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태경

나는 좀비 영화 같은 장르를 무서워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의 몸이 누군가에게는 물어뜯겨 먹힐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내 몸이 누군가에게 씹히고 삼켜질 수 있는 먹이로 여겨질 수 있다는 생각은 그다지 해본 적도 없을뿐더러, 인간 사회에서는 많이 일어나는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이 책의 소개는 자극적이었다. 악어에게 죽음의 소용돌이(death roll)를 세 번이나 겪고도 살아남은 페미니스트가 쓴 글이라니. 어떤 경험은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지만, 그래도 그런 경험은 좀 심하지 않나. 말을 더 잇지 못하게 만드는 충격과 이후 내용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내게 이 책은 첫 만남부터 크게 흥미로웠다.
이렇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 『악어의 눈: 포식자에서 먹이로의 전락』은 발 플럼우드의 국내 첫 번역서이다. 호주의 페미니스트 생태학자이자 활동가였던 플럼우드(Val Plumwood, 1939-2008)는 서구 전통에 자리잡은 인간중심주의와 이원론을 비판하였으며, 특히 Feminism and the Mastery of Nature (1993)로 잘 알려져 있다. 『악어의 눈』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1부는 저자가 겪은 충격적인 일화와 그 경험에서 얻은 인식의 전환에 대해 이야기한다. 2부는 영화 〈꼬마 돼지 베이브〉(1995)를 중심으로 한 비평이 이어진다. 플럼우드는 베이브가 건네는 “고기의 이야기”(플럼우드, 2023: 153쪽)를 통해 인간 주체의 하위에 배치된 동물의 위치성을 재고하고, 나아가 비인간동물의 목소리를 어떻게 제대로 번역할 수 있을지의 문제를 다룬다. 마지막 3부에서는 상호 쓰임의 윤리를 통해 캐럴 J. 아담스 등이 견지하는 존재론적 완전채식주의를 비판한다. 이에 더해 저자가 자기 아들의 묘지를 지키면서 들었던 소회를 담는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책은 1985년 2월 호주의 필 강에서 플럼우드가 겪었던 끔찍한 경험으로 시작된다. 저자는 강에서 카누를 타던 도중 갑자기 등장한 악어에게 습격당한다. 악어는 먹이를 익사시키는 동시에 이를 삼킬 수 있는 크기로 찢기 위해서 먹이의 몸을 입으로 문 채 몸을 빙글빙글 돌린다. 이게 그 유명한 ‘죽음의 소용돌이’다. 책의 저자는 악어에게 무려 3번이나 이 일을 겪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으나,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생명을 구한다.
저자는 이때의 경험을 반추하며 자신에게 찾아온 인식 전환의 순간을 묘사한다(같은 책: 33쪽). 사회계약론과 데카르트 철학 속에서 등장하는, 소위 더 이상 분할 불가능하며(individual) 그렇기에 침범될 수 없는 근대의 주체가 인식하는 세계는 이 경험 속에서 갈가리 찢긴다. 단순히 먹이로만 저자를 바라보는 악어의 눈앞에서, 저자는 독립된 개인들이 서로 계약을 맺고 끊는 원자적 세계의 붕괴와 함께 주체들이 서로 먹고 먹히는 상호 쓰임의 세계가 나타나는 것을 느낀다. 저자는 두 개의 세계가 동시에 평행우주로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같은 책: 41쪽). 한쪽의 세계에서 인간은 그 육체의 유한함을 뛰어넘고 늙지도 죽지도 않는 이성의 담지자이자 계약의 주체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좀비, 악어, 포식자의 입 속에서 씹히고 으깨지고 종래에는 꿀떡 삼켜지는 먹이가 되고 만다.
플럼우드의 상호 쓰임의 세계를 읽으며 나는 세계에 대한 도나 해러웨이의 인식을 겹쳐보았다. 과학기술과 페미니즘 사이의 새로운 연결을 시도한 〈사이보그 선언〉에서 나아가 〈반려종 선언〉 이후 종과 종 사이의 상호적 관계와 연결을 이야기하는 해러웨이에게 있어 존재란 개별적이기보다는 각자의 외연을 침범하면서 상호적으로 구성된다(해러웨이, 2022). 존재 상호 간의 쓰임을 전제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플럼우드의 주장은 해러웨이의 인식과도 상통한다. 이렇듯 존재와 존재 간의 먹고 먹힘이 사실상 존재의 구성과 동떨어지지 않을 때, ‘그대, 죽이지 말라’와 같은 격언은 사실상 불가능한 말이 된다. 해러웨이(와 아마도 플럼우드)에게 이러한 먹고 먹힘의 필연적인 굴레에서 중요한 것은 존재 간의 쓰임을 단순히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 죽여도 되는 존재로 만들지 말라’와 같이 상호적 쓰임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고민을 시작하는 일이다.
내가 이 책을 꼭 읽고 싶었던 이유는 1부에 있었으나, 일독 후 인상적인 지점은 3부에 있었다. 플럼우드는 아담스의 주장을 비판하며 그가 상호공존의 윤리를 놓쳤다고 주장한다. 아담스(2018)는 가부장제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가 오늘날 인간에 의한 비인간 동물의 지배와 상통한다는 점에서 여성과 비인간 동물의 문제를 횡단하는 인식론을 구성했다. 그러나 동물에 대한 모든 도구화를 비판하는 아담스의 논리는 존재 간의 상호성을 놓치는 것이라고 플럼우드는 주장한다(플럼우드, 2023: 214쪽). 저자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비판하되, 아담스와 같이 인간과 동물의 완전한 분리를 이야기하는 존재론적 완전채식주의보다는 인간과 동물의 분리불가능성과 상호 쓰임을 인정하는 생태동물주의가 더 유용하다고 본다(같은 책: 200쪽). 저자는 존재론적 완전채식주의가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 사이의 이분법을 강화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플럼우드에게 있어 삶이란 완전무결한 개인이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이용하고, 뜯어먹고, 동시에 돌보기도 하는 ‘트러블 속에서의 삶’(같은 책: 210쪽; 해러웨이, 2021)과 같다.
또한 저자는 자기 아들의 무덤을 관리하던 일을 통해 죽음에 대한 두 번째 인식 전환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쓴다(플럼우드, 2023: 241쪽). 몸은 유한하지만, 정신은 무한하다는 근대적 주체의 이분법은 죽음에 대한 단절의 인식을 만들었지만, 저자가 아들의 무덤에서 본 것은 죽음 이후에 이어지는 또 다른 유기체적 삶, 생태적 유물론의 인식이었다. 아들의 무덤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를 나누는 인간예외주의를 허물며, 지구의 신성한 존재들과 인간을 결합하는 장소가 된다(같은 책: 251쪽). 이렇듯 저자의 이야기는 1부에서 다룬 필 강에서의 죽음에서 시작하여 3부 아들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이 책은 생태주의 페미니즘의 맥락과 더불어 해러웨이의 철학과 많은 연결점을 갖는다. 충격적인 경험에서 시작한 이 글은 저자의 이론, 철학, 에세이 사이 어딘가에 놓여있다는 점에서 가벼우면서도 동시에 묵직하게 다가온다. 여유가 허락한다면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참고문헌
- Haraway, Donna(2016). Staying with the Trouble, Duke University Press, 최유미 옮김(2021). 『트러블과 함께하기: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 파주: 마농지.
- Haraway, Donna(2008). When Species Meet,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최유미 옮김(2022). 『종과 종이 만날 때』, 서울: 갈무리.
- Plumwood, Val(2012). The Eye of the crocodile, ANU E Press, 김지은 옮김(2023). 『악어의 눈: 포식자에서 먹이로의 전락』, 서울: yeondoo.
- Adams, Carol J. (1990). The Sexual Politics of Meat, Bloomsbury Academic, 류현 옮김(2018). 『육식의 성정치』, 서울: 이매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