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wd vol.8 현재 없음(No Present) : 지금 여기의 삶 정치 닫는 글

🍀싱두

0.

지난 가을 기획의 변으로 문을 열었던 Fwd의 8번째 기획이 새해를 맞아 마무리되었습니다. 벌써 닫는 글을 쓸 때가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다가도, 기획 제안 과정까지 모두 합치면 근 1년 간 진행된 기획을 큰 무리 없이 끝낼 수 있었음에 감회가 새롭습니다. 우선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독자 분들의 소중한 새해 시작과 함께 하는 이번 닫는 글은 사실, (많은 페미니즘 이론과 담론이 그러하듯) 어지간해서는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논쟁과 질문 속에서 쓰였습니다. 혹자는 시가 쉽게 쓰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였던가요? 시는 아니어도 꽤 오랜 시간 고민했고, 첫 문장을 쓰기가 이상하리만치 어느 때보다 어려웠으니 그런 점에선 부끄러운 글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부끄럽지는 않긴 한데 적잖이 어렵고 혼란스러웠던 건 맞습니다. 이 난관을 쉽게 봉합하지 않기 위해, 기획 과정에서 8호 필진들이 나누었던 여러 고민을 거칠게 정리하는 방식으로 닫는 글을 써 내려가 보겠습니다. 

1.

<현재없음> 기획은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과 건강가족기본법 개정 무산을 비판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처음 운이 띄워졌습니다. 한국 사회에서의 ‘가족’을 둘러싼 어떠한 현실도 정확하게 짚어내거나 반영하고 있지 못한 움직임이라는 지적과 함께,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할 수 이론적 근거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퀴어 이론의 맥락이었습니다. 현 시점에 가족을 가장 급진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방법론의 다수가 퀴어 이론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이번 호 주제는 퀴어/가족이 되겠구나!’ 하는 모호한 그림이 그려졌고, 지금까지 Fwd 기획 중 ‘퀴어’를 전면에 내세워 진행했던 기획도 없었으므로 일단 해당 주제로 필진을 더 모아 기획을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퀴어/가족이라는 키워드에 흥미를 보인 아홉 명의 연구자가 그렇게 모였습니다. 대부분 이미 자신의 연구 주제가 뚜렷하게 정해져 있어 그를 좀 더 이번 기획의 주제와 엮어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각자 쓸 글의 방향과 연구 주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뿔싸 이게 웬 걸,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전혀 ‘퀴어하지 않은’ 이야기가 한 데 모여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퀴어하지 않은’의 의미는, “스스로에게 무엇이 퀴어/가족인가? 라는 질문을 날카롭게 던져보지 않은 채, 이성애 규범적 생애주기 바깥에 놓여있다고 여겨지는 여러 이야기를 거칠게 늘어 놓은” 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음, 한마디로 혼란이었습니다. 처음 각자 글감 소개를 마치고 나서는 기획의 제목에 ‘퀴어’가 들어가는 것이 적절한지에 관한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필진들도 그 말 뜻을 이해하고 또 공감하였으나, 막상 왜 그러한지는 명료한 문장으로 제대로 이야기되지 못했습니다. 

2.

그래서 우선은 기획 세미나를 진행하며 다시 주제들 사이의 상호 연관성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사정이야 어쨌든 한 주제로 모인 사람들이니, 세미나를 하다 보면 뭔가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김순남, 2022)를 시작으로 <가족을 폐지하라>(소피 루이스, 2023), <한국 가족법 읽기>(양현아, 2011), 대만의 레즈비언 커플을 중심으로 한 혼인평등 운동과 그를 둘러싼 가족 정치 관련 논문(Sara L. and Yi-Chien, 2021), 주디스 버틀러의 <안티고네의 주장>(2005)과 <젠더 허물기>(2015)를 읽었고, 마지막으로 리 에델만의 <No future>(2004)를 비평했습니다. 세미나 자체가 흥미롭게 진행된 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퀴어’와 각 연구글을 연결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번 기획을 함께 달려온 독자라면 아시겠지만 어떤 글은 퀴어 이론의 계보에 비교적 뚜렷하게 위치지어져있는 한편, 대부분 글이 ‘퀴어 가족’/‘퀴어한 가족’을 이야기한다기보다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고, 소외되고, 이탈한 가족, 혹은 관계 서사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벗어남, 소외, 이탈에 뭉뚱그려 ‘퀴어’라는 수사를 붙이는 데 좀 더 고민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물론 퀴어연구의 관점과 언어는 이성애규범적 생애과정에서 벗어난 삶과 죽음, 친족 만들기를 가시화 할 수 있는 이론적 자원이 됩니다. 그러나 정작 이번 기획에서 퀴어 연구의 가장 주요한 관심사라고 볼 수 있는 친밀함, 특히 성적 친밀감(섹슈얼리티 실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분석/논의/비평이 빠져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즉, ‘퀴어’라는 개념을 가족연구의 방법론으로 삼는 것과 동시에 현실의 퀴어들이 어떻게 하여 새로운 친밀성을 발명해내고 이를 통해 가족을 하고자(doing family)하는지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이야기가 빠져있다면 이번 기획이 이제까지의 기획들과 차별화되어 ‘퀴어’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가 무엇일지가 불분명했습니다. 

여기에서 필진들은 다시한번 기로에 놓였습니다. 퀴어들의 가족실천 자체를 연구의 중심 소재이자 대상으로 삼는 글을 새롭게 써내려갈 것인지, 아니면 각자가 가진 기존의 문제의식을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키워드를 찾을 것인지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퀴어라는 개념과 그 용법만큼이나, 가족이라는 개념 또한 너무나 정의하기 어려운 용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미나에서 읽었던 두 책인 <가족을 구성할 권리>와 <가족을 폐지하라>라는 책제목이 보여주듯, 이제까지의 가족과 관련된 모든 제도, 규범, 개념, 문화를 재구성할 것인지, 가족이라는 기표 자체를 폐지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퀴어함을 둘러싼 논의만큼이나) 너무나 치열하게 전개 중인 현재진행형 논쟁이었기 때문이도 합니다. 이 점에서 ‘퀴어 그리고 가족’이라는 두 개의 까다로운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번 기획의 논의를 ‘하나’로 종합하고자 했던 시도는 우리 스스로를 더욱 복잡하게 했습니다. 

3.

기획 주제에 관한 나름의 단서를 찾은 건 마지막 세미나에서였습니다. 필진들은 리 에델만의 <No future>를 함께 읽고, 재생산 미래주의를 개념화하여 비판한 것의 의의와 한계에 관해 논했습니다. 에델만은 이성애 관계를 통한 생물학적 재생산과 그의 산물인 (대문자) ‘아이’만이 미래로 나아가는 희망적인 시간성과 연결되어 있는 정치적, 사회적 담론을 비판하였으며, 이러한 이성애 규범성을 구성하는 원리에 퀴어적으로 저항할 수 없도록 하는 단선적인 시간관(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단선적 시간성 위에 위치지어지지 않는 퀴어함에 부여된 부정성을 수용함으로써 희망을 긍정적인 것,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질서를 옳은 것으로 인식하는 관점에서 벗어나자고도 이야기했습니다. 

세미나에 참여한 필진들은 이에 공감하면서도, 그의 논지에 대한 흥미로운 비판점을 여럿 제시했습니다. 이를테면 에델만의 재생산 미래주의가 이성애/동성애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이성애자들의 재생산 충동을 매우 핵심적인 것으로 전제하는 함정에 쉽게 놓일 수밖에 없고, 그랬을 때 이미 충분히 난잡한 이성애적 재생산 실천을 제대로 포착할 수 없게 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꾸준히 제기되어온 재생산 미래주의의 백인/게이/비장애인 중심성에 대한 비판도 다시금 언급되었습니다. 재생산 미래주의가 오히려 시간성 개념을 복잡하게 펼쳐내지 못하게끔 하고 있다는 의견과, 퀴어함과 부정성을 등치시키는 전략이 얼마나 유효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한편, 여러 분야에서 재생산 미래주의 개념 자체를 도구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견도 공유되었습니다. 

4.

에델만의 저작을 이처럼 여러 방향에서 분석하다 보니, 어렴풋하게 느껴지던 기획글들 사이의 연결성을 재생산과 시간성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즉, 우리의 이야기를 하나의 기획으로 엮으려면 이성애 중심적인 재생산과 시간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는 나름의 결론이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기획을 (에델만의 논의에서 부각된) 미래 없음의 시간성을 변주하여, 미래가 아닌 지금, 현재의 시간성이 부재하다고 여겨지는 삶을 조망하는 기획으로 엮어가 보자, 는 공통된 의견이 도출되었습니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라는 가능성을 위해 오랫동안 현실을 저당잡히고 유예당하며 사는 사람들이 분명하게 존재하며, 이성애 중심적인 시간관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미래 뿐만이 아니라 그 미래를 담보로 부정되는 현재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각 필진이 이성애 중심주의가 시간성과 재생산을 어떻게 속박하고 제한하는지를  정치하게 해석하고자 했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번 8호 기획 제목이 ‘현재 없음(No present)’으로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현재 없음’ 기획을 만들어 나가면서, 필진들은 특정한 현재를 기반으로 고정된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실천, 욕망, 관계에 집중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는 난잡한 현재를 살아가는 시간성과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미래성과 정치를 그려보는 시도에 가까웠습니다. 비록 이번 기획에서 ‘퀴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모두의 이야기를 묶어내기는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8호 기획의 필진들은 이같은 난관과 반복되는 미끄러짐의 경험을 발판 삼아 퀴어, 퀴어/한 가족, 관계,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놓지 않고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답을 내지 못한 고민에 앞으로도 독자 분들이 함께 해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내보이면서, 쉽지만은 않았지만 성실하게 고민하고 써내려갔던 Fwd의 8호 기획을 마무리짓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해주신 독자 여러분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참고 문헌

  • 김순남(2022). 『가족을 구성할 권리』. 서울: 오월의봄.
  • 양현아(2011). 『한국 가족법 읽기』. 서울: 창비.
  • Butler, J.(2000). Antigone’s Claim, Columbia University Press, 조현준 옮김(2005), 『안티고네의 주장』, 서울: 동문선.
  • ________(2004). Undoing Gender, Routledge, 조현준 옮김(2015), 『젠더 허물기』, 서울: 문학과지성사.
  • Edelman, L.(2004). No Future, Duke University Press.
  • Lewis, S.(2022). Abolish the Family: A Manifesto for Care and Liberation, Verso Books, 성원 옮김(2023), 『가족을 폐지하라』, 서울: 서해문집.
  • Sara L. Friedman & Yi-Chien Chen(2021). “Will Marriage Rights Bring Family Equality? Law, Lesbian Co-Mothers, and Strategies of Recognition in Taiwan”, positions, 29(3), pp.551-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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