정치’를 작동시키는 조건들과 담론장은 역사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져왔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주체들이 호명되고 생산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들을 보다 구체화 하는 과정에서 필자들의 관심사와 문제의식이 반영된 ‘아이러니’들은 세 가지 토픽으로 좁혀졌다. 

[4] 아이러니란,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를 의미한다. (출처: 다음 사전)

첫 번째 토픽은 ‘페미니스트로서 ‘나’의 정체성을 설명하려는 욕망들’이 경합하고 미끄러지는 과정에 대한 논의(한태경, 소연) 이다. 이 논의는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말로 자기소개를 하던 과거와 달리 ‘나’가 ‘어떤 페미니스트인지’를 적극적으로 증명해내는 것이 중요해진 페미니즘 대중화 시대에,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인정받기 위한 관계들이 탄생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두 번째 토픽은 소수자 공동체의 시민권 운동이 내셔널리즘과 조우하는 순간(보라돌이, 젊은쥐)을 다룬다. 한 사회에서 ‘비시민’으로 범주화 되어왔던 소수자들이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권리의 주체로 주목받는 현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특히 ‘대만의 내셔널리즘과 동성혼법제화 과정’, 그리고 ‘식민지배기억을 둘러싼 프랑스이민자공동체 내부의 경합’이라는 두 사례를 중심으로 소수자 공동체가 국민으로서 국가에 통합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질문을 던지려 한다. 세 번째 토픽은 대안적 주체로서 ‘여성’이 호명되는 장에 관한 논의(송유진, 최가은)이다.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로울 것으로 상상되는 ‘여자대학교’라는 공간이 어떻게 해서 내부의 긴장과 갈등들을 은폐하고 페미니즘의 ‘요새’로 낭만화 될 수 있는지, 그리고 문학비평의 장에서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의 ‘여성-서사’에 ‘새로움’이라는 의미들이 부여될 때, 정작 그 동안 여러방식으로 목소리를 내온 여성작가나 여성비평가들의 계보는 어떻게 단절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끝으로는 ‘닫는 글’(윤소이)을 통해 소위 ‘쓰까’의 정치학에 대한 교차페미의 회고를 나누려 한다. 이 글은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를 살아가는 페미니스트들 사이의 어떤 불화를 다르게 기억해보려는 개인적인 시도이기도 하고, 이번 기획을 준비하며 필진들과 함께 주고받은 대화를 통해 느끼고 고민했던 과정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정체성, 정치>라는, 다소 추상적인 제목에도 불구하고 모든 필진들이 스스로 경험한 세계를 기꺼이 직면하는 글을 써주었기에 Fwd의 네번째 기획은 어느 때보다 구체적이고 솔직한 이야기들로 채워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진들의 글쓰기는 방황하고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어떤 ‘방향성’을 알려주지 못할 것이다. 다만, ‘나도 헤매고 있는 중이니 당신은 혼자는 아니다’라는 내용의 서투른 편지로서 당신에게 온전히 가닿길 바랄 뿐이다. 


참고 문헌

  • Heyes, Cressida.(2018). Identity Politics,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강은교 옮김(2020), 『정체성의 정치』, 전기가오리. 
  • Lorde, Audre.(1984). Sister Outsider, Ten Speed Press, 박미선, 주해연 옮김(2018), 『시스터 아웃사이더』, 후마니타스. 
  • 손희정(2017). 『페미니즘 리부트』. 나무연필.
  • 정희진 외(2018).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교양인. 
  • Collins, Patricia Hill(1990). Black Feminist Thought: Knowledge, Consciousness, and the Politics of Empowerment, Routledge, 박미선, 주해연 옮김(2009), 『흑인페미니즘 사상: 지식, 의식 그리고 힘기르기의 정치』, 여성문화이론연구소. 
  • Puar, Jasbir K.(2005). “Queer Times, Queer Assemblages”, Social Text, 84(3~4), Duke University Press, 이진화(2016), “퀴어한 시간들, 퀴어한 배치들”, 『문학과사회』, 제29집4호, 88-118쪽.  
  • Harding, Sandra(1991). Whose science? whose knowledge? thinking from women’s lives, Cornell University Press, 조주현 옮김(2009), 『누구의 과학이며 누구의 지식인가』, 나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