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논바이너리퀴어의 삶을 연속선상에서 사유하고 재현하기

희원

0. 연구 필요성에 대한 감각과 재현에 대한 욕망

연구참여자를 모집하기 위해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렸던 날이 기억난다. 참여자가 너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구글 폼을 통해 많은 분들이 지원해주셨다. 트위터에 올린 공고 글이 리트윗되면서 이틀 만에 일흔 명에 달하는 지원자가 모였고, 결국 늘어나는 수를 감당하기 어려워 모집을 마감해야 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을 마주하고 나서는 연구참여자가 많이 모이지 않아 초조하고 난처해질 일이 없어 안도했고, 변방의 석사학위논문에 관심이 쏟아졌다는 사실이 조금은 두려웠으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 걱정되면서도 기대됐다. 가장 오래 남은 것은 대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일흔 명의 지원자 중 직접 만난 이들은 스물 다섯 뿐이지만 인터뷰에 응하기로 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비슷했다. 트랜스와 논바이너리에 대한 연구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어떤 연구참여자들은 학문 분과를 막론하고 트랜스젠더 범주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관련 연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게 된 것일까. 

 아주 거칠지만 여러 이유 중에서 하나를 꼽자면,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감각이 재현에 대한 욕망과 이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참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경험을 지속적으로 언어화하려는 시도를 해왔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살아온 시간들을 언어화하는 일은 일종의 자기재현이며, 정체성에 대한 감각과 직결된다. 시스젠더중심적인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논바이너리로서 돌출되거나, ‘일반적인’ 트랜스젠더에 대한 서사로부터 빗나가는 자신의 단면을 지속적으로 설명해야 했기에 언어화가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경험의 언어화에 대한 요구는 트랜스젠더퀴어 개개인의 정체화 과정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 법적 성별정정 과정의 층위에서도 발생한다. 스스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는 트랜스젠더퀴어 개개인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에 따라서 전략적으로 선택될 수 있다(인터뷰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연구참여자들은 정체화를 위한 언어를 온오프라인의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서 획득하기도 했다. 트랜스커뮤니티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로부터 위안을 받거나, 호르몬치료나 트랜지션 수술, 바인더나 패커[1] 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로서 작용한다.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퀴어 운동과 커뮤니티는 트랜스의 가시화와 생존을 위한 움직임을 만들어왔다. 이러한 흐름의 이면에는 의료적 트랜지션이라는 사건을 구심점으로 형성된 트랜스공동체가 의료적 트랜지션이 ‘완료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체되는 상황 역시 존재한다. 이는 구성원들이 시스젠더 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위해’ 이른바 ‘스텔스’가 되어 퀴어커뮤니티로부터 멀어질 필요성이 발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트랜스젠더퀴어 커뮤니티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트랜스 개개인은 느슨하거나 강력한 연결의 필요성을 느끼기도 한다.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연결을 모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타인의 존재를 감각하기 위한 전혀 다른 층위의 돌파구가 바로 재현일지도 모르겠다.

1. 트랜스젠더퀴어 삶의 연속성을 이야기하기

연구를 진행하고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트랜스젠더퀴어 삶의 연속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의료적 트랜지션은 트랜스 정체성의 특수성을 표지하는 사건으로서 트랜스 개인의 삶에서 변곡점을 만들어낸다. 또한 의료적 트랜지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은 특정한 시기에 트랜스젠더의 삶을 조건화하는 커다란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트랜스가 트랜지션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며, 의료적 트랜지션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의료적 트랜지션이 수술대를 벗어나면 완료되는 사건이라는 상상력 안에서 트랜지션은 연속선이 아니라 점과 같은 일로 이해되며, 트랜지션 전후의 삶은 단절되어 전혀 다른 국면에 위치되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의료적 트랜지션은 마치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의료적 트랜지션 전후의 몸이 반드시 단절된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연구에서는 의료적 트랜지션을 하지 않는 삶과 트랜지션 전후로 이어지는 삶에 집중하고자 했다. 월경은 지정성별 여성인 트랜스젠더퀴어의 의료적 개입 전후 변화를 드러내며, 트랜지션 하지 않는 트랜스젠더 퀴어 삶에서 꽤나 오랜 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신체적 사건이므로, 트랜스 삶의 연속성을 드러내기 적합한 소재라고 생각했다. 

의료적 트랜지션 진행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트랜스젠더퀴어의 삶은 변곡점과 연속성을 지닌다. 유방절제술과 자궁적출술은 트랜스 몸의 외관뿐만 아니라 몸에 대한 감각 또한 변화시키며, 이러한 변화는 일견 트랜지션 전후의 삶을 단절적인 것으로 보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트랜지션 전의 몸과 트랜지션으로 나타난 변화는 트랜스의 삶이라는 연속체 안에서 연결된다. 이를테면 자궁적출 이후 월경중단을 경험한 연구참여자들이 호르몬주사 주기에 따라 나타나는 신체변화를 월경주기에 따른 신체변화-피엠에스 등-와 관련지어 설명한 사례는, 의료적 트랜지션으로 발생한 몸의 변화에 대한 감각이 의료적 트랜지션 이전의 몸으로서 경험한 감각을 경유하여 설명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일생에 걸쳐 호르몬요법을 진행할 때 트랜스는 자신의 몸과 새로이 관계맺게 된다. 호르몬 처방을 위해 ‘퀴어프랜들리 의원’이나 동네 비뇨기과, 가까운 성형외과, 대학병원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것, 호르몬 수치가 변화함에 따라 나타나는 신체적 변화(목소리, 체모, 체형, 근육량, 성욕, 월경중단 등)에 적응하는 것, 신체적 변화에 따른 사회적 관계 변화를 마주하는 것, 심지어는 달라진 패싱성별과 법적성별에 맞춰 개명을 신청하고 따라 온갖 서류를 재발급받는 상황까지도 몸의 변화와 관련하여 스스로와 다시 관계맺고, 달라진 사회적, 법적 관계를 체감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의료적 개입을 통해 변화한 몸은 디스포리아를 완화하는 중요한 요인일 수도, 적응해야 하는 새로움일 수도, 혹은 전혀 다른 디스포리아를 초래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호르몬 요법 이후 더 이상 여성으로 패싱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지만, 남성으로 패싱되면서 예기치 못한 디스포리아를 경험했다는 논바이너리 연구참여자의 진술은 호르몬요법이 트랜스젠더퀴어의 몸에 대한 감각을 전혀 다르게 변화시키는 계기인 동시에, 트랜스젠더퀴어가 마주하는 서로 다른 디스포리아를 해소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일 수 없음을 드러낸다.

또한 의료적 트랜지션을 중심으로 하는 논의에서는 트랜지션을 진행하지 않거나, 흔히 이야기하는 호르몬요법-유방절제-자궁적출의 순서로 의료적 트랜지션을 진행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그 중 일부만을 시행하는 사례들을 논의하기 어렵게 된다. 자궁적출을 하지 않고 호르몬요법만 진행하는 이들은 호르몬주사를 중단하면 다시 월경이 시작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며, 호르몬요법을 진행하지 않는다면 주기적으로 월경을 마주하는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트랜지션을 선택하지 않는 요인으로는 ‘여성신체’에 대한 디스포리아의 정도, 질병이나 질환, 여성으로 패싱되기를 요구하는 노동환경, 임신이나 출산에 대한 욕망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도 의료적 트랜지션에 연루되지 않는다고 해도 몸에 대한 규범과 타협하거나, 좌절감을 느끼거나, 디스포리아 해소를 위해 의료적 개입 이외의 방법을 모색함으로써 몸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나가야 한다. 의료적 개입의 대안으로는 유방에 대한 디스포리아를 줄이고 여성으로 패싱되는 외형을 바꾸기 위해 바인더를 착용하거나, 월경을 보류하기 위해 피임약 사용 등을 택하거나,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위해 발성연습을 하는 방법 등이 포함된다[2]. 결국 트랜지션 ‘이후’의 몸은 트랜지션이라는 사건이 ‘종결’되었으므로 ‘완성’되어버린 몸이 아니라, 지속적인 트랜지션 과정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몸이다. 또한 트랜지션하지 않는 몸 역시 계속적으로 변화하면서 트랜스젠더퀴어에 대한 트랜지션 중심적 논의에서 다뤄지지 않는 삶의 문제들을 드러낸다. 변화하는 트랜스 몸에 대한 상상력은 트랜스의 재생산과 건강, 이를 아우르는 생활과 생존 전반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2. 생존을 위한 조건으로서 재생산권

의료적 트랜지션이 외양으로 인한 패싱성별의 변화에만 국한되어 이야기될 때 가려지는 문제로는 트랜스의 재생산권이 있다. 재생산은 첫 번째 층위에서 임신과 출산, 양육과 관련되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조건이 될 수도 있다.

우선 트랜스젠더 운동의 의제로서 성별정정 관련 예규에서 생식능력 제거를 삭제하라는 요구와, 미성년 자녀가 있는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이 승인되지 않은 사례에 대한 비판이 존재해왔다. 트랜스젠더가 법적으로 성재생산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트랜스의 재생산에 얽힌 복잡다단한 욕망은 트랜지션에 대한 욕망과 경합하기도 한다. 디스포리아 해소와 패싱을 위한 의료적 트랜지션에 너무나도 골몰한 나머지 임신이나 출산의 가능성을 전혀 고민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역시 심심찮게 발생한다. 트랜스젠더가 ‘성전환수술’로 지칭되는 의료적 트랜지션 과정을 중심으로 정의되고, 생식능력 제거가 사실상 성별정정을 위한 반강제적인 요건으로 대두되는 법적 조건 안에서 트랜스 개개인은 재생산과 관련된 자신의 욕망을 깊이 들여다보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는 것이다. 물론 어렵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에 법제도를 교묘하게 비껴나간 틈새에서 트랜스젠더퀴어 역시 재생산을 실천할 수도 있으나, 기본권으로서 법적 인정과 제도적 보장을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연구참여자들에게 재생산과 관련된 욕망이 있는지를 질문했을 때, 아이를 낳거나 기를 가능성 자체를 생각해본 적 없다는 대답이 돌아오기도 했다. 이는 한편으로는 자궁을 경유하는 임신과 출산이 여성성과 결부되어 디스포리아로 감각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능성 자체가 가로막혀 있기에 상상의 여지조차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임신과 출산의 차원이 아니더라도, 재생산은 ‘건강’한 일상 영위와 관련된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다. 이는 죽음과 맞닿아 있는 퀴어 삶이 ‘생존’을 넘어 최소한 이상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과 관련된다. 질이나 자궁 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 산부인과에 방문하는 것, 호르몬 요법을 진행하는 것, 유방처럼 젠더화된 신체일부와 관련된 건강검진을 받는 것, 공중화장실 이용이 어려워 방광염에 걸리거나 생리대 교체를 포기하지 않는 것, 이 모든 과정에서 각종 차별 및 혐오를 마주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모두 건강권 및 재생산권의 보장과 관련된다.

트랜스젠더퀴어의 신체를 의료적 개입 여부를 중심으로만 다루는 단편적인 상상력은 트랜스젠더퀴어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층적인 문제에 접근하기 어렵게 한다.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가 넓은 범주로서 서로 다른 개개인을 포함하는 만큼, 이들이 직면하는 문제 역시 복잡다단할 수밖에 없다. 트랜스젠더퀴어가 언제나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살아가야 한다면, 삶이 지속되기 어렵게 하는 규범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생존과 최소한의 생활 유지에 급급하기보다는, 트랜스젠더퀴어로서 사람답게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는 사회적인 안전망과 권리가 보장되어야만 한다.

#. 다른 이야기: 인터뷰를 통한 만남

짧은 기간 동안 이렇게 많고 다양한 사람을 만날 기회를 얻은 것은 살면서 거의 처음이었다. 나 역시 여전히 경계 위에서 고민하는 시간을 살고 있으므로, 어떤 만남은 나의 정체성과 마주하는 순간으로 다가왔으며, 어떤 말들은 내 안에서 맞부딪치면서 새로운 언어를 깎아내기도 했다. 기꺼이 시간을 내어 살아온 이야기를 전해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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