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 소멸한다, 그럼 고양이들은 어디로 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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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 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다 빛은 맑고 푸르다. … 대부분의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서 생선배나 찔러먹고 사는 이 고장의 조야하고 거친 풍토 속에서 그처럼 섬세하고 탐미적인 수공업(갓, 소반, 경대, 문갑, 두석장, 나전칠기 등)이 발달한 것은 이상한 일이다. 바다 빛이 고운 탓이었는지 모른다.

박경리, 『김약국의 딸들』 서문 中

1. 

아침마다 인터넷 뉴스를 뒤적거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나에게 최근 재밌는 소식이 들려왔다. 통영 어느 섬에 어느 버려진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고양이 학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통영시 한산도에서 멀지 않은 용호도에는 2012년 폐교한 한산초등학교 용호분교가 있다(기사 보기). 그곳을 개조하여 길고양이들을 보호하고 분양하는 시설을 만든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의 소리가 사라져 제 소임을 다해버린 건물이 이제 다시 고양이들의 소리로 가득 차게 된다니, 사뭇 낭만적인 이야기이다. 오랜만에 접하는 고향 소식에 꽤 기분이 좋아져 이것저것 통영과 관련된 뉴스를 뒤적거리다 낭만과는 거리가 먼 또 다른 소식을 접했다. 통영시는 작년 2022년 소멸위험지수 0.39점으로 새롭게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었다(기사 보기). 하늘엔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어느 섬에선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며 하루에도 수십 척의 배들이 파도를 가로지르는 내 고향은 이제 사라질 위험에 처해있다. 

나는 작년 한 해 동안 지역에서 활동하는 비혼 공동체들에 관한 학위논문을 썼다. 고향을 떠난 지 10년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다시금 지역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는 답답함 때문이었다. 서울을 지겨워하지만 이곳을 떠날 수 없는 나에 대한 답답함,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면서도 너무나 손쉽게 그것을 ‘서울 여성의 삶’으로 상정해 버리는 학계에 대한 답답함 같은 것들. 100페이지가 넘는 학위논문을 쓰면서 20명의 넘는 인터뷰이들을 만나 그들이 지방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혼 공동체에 소속되어 지역 사회의 여러 성 규범과 충돌하고 협상하는, 그러면서도 자신들만의 지역 공간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고 있는 지역 청년 여성들의 이야기를 썼다. 서울과 지방의 공간 위계를 비판하고 오로지 인구학적 관점에서 지역의 생존을 말하는 중앙 정부와 지자체의 방향성을 비판했다. 그러니까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는 사실 나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그뿐인가, 하루가 멀다하고 미디어에서도 ‘지방 소멸’을 외친다. 그래서 소멸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허한 공포감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더 이상 그 단어가 낯설지 않다. 그러나 ‘통영 소멸’은 낯설다. 그곳에는 여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의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 그들의 무엇이 소멸하게 되는 것일까? 그들의 미래?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지역 사회? 누가, 왜 그것들을 소멸하게 만드는 것일까.

2.

특정 지역의 소멸 위험을 진단하는 이른바 ‘소멸위험지수’는 아주 단순한 수식으로 계산된다. 만 20~39세 여성 인구(이른바 ‘가임기 여성의 수’)를 만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값. 이 수식이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젠더화되어 있으며 제도화된 생애주기에 맞춰 세대를 구분하고 있다는 점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실이다. 그러나 더욱 문제적인 것은 수식에 따라 각각의 지역에 값을 매기고 그것의 ‘위험 정도’를 분류하는 일련의 작업이 지역의 생존을 모색하기 위한 당연한 과정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2023년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약속하며 ‘수도권 쏠림-지방소멸’의 악순환을 끊어낼 것을 선언했다. 인구 감소 지역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도 국회를 통과하여 올해 1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처럼 지방 소멸이 단순한 수식이 아닌 일종의 담론적 성격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청년층의 지역 이동의 증가로 인한 수도권의 과포화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지방 소멸론은 ① 청년층의 급속한 지역 이동으로 인해 지역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 ② 지역의 고령화와 저출산 현상이 심화하여 ③ 활력을 잃은 지역 사회가 결국 소멸될 것이라는 논리적 구조를 따르고 있다. 요컨대 이 담론의 핵심에는 ‘인구’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인구보다 떠나는 인구가 많아서, 앞으로 태어날 인구가 늙고 병들어 죽음을 앞둔 인구보다 적어서, 지역에서 살아가며 학업-취업-독립-결혼-임신·출산·육아의 제도화된 생애주기를 이행할 인구가 부족할 때 지역은 소멸한다.

자료 출처 : 한국고용정보원(2023). “지역산업과 고용 봄호”, 통계로 본 지역고용_지방소멸위험 지역의 최근현황과 특징.

지역 문제의 핵심에 인구가 자리 잡게 된 것은 저출산·고령화가 국가적 위기 상황으로 자리 잡아 대부분의 인구 정책의 핵심 기조로 여겨지고 있는 상황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2020년 발표된 「제 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 ‘수도권 인구집중 및 과밀’은 저출산의 원인이자 비수도권의 지역 활력 저하의 핵심 요인(26)으로 언급된다. 이 분석에서 주목할 만한 재밌는 지점은 “인구 과소지역은 소멸 위기가 우려되며, 과잉지역은 교통·환경 등 집적의 불경제가 심화(26)”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생각해 보자. 2020년 기준 합계 출산율 0.84명을 기록한 대한민국의 현주소에서 지역 이동으로 인해 인구 과잉 현상을 겪게 될 지역은 서울 혹은 넓게 봐줘봤자 인천광역시를 비롯한 수도권의 주요 도시 몇 군데에 불과하다. 따라서 지방소멸론은 표면적으로는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 사회에 대한 대응/극복 담론으로 보이지만 실상 그 속에는 과포화 된 서울(수도권)에 대한 위기론이 함께 작동하고 있는 모순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이어서 기본계획에서는 이러한 인구 구조 변화에 대한 해결책으로 “청년이 자립·결혼·출산에 이르는 이행기에 주요 생애 이벤트를 포기하지 않도록 주거 안정 지원, 일자리 진입 지원 등 삶의 기반 강화(37)”를 제시한다. ‘지역 상생’의 미래를 위해서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인구 구조의 변화에 대한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역의 인구 구조 변화와 청년층의 지역 이동은 각각의 개인이 기획하게 되는 시간성과 살아가고 있는 공간이 사회 변화와 맞물리면서 나타나는 복잡한 현상이다. 그러나 저출산 위기 담론과 결합한 지방 소멸 담론은 수도권/비수도권으로 이분법적으로 구분된 공간 위계 속에서 이성애 중심의 생애주기 이행 지원을 최선의 해결 방안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한계적이다.

3.

잠시 방향을 돌려 나의 학위 논문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지역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여성들의 삶의 경험 중 ‘비혼 (청년)여성’을 연구 대상자로 설정한 것은 지역 소멸의 위기 상황의 이면에 결혼 및 정상가족 규범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청년들의 지역 이동이 점차 가속화되는 상황 속에서 이를 저지하기 위한 지자체들의 움직임은 대부분 지원금 형식을 통해 청년들의 (지역) 취업을 독려하거나 창업을 지원하는 등과 같은 경제환원주의적 논리 속에서 회전한다. 지역을 떠났거나 혹은 떠날 예정인 청년들이 지역에서 계속 머무르며 ‘생애주기 이벤트’를 이행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더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 사회가 청년 여성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단지 이들이 지역에서 머무는 것에서만 그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지역 소멸의 문제가 인구의 문제로 귀결될 때 그것의 해결 방안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구의 재생산으로 이어진다(기사 보기). 그래서 청년 여성들은 지역을 이미 떠났든 떠나지 않았든, 지역에서 자리를 잡아 결혼해 가족을 만들고 임신·출산의 생애주기 이행을 통해 지역의 인구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집단으로 여겨진다. 결혼장려금이나 신혼부부에게 집중된 여러 주거 정책들은 지역에서 일자리를 얻은 청년 여성들이 결혼을 통해 가족을 만들어 지역의 정주인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전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재생산이 임신·출산의 영역에만 한정되며 결혼제도를 통과해 만들어지는 가족만이 지역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이들로 인정받는 것. 조금 신랄하게 말해보자면 현재 지방 소멸 담론이 지역 청년 여성들을 위치시키는 방식은 행안부가 2016년 가임기 여성 수의 통계를 공개적으로 명시한 ‘출산지도’의 사고방식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지역의 미래가 ‘가족 만들기’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청년 여성과 그들의 아이(the Child; Edelman, 2004)들의 존재로 상상될 때, 이들의 삶은 이성애 정상가족의 시간성 구조 속에 갇히게 된다. 퀴어 연구가인 핼버스탬(Halberstam, 2005)은 이성애 중심의 규범적 시간성이 정상가족과 재생산,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기대되는 미래에 대한 열망 위에서 주조된다고 보았다. 과거-현재-미래를 일직선적이고 일방향인 것으로 전제하는 이성애 규범적 시간성은 가족과 재생산 질서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의 삶을 ‘비규범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지역 사회에서 결혼 적령기가 되었음에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기’로 결심한 여성은 이질적이고 특이한 존재가 되며 이들의 생애 기획은 ‘지역 상생’을 지원하는 제도적 담론장 바깥에서 타인에 의해 끊임없이 의심받고 또 그것을 증명해야 하는 과정에 놓이게 된다(김도희, 2023).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질적인 삶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다. 나의 연구에서 지역 비혼 청년들은 자신들 앞에 놓인 수도권/비수도권의 공간 위계가 청년 여성들에게 강요되는 가족 규범에 한계를 느끼면서도, 여전히 자신들이 나고 자란 혹은 자신들이 살아가기로 선택한 지역에서의 삶의 가능성을 위해 새로운 방식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페미니스트 지리학자인 도린 매시(Massey, 2015)는 공간과 장소가 사회적 관계들에 의해 끊임없이 유동적으로 구성되는 개념임을 주장하며 그 안에 내재한 (권력) 관계들을 분석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역(local)’은 단지 지도상의 위치이거나 행정 구역 단위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그 삶의 정치를 통해 개개인에게 각기 다른 공간이자 장소로 정의될 수 있다. 그래서 지역이 처한 위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덩어리로서의 지역(local)에 대한 접근이 아닌 그곳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그 역동이 만들어 내는 의미로서의 지역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4.

‘결혼 적령기’의 나이에 이른 20대 후반의 나는 종종 지방 출신임을 밝힐 때마다 ‘지방 애들은 결혼을 빨리하잖아~’ 라는 식의 농담을 듣곤 한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지역 청년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아 지역이 소멸하고 말 것이라 외치는 상황을 목도한다. 이 모순적인 담론 구조 속에서 지역 청년 여성들의 삶은 지역을 떠나거나/떠나지 않거나 혹은 결혼하거나/하지 않거나의 양자택일의 선택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리하여 미래의 가능성을 진단하고 예측하고자 하는 질문들 속에서 현재,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삶은 치열한 논쟁의 바깥에 위치하게 된다.

폐교해 버린 학교가 고양이 보호시설로 탈바꿈한다는 것과 통영시가 소멸 위험에 처했다는 것은 더 이상 통영에 ‘충분할 만큼’의 아이가 태어나고 있지 않다는, 어쩌면 같은 맥락 위에서 작동하고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혹자들은 지역의 생존이 ‘가족 만들기’와 같은 전통적인 문제 해결 방식에 달려 있다고 믿고 싶겠지만 지역 간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커질 것이며 그들이 원하는 청년 여성들의 ‘생애주기 이벤트 이행’은 요원해질 것이라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오지 않았고 오는 것이 확실하지 않은 미래의 어느 순간보다는 바로 그 현실의 삶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 상상력은 예컨대 이런 것이다. 용호도의 고양이 학교 건립 이면에는 길냥이들과 함께 살아가고자 한 용호도 주민들의 삶이 있다. 학교 건립에 주민참여예산이 투입된 것뿐만이 아니라 그곳의 주민들은 학교 운영에 직접 참여하며 길냥이들의 공동 집사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학교는 인간을 위한 건축물’이라는 기존의 생각을 뛰어넘은 주민들의 선택 덕분에 용호도는 이제 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새롭게 의미화되고 있다. 그래서 학교를 뛰놀던 아이들이 사라졌음에도 용호초등학교의 공간은 소멸하지 않았다.

나의 고향 통영은 0.76 명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고, 나를 비롯한 동창 대부분이 고향을 떠났으며, 내 모교의 학생 수가 절반으로 줄어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곳에 존재한다. 양식장 부표가 가득 떠다니는 짙은 남색의 바다와 겨울이면 가득 피어나는 동백꽃 따위를 상상하다 보면 도대체 이곳의 무엇이 소멸하게 될 것인지, 소멸을 이겨 내게 하는 ‘지역 상생’의 의미가 과연 무엇일지 의아해진다. 수십 마리의 고양이들과 함께 살아가기로 한 용호도 주민들의 삶에서 지역 상생의 상상력을 시작해 보면 안 되는 것일까.


참고 문헌

  • 강권오(2023년 7월 11일). “지방소멸에 대응한 제주의 선택, 청년에게 답이 있다”. 헤드라인제주
  • 김도희(2023). “청년 여성의 ‘비혼공동체(community)’ 경험을 통해 본 지역 정주의 의미와 실천”,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석사학위 논문.
  • 김성호(2023년 9월 6일). ““길냥아 어서와”… 통영 섬마을 폐교 ‘고양이 쉼터’로”. 경남신문
  • 대한민국정부(2020).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2021년도 중앙부처 시행계획”.
  • 박성민(2022년 4월 30일). “통영-군산… 시군구 절반이 소멸위험지역”. 동아일보
  • 한국고용정보원(2023). “지역산업과 고용 봄호”, 통계로 본 지역고용_지방소멸위험 지역의 최근현황과 특징.
  • Edelman, L.(2004). No future: Queer theory and the death drive, Duke University Press.
  • Halberstam, J.(2005). In a Queer Space and Time: Transgender Bodies, Transgender Lives, New York University Press.
  • Massey, D.(1994). Space, place, and gender,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정현주 옮김(2015), 『공간, 장소, 젠더』,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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