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두

현재 없는 미래(Future without Present)
현재는 넘쳐나는 미래로 가득하다. 온갖 데이터와 사회 현상을 근거로 특정한 미래를 선언하는 이들은 여기저기서 명성을 얻고, 복잡한 선과 숫자의 관계를 그럴듯하게 설명하여 향후 돈의 흐름을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작게는 수만, 많게는 수백 억 이상의 자금을 끌어모은다. 이들의 말은 획기적이고,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며, 개인의 삶과 세상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한다. 이같은 미래에 관한 매력적인 이야기는 현재의 시공간 자체를 밀어낼 만큼 강력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확실치는 않지만 지금보다는 나아 보이는’ 내일을 위해 기꺼이 지금을 ‘나중’에 두기로 선택하거나, 혹은 미래에 의해 밀려난 현재가 부재한 상태를 살아간다.
Fwd 8번째 기획의 필진들은 이 ‘나중’에 둔 ‘지금’, ‘현재’ 없는 미래에 개입해보기로 했다. 과거서부터 미래=희망, 긍정으로 연결되는 도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시도는 여러 영역에서 등장해왔다. 이를테면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2009; 2013)는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팽창이 촉발한 집단적 미래주의와 그것이 야기한 구조적 불안, 폭력을 분석하였고, 리 에델만(2004)은 ‘(대문자) 아이’의 존재를 미래와 연결지은 재생산 미래주의를 비판하며 그러한 미래성 자체를 포기함으로써 발생하는 퀴어 정치의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에 부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필진들은 제자리를 잃어버린 지금과 여기를 좀 더 정치하게 드러낼 수 있는 페미니즘/퀴어 비평이 필요하다는 지점에 공감하였다. 이러한 비평을 시작하고자 스스로를 둘러싼 관계망과 사회적 조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돌아보았을 때, 그 안에서 다시 가족이라는 키워드가 포착된 것은 새삼스러운 한편 필연적이었다.
가족이 미래다?
가족을 경유해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은 여전히 한국 사회의 생명정치 담론과 인구재생산 정치의 핵심이다. 현행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을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매우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으며, 명칭에서부터 ‘건강한’ 가족과 그렇지 않은 가족을 구분하여 차별적이라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음에도 지난 2022년 개정이 중단되었다(기사 보기). 이는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며, 2021년 처음 한국 사회의 비친족 가구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선 현실(기사 보기)과는 매우 동떨어진 결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법체계는 아직까지 당연하듯 이성애 결혼을 통해 남녀가 새로운 혈연 가족 구성원인 아이를 낳고, 때로는 그와 같은 남녀 커플이 입양으로 가족을 꾸리며, 자식을 양육하면서 노후를 준비한 결과 그 가족 안에서 죽음을 맞는 선형적인 생애주기를 상정하고 있다. 이 생애주기는 법적으로 승인된 가족 관계 위에 과거-현재-미래를 순서대로 배치하여 ‘(특정한) 가족이 곧 미래’로 연결되는 시간성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래의 존망을 결정하는 위기로까지 급부상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1 주체로 또 한 번 가족이 호명되는 것은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인구재생산 정치의 근간으로 설정해 둔 가족이 줄어들면 그 속에서 태어나 자연스레 미래의 삶, 책임, 가치와 연결되는 아이 또한 줄어들기 때문에, 국가는 ‘미래 없음’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자 바로 그 가족의 수를 늘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는 미래를 위한다면서 기존 가족 정의 바깥의 관계나 존재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은 반영하지 않은 채 과거의 가족 프레임만을 고집하고 있는 모순적인 태도이며, ‘아이=미래’라는 도식에 도전하지 않음으로써 ‘아이 없음=미래 없음’ 또한 당연하게 성립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이성애 중심적인 가족 질서를 유일하게 승인하면서 퀴어 커플, 비혼 1인 가구, 여러 대안가족과 같은 그 외의 가능성을 모두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정리하자면, 이성애 결합으로 구성된 가족은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희망인 미래의 기반이자, 동시에 그러한 미래의 삶을 재/생산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단일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가족 담론은 이처럼 국가 관점에서 국민을 작위적으로 인구 단위로서 분류하는 부정의한 방식을 통해 구성되는 한편, 그에 대항하여 가족을 폐지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가족을 구성할 것인가, 하는 딜레마가 발생하기도 한다. 전자인 소피 루이스(2022;2023)는 가족을 대신할 무언가를 찾기를 시도하는 대신, 가족 자체를 폐지하고 그 공백을 그대로 둠으로써 새로운 삶의 상상력을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김순남(2022)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방식으로 평등하게 관계맺을 수 있는 권리를 가족구성권으로 개념화하며, 한국 사회가 규정해 온 ‘가족’ 범주를 재사유하여 새로운 관계와 돌봄의 양상을 구축하기를 요청한다. 이 두 주장은 일면 대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존의 국가 중심의 가족 정치 담론을 흐트러뜨려 보이지 않던 현재의 가족을 가시화하거나, 혹은 ‘가족’ 아닌 새로운 관계성과 사회상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궤적을 그려낸다.
지금, 여기의 삶에 던지는 물음
Fwd 8호 기획의 여덟 필진은 이러한 딜레마 자체와 그를 둘러싼 지금, 여기에 더욱 주목해보기로 했다. 국가가 기획한 관계망 바깥의 관계와 존재들은 미래가 없다고 쉽게 가정되거나, 미래의 성장, 희망, 삶과 연결되지 못하는 현재의 소멸, 부정성, 죽음을 내포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미래 없음’의 관계가 곧 ‘현재 없음’의 관계이기도 하다면, 그 구체적인 이유와 맥락은 무엇인가? ‘현재 없음’에서 시작되는 역설적인 삶의 가능성은 무엇일까? 위와 같은 질문을 바탕으로 각자의 지금, 여기를 둘러싼 현실의 삶 정치가 소환되었다.
먼저 하영과 이영희는 아동과 미래를 연결하는 재생산 정치의 구조적 문제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영은 기후위기의 임박함을 강조할 때 ‘미래세대’로서의 아동이 호명됨을 짚으며, ‘미래성’이 가정하고 있는 정상성과 이를 기반으로 한 직선적 시간관에 의문을 제기한다. 동시에, 기후문제를 ‘미래’로 유예하지 않고 지금 여기를 함께 살아가는 아동·청소년의 기후행동을 통해 재생산미래주의에서 정의해온 ‘미래=아동’의 틀에서 벗어날 것을 제안한다. 이영희는 출생미신고 아동 문제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초저출생과 ‘국가소멸’ 공포의 맥락에 있음에 주목하여 ‘생명보호’의 문제로 의미화되고 있는 출생미신고 아동 대책은 누구도 보호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나아가 아동을 국가의 미래로 호명하며 수많은 이들의 현재를 삭제하는 재생산 미래주의를 파기하고, 오지 않을 낙관적 미래가 아닌 지금-여기의 불완전한 시간성에 집중할 것을 요청한다.
송유진과 H는 이성애 중심적인 생애주기를 벗어나, 재생산하지 않음으로써 생겨나는 새로운 세계의 상상력을 보여주려 하였다. 송유진은 1970년대 인구 폭발에 대한 담론과 2020년대 오늘날 인구 소멸에 대한 담론 사이에 기묘한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짚어내고,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이성애가족중심적 질서가 작동을 중지한 ‘저출생 디스토피아‘로 해석한다. 이처럼 재생산 미래주의가 더 이상 재생산되지 않는 상황에서 미래는 어떤 형태로 다가올지,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떤 역설적인 형태의 가능성들을 발견해야 할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H는 지방 소멸 담론이 저출산 위기 담론과 얽혀가며 인구 재생산의 위기가 곧바로 지방 소멸의 위기로 확대되는 방식을 되짚는다. ‘인구’가 지방 소멸의 위기를 판가름하는 도구로 기능할 때, 가족과 결혼으로 대표되는 이성애 중심의 시간성은 소멸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안으로 제시된다. ‘수도권 쏠림-지방 소멸’의 이분화된 도식은 수도권/비수도권 사이의 경계를 재생산하며 공간들 사이의 위계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그 공간과 장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 현재의 삶에 대한 진단을 흐리게 한다. 이 글은 지방 소멸의 위기가 미래에 대한 가정 속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질문하며, 지금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위한 지역 상생의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함을 제안한다.
조소와 구지윤의 글은 원하는 사람(들)과 관계맺고 싶은 욕망을 정치화하는 다양한 장에 개입한다. 조소는 동성결혼에 대한 퀴어 이론적 비판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시공간에 근거한 분석 및 논의가 부재하다는 점이 망각된다고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동성결혼을 원하는 이들의 욕망에 대한 해석이 공백으로 남게됨을 문제시한다. 동성결혼을 ‘넘어서’는 퀴어 정치가 불가능함을 역설하며, 퀴어의 불가능성에서 출발하는 연구 및 정치를 요청한다. 지윤의 글은 규범적 시간성, 즉 사회가 제시하는 특정한 생애주기 방식이 연령에 따라 관계 맺(어야 하)는 사람들을 규정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를 기반으로 재생산 미래주의를 전제하는 기존의 이성애 가족제도 뿐만 아니라, 1:1 관계에서 출발하는 가족 그 자체와 사회의 기본 돌봄 단위에 물음을 던진다. 지윤은 우정 공동체로부터의 ‘난잡한 돌봄’을, 돌봄 주체와 형태에 대한 전 사회적 전제를 바꾸는 출발 지점으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상상과 윤소이는 죽음 이후에 가족 관계, 혹은 가족이라는 상징을 통해 구성되는 삶의 서사에 주목한다. 상상의 글은 제주4·3의 공식적 해결이 ‘보상’ 국면으로 옮겨간 시점에서 등장한 ‘가족관계불일치’ 현상을 비판적으로 다룬다. 특히 ‘가족관계불일치’ 상황을 겪는 유족들 가운데 대다수를 차지하는 (희생자) 딸들은 ‘호주’의 상속자가 아니기 때문에 정당한 가계계승자로 여겨지지 않았고, 따라서 제주4·3 해결의 의미있는 행위자로 여겨진 적 없었다. 상상의 글은 제주4·3의 공식적 해결 담론에 딸들이 공적 주체로 등장하게 됨과 동시에 처하게 된 곤경과 난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윤소이는 포스트-고령화 시대의 ‘잘’ 죽는다는 것의 의미와 조건을 질문한다. 이 글은 인구의 자연감소라는 현상을 곧 인류의 ‘소멸’이자 ‘재앙’으로 바라보는 재생산 미래주의에 반대하고, 이처럼 한 사회의 사망인구가 출생인구를 압도하는 시대의 도래를 기존의 가족제도, 특히 죽음의례와 관련된 통념, 관습, 규범이 더 이상 지속불가능함을 드러내는 윤리적-정치적 계기로 인식할 것을 요청한다.
필진 모두가 글을 벼리고 묶어내며 각자의 문제의식을 잘 풀어내려고 노력했지만, 글 곳곳에 공백으로 남겨져 있는 부분이 있다면 아마도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는 표식일 것이다. 혹은 ‘현재 없음’이라는 관점으로 가족을 비평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걱정 같은 것이 논지 전개에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이 같은 고민과 걱정이, 현재에 발 딛고 선 삶 정치 담론이 앞으로도 여러 영역에서 꾸준히 논의될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참고문헌
- 김순남(2022). 『가족을 구성할 권리』. 오월의봄.
- 손해용(2022년 9월 13일). “피 안 섞여도, 결혼 안 해도 같이 산다…‘비친족 가구원’ 작년 100만명 첫 돌파”. 중앙일보
- 이유진(2022년 9월 25일). ““사실혼·동거 등 ‘법적 가족’ 인정 안 해” 돌변한 여가부”. 한겨레
- Berardi, ‘Bifo’ F.(2009). After the Future, AK Press, 강서진 옮김(2013), 『미래 이후』, 난장.
- Edelman, L.(2004). No Future, Duke University Press.
- Lewis, S.(2022). Abolish the Family, Verso, 성원 옮김(2023), 『가족을 폐지하라』, 서해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