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1. 4・3 ‘해결’과 죽음 이후의 가족관계라는 곤경
2021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 특별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국가에서 4・3의 희생자에게 배・보상을 시행한다는 조항이 입법되었다. 2000년 4・3 특별법이 제정된 이래, 최초로 전부 개정된 2021년의 특별법은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가장 의미있는 진전”으로 평가되었다(기사 보기). 보상금 입법이 “희생자 명예회복 및 유족의 한을 해소하는” 조치로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4・3의 ‘완전한 해결’과 더 가까워졌는가” 하는 가치평가와는 별개로, 보상금 입법은 4・3 해결의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그간 희생자의 가족들이 4・3 해결 과정의 중심적인 행위자가 아니었던 적은 없었지만, 보상금과 함께 희생자의 가족은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행위자로 부상하게 되었다. 진상조사 및 기념관 설치 등 희생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그간의 조치들이 4・3 해결의 가장 핵심적인 주체이자 대상으로 희생자를 호명해왔다면, 보상금 입법은 보상금 지급 대상으로서 ‘희생자의 가족’을 직접적인 행위자로 등장시킨 것이다.
4・3의 공식적 해결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희생자의 가족들은 가족 구성원이 입은 피해와 희생을 증명하고, 그에 대한 인정을 요구해왔다. 즉 4・3의 희생자가 4・3으로 입은 피해의 회복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희생자의 가족들은 피해와 희생 경험의 대리자로 행위해온 것이다. 보상금이 입법되고 나자, 이제 희생자의 가족들은 ‘보상금’이라는 구체적인 금전적 실체의 상속자가 되었다. 물론 보상금 역시 근본적으로는 희생자에게 지급되는 것이긴 하지만, 4・3의 직접적인 희생자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대부분 ‘행방불명’되었거나 사망하여 4・3의 해결 과정이 진행되는 현재 시점에서는 대부분이 부재자이다. 이로 인해 희생자 가족은 보상금의 상속자로서 희생자와 국가의 ‘법적 화해’를 달성할 주요 행위자가 되었다[1].
[1] 현재 특별법에서는 보상금 청구권자가 보상금 지급 절차에 동의하여 보상금을 신청한 경우, 4・3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에 대한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유족들이 희생자의 피해와 희생 경험의 ‘상징성’을 상속받아 행위해왔던 지난 시간 동안, 중요한 것은 가족관계등록부와 같은 공식 문서 상 기록보다는 희생자와 유족이 맺는 직접적이고 상징적인 관계였다. 그러나 이제 희생자와의 보상금 상속의 순위와 범위를 결정하는 기준으로서 가족관계등록부상 가족관계가 모든 관계의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부상했다.
보상금 입법이 결정되자, 보상금 지급 대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뒤엉킨 가족관계’ 또는 ‘가족관계 불일치’로 명명되는 상황에 처한 유족들이 적지 않은 수를 차지한다는 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희생자의 대부분이 혼인신고와 출생신고 등 가족관계 기록 관행이 의무화, 보편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희생자 죽음 이후 가족관계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희생자와의 가족관계가 기록되지 않았거나 ‘잘못’ 기록된 가족 성원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 문제는 희생자와 유족의 가족관계의 ‘비정상적’ 상태를 강조하는 ‘뒤틀린 가족관계’, ‘뒤엉킨 핏줄’, ‘뒤엉킨 호적’이라는 표현으로 즉시 담론화되었다. 이러한 담론에서 불일치된 가족관계는 ‘해결’ 절차에 지연을 일으키는 문제 상태로 여겨진다. ‘뒤틀린’ 상태로 일컬어지는 ‘가족관계 불일치’ 담론에서 ‘정당한’ 가족관계의 존재는 의심없이 전제되었고, 그 엉킨 실타래의 책임은 4·3이라는 ‘과거사’에 전적으로 물어졌다. “4・3으로 인해 가족관계가 불일치되었다”는 식이었다.
2. 누가 ‘사실상’의 가족인가? : 젠더화된 애도와 경합하는 상속자들
보상금 입법과 함께 가시화된 ‘가족관계 불일치’라는 곤경에서 ‘불일치’는 다름 아닌 가족관계등록부(구 호적) 상의 가족관계와 가족 구성원 본인이 인지하거나 감각하는 가족관계가 일치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희생자와의 가족관계가 자신이 알고 있는 가족관계와 ‘불일치’한다고 호소하는 사람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족 성원은 다름 아닌 희생자의 딸이었다[2]. 다시 말해, 희생자의 딸들은, 자신이 희생자의 딸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70여 년 이상의 세월 동안 공식적으로 희생자의 딸이 아니라고 기록된 채 살아온 것이다. 희생자의 딸들은 희생자가 부재한 가족 공간에서, 희생자의 형제 가운데 생존한 사람의 자녀로 기록되어 가족관계등록부 상으로 희생자와 삼촌-조카 관계가 되었거나, ‘홀어멍[3]’이 된 어머니가 재가하며 의붓아버지의 자녀로 기록되어, 공식적으로는 희생자와 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딸들이 이러한 곤경에 더 많이 처하게 된 이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그 원인과 책임을 단지 4·3이라는 사건 자체에만 물을 수 있는 것일까?
[2] 2022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희생자와 가족관계가 불일치 한다고 신고한 친생자 사례 중 75%가 여성, 즉 희생자의 딸인 것으로 드러났다.
[3] 홀어머니. 과부를 이르는 제주어
20여년 전개된 ‘해결’ 과정 속에서 그간 피해와 희생의 경험을 상속받은 대리자로 여겨져 온 것은 희생자의 아들이었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제 등의 공식 행사에서 상복이나 제복을 입고 등장하는 가족 성원은 거의 대부분 아들들이었다. 특별법 상에서도 유족 항목에서 (상징적) 아들의, 아들로서의 정당성을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희생자의 제사와 묘지 관리를 하는 4촌 이내의 방계혈족”이 3순위 유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예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사례는 주로 희생자가 포함된 가계 내에서 희생자의 가계를 잇는 ‘아랫 세대’ 남성들이다. 이처럼 희생자-아버지에서 아들로 부계로 이어지는 가족의 형상은 4·3에 대한 국가의 공식적 담론과 연결되어, 의심없이, 암묵적으로 전제되어왔다.
그러나 ‘가족관계 불일치’ 상황에 처한 대다수의 딸들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부계-가부장적 가족 제도 하에서 ‘딸’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호적에 오르지 못했다. 아버지가 부재한 공간에서 딸은 사망한 아버지의 사후 의례 주관자로도, 부계 성의 계승자로도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희생자 아버지를 포함하는 더 큰 범위의 가족(문중) 내에서 아마도 ‘덜 중요한’ 자식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딸들의 가족관계는 딸들이 태어난 당시, 혹은 아버지가 사망자로 등록되기 이전, 즉 가족 내의 성원권을 통해 마련되기보다는, 학교에 입학하거나 결혼하는 등 추후 ‘가족 바깥의 개인’이 되기 위해 ‘가족관계등록’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마련되었다. 부계-가부장제 가족 제도에서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라면(물론 아이는 여성이 낳기 때문에 이 ‘직접성’ 역시 모호하긴 하지만), 정당성이나 상징성 면에서 ‘자연스럽게’ 확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딸들이 이러한 곤경에 더 많이 처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부계 가족에서의 ‘정당한 계승자’와 4·3 경험을 상속하는 권리 담론은 강하게 연동되어왔고, 4·3 희생자의 가족에 관한 젠더화된 담론을 재생산해왔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여성 유족들, 특히 희생자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대한 공적 담론은 거의 부재했다. 새롭게 등장한 ‘가족관계 불일치’ 문제는 희생자와 직접적이고 실제적인(소위 ‘생물학적’) 친생자 관계에 있다고 추정되는 딸들과 그 ‘친생’ 관계 외에 모든 정당성과 상징성을 지니고 있던 (상징적) 아들들은 희생자의 상속자로서 경합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2023년 11월 현재, ‘가족관계 불일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개정된 특별법은 대부분 딸일 것으로 추정되는 친생자들의 권리에 더불어 사후양자의 권리 역시 인정하는 쪽으로 결정되었다.
3. 딸들의 등장 이후, 더 물어져야 할 것들
보상금 수령 여부가 희생자의 가족 성원들에게 희생자와의 가족관계를 확인받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로 기능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배제된 사람들을 위한 법과 제도의 개선은 필수적이다. 실제로 보상금 입법 이후, 가족관계 정정과 관련된 세부사항이 개정되었고, 계속해서 개정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일련의 과정으로 가족관계를 입증하고 정정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고, 그러한 근거를 통해 가족관계가 법적으로 승인된다면, 가족관계를 둘러싼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일까?
잇따른 특별법 개정으로 가족관계의 정정이 가능해진 현 상황에서는 희생자와 ‘가족임’을 증명할 수 있는 증빙 자료의 ‘객관성’이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기사 보기). 이러한 상황에서 가족 내 ‘상속자’로서의 상징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해왔으며, 그렇기에 가족 관계를 증명할 물질적인 매개물을 가지기 어려운 딸들의 인정 투쟁은 어떻게 전개될 지 가늠하기 어렵다. 반면에 희생자가 호주(戶主)인 가족, 그리고 가문이라는 더 큰 범위의 가족 공동체에서 희생자의 (상징적) 아들이 공식적으로 정당한 상속자로 여겨져옴에 따라, 남성 상속자들은 족보, 묘비 기록, 사후 의례 주관이라는 가시적인 행위 등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매개물을 통해 자신과 희생자와의 가족관계를 보증받는다. 곤경에 처한 ‘친생자’ 딸들과 상징적 아들이 상속자로서 경합하는 상황에서는 희생자의 부계를 잇는 (상징적) 아들이 유리한 쪽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해결 담론은 젠더화된 계승, 상속 담론에 기대어, 희생자의 가계를 ‘잇는다’는 ‘아들’의 상징성을 통해 희생자의 제사를 치르거나 묘지를 관리하는 등의 사후 의례 주관이라는 행위로 ‘가족됨’을 설명해 왔다. 부계로 계승되는 애도를 인정하는 가족 내 공식화되어 온 실천과 그에 기반한 제도적 담론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매우 젠더화된 부계가족관계만을 정당한 것으로 전제해 온 것이다. 이제 해결 담론은 희생자인 아버지와의 ‘생물학적’ 관계를 증명하지 않는 한, ‘객관적’ 증거 자료를 확보하고 제시하기 어려운 딸들의 ‘가족됨’을 인정해야 하는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4·3 해결 담론의 공적 주체로 등장하게 된 딸들은 희생자의 가족을 주 행위자로 호명하는 재편된 해결 담론에 곤경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희생자와의 가족관계를 단지 ‘일치’ 혹은 ‘불일치’로 설명하는 법적 담론은 희생자-아버지의 죽음 이후 부계중심주의적 가족에서 정당한 성원으로 인정되지 못한 채 탈구된 가족과 탈구된 삶을 재건해 온 딸들의 경험을 의미있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족관계 불일치’를 경험하는 딸들에게 4·3 ‘이전’과 ‘이후’의 시간은 얼마나 분절적인가? 해결 담론이 전제하는 4·3 이전과 이후라는 단절된 시간과 불일치-정정-일치라는 프로세스는 딸들이 아버지가 부재한 가족 공간에서 살아온 세월의 시간성을 ‘보상’해줄 수 있을까?
참고문헌
-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2022), “제주4·3사건 가족관계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 부분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