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

1. 혼란
김규진 씨의 임신 소식은 서울퀴어퍼레이드 개최를 기다리던 이들에게 좋은 ‘떡밥’이었다. <일다>나 <여성신문>의 기사는 물론 김규진 씨 본인의 소감 트윗까지 리트윗하기를 빼먹지 않는다. 축하 멘션을 남기고, 부치의 임신을 둘러싼 각종 농담에 마음을 누르고, 피드를 새로 고침. 레즈비언 부부의 임신 소식이 한국에서 얼마나 진보적인 사건인지 설명하는 누군가 남긴 장황한 트윗을 읽으며 행진도 전에 축하와 희망, 연대와 지지로 충만해져버리면 어쩌나, 괜히 머쓱한 마음으로 다시 피드를 새로 고침. 리트윗, 멘션, 마음, 인용트윗을 반복하다 보면 결혼과 임신이 얼마나 이성애규범적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지 열변하는 트윗은 물론 바로 그 트윗에 레즈비언 부부가 임신한 것 자체가 이성애규범을 해체하는 일이라는 반박 트윗까지 한꺼번에 목격한다. 혼인평등은 중요하되 정상가족은 경계하자거나, 하나의 이슈 혹은 운동에 다양한 입장이 존재할 수 있다는 중재적 트윗은 제 목적을 달성하기보다 오히려 이 판의 사이즈를 키우는 쪽이다. 어디선가 자신이 읽은 글 조각—대체로 유명 퀴어 이론가 잭 할버스탬(Jack Halberstam)이나 리사 두건(Lisa Duggan)과 같은 이들이 쓴—을 업로드하거나, 더 성실한 쪽은 동성결혼이 퀴어 이론이나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얼마나 비판받을 만한지 설명하려 타래를 이어가 보지만, 난잡한 타임라인 속에서 그것은 공론이라기보다 혼잣말에 더한 제스처에 가깝다.
퀴퍼를 기다리며 레즈비언 부부의 임신 소식을 축하하던 퀴어 공동체는 어느새 진부하고 지겨운 키보드 배틀, 그러니까 말 그대로의 전쟁판에 드러누워 있는 “한심하고 쓸모없는 트위터 중독자들”로 외피를 바꾼다. 물론 이 글이 트위터에 대한 글은 아니다. 다만 어디서 동성결혼, 했을 때, ‘다들 뭔 줄 알지?’ 하면 대충 안다고 고개를 끄덕일 이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한 단락을 할애한 것에 가깝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앞에서 묘사한 혼란스러운 타임라인의 풍경과 여기에 잠입한 상처,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글쎄, 유감스럽지만 트위터를 더욱 열심히 하세요.(?) 하지만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동성결혼을 중심으로 한 혼란한 타임라인이 트위터의 그것만은 아니라는 점일 테다.
2. 비판들과 불만들
퀴어 이론(queer theory)은 1990년대 초 포스트구조주의와 구성주의, 페미니즘 이론 등의 영향 속에서 탄생했다. 퀴어 또는 퀴어 이론이 무엇이냐를 정의하는 일은 까다롭지만, 기존 레즈비언 게이 연구(lesbian and gay studies)의 연속선상에 있으면서도 ‘게이’나 ‘레즈비언’ 같은 전통적 정체성 범주로 식별되지 않는 모호한 성적 실천들, 또는 그러한 실천들을 식별 가능하게 하는 경계(boundaries) 자체를 문제시하는 정체성 비평 기획이라는 점이 여러 논자들 사이에 가장 합의된 내용일 테다. 정체성 비평으로서 퀴어는 진화를 거듭하며 ‘단지’ 섹슈얼리티, ‘단지’ 문화적인 층위의 문제를 겨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제국주의 등의 초국적 문제와 맞물려 작동하는 퀴어의 정상화(normalization)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간다. 주류 백인-레즈비언/게이들이 자신의 소비능력을 입증함으로써 ‘정상적’이고 ‘모범적’인 시민으로 거듭나는 동안, 주변화된 퀴어 주체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평등한 소비’로써 정당화되는 현상을 포착한 리사 두건의 동성애규범성(homonormativity)은 그중 가장 성공한 이론적 도구이다(두건, 2017). 재스비어 푸아(Jasbir Pua)는 두건의 동성애규범성 개념에 기반하여, 민족국가의 생산이 동성애규범성에 관여하는 방식을 분석하기 위한 개념틀로써 호모내셔널리즘(homonationalism)을 고안한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점령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LGBT 포용적이고 진보적인 국가로, 팔레스타인을 ‘후진적’이고 ‘야만적’인 국가로 배치하는 방식을 일컫는 핑크 워싱(pink washing)은 호모내셔널리즘의 대표적 사례다(Puar, 2013: 32).
퀴어 이론의 장에서 동성결혼 제도화를 목표로 삼는 운동에 대해 많은 이론적 비판이 축적되어왔다. 마이클 워너(Michael Warner, 1999)는 「정상적인, 더 정상적인: 동성결혼을 넘어서(Normal and normaller: Beyond gay marriage)」와 같은 저작을 통해 퀴어의 탈-정상화를 요청한 대표적 논자이다. 이후에도 『평등에 반대한다: 단순한 포함이 아닌 퀴어 혁명을 위하여』(Against Equality: Queer Revolution Not Mere Inclusion)의 저자들은 동성결혼과 같은 의제를 중심으로 한 주류 게이-레즈비언 운동이 단지 법적 평등만을 목표로 하며 빈곤, 인종주의, 군사주의, 난민과 같은 문제를 주변화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Conrad 외, 2014). 종합해보면, 시민권과 권리 담론을 기반으로 한 동성결혼의 정치는 결코 진보정치를 담보하지 않으며, 오히려 특정 정치적 국면에서 ‘진보 정치’를 표명하는 정치적 수사로 동원된다. 이러한 정치적 수사는 시민권의 인종화 및 성차화를 재생산한다. 나아가 동성결혼을 통해 퀴어도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으며, 보편적 시민권이 평등주의를 약속한다는 ‘신화’를 강화한다. 결과적으로 운동 내부 혹은 소수자 집단 내부의 위계질서가 재/생산된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성결혼을 법제화한 대만의 사례는 많은 퀴어 연구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아시아에서도 퀴어들이 권리를 획득하고 시민이 되고 평등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혹은, 신자유주의적 기치 아래 퀴어의 정상화 혹은 탈정치화를, 이제 미국이 아닌 아시아에서도 목격하게 될 것인가? 차오주 첸(Chao-Ju Chen, 2019)은 대만의 혼인평등(marriage equality) 운동이 평등한 권리에 기반하여 동성애와 이성애가 같음(sameness)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면서 페미니스트와 퀴어들의 비평을 주변화했다고 본다. 에릭 쿠(Eric Ku, 2020)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동화주의적 담론에 근거한 대만의 혼인평등 운동이 이성애규범성을 강화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대만의 퀴어 활동가이자 연구자인 Kao(2019)는 혼인평등 캠페인이 대만에서 본격화되기 전에 동성애규범성에 기반한 비판이 선행했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반-정체성중심주의와 동성애규범성에 대한 비판은 취약한 대만의 퀴어 정체성을 조기에 해체했다. 대만의 활동가들은 내적 긴장 속에서 혼인평등 캠페인을 의도적으로 연기했다. 동성애규범성과 같은 개념이 대만의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수용되어 문화 간의 차이를 무시하고 대만 사람들이 구축해 온 진보적인 인프라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동성애규범성의 수용은 무엇보다 대만의 퀴어 운동의 탈-신자유주의화 경향을 보지 못하게 한다. 미국 중심의 이론적 시간성은 아시아 퀴어 연구를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만든다.
3. 공백들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가 추산 10만 명에 다다르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제1회 ‘지방’ 퀴어문화축제 개최 소식이 타임라인의 분위기를 고조시켰을 때, 퀴어 이론적 비평 및 연구들 역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두건과 푸아 등 저명한 퀴어 이론가들의 작업이 번역 및 출간되었고, 모국어로 된 비루했던 읽을거리 목록은 빠르게 늘어났다. 동성애자 혹은 성소수자가 곧장 퀴어하거나 진보적이라는 의미를 획득하지 않는다는 퀴어 이론의 독법을 충실히 따르는 비평들은 문학, 영화, 미술 등의 문화 영역을 가로지르며 정체성의 (퀴어 이론적 의미에서) 해체를 긴요히 요청해 왔다. 퀴어 정치를 위해서는 정체성을 넘어서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정체성은 동성애규범적 진보 서사(homonormative progressive narrative)를 따르는데, 이러한 서사를 완성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2015년 미국 전역에서 합법화된 동성 간 결혼이다(김경태, 2020). 이때 정체성을 해체하는 것은 곧 동성결혼을 넘어서는 것과 같은 의미로 배치된다.
동성결혼을 둘러싼 한국에서의(한국에서 수행된, 한국에 대한) 학술적 논의는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동성결혼/혼인평등이 성소수자 운동의 핵심 의제로 부상한 지금-여기, 동성결혼을 원하는 이들의 말과 삶, 불평등과 고통은 적절히 해석되고 있는가? 동성결혼을 원한다는 것은 무엇을 욕망한다는 것일까? 동성결혼은 누가, 왜 원하는가? 동성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개인들의 실천은 지지받아야 하지만, 이를 운동의 모델로 만들 것이냐에 관해서 더욱 고민이 필요하다는, 꽤나 출처가 분명한 주장들은 언뜻 동성결혼 법제화의 한계를 보충하는 것으로, 운동과 담론을 풍성하게 하는 것으로, 의제를 확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론 및 정치적 논의와 논쟁의 부재 속에서 동성결혼에 대한 비판은 어떤 맥락 속에 자리 잡고 있는가? 차라리 우리에게 진정 진부하고 지루한 것은 “이성애자가 할 수 있는 거라면 (퀴어인) 우리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반복된 수사가 아니라 이러한 수사가 결혼제도의 본질적 불평등을 가리고, 자유주의적 권리 담론에 의존하며, 궁극적으로 퀴어 내부의 위계를 강화한다는 비판들 그 자체 아닌가?
만일 동성결혼을 원하고 구체적 실천하는 이들을 탈가정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목록은 무한대로 증식할 수 있다)과 대조시킴으로써만 다양한 퀴어의 모습과 실천을 말할 수 있다면, 실패한 것은 슬로건(모두의 결혼)이나 의제가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차이를 위계로 환원함으로써만 퀴어라는 의미를 취할 수밖에 없는 해석이다. 나아가 동성결혼을 원하는 이들의 욕망을 신자유주의적인 것으로, 자본을 사유화하는 것으로, 법-이데올로기적 인정투쟁으로, 따라서 운동이 아닌 그저 개인의 실천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이들이 겪는 불평등을 애도할 수 없게 만드는 인식론적 폭력이다.
4. 불가능성
“한국사회에서 퀴어는 미국에서와 달리 비하적인 언어가 아니었고, 따라서 언어의 사용자체가 어떤 전복성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서구에서 수입된 세련된 용어 혹은 담론적, 문화적 수준의 용어로 인식되는 면이 크다.” (타리, 2007: 3)
“서구에서는 종종 ‘퀴어’가 정체성 정치학을 반대하는 맥락에서 상당히 주류화된 소수자 시민권으로서의 ‘동성애자’보다 급진적인 성적 실천으로서 옹호되어 왔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종종 동성애자 및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성적소수자 정체성의 집합으로 이해되곤 한다.” (토리, 2010: 13)
퀴어란 무엇인가? 더 구체적으로는, 퀴어란 무엇 이어왔는가? ‘단지’ 동성애자나 성소수자도, 비규범적 섹슈얼리티에 관한 이론도 아니라면, 퀴어는 어떤 의미를 입고 있는가. 우리가 퀴어(이론)의 시간을 살았던 적이 없기 때문에 이 단어가 가진 본래의 전복성이 소실된다면, 지금-여기 운동의 언어이자 이론적 개념으로서 퀴어는 무엇을 의미하기 위해 기용되는가. 퀴어는 우리가 사용하고자 하는 의미로 읽힐 것인가? 동성애옹호운동도, 게이/레즈비언들의 주류화도, 부정성에 기반한 급진적 저항도 존재한 적 없는 한국의 시공간에 영미권을 기반으로 직조된 퀴어(이론)의 작동이란 난감하기만 하다.
제국의 관점에서 언제나 뒤처짐 혹은 실패에 불과하기 때문에 후기식민의 시간은 차라리 “이미, 여전히, 오래도록 퀴어한 시간”이라는 정민우(2012: 90)의 설명을 따른다면, ‘우리’에게 부재한 것은 퀴어의 시간이 아니라 퀴어하지 않았던 시간일지도. 그렇다면 한국에서 퀴어를, 혹은 퀴어한 것을 포착하고 해석하려는 작업은 제국의 그것과 어떻게 달라야 하고 또 다를 수 있는가? 편린과 같은 시간들을 붙잡아 퀴어를 써내려고 할 때 결국 만들어지는 것이 도착과 착각에 불과하다면, 그래서 우리에게 퀴어란 결국 불가능에 불과하다면, 지금-여기의 퀴어(이론)는 불가능성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 아닐까.
참고문헌
- 김경태 (2020), “동시대 한국 퀴어 영화의 정동적 수행과 퀴어 시간성: <벌새>, <아워 바디>, <윤희에게>를 중심으로”, 『횡단인문학』, 6호, 1-25쪽.
- 타리 (2007), “[기조발제]거침없이 퀴어킥: 여자, 여성성, 기만, 환상” <거침없이 퀴어킥>
- 토리 (2010), “한국사회 LGBT 의 성적 시민권: 비판과 전망”, 『여/성이론』, 23호, 10-28쪽.
- Duggan, L. (2012). The twilight of equality?: Neoliberalism, cultural politics, and the attack on democracy. Beacon Press, 두건, 리사(2017), 『평등의 몰락: 신자유주의는 차별과 배제를 어떻게 정당화하는가』, 한우리·홍보람(역). 서울: 현실문화연구.
- 정민우 (2012). “퀴어 이론, 슬픈 모국어”, 『문화와 사회』, 13호, 53-100쪽.
- Chen, C. J. (2019). “A same-sex marriage that is not the same: Taiwan’s legal recognition of same-sex unions and affirmation of marriage normativity.”, Australian Journal of Asian Law, 20(1), pp. 59-68.
- Conrad, R. et al. (2014). Against equality: Queer revolution, not mere inclusion. AK Press.
- Kao, Ying-Chao (2021). “The coloniality of queer theory: The effects of “homonormativity” on transnational Taiwan’s path to equality“, Sexualities, 0(0).
- Ku, E. K. (2020). “Waiting for my red envelope: discourses of sameness in the linguistic landscape of a marriage equality demonstration in Taiwan.”, Critical Discourse Studies, 17(2), pp. 156-174.
- Puar, J. (2013). “Rethinking homonationalism.”, International Journal of Middle East Studies, 45(2), pp. 336-339.
- Warner, M. (1999). “Normal and normaller: Beyond gay marriage.”, GLQ: A journal of lesbian and gay studies, 5(2), pp. 119-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