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산업의 구조를 페미니즘적으로 바라보기

장지현

* 본고는 필자의 석사학위논문 “3세대 아이돌 산업의 친밀성 구조 –BTS 팬덤을 중심으로–”를 바탕으로 하여, 논문이 발행된 후 계속해서 변화 중인 아이돌 산업의 친밀성 구조에 대해 살펴본다.

케이블 방송국 tvN에서 방영한 드라마 「응답하라 1998」에서 볼 수 있듯 최초의 ‘아이돌 그룹’이라 불리는 H.O.T.의 탄생은 가히 혁명적이라 느껴질만했다. 더 나아가 이들을 추종하는 팬덤의 발생 역시 화제였기에, TV에서 그 모습을 취재하여 문제삼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사회 현상으로 연구하고자 했던 학계에서도 본격적으로 아이돌과 빠순이 담론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이 때 주로 부정적으로 그려졌던 이들의 행위양식과 문화는 그로부터 거의 25년이 흐른 지금, 수없이 많은 부침을 겪으면서 그 내용도 그에 대한 평가도 변화하였다. 문화란 정적인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아이돌 산업은 4세대[1]로 분류되기까지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단순히 아이돌 산업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보다는, 아이돌 산업이 세대 변화를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팬 문화를 흡수하여, 이를 전제하는 구조 속에서 팬들과 친밀성을 매개로 관계 맺고자 한다는 점이다. 이때 친밀성은 점차 고도로 구조화된 규칙 속에서 쓰이고 작동하게 된다. 그리고, 1차적으로 여성-팬[2]들이 아이돌과의 친밀성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직하는 것은 오늘날의 ‘자본’이라 할 수 있는 아이돌 산업의 매니지먼트사다. 

[1] 세대 구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시기와 활동 양식에 따라 H.O.T.를 1세대, 동방신기 및 빅뱅이 활동하던 시기를 2세대, EXO, 방탄소년단 등을 3세대, ATEEZ(KQ엔터테인먼트 소속의 8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 더보이즈(크래커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11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 등을 4세대로 나눈다.
[2] 1세대 아이돌로부터 팬덤에 대한 담론은 대부분 ‘빠순이(오빠-순이 혹은 좀 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조어)’, 즉, 남성 아이돌-어린 여성팬의 전제로 하여 형성되었고, 본 글 또한 그러한 맥락 속에서 이후의 글을 서술한다. 여성 아이돌의 여성 팬 등을 풍부하게 다루지 못한 것은 분명한 한계이다.

[그림 1] 빅히트엔터테인먼트사의 자사 플랫폼인 위버스에서 발송한 이메일에 첨부되어 있던 이미지. ‘To’부분에 가입자의 이름 혹은 닉네임을 삽입하여 실제로 편지를 발송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가령 위의 이미지는 방탄소년단의 매니지먼트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팬클럽 가입자를 대상으로 보낸 메시지 카드 이메일에 첨부되어 있던 것이다. 당연히 디지털 기술로 만들어 낸 가상의 이미지일 것이 분명한데도, 많은 팬이 손글씨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통해 ‘마치 대상과의 관계가 실재하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이와 유사한 수많은 장치들이 존재하며, 아이돌과 여성-팬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아이돌은 공식 선상에서는 서사를 덧입고 상품화된다. 3세대 이후의 아이돌 그룹 대부분은 ‘콘셉트’를 넘어서 ‘세계관’[3]이라 불리는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현재 영화라는 또다른 미디어 매체에까지 확장되기에 이르렀다. 많은 미디어와 내러티브가 본래 팬덤의 하위문화로, 또 ‘그녀들만의 음지문화(김남옥·석승혜, 2017)’[4]로 존재하다가 그 일부가 자본에 의해 적극 활용되고 있는 것인데, 그간 이러한 문화는 수면 위로 드러나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겨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은 이를 흡수하고, 여성-팬들은 이를 다시 팬덤-놀이문화의 재료로 삼는다는 점에서 현재의 아이돌 문화는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3] SM엔터테인먼트의 남성 아이돌그룹 EXO에서부터 시작된 이 경향은 방탄소년단의 BU(BTS Universe)로, 또 다른 아이돌들의 설정과 내러티브로 이어지며 팬들에게 2차 창작의 자원을 제공한다.
[4] 이는 여성-팬에 의해 향유되는 다소 포르노그라픽한 성격의 남성-동성애 팬픽을 암시한다.

[그림 2] 2020년 데뷔한 FNC엔터테인먼트 소속 6인조 남성 아이돌그룹 P1Harmony의 메인 티저 영상 일부. 실제 같은 매니지먼트사의 다른 연예인들까지 배우로 참여하여 영화로 개봉하였다. 

위의 두 가지 메커니즘 안에서 여성-팬들은 이미지로서 상상된 아이돌과 ‘아이돌의 진정한 자아’로서 팬덤으로부터 승인된 이미지 사이의 감각 위를 줄타기하게 된다. 이 줄타기는 또한 SNS라는, 확산성이 높은 플랫폼을 기반으로 아이돌이라는 대상에 대한 이미지의 분해와 재조립을 반복하면서 이루어진다. 현재의 팬덤 문화가 과거의 팬덤 문화에 비해 눈에 띄는 점은 또한 앞서 말한 ‘실재’, 즉, 현실성과 진정성에 대한 요구가 좀 더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비록 팬덤의 놀이가 ‘상상’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는 실재의 감각을 제공하는 현실에 기반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팬덤의 상상력과 하위문화는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 제한을 받게 된다. 과거에 이루어지던 자유로운 성적 상상이나 일탈은 이제 어려우며, 오히려 사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같은 팬들에 의해 제지당한다. 또한 아이돌의 여성-팬들은 여태까지 설명한 문화 생산이나 친밀성 확산에 특정 커뮤니티나 SNS를 주로 사용하는데, 친밀성 구조는 위에서 설명한 SNS의 빠른 확산성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공고화된다. 

한편 아이돌 산업이 SNS라는 플랫폼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팬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인터넷상의 이슈를 흡수하고 내화한다. 2016년 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론화 사건 이후 이어진 여성-팬들의 행보는 분쟁과 관련 이슈를 동시에 흡수하고 일상화하는 것이었다. 여성-팬들이 여성혐오의 대응으로써 SNS 상에서 미러링이라는 전략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게 된 한편, 아이돌 산업은 이러한 전략의 일부까지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일부로 포섭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 양상을 두 가지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논문(장지현, 2019)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아이돌은 더 이상 우상이 아니라 여성-팬이 지불한 재화에 따른 서비스를 교환하는 ‘대상’에 가까워졌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언어적 측면에서 남성 아이돌이 대한 극단적 대상화가 나타나기도 한다. 대상의 매력에 대한 상찬으로써 ‘창놈(외 해당 단어의 변형; 췡럼 등)’, ‘걸레’와 같은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당 언어가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공개적인 사용은 제한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암묵적으로 많은 여성-팬들에게 통용되고 있다. 또한 남성 아이돌에 대한 신체의 부분적-성적 대상화가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특히 가슴, 엉덩이, 키, 어깨, 성기 등의 크기에 대한 언급이 잦은데, 이는 발화자의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하는 것이면서 ‘까빠’로 불리면서 트위터 내의 페미니즘 흐름을 아이돌 팬덤 내에 적극적으로 흡수하려던 이들의 미러링이 일상으로 정착되었음을 보여준다.

둘째, 다시 한번 흥미로운 점은 남성 아이돌 그룹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마케팅 포인트의 일환으로 포섭한다는 점이다. 가령 남성 아이돌 그룹 더보이즈의 2020년 9월 말 컴백 티저 영상을 보자. 타이틀곡 <The Stealer>로 컴백한 이들의 마케팅 전략은 여태까지와는 노선이 다르다. (이들은 ‘The Boyz’라는 그룹명에 걸맞게 대개 ‘청량’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워 왔다.) 1분 30초 가량의 짧은 영상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멤버 주연과 에릭의 파트다.

[그림 3] 티저 중 멤버 주연의 부분. 전신에 ‘Fragile’ 스티커를 붙이고, 화면에는 ‘In Case of Emergency, Break the Glass and Use Me’는 자막을 띄워 놓았는데 이는 명백한 성적 은유로 보인다.
[그림 4] 티저 중 멤버 에릭의 부분. ‘Show Off Yourself’라는 문구와 함께 에릭은 줄곧 입고 있던 재킷을 벗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주연의 신체는 보는 사람이 필요할 때에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비춰지고, 에릭의 신체는 보는 이의 시선을 미리 규정하며, 응시하는 자가 원한다면 앞으로도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또한 아스트로의 유닛 문빈&산하는 가장 최근의 활동 의상으로 크롭탑을 선택한 바 있는데, 이들은 오히려 기존의 통념에서 역전된 성적 어필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그를 위해 뮤직비디오에서도 어느 정도의 노출을 감행한다. 이는 2세대 아이돌이 남성성을 과시하거나, 그 정 반대의 경우로 젠더리스한 모습을 보여주던 경우와도 다르다. 2세대 아이돌인 2PM은 아크로바틱, 이전에 아이돌로서는 불가능했던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보여주며 ‘짐승돌’이란 호칭을 획득한 바 있으며, 반면 샤이니는 스키니진 등 그간 남성이 소화하지 않았던 복장, ‘요정 같은’ 이미지를 강조하면서도 성적 대상으로서 소비되기보다는 특유의 감수성을 어필한 바 있다(정민우·이나영, 2009).

이처럼 현재 아이돌 산업의 자본은 팬덤의 문화나 흐름을 적극적으로 포착하고 포섭한다. 이제는 아이돌 팬덤의 미러링 전략 또한 여러 면에서 자본과 엉겨붙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 때, 아이돌 팬덤 내의 페미니즘은 어떤 문제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지 질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앤디 자이슬러(Andi Zeisler)는 “여성들은 그들의 돈으로 언제든지 상품을 구매할 권리, 그리고 남성들과 똑같이 빚을 질 권리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상품을 구매하고 소비할 수 있는 권리가 페미니즘과 연결될 때, 그것은 시장 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사조의 핵심 교리와도 연결된다”고 말한다(자이슬러 2018: 24). 현재 아이돌 산업과 팬덤의 구조가 하나의 거대한 쇼 비즈니스와 친밀성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면, 아이돌 팬덤의 소비와 페미니즘 또한 시장 페미니즘에 종속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김남옥, 석승혜 (2017). 그녀들만의 음지문화, 아이돌 팬픽. Journal of Korean Culture (37), 191-226.
  • 장지현(2019). 3세대 아이돌 산업의 친밀성 구조 –BTS 팬덤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 정민우, 이나영 (2009). 스타를 관리하는 팬덤, 팬덤을 관리하는 산업. 미디어, 젠더 & 문화 (12), 191-240.
  • Zeisler, Andi.(2016). We Were Feminists Once: From riot grrrl to CoverGirl, the buying and selling of a political movement, Public Affairs, 안진이 옮김(2018), 『페미니즘을 팝니다: 우리가 페미니즘이라고 믿었던 것들의 배신』, 서울: 세종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