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들’ 어떻게 같고 다른가

🍀싱두

1. 비혼(非婚)은 어떻게 복수가 되었나?

한국사회에 미혼 아닌 비혼(非婚)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말 부터이다. 1990년 12월에 한국 최초 독신여성단체 ‘한국 여성 한마음회’가 발족되었고, 1999년 11월에는 여성신문과 동아일보에 각각 “여대생 83%, 직업은 필수 결혼은 선택”(1999.11.12.)과 “결혼은 No 동거는 Yes – 비혼 커플 부쩍”(1999.11.15.)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비혼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비혼이라는 단어 자체가 많이 언급되지 않았고, 언급되더라도 위와 같이 적극적인 ‘선택하지 않음’의 의미가 아닌, 미혼(아직 결혼하지 않음 혹은 못함)의 의미와 혼재되어 있었다. 이는 지금도 어느 정도 그런 것 같다.

비혼 개념이 생겨나고 사용되면서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비혼문화운동이 시작되었다. 여성들이 비혼에 관해 글을 쓰는 웹진이 등장했고, 대표적인 비혼여성운동단체 ‘언니네트워크’가 조직되어 비혼여성축제 등의 문화활동을 기획했다. 이러한 비혼문화운동이 전개된 지 2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의 비혼은 어떤 변화를 맞았을까. 그때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운동으로 비혼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고, 경제위기로 인한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어쩌다 보니 비혼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또 그 물결에서 갈라져 나왔다고는 쉽게 볼 수 없는 다른 형태의 비혼 운동도 포착되고 있다. 이른바 ‘4B’(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에 포함된 비혼은 온라인 공론장을 중심으로 가장 급진적인 성정치 의제로 대두되었다. 2010년 중반 이후 한국에서 ‘래디컬’ 페미니스트라 불리는 이들은 4B와 비혼 이슈를 자신들의 강력한 여성운동 의제로 설정했다. 이들의 의견에 따르면 가부장제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제도는 곧 결혼이다. 결혼 제도가 남성 중심적이고 남성들에게만 ‘좋은’ 시스템이라는 것은 바꾸어 말하자면 여성에게는 완벽하게 유해하다는 의미이다(이효민 2019: 89). 그래서 매우 적극적으로 결혼을 거부하는 것이 여성해방을 위한 첫걸음으로 이야기된다.

페미니즘 담론의 방향과 결이 셀 수 없이 다양한 것처럼, 비혼은 여러 이슈들이 교차하는 문화운동의 영역에서, 개개인이 지속하는 삶의 영역에서, 혹은 급진적 성정치의 장에서 여러 모습으로 꾸준히 등장해왔다. 여러 가지 비혼 이야기들은 서로 어떤 부분에서는 겹치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같은 비혼 이슈를 다룬다고 볼 수 없을 만큼 ‘상이한 모습’을 보인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나는 비혼주의자야.”라고 외쳐도, 저 반대편에서 쉽사리 “야 너두? 야 나두!”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다른 비혼‘들’을 말하게 되었고, 어떤 상이한 모습들을 보이고 있는가. 비혼의 역사적 흐름을 짚어보며 이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2. ‘영 페미니스트’, 정상가족에 금을 내고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다

1990년대 중후반 ‘영 페미니스트’로 스스로를 호명하며 등장한 이들은 ‘여성운동 선배 세대와의 단절과 구분’을 선언하고 개인의 섹슈얼리티를 정치화하는 방식으로 여성문제를 풀고자 했다. 이들은 문화적, 사상적 개방과 더불어 자유로워진 신세대의 감수성으로 선배 운동가들이 잘 살피지 못했던 성 욕망과 성폭력 문제 등 섹슈얼리티 문제들을 좀 더 솔직하고 과감하게 표현하려 했다(오장미경, 2004). 특히 영 페미니스트들은 ‘결혼’이라는 제도 외에서 나타나는 섹슈얼리티 실천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전통적인 가족 모델에 균열을 내는 것이 곧 여성의 섹슈얼리티 문제를 새로운 여성운동 이슈로 등장시키는 방법임을 깨달았다. 

2005년엔 호주제 폐지로 인해 가족이 무너진다는 위기감이 팽배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건강가족기본법이 제정됐다. ‘위기의 가족’ 담론에서 말하는 가족이란 이성애를 기반으로 한 결혼으로 구성된 남녀부부가 중심이 된 근대적 가족 모델[1]을 의미했다. 이렇게 국가가 설정한 정상가족을 벗어난 것이 위기가 아니라, 그 가족 모델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담론의 재해석 및 재구성을 바탕으로 비혼 운동이 이 시기 더욱 힘을 얻었다. 섹슈얼리티 차원에서는 규범화된 정상가족의 이성애 중심성을 지적하며 성소수자 운동과 교차되는 한편, 그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제도에서 소외된 비혼 여성들이 그 밖에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시도한 새로운 실천과 균열내기에 집중했다. 새로운 대안적 친밀성을 바탕으로 한 생활동반자법 제정 운동은 그 중 하나였다. 2007년에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선 후보가 이 운동을 바탕으로 한 동반자등록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정상가족 규범을 벗어난 공동체적 삶을 제도와 법의 영역에 등장시켰다. 성인인 개인들이 동반자 관계로 등록해 각종 사회복지 수급권을 법적 가족과 같은 수준으로 보장받으며, 이를 통해 사회 복지의 혜택을 받는 인구가 국민 일반들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가족적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 세력 및 동성결합을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 중심인 혐오 세력의 반대로 현재까지도 실현되지 못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1] 사회학자 조은주는 자신의 저서 『가족과 통치』(2018)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런데 여기서 부모와 두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의 모델은 단지 적은 수의 자녀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가족과는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가족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가족 모델의 확산이 가족계획을 통해 등장한 가족의 정상화(normalization) 과정을 이룬다.”(214-216)

3. 경제위기와 개인화, 결혼이 여성에게 선택의 문제가 되기까지

한편 영 페미니스트가 등장한 시기엔 한국 사회 전반에 경제 위기로 인한 불안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사회운동을 주도하던 대학생들의 취업난과 불안이 심화되고, 신자유주의화된 시장논리의 수입으로 개인화된 주체들이 집단주의적인 운동권 문화를 기피하거나 혐오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러한 대학생들의 탈정치화는 그들이 기업가적 주체(entrepreneur) 혹은 기업가적 정신(entrepreneurial spirit)에 따라 살아가는 개인, 집단, 조직, 사회체로 주체화된 새로운 현실과 맞물렸다(서동진 2009: 331). 안정적이고 질 높은 일자리 자체가 당시 매우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개인 간의 경쟁은 심화되었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개인화된 해결책을 모색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이들은 집단 운동을 통해 전반적인 사회 개혁을 도모하는 것이 아닌, 개인적인 자기계발을 통해 경제위기가 지속되는 흐름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차지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이 중에서 질 높은 일자리를 성취해 낸 비교적 고학력인 여성들은 ‘결혼하지 않음’이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획득했다. 즉 이전까지 결혼이 남성 1인 생계부양자가 벌어오는 가족임금[2]과 그것이 재생산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여성이 안정적으로 편입하는 과정이었다면, 경제위기로 이 전제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기업가 주체로서 좋은 일자리와 안정적인 임금을 확보한 여성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결혼의 유불리를 따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끝없는 자기계발을 통한 기업가적 주체 만들기 과정에서 여성의 자기계발 담론은 공적 성공의 의미를 사랑, 연애, 결혼 등 사적인 삶의 성공과의 관련성 속에서 조율하고, 양자 간의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관리하는 전략을 취했다(엄혜진 2016: 43-44).

[2] 조주은은 자신의 책 『현대가족 이야기』(2004)에서 현대자동차라는 대기업의 가족 만들기와 그 기저에 전제되어있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남성 1인 생계부양자 모델의 가족임금제를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작가는 “남성 한 사람의 벌이로 가족 모두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가족임금’ 모델은 남성을 ‘가족부양자’로 위치 지우면서 가정과 직장에서 행해지는 여성의 다양한 노동을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게 한다.”(60)고 지적했다.

이같은 맥락에서 ‘비혼’을 선택한 여성들은 ‘섹슈얼리티 문제로 가족 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린다’는 기존 운동의 목적의식보다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벌어 살 수 있는 경제력을 갖고 있었거나 결혼이 자신의 공적 영역에서의 삶에 부여할 수 있는 위험요소들(임신, 출산 이후 경력단절 등)을 적극적으로 회피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았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미디어를 통해 ‘골드미스’ 담론이 확산되며 비혼 여성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재현되기도 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확산이 지속되고 장기불황이 가시화되자 사람들은 ‘골드미스’로 호명될 수 있는 여성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 계급 양극화가 뚜렷해진 상황에서 고학력과 자기계발에 필요한 더 많은 사회적, 경제적 자본을 보유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소수의 상층부계급이었다. 가족도, 그를 기반으로 한 제도도, 시장논리의 영역도 불안한 위치에 놓인 여성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해주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혼에 필요한 여러 사회, 경제적 자본을 획득하기 힘들어진 여성들은 결혼을 ‘포기’하기도 했다. 이들은 비혼과 미혼, 그 사이 어딘가에 모호하게 위치했다. 

4. 4B의 비혼의 등장과 여성운동의 급진적 변화

3포세대라는 청년담론이 등장하고, 포기 목록이 추가되던 2010년 중반, ‘뉴 페미’, ‘영 영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새로운 페미니스트 집단이 등장했다. 이들은 이 즈음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메갈리아의 등장 배경,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등)에서 추동된 피해자 정체성 정치의 바람을 타고 한국 여성운동사에 급진적인 변화의 흐름을 주도했다(이효민, 2018). 이들 피해자 정체성의 주체는 당연하게도 ‘여성’이었다. 그리고 ‘여성’만이었다.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나 사회문화적 여성으로 억압 받는다는 이들의 논리구조는 여성으로 태어난 여성만이 겪게 되는 고유한 피해경험이 있고, 모든 여성들은 그러한 피해의 경험을 동일하게 공유하며, 나아가 그 당사자만이 피해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혹은 이야기할 자격이 있다는 주장으로 연결되었다(김보명, 2018).

이러한 운동은 차이와 연대의 정치를 추구했던 기존 여성운동의 흐름과는 분명히 어긋난다. 이들은 연대 거부와 동시에 연대 불/가능성을 이야기한다. 2010년대 중반 페미니즘 리부트의 흐름을 타고 등장한 소위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주로 차이를 정/반의 문제로 치환하면서 연대의 기반이 아닌 연대 거부의 기반으로 삼았다. 이분법적인 생물학적 차이가 가장 첫 번째로 연대 거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며, 생물학적 여성 내부의 페미니즘 운동 참여 및 전략의 차이가 다음 기준으로 뒤따라온다. 이와 같은 급진적 성정치의 조건과 기준 하에서 등장한 4B운동(비연애, 비출산, 비혼, 비섹스)의 비혼 흐름도 크게 다르지 않다. 4B 비혼 주체들의 입장에서 남성은 공고한 가부장제를 결혼으로 유지시키는 원흉이자 가해자이기 때문에 연대가 거부된다. 그리고 기혼 여성은 ‘망혼’에서의 탈출, 즉 ‘탈혼’을 통해서만 자신들과의 연대 가능성을 획득한다.

4B 비혼을 주장하는 여성들은 현재 제도화된 결혼이 가부장제를 재생산하는 강력한 기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완강하게 거부하며, 기존 가족 공동체의 모습과 유사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를 경계한다. 전통적인 가족 간 친밀성과 가족 내 성별분업 등이 비슷한 모습으로 유지되는 공동체는 이성애 결혼으로 결합된 형태가 아닐지라도 거부한다. 이는 201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소위 급진 페미니스트들의 또 다른 주요 운동 전략 중 하나이기도 한데, 명확한 소속 단체 없이 스스로를 분노한 여성 개인으로 적극적으로 소환하면서 개인들 간에 공통의 피해 경험을 바탕으로 느슨한 연대를 도모하는 것이다. 이들은 복지제도 및 사회 구조에서 이성애 정상가족을 이루지 않은 자신들이 여전히 소외, 배제됨을 알고 그 밖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한다. 이를테면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돌봐야 하니 갖가지 운동을 권장하거나, 돈이 될 수 있는 실용적인 기술, 자격들과 관련된 자기계발 등을 강조하고 전시한다. 이중 최근들어 눈에 띄는 방법은 금융시장과 관계되어 있다. 돈을 불릴 수 있는 재테크 정보를 공유하고, 안정된 주거에 필요한 목돈 확보를 위해 주식에 투자한다. 투자도 아무 기업에 하지는 않는다. 여성인권을 위해 사회 공헌 활동을 펼친 기업의 주식을 사거나, 여성차별적인 문화로 유명한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비혼의 목적 자체가 결혼 거부를 통한 여성해방이라는 급진적 여성운동의 서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비혼여성으로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재테크에서도 여성인권, 해방, 차별 철폐와 같은 여성주의적 가치를 중시한다.  

국가와 사회 공동체가 오랜 시간 여성인 자신들의 안전과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았다는 점과, 기존의 여성운동 단체들이 다른 사회운동과 연대하며 오히려 여성의 권리 신장에 소홀했다는 점에서 느끼는 분노는 (생물학적 여성들 간의) 느슨한 연대와 정상가족 탈피 이후의 공동체적 혹은 제도적 문제 해결방식을 기피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비혼을 선택/선언한 이후의 삶을 금융화된 방식으로 이어나가고자 하는 정치는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금융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2000년대부터 한국사회에 “일상생활의 금융화”가 정착된 흐름과도 만난다. 금융화 과정 속에서 하나의 사회문화적 변동으로 개인들은 ‘투자자’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고(박찬웅‧조선미‧차형민 2017: 92), 점차 자신의 삶의 다양한 리스크에 대한 개인의 직접적인 통제를 옹호할 것을 요청받는다(Aitken, 2007). 하지만 이들이 선택한 신자유주의적이고 금융화된 삶의 방식은 기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자본 축적 방식이 고도로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구조를 내포하며 유지되어왔다는 점[3]에서 운동의 한계를 보이기도 한다. 가부장제 타파를 가장 핵심적인 운동 의제로 설정했지만 그를 실천하는 방식이 결국 그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정치경제적 시스템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이러한 시스템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은 금융화된 주체로서의 4B 비혼 여성이 모순적으로 다시 ‘가족’과 마주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남긴다. 

[3] 깁슨-그레엄은 자신들의 책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1996; 2013)에서 “‘자본주의 헤게모니’는 이론과 담론, 비담론적 실천들이 만들어낸 산물로서 유기체적 사회 개념, 영웅적인 역사의 서사, 진화론적 사회발전의 시나리오, 본질주의적 남근주의적 이원적 사고의 복합적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김주희(2015)는 금융화의 성별화된 효과를 강조하며 “자본의 전략 속에서 (금융화가 촉발한) 부채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여성의 몸과 성매매 산업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5. 다른 비혼‘들’ 상상하기

엘리자베트 벡-게른스하임은 자신의 저서 『가족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2005)에서 제목에 대한 다소 황당해 보이는 답을 내렸다. “이런 조건에서 ‘가족 이후는 무엇이 오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바로 가족이다!” 이러한 답은 전통적이고 단일했던 가족 형태가 흔들리고,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등장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비혼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여러 비혼’들’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어떻게 도전했는지, 그 이후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이어나가려하는지 알 수 있었다. 비혼들은 여전히 가족이라는 첨예한 장에서 공존하고, 갈등하고, 반목하거나 연대하고 있다. 게른스하임처럼 가족 이후의 다른 가족을 이야기는 사람들도, 혹은 그 이후의 가족을 상상하지 않는 것 같은 비혼들도 있다. 어떤 상상이 절대적으로 옳고 또 어떤 것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야기하고 싶은 건, 전통적인 가족 모델을 공고히 해온 가부장제와 가족 내 성역할 규범, 신자유주의적 불안정성과 이성애중심성과 같은 근원적인 문제지점을 성찰하지 못한다면 비혼이라는 정치적인 한편 개인적인 실천의 의미는 계속해서 여러 한계와 마주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더 많고 다양한 비혼의 삶을 상상함과 동시에 그 삶들이 마주칠 근본적 문제지점을 개혁할 수 있는 더욱 급진적인 사고의 전환을 이뤄내야 하지 않을까. 


참고 문헌

  • 김보명(2018). “혐오의 정동경제학과 페미니스트 저항”. 『한국여성학』, 제 34권 1호, 1-31쪽.
  • 김주희(2015). “일상적 재생산의 금융화와 성매매 여성들의 ‘자유’의 확대”, 『여성학논집』, 제32권 2호, 29-60쪽.
  • 박찬웅‧조선미‧차형민(2017). “한국 경제 금융화의 특성과 함의”, 『한국사회학』, 제 51집 1호, 91-128쪽.
  • 서동진(2009). “신자유주의 분석가로서의 푸코: 미셀 푸코의 통치성과 반정치적 정치의 회로”,  『문화과학』, 제 57권, 315-335쪽.
  • 엄혜진(2016). “신자유주의 시대 여성 자아 기획의 이중성과 ‘속물’의 탄생”,  『한국여성학』, 제 32권 2호, 31-69쪽.
  • 오장미경(2004). “한국 여성운동과 여성 내부의 차이”, 『진보평론』, 20호, 152-178쪽.
  • 이효민(2019). “페미니즘 정치학의 급진적 재구성”,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 조은주(2018). 『가족과 통치』. 서울: 창비.
  • 조주은(2004). 『현대가족 이야기』. 서울: 이가서.
  • Aitken, Rob.(2007). Performing Capital: Toward a Cultural Economy of Popular and Global Finance, Palgrave Macmillan Basingstoke. 
  • Beck-Gernsheim, Elisabeth(2000). Was kommt nach der Familie?, Munich:C.H.Beck, 박은주 옮김(2005), 『가족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 서울: 새물결.
  • J.K Gibson Graham(1996). The End of Capitalism(as We Know It):A Feminist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Cambridge, Mass.: Blackwell, 엄은희‧이현재 옮김(2013),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서울: 알트.

댓글 2개

  1. 저기요 저번에도 읽어봤지만 맨날 다양성 타령하시는데, 님들이 말하는 다양성의 반례로 4b들이 제시한 형태가 항상 비판, 배제의 예시로 등장하는 모순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존 사회가 다양한 상상을 말살해왔단 비판을 하시는 게 먼저 아닐까 싶네요? 탈코 담론에서도 탈코는 외모 꾸밈 다각화의 하나로 님들이 말하는 다양한 상상에의 기여일 수 있는데 오히려 새로운 정상성으로 기능할 것이라는 우려만 부각시키셨죠 ㅎ 다양성을 긍정하자는 메세지를 결론으로 제출하면서 다양성을 배태할 수 있는 시도에 대해 배제의 언어부터 쏘아 올리는 것이 진정 다양성을 긍정하는 행동인지 아니면 다양성의 말살인지 머리가 있으면 생각 좀 해보시고요. 이제 좀 그놈의 상상마당 좀 그만하시고 이 글과 이 웹진의 다른 글들이 획일화와 다양화 중 어느쪽에 이용될지 좀 생각하실 시간을 가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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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김고뇌님, 이 글의 저자 싱두라고 합니다. 우선 저희 웹진 글을 꼼꼼히 읽어주시고, 비판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글의 기획의도를 간략하게 이야기해보자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비혼을 이야기하는 담론들이 어떤 맥락에서 등장했고 어떤 계보를 따라 이어졌으며, 어떤 변화와 한계를 맞닥뜨렸고 맞닥뜨리고 있는지 논해보고자 했습니다. 다만 몇 가지 고뇌님의 코멘트에 저자로서 더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글을 쓸 때 저자인 제가 4B 담론에서의 비혼을 비판과 배제의 예시로 다루었다고 말씀주셨는데, 제가 이 글을 쓴 가장 큰 목적 자체가 다양한 비혼 담론들에 대한 역사화와 각 담론장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이었습니다. 단지 4B 비혼만을 비판하신 것으로 읽으셨다면 이는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를테면 본문 중에는 골드미스로 그려진 2000년대 초중반 비혼 여성들에 대한 재현방식의 한계와 ‘영 페미니스트’ 비혼 운동이 현실에 제도로서 자리잡지 못한 점과 운동 방식 자체에서 개인화된 사회의 맥락 위에서 한계를 보였다는 점 , 기존 ‘정상가족’ 에서의 성별분업체계를 명료하게 해소하지 못한 대안 공동체들에 대한 비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담론을 ‘배제’하려는 의도나 목적은 전혀 없었음을 명백히 밝힙니다. 하지만 고뇌님의 말씀대로 기존 사회가 다양한 상상을 말살했다는 점은 저도 너무나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4B 비혼 또한 새로운 다양성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다양성에 대한 비판이 배제의 언어로 읽혔다는 것을 스스로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해석의 차이일수도, 계속해서 배우며 익히고 있는 저 스스로의 부족함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더 많은 상상들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한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함으로써 더 나은 상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나온 글이 이 글이기도 하고요. 다양한 상상이 부족하다는 점은 고뇌님과 제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견이라고 생각되니, 앞으로도 이렇게 저희 웹진과 글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저 개인적으로는 이 비판을 읽으며 또 다른 상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비판이든 공감이든 어떤 형태로든 좋으니 많이 남겨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긴 비판을 해주시기 위해 제 글을 꼼꼼히 읽어주신 점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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