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없는 TERF (역)담론에 대항하기

🌀구지윤

이 글은 필자의 석사학위 논문 「한국 트랜스여성의 삶의 기획으로서 트랜지션 과정과 성형실천」(2023)의 연구 후기글이자 논문의 일부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1. 들어가며

처음 석사논문 프로포절을 작성할 때만 해도 나는 내 논문에서 트랜스여성과 성형수술을 동시에 다루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학부 시절 해외탐사 프로젝트 사업에 참여해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연구했고 하다못해 수업 과제를 작성할 때도, 또 여성학과 대학원에 들어와서도 트랜스여성 이야기를 줄곧 해왔다. 하지만 고백컨대, 그 ‘트랜스여성 이야기’란 엄밀히 말하자면 TERF 담론에서 트랜스여성을 재현하는 방식에 반박하기 위해 동원된 것이지 ‘트랜스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때의 트랜스여성은 늘 TERF를 경유해야만 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TERF에 대한 비판’일 수는 있어도 ‘트랜스젠더 연구’는 아닌 페미니즘 논의들이 (적어도 내가 속한 곳에서는) 범람했고, 나 또한 그 물결에 몸을 싣고 있었다.

어쩌면 석사과정 내내 나의 화두는 트랜스여성과 시스여성은 궁극적으로 같은 억압 체계 하에 있다고, 그러니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다양한 퀴어 존재들을 배제하거나 혐오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성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페미니즘 연구로는 무궁무진한 주제와 분야가 가능함에도 나는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학위논문 프로포절을 준비할 즈음, 여러 소재와 주제를 좌충우돌 오가며 이전에 갖고 있던 관성적인 관심사에서 거리를 두고자 했다.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왔고, 그동안 내가 주변만 맴맴 돌았던 트랜스여성이라는 주제를 석사논문으로 쓰겠다고 마음 먹었다. 밑도 끝도 없이 ‘트랜스여성의 삶’을 논문에서 다루고 싶다고 말하는 나에게, 석사 첫 학기 때부터 나를 봐오신 지도교수님이 성형수술이라는 구체적인 소재를 제안해주셨다. 어딘지 공중에 붕 떠있는 듯했던 나는 그제야 누구를 만나 무엇을 연구해야 할지가 조금씩 명확해져갔다. 이 글에서는 질적연구방법, 그중에서도 연구참여자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하였던 나의 소회와 연구를 진행하며 가지게 된 문제의식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2. ‘TERF vs. TERF 비판’ 구도에서 편집되는 트랜스젠더의 자리

트랜스여성을 시스여성이 ‘버린’ 코르셋을 ‘주워입고’ 여성이 따르도록 요구되었던 규범을 재생산 및 강화하는 존재로 상상하는 것이 TERF 담론이라면(송지수, 2021; 이효민, 2019), 이를 비판하는 것은 TERF의 역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담론은 특정 대상에 대한 비판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의 한계로 인해 언제나 TERF의 목소리를 인용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TERF 비판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 TERF의 언설들을 끊임없이 소환해야 하는 것이다. 연구 과정에서 나는 이 역담론이 의도치 않게 TERF와는 다른 방식으로 트랜스젠더를 납작하게 이해하고 타자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차츰 들었다. TERF의 논리에서는 물론이고 TERF에 대항하는 목소리에서도 트랜스젠더의 자리는 어느새 홀연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를 왜 배제해야 하는지 혹은 그에 대항해 왜 그것이 정치적, 도덕적, 이론적으로 올바르지 않은지의 논쟁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와 특정한 재현이 반복해서 재생산되었다. 

대표적으로 트랜스여성의 성형수술을 둘러싸고 일각에서는 트랜스여성이 과잉된 방식으로 여성성을 수행하고 외모 규범에 동조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트랜스/퀴어/페미니스트 이론가/운동가들은 모든 트랜스여성이 그러한 것은 아닐 뿐더러 트랜스여성의 과장된 여성성 수행은 젠더 이분법적 사회에서의 생존 수단임을 강조했다. 이렇게 트랜스여성의 성형수술은 (여성을 억압하는) ‘미용’과 (이분법적 젠더 규범 사회에서의) ‘생존’이라는 양분화된 구조 속에 위치하게 되었다. 

하지만 미용과 생존이라는 구도는 과연 적합한가? 이는 트랜스여성의 성형수술에 국한된 질문만은 아니다. 가령 젠더화된 외모 규범이 강하게 작동하는 한국 사회에서 시스여성들의 ‘취업성형’은 미용을 위한 것인가, 생존을 위한 것인가? 유방암으로 유방전절제술을 시행한 후 유방을 재건하는 것은 외모 개선을 위한 것인가, 의료적으로 필요한 수술인가?[1] 마찬가지로 트랜스여성의 성형수술은 오직 미용 혹은 생존이라는 하나의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앞의 두 질문에 이자선일 할 수 없다면,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그렇지 않다’여야 한다.

[1] 한국에서 유방재건술은 미용성형술에서 재건성형술로 재분류되어 2015년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다. 관련하여 구지윤, 2023: 62-65 참조. 

트랜스여성의 ‘여성성 과잉 체현’이라는 말은 또 무슨 뜻인가? 여성성 과잉 체현이 트랜스여성의 생존 전략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잉의 내용이 이미 주어진 사실이거나 모두가 이해하고 있는 의미처럼 여기게 한다. 그러나 애초에 ‘트랜스여성의 여성성 과잉 체현’은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은 존재’에게는 여성성이 없거나 없어야 한다는 인식, 그리고 여성성은 본래 ‘생물학적 여성’에게 귀속된 것이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을 때 가능한 논리이다(구지윤, 2023: 5). 여성/성과 그에 대한 규범 역시도 균열내야 하는 것으로서 이미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지, 그 여성성 규범은 모든 여성에게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역시 질문되어야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거듭하며, 나는 TERF와 TERF를 비판하는 양 진영의 구도 이후에 무엇이 와야 하는가, 나아가 누구의 목소리를 들으며 누구와 대화할 것인가를 모두에게,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묻고 싶었다. 

3. 연구참여자를 만나기 혹은, 친애하는 나의 친구들에게

논문에서는 크게 트랜스여성이 어떤 상황에서 성형수술을 선택하는지/할 수 있는지, 한국의 특수한 성형 문화[2]에서 무엇을 경험하는지, 그러한 경험을 트랜스 당사자는 어떻게 해석하는지 질문했다.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책과 논문들을 잠시 덮고, 직접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심층 인터뷰, 참여관찰, 문헌조사를 통해 질적연구를 진행하였고 총 25명의 연구참여자를 만났다. 나는 질문지를 미리 준비하되 인터뷰 상황에서 유연하게 질문 내용을 조정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만들어나가는 반구조화(semistructured) 방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연구참여자의 경험과 생각을 그 사람의 삶의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다보니 이야기는 늘 예상보다 더 길어졌다. 심층 인터뷰였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술 생애사이기도 했다. 

[2] 나의 논문과 이 글에서 성형 문화란 성형수술을 받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사회를 뜻할 뿐만 아니라, 성형을 한 사람이든 하지 않은 사람이든 성형수술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러한 성형 담론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현상을 의미한다(구지윤, 2023: 6).

연구참여자들 삶의 면면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들에게 애정과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대화를 나누고 마음에 남는 말들을 곱씹고 나의 방식대로 기억하고 해석하고, 다시 그 순간에 녹음한 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적으며 그들 삶에 접속과 재접속을 반복했다. 너무나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인터뷰 이후에도 나와 인터뷰이들의 시간은 흘렀고, 그들의 직업이든 몸의 형태든 나와의 관계든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래서 우리가 나눴던 대화는 녹음본과 녹취록에 고정되어 있지만, 그 대화를 ‘날 것 그대로’ 보기란 어려웠고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러 변화를 인지하면서 인터뷰이들의 삶에 재/접속하는 일, 그것의 결과로 인터뷰 내용을 해석하는 일은 초보 연구자인 나에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인터뷰이들이 전하고자 했던 의도나 맥락을 함부로 곡해하거나, 그들을 타자화 혹은 낭만화하는 방식으로 연구의 ‘가용 자원’만으로 쓰게 되지는 않을지, (직접 물어본 적은 없지만) 인터뷰이들이 연구에 참여함으로써 기대하는 결과물에 부응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수집한 것에 비해 풍부한 분석을 하지 못하면 어떡할지 등등 걱정이 주렁주렁 열렸다. “충분히 이야기를 나눠주셨으니 이제 나만 잘하면 된다”는 말을 입밖으로나 마음속으로나 달고 살았던 기간이었다. 연구참여자분들에게는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했던 시간이었다. 

물론 연구참여자 모집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연구를 설계할 때 가장 걱정했던 지점이 바로 어떻게 연구참여자를 모집할 것인가였다. 필요한 연구참여자 인원을 채울 수 있을 만큼 트랜스여성 지인이 많지도 않았거니와, 그중에서는 성형수술을 한 사람이 없었다. 연구참여자 모집 방법으로 가장 기대고 있었던 것은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연구에 참여할 사람들을 소개받는 눈덩이 표집이었다. 하지만 참여자 모집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어서야 인터뷰이 6명을 겨우 모집한 나로서는 답답하고 막막할 따름이었다. 이마저도 성형 앱, 성형 커뮤니티, 개인 SNS에 모집문건을 올리고, 친구들이 각자 SNS 계정으로 공유해준 덕분이었다. 연구에 참여해주신 분들도 적극적으로 트랜스젠더 온라인 카페와 주변 지인들에게 연구참여자 모집을 홍보해주셨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효과적이지는 않았다. 

여대에 소속되어 있고 여성학을 전공하는 연구자의 위치가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정보값이 아닐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어느 기관의 소속과 전공 분야보다 경계의 대상이 되었을 테다. 연구자 본인이 얼마나 시스여성으로 정체화하는지와는 상관없이, 시스여성으로 짐작되는 연구자에게 트랜스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특별한 동기나 호의 없이는 성가신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인터뷰를 진행할 당시 내 연구의 가제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성형수술 경험과 젠더 정체성”이었고 모집문건만으로는 연구자의 입장을 명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웠으므로, 여러모로 오해를 받거나 기피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느 기관이나 사업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지 않고 ‘땅 파서 연구하는 내돈내산 연구자’였던 관계로, 인터뷰에 들이는 품에 비해 사례비가 너무나 약소했던 탓일 수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는 혐오와 폭력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소수자의 위치에 있으며, 성형했다는 사실 역시 여전히 공공연히 드러내기 어려운 일이다. 그랬기에 연구참여자 중에서도 성형수술을 받은 트랜스여성을 모집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코로나 상황과 연구참여자가 거주하는 곳에 따라 인터뷰는 온라인으로 진행되기도 하였는데, 인터뷰 일정을 잡아놓고 잠적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눈덩이 표집은 연구참여자가 8명 정도 모였을 때부터 조금씩 작동하기 시작하였다. 인터뷰 요청을 거절당하거나 무응답이 있었을지언정, 인터뷰를 진행한 분들 가운데 동의 철회를 요청하거나 중도탈락한 분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은 놀랍도록 다행인 일이었다.

연구가 끝난 지금, 모든 연구참여자들과 연락을 이어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인터뷰를 했던 그 시간동안만큼은 압축적인 우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감각의 결에는 인터뷰에 응해준 것에 대한 감사함은 물론 그들이 나누어준 이야기들의 깊이, 그 심도에서 느껴지는 연구자에 대한 환대, 뜻밖에 받은 호의와 응원, 짧은 시간동안 형성된 신뢰를 바탕으로 나누는 농담 같은 것들이 스며있다. 처음 대학원을 가고자 했던 내 선택과 결심에는 텍스트 중심의 연구가 있었다면 지금은 그 연구에 생생히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내가 만나고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다시금 절실히 느낀다. 내가 만난 사람들과 사건들은 나를 바꾸었고, 나는 기꺼이 바뀌고 싶었다.

4. 무엇이 여성/성을 만드는가? 

이렇게 수집한 이야기들 중 이 글에서는 연구참여자 지현, 유정, 담희, 정혜, 리하(모두 가명)의 사례를 소개해보려 한다. 이들과 이들의 주변인들은 여성 정체성 혹은 여성성을 만드는 ‘결정적인 기술’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달랐으며, 의료적 트랜지션 과정에서 호르몬요법, 눈/코 수술과 입술 시술, 가슴수술, 생식기수술에 서로 다른 의미들을 부여했다. 다시 말해 트랜스여성이 ‘진정한 여성’이 되기 위해 이행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트랜스규범은 개개인에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 작동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앞에서 제기한 질문, 여성/성과 그에 대한 규범은 고정되어 있는 것인지, 그 규범은 모든 여성에게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20대 초반 지현은 호르몬 이외의 트랜지션 의료는 아직 진행하지 않았고, 호르몬요법으로 인해 병역 신체검사에서 5급 병역 감면 판정을 받았다. 호르몬요법을 받으며 지현이 알아채는 변화와 그로 인해 느껴지는 만족도에 비해, 지현의 주변 사람들은 ‘얼굴이 통통해졌다’는 것 이외에는 변화를 잘 눈치채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의 호르몬요법은 자신의 몸에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을 억제하고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을 돌게 한다”고 생각하였고, 이는 지현의 디스포리아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사실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분비되는 호르몬이지만, 지현의 발화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아이디어가 각각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으로 물화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그에게 에스트로겐 제제를 투여하고 항테스토스테론 제제를 복용하는 것은 곧 신체적으로 자신이 정체화하는 여성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한편, 그의 어머니는 감면 판정 사유가 기입된 신체검사 결과지를 확인하였으나 그의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지현이 느끼기에 결과지를 확인한 이후 그를 ‘아들’이라고 부르는 빈도가 늘었다. 그의 어머니에게 호르몬요법을 받는 것은 지현이 ‘더는 남자/아들이 아니게 되는 일’로 의미화되었기 때문이다. 호르몬요법을 중단하기를 원하고 계속 자신을 아들이라고 부르면 자신의 정체성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어머니의 바람을 감지하고, 지현은 호르몬요법을 계속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어야 했다. 

20대 중반 유정과 30대 후반 담희에게는 가슴수술이 의료적 트랜지션 과정에서 일종의 ‘분기점’이 되었다.

“(입술 필러랑) , 코까지는 사실 이제 (가족들에게) 수술한 걸렸어도 문제가 없었는데 가슴수술 했을 때는 당장 빼라고 했었죠. (…) 그때도 (부모님이 본인의 정체성에) 반대를 하고 있던 거라서.

유정, 20 중반

“저는 성전환(생식기수술) 빼놓고 생각을 했을 사회적인 어떤 그런 입장이 변하는 시기가 가슴수술이라고 생각을 해요. (…) 가슴수술 전에도 남들은 여자로 봤어요. 근데도 그냥 남자 화장실 갔거든요. (…) 근데 가슴수술하고 나니까 남자 화장실 가요. 그렇다고 여자 화장실 가기에는 아직 법적 성별이 남자예요. (…) 저는 가슴수술을 하는 시기가 가장 애매한 시기라고 생각을 해요.

담희, 30대 후반

유정의 가족들은 그의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서 유정이 가슴수술을 받자 “(보형물을) 당장 빼라”는 말을 했다. 입술 필러, 눈, 코 수술까지는 유정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아도 납득할 수 있었지만, 가슴수술은 ‘정체성의 문제’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담희는 얼굴 성형수술을 하더라도 “예쁜 남자”로 살아갈 수 있지만, 가슴수술을 하게 되면 “빼도 박도 못하게 여자가 된다”고 말한다. 가슴(수술)이 여성으로 보이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동한다고 보는 것이다.

정혜와 리하는 같은 생식기수술을 두고도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였다. 먼저 40대 중반 정혜는 생식기수술을 받고자 여러 차례 결심하였으나, 그때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꿈에 나와 마치 수술을 하지 못하게 막는 것처럼 정혜를 꼭 붙잡았다. 그는 이러한 꿈을 두 차례 꾸며 생식기수술을 단념하게 된다.

“수술하려고 결심했을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 후로부터 2 후에 수술하려고 마음을 먹었었어요. 그때 (꿈에) 나타나서 안고 있는 거예요, (2 전과) 똑같이. 번이나 그런 꿈을 꾸니까 결심을 하게 거예요. (수술을) 포기하는 걸로. 그냥 지키고는 살아줬으면 하는 그런 바람인가? 이런 느낌도 들고. (…) 내가 오히려 죄책감 같아요, 진짜. 죄짓는 같고 오히려. (…) 부모님이 이렇게 주신성전환(생식기수술)까지 해버리면 정말 대역죄진 같은 (웃음) 그런 느낌이 아닐까.”

정혜, 40대 중반

정혜에게 성형수술은 “요즘 시대에서는 누구나 다 하는” 것이고 “남자들도 조금씩은 하는” 것이지만, 생식기수술은 ‘태어날 때의 성별’을 바꾸는 것이므로 “부모님과의 관계”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생식기수술은 ‘성을 전환’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생식기는 곧 성별로 의미화된다.

반면 20대 초반 리하에게 생식기수술은 신분증상 성별과 자신의 정체성을 일치시키는 수단이다. 그는 중학생 시절 남학생 집단으로부터 성폭력을 겪었지만, 그가 ‘남학생’이라는 점에서 성폭력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한편 같은 가해자가 시스젠더 여학생들에게도 폭력을 가하자, 학교는 이를 성폭력 사건으로 인지하고 경찰과 연계하여 사건 해결에 나섰다. 어릴 적부터 여성으로 쉽게 패싱이 되었던 리하는 “그냥 내가 여성으로 살면 [된다]”고 생각하며 생식기수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수술을 결심하게 된다.

“제일 저한테 수술(생식기수술) 해야겠다고 진짜 마음 먹은 3이에요. (…) 3 동안 집단의 애들한테 이거를성폭력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당하면서, 나는 신고를 못하지? 여자애들은 신고해서 걔를 처분을 보내든가 있는데 나는 못하지? (…) 신고는 학교에서 담임쌤한테도 먹혔고 학교 폭력 담당한테도 먹혔어요. 남성끼리의 폭력은 괜찮다, 이건 장난이지 뭐가 폭력이냐, 이랬던 같아요. (…) 그것 때문에 수술에 대한 마음을 먹기는 했어요. 사건 때문에. (…)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생식기수술을 해야 정정이라는 절차가 가능하잖아요. (…) 저는 처음에 수술할 계획이 없었거든요. 한국에서 있을 때는. 그냥 내가 여성으로 살면 되지 뭐가 수술이 중요해, 그랬는데 그때 시점에 수술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긴 했었어요.”

리하, 20대 초반

리하의 성폭력 피해가 성폭력 피해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신고 절차조차 제대로 밟지 못했던 것은 학교, 가족, 사회에서 동성 간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부재했기 때문이라는 층위에 더하여, 트랜스여성인 리하가 법·제도적으로 여성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이처럼 외양상으로는 주변 사람들이 크게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호르몬에 기입된 여성성을 체현하는 것(지현), 가슴수술을 통해 여성/성의 기표를 갖추는 것(유정, 담희), 생식기수술을 통해 ‘타고난 (남성) 성별’을 바꾸는 것(정혜), 생식기수술을 통해 법적 여성이 되는 것(리하) 등, 여성이 된다는 것 혹은 여성성을 갖춘다는 것은 다양한 의미로 이해되었다. 특히 지현의 호르몬요법, 유정의 가슴수술, 정혜의 생식기수술은 부모가 금지하는 혹은 금기가 작동하는 지점으로서 ‘성별을 바꾸는 기술’로 의미화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출생 시 지정성별이 남성인 사람이 어떤 시점부터 ‘더는 남성이 아닌 존재’ 혹은 ‘여성’으로 인식되고 인정받는지 명확히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트랜스여성이 맺고 있는 관계와 놓여있는 환경에 따라 ‘남성이 아니게 됨’ 혹은 ‘여성임’을 상징하는 의료적 조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곧 ‘무엇이 여성을 여성으로 만드는가/보이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 역시 한 가지로 고정될 수 없음을 뜻한다.

5. 나가며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페미니즘의 논의가 트랜스젠더에 대한 배제, 혐오, 특정한 재현을 비판하는 데만 그친다면, 이는 결국 TERF의 논리를 끊임없이 호명하는 방식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논쟁 속에서 트랜스젠더는 고정된 방식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다. 거칠게 말하자면 트랜스여성의 경우 TERF에게는 여성성을 과잉 체현하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TERF의 역담론에서는 생존을 위해 여성성을 과잉 체현하는 존재로 남는 것이다. ‘모든 트랜스여성이 그렇지는 않다’는 말은 트랜스여성에 대한 또다른 구분짓기일 뿐이다. 이렇게 트랜스여성에게는 여성성을 과잉 체현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두 가지 단순한 선택지만이 주어진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잘 알듯이, 여성은 그런 방식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는 ‘TERF vs. TERF 비판’ 구도를 넘어 새 판을 짜야할 때이다. 이는 트랜스/젠더/퀴어의 경험과 해석을 질문하기로, 더 많은 지식을 생산해내는 것으로, 존재에 대한 설득의 언어를 넘어 논쟁적인 담론들을 발명하는 것으로, 트랜스/젠더/퀴어 운동에 동참하는 것으로 가능할 것이다. 

나의 논문은 트랜스여성의 자리에서 출발하는 성형수술 연구인 동시에, 성형실천과 함께 이해하는 트랜지션 과정에 대한 연구이고자 했다. 이를 통해 트랜스여성이 성형실천 그리고 여성/성과 얼마나 복잡한 관계를 맺는지 드러내고 싶었다. 이 목표에 얼만큼 가깝게 썼는지 묻는다면, 사실 자신은 없다. 따라서 연구 후기글인 이 글은 내 반성적인 고백이자 앞으로의 다짐인 셈이다.


참고 문헌

  • 구지윤. (2023). “한국 트랜스여성의 삶의 기획으로서 트랜지션 과정과 성형실천”,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석사학위 논문.
  • 송지수. (2021). “페미니즘 알기의 의미 – 10-20대 여성들의 ‘TERF’ 지지 입장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석사학위 논문.
  • 이효민. (2019). “페미니즘 정치학의 급진적 재구성: 한국 ‘TERF’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미디어문화연구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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