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현

포털 사이트에 ‘성범죄’, ‘성폭력’을 검색하면 성범죄 사건을 수임한다는 전문 로펌들의 광고 링크가 최상단에 등장한다. 이들 로펌들은 “성폭력 전담 변호사”, “성범죄 24시간 상담” 등의 문구를 전면에 내세우고, 검사·판사·경찰 등 법과 범죄 현장에서의 경험을 지닌 다수의 변호사가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을 강조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24시간 상담’과 ‘전담 변호’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위한 것이다. 해당 로펌 홈페이지는 “성폭력처벌법위반”, “강제추행”, “아청법(아동청소년법)” 등을 위반한 가해자를 변호하여 기소유예, 집행유예, 벌금형, 불송치, 무죄 등의 결과를 받아냈다는 것을 ‘성공 사례’로 당당히 기재하고 있다.
김보화의 『시장으로 간 성폭력』은 저자의 박사학위논문[1]을 재구성한 책으로, 이와 같은 성범죄 가해자를 변호하는 ‘법시장’이 확대되고 그 속에서 ‘성범죄 가해자들이 감형을 구매하는’ 현실을 조명한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2017년 유명 연예인 박ㅇㅇ 사건의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무고죄 실형이 선고된 일화를 언급하며 시작한다. 저자는 ‘그날의 서늘함’을 언급하며 여성 인권과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 회복을 위한 법제도적 장치들이 진일보한 것으로 보이는 바로 그 시기에, 가해자들의 역고소가 빈번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1] 김보화(2021), “성폭력 사건 해결의 ‘법시장화’ 비판과 ‘성폭력 정치’의 재구성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감형 패키지와 가해자 남성연대 속에서 희석되는 ‘반성’의 의미
먼저 1장(‘법시장, 성범죄 가해자를 지원하다’)과 2장(‘힘드시죠? 감형 컨설팅 해드립니다’)에서 저자는 가해자를 변호하는 시장이 확대된 맥락과 변호 시장에서의 역고소와 감형의 기술들을 낱낱히 밝힌다. 가해자 전담 로펌의 등장은 법률 서비스 시장의 확대와 변호사 수가 증가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변호인의 윤리적 의무나 공적 책무 등은 도외시 되고 법률 서비스를 판매하는 ‘상인’의 정체성이 강해지는 시기에(26), 성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증가하며 가해자 변호가 일종의 ‘블루 오션’으로 떠오른 것이다. 형성된 ‘성범죄 전담 로펌’들은 가해자에게 감형을 위한 전략과 피해자를 피의자/피고인으로 만들 수 있는 명예훼손, 무고죄 등의 역고소를 하나의 패키지로 판매하며 막대한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다.
가해자 변호의 ‘기술’은 여러 가지 전략을 병행하며 이루어진다. 완전한 저자세로 피해자와 합의를 시도하기도 하고, 성폭력상담소와 같은 반성폭력 단체에 기부를 통해 반성의 태도를 보여주기도 하고, 어떤 순간에는 가해자의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자숙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오히려 “꽃뱀 논리나 피해자다움 등의 요구는 다소 시대에 뒤떨어지는” 전략이다(92).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실제로 가해자의 ‘반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반성문, 자원봉사, 장기기증 서약, 성폭력 예방교육 이수 등등의 반성을 위한 자료들은 전담 로펌의 축적된 ‘노하우’의 결과이자, 반성문 대필사이트를 통해 정교하게 조작되어 만들어진 감형을 위한 ‘스펙’과도 같다.
‘진지한 반성’의 이면에서 공유되는 감정이 억울함이라는 것은 가해자 변호 시장의 확대 속에서 가해자들은 오히려 ‘탈범죄화’된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는 실상을 엿보게 한다. 『덫에 걸린 남자들』과 같은 가해자를 위한 대응 전략서는 가해자들에게 유죄판결과 신상정보공개명령이 내려졌을 때의 두려움을 지적하며 “억울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128). 성범죄 전담 법인이 운영하는 가해자 온라인 카페는 이러한 전략을 공하고, 여러 가해자가 자신의 서사를 재구성하면서 ‘탈범죄화된 가해자 남성성’을 형성하는 장이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개인화 시대의 가해자/피해자의 정체성
이 책의 탁월한 점은 법 시장화의 현상의 이면을 미셸 푸코, 웬디 브라운 등의 이론을 경유하여 신자유주의적 통치성과 합리적 주체성의 개념을 바탕으로 분석하기를 시도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앞서 설명한 가해자 변호 상품시장에서 가해자들에게 성폭력의 의미는 성별 권력을 둘러싼 투쟁의 과정이 아닌, 자본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경제적 문제이자 개인화된 것으로 전환된다. 가해자들은 기존의 승소사례와 가해자 온라인 카페를 통해 정보를 저울질하고 법 상품을 물색하고 쇼핑하며 ‘합리적인 소비자’로 위치한다. 이 과정에서 성폭력 사건 해결은 정치적 문제이기보다는 경제적 문제로 치환된다.
이러한 성폭력 해결의 ‘탈정치화’는 피해자에게는 책임의 의미가 전유되는 방식으로 요구된다. 성폭력을 정조, 순결의 문제로 보지 않기 위해 한국의 반성폭력 운동이 고안해 낸 ‘성적 자기결정권’은 법적 다툼의 과정에서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자기 구제를 위해 행사했어야 하는 ‘권리’로 오독된다. 피해자는 ‘주체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피해를 입었을 리 없다는 역설”이 등장하는 것이다(157). 저자는 이를 권리 담론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피해자/가해자 간의 사회적 지위의 차이와 성별 권력관계는 간과된 채 피해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뒤집어씌우는 ‘신피해자론’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는 법적 과정에서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계속해서 고통을 수행(perform)해야 한다. 피해로 인한 고통이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정신의학과의 진료기록과 상담 기록 등을 통해 자신의 피해를 눈에 보이게, 증명 가능하게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또한 SNS에 자신의 (고통스럽지 않은) 일상을 전시하거나, 진술의 신빙성을 해칠 수 있는 “너무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180). 저자가 서술하듯이 피해자의 정체성은 다양한 조건과 정체성 속에서 경합하는 것임에도 피해자들은 법적 과정에서 이기기 위해, 혹은 역고소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 수행을 관리하기를 무의식적으로 학습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폭력을 시장 밖으로 끌어낼 수 있을까?
마지막 파트인 4장(‘성폭력 사건의 해결이란 무엇인가’)과 5장(‘성폭력 정치’의 재구성을 위한 제안)에서는 개인화된 책임의 문제, 법시장에서의 상품구매와 전략의 문제로 이행한 ‘탈정치화된’ 성폭력 사건 해결의 의미를 되찾아 오기를 시도한다. 물론 성폭력 사건 해결의 의미는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다. 또한 그 과정이 법, 제도적 투쟁과 무관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연구참여자인 피해자들은 ‘100% 질 수도 있지만, 판검사들을 혼내주고 싶고, 생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나(연희, 300),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는 것’이라는 결심 속에서 해결의 답을 찾아가기도 한다(보라, 291). 저자는 피해자들의 분노와 다른 피해자들에 대한 연대, 공감 속에서 법의 안팎에서 각자의 치유의 과정을 밟아 나가는 모습 속에서 사건 해결의 의미가 결과가 아닌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성폭력 사건 해결을 ‘정치적인 것’으로서 재구성하기 위한 이론적 논의를 진행하며, 성폭력 피해자들이 등장하게 된 없는 조건과 맥락을 사유하고, 피해자의 감정을 병리화하지 않고 정치화할 것 등을 제안한다. 이러한 저자의 제안은 법적 결과만을 우선시하고 가해자의 무고죄나 명예훼손 역고소가 법적으로 승인될 경우 피해자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난무하는 사회를 성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물론 마지막 장의 제언이 오늘날의 사회에 충분히 가닿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미투운동을 관통하며 한국 사회에서는 성인지 감수성이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고, 대학이나 직장과 같은 조직과 공동체에서의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이 구비되었지만 이 또한 법적인 절차와 언어로 점철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342).
본 책의 의의는 “성범죄 가해자는 어떻게 감형을 구매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지만, 오히려 이 책의 의의는 법시장화를 벗어나기 위한 기반과 조건들을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피해자들은 성폭력 사건 해결의 과정에서 다양한 언어들과 의미를 찾아감에도 오히려 현실에서는 법적 결과와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다양한 ‘기술’에 골몰하고 있는 모순을 발견하고, 답답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반성폭력 운동이 성폭력에 대한 법적 처벌을 위한 다양한 법 제정 운동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면, 이 책은 그 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 질문하게 한다. 성폭력 사건 해결을 ‘정치적인 것’으로 탈환하기 위한 페미니스트의 전략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
참고 문헌
- 김보화(2023). 『시장으로 간 성폭력』. 서울: 휴머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