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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의 석사논문 “여성/퀴어커플의 해외 혼인신고와 법률혼을 경유한 인정의 정치”(2023)의 연구후기이자 연구내용의 일부를 담고 있다. 이 글에 인용된 연구참여자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다.
들어가며
2년 전, 나는 국회 토론회장에 앉아있었다. 2017년 육군 성소수자 군인 색출 사건에 내려진 대법원 판결과 그 이후의 전망을 논의하는 자리였다.[1] 나의 오랜 관심은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가 어떠한 미명하에 일어나며 국가가 여기에 어떻게 개입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고 이 사건을 석사논문 주제로 놓고 자료조사를 하던 차였다. 하지만 나의 주장이 기존에 군형법 추행죄를 비판적으로 다룬 연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코멘트를 받고 다시 새로운 주제를 찾게 되었다.
[1] 2022년 6월 13일,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와 관련한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2022년 4월 대법원은 2017년 육군이 위법적으로 성소수자 군인 23명을 색출하여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로 입건한 사건에서 당시 기소된 두 명의 군인을 무죄로 판결하였다.
그 즈음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멈춰있던 모든 행사들이 재개되면서 결혼식이 몰렸다. 매주 누군가가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정도로 결혼식이 일상인 날들이었지만 퀴어커플의 결혼식은 뉴스거리가 되곤 했다. 신부 두 명이 혹은 신랑 두 명이 결혼식을 한다는 이야기가 매번 처음인 것처럼, 신기한 일처럼 다뤄지는 것이 씁쓸했다. 나는 그런 퀴어커플의 결혼식 기사들을 타고 타고 흘러가다가 어떤 블로그 글을 보게 되었다. 그 글은 한 레즈비언 커플이 다른 나라에 가서 혼인신고를 한 이야기였다. 자국에서는 혼인 관계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해외에서는 여행비자를 가진 외국인으로 혼인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법적 부부가 되기 위해 국경을 건너야 했던 상황은 그렇게 나의 연구주제가 되었다.
퀴어커뮤니티에서 결혼식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지만 해외 혼인신고가 혼인의례로써 부상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2] 2015년 동성혼이 미국 전역에 법제화 되면서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괌, 하와이에서의 혼인이 가능해졌다. 2020년 동성 파트너와의 결혼식, 해외 혼인신고의 경험을 담은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김규진,2020)라는 책이 출간되면서 혼인신고와 관련된 보다 상세한 정보들이 대중에게 알려졌다. 현재는 트위터, 포스타입, 블로그에서 해외 혼인신고 경험담이 활발히 공유되고 있어 관련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 동성커플이 국경을 넘어 혼인신고를 한 역사를 추적해보면 2000년대 초반부터 이민, 국제결혼의 과정에서 혼인신고를 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친구사이, 2006). 당시의 사례집이나 기사를 읽어보면 이동의 양상이나 이주 과정에서 혼인의 시기 등은 다양하지만 한국으로 이동했을 때 법률혼 관계가 인정되지 않으면서 제반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를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글은 한국 국적을 가진 여성/퀴어커플[3]이 동성혼이 법제화된 국가로 이동하여 혼인신고를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서는 국경을 넘어 혼인신고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해외에서 받아온 혼인증명서가 이들 커플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이 글에서는 해외 혼인신고를 한 연구참여자들을 ‘여성/퀴어커플’이라고 지칭하며 제도와 관련해서는 ‘동성커플’이라는 말을 섞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밝혀둔다. 이들은 모두 법적 성별이 여성[4]이기 때문에 제도적으로는 동성커플이지만 연구참여자들 모두가 자신을 여성이나 레즈비언이라고 정체화하고 있지는 않다.
[3] 여성/퀴어커플의 의미는 여성 ‘그리고 또는’ 퀴어인, 성애적이나 친밀한 관계의 두 사람을 일컫는다. 여성과 퀴어 사이에 빗금(‘/’)을 넣은 것은 여성 ‘그리고 또는’ 퀴어인 사람들의 삶을 드러내고 다른 한편 ‘여성’과 ‘퀴어’라는 범주 사이의 긴장과 균열을 인지하고자 함이다. 또한 이 글에서는 두 사람 혹은 상대방을 지칭할 때는 성별과는 관계없이 모두 ‘커플’과 ‘파트너’라는 말로 지칭하였다.
[4] 연구를 시작하면서 성별을 제한하지는 않았지만 혼인신고를 한 연구참여자의 경우, 모두가 법적 성별이 여성으로 모집되었다. 여기에는 연구참여자를 통한 눈덩이 표집 방법의 영향, 결혼식을 포함한 혼인의례가 역사적·문화적으로 여성화된 의례라는 맥락, 퀴어커뮤니티 내에서 관계를 맺는 방식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결혼’이라는 맥락에 놓인 해외 혼인신고
연구를 시작하면서 나는 흩어져 있는 해외 혼인신고에 대한 경험담을 모았다. 트위터, 블로그, 포스타입, 웹매거진 등 여러 매체에 실린 이야기들을 하나씩 읽고 해외 혼인신고의 과정을 정리했다. 연구참여자 모집 공고를 올리는 동시에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해외 혼인신고 경험담을 나누어준 사람들에게도 직접 연락을 해서 연구를 소개하고 참여를 요청했다. 해외 혼인신고를 한 사람, 계획 중인 사람, 퀴어결혼식을 진행한 경험이 있는 웨딩 플래너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더 많은 사람들과 연락을 할 수 있었는데, 초기의 연구참여자들이 나에게 다른 연구참여자를 소개시켜준 덕분이었다. 특히 혼인신고를 위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이미 서로를 알고 있던 연구참여자들이 내 연구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주었다. 연구에 참여하게 된 동기에 대해 물으니 연구설명서의 기대효과에 쓰여있던 ‘성소수자의 가족구성권에 기여’라는 문장을 짚어준 연구참여자가 생각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이런 연구가 아직 많이 없어서 더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의 연구는 이렇게 모인 22명의 연구참여자와 함께 만들어졌다.
인터뷰 사전 조사를 하면서 나는 해외 혼인신고를 하는 사람들은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혼인신고를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혼인신고는 수많은 정보를 모으고 계획을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명확한 목적이 있지 않을까, 하고 어렴풋이 짐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이 경험이 목적과 결과를 가진 서사로 깔끔하게 설명되기는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해외 혼인신고는 단독으로 기획된 이벤트라기 보다는 결혼의 복잡한 과정에 끼인 어떤 것이었다.
처음에 해외 혼인신고의 경험을 질문하면 대답이 짧게 잘렸다. 한 두 차례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니 연구참여자와 나는 어느 순간 양가 부모님 혹은 기타 가족들에게 커밍아웃하기, 가족/친구와의 관계 단절, 결혼식 준비하기, 이미 합쳐진 살림을 옮기거나 잠시 분리하기 등의 결혼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나면 해외 혼인신고에 대한 이야기를 더 쉽게, 그리고 깊이 나눌 수 있었다. 그래서 인터뷰를 할 때마다 나는 종이 위에 선을 그어 결혼의 여러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점찍었고 과거와 현재의 점들을 짚어나가며 결혼이라는 과정 속에서 해외 혼인신고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기록했다.
한국사회에서는 결혼을 두 사람의 성애적 관계를 법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결속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방식으로 여긴다. 국가는 법적 혼인관계를 기준으로 의료결정권, 재산권, 사회보장제도 수혜권 등의 권리를 보장한다. 또한 ‘결속감’, ‘책임감’, ‘생활공동체’, ‘사랑을 기반으로 한 가족관계’ 등 결혼에 부착되어 있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의미들이 한 사회에 공유되면서 그 관계를 설명하는 효과를 갖는다. 연구참여자들은 인터뷰에서 ‘내가 선택한 사람과 가족을 꾸리고 싶은 마음, 법제도적으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가족관계를 만들고 싶은 욕구에 대해서 설명했다. 결혼이 딱히 최선의 방법은 아니더라도 현재 가족제도 위에서 불안정한 지위를 보다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결혼을 택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연구참여자도 있었다.
결혼은 결혼식, 동거, 결혼사진 촬영 등 다양한 수행으로 이루어진다. 이 의례들 중에서도 해외 혼인신고는 국가가 개입하는 법적 절차라는 점에서 다른 혼인의례와는 차이점을 가졌다. 배우자 동반 이민을 준비하는 경우, 결혼식은 했지만 더 ‘공식적이고 구속력 있는’ 관계를 원하는 경우, 사망 후 유언장의 진위 판별로 법적 분쟁이 일어날 때를 대비하여 간접증거라도 만들고자 하는 상황 등 각자가 조금씩 다르지만 해외 혼인신고는 다른 국가의 법률을 경유하여 ‘법적 문서’를 남기고자 하는 행위로써 그 의미를 갖는다.
혼인신고의 과정

그렇다면 해외 혼인신고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국가마다 조금씩 과정이 다르지만 해외 혼인신고는 보통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혼인신고지를 선택하고 자료 수집을 한다. 다음으로는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한국에서 준비해야 하는 서류를 미리 출력하거나 공증한다. 혼인신고지로 이동하여 관공서에서 혼인허가(Marriage License)를 발급받고 서약식 일정을 조정한다. 증인, 주례는 미리 일정을 예약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현지에서 혼인허가를 발급받고나서 직접 구해야 하는 국가도 있다.[5] 주례는 한국과 달리 국가에서 발급한 자격증이 있는 전문 주례가 하는 것이 일반이다. 서약식은 10-15분 내외로 진행되며 주례와 증인, 혼인을 할 두 사람이 참석한다. 서약식을 마친 후에는 관공서에서 혼인증명서(Marriage Certificate)를 발급받는다.
[5] 지역에 따라 증인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컨대 미국의 플로리다 주가 그렇다.
또한 해외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정보, 비용, 혼인신고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외국어 소통능력도 갖추어야 한다. 나의 연구참여자들은 대다수가 고학력자이며 안정적인 소득이 있고 퀴어커뮤니티에 접근성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연구참여자가 가진 사회적·경제적 자본이 해외 혼인신고를 위한 정보와 자금을 보다 안정적으로 조달할 주요한 조건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에서의 준비기간을 모두 제하고 서약식을 최대한 빠르게 치른다 하더라도 현지에 도착해서 혼인증명서를 발급받기까지의 과정은 최소 2-3일 정도가 소요된다.[6] 짧은 시간 안에 혼인신고를 끝마치기 위해 연구참여자들은 서류 출력, 일정 예약 등을 꼼꼼하게 준비한다. 하지만 이렇게 준비하더라도 현장에서는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미국령 괌에서 혼인신고를 한 송아는 서약식 일정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송아 커플은 부주지사에게 주례를 맡길 생각을 하고 괌에 왔지만 막상 관공서에서 혼인허가를 받고 보니 부주지사가 괌에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부주지사의 사무실에서는 대신 시장의 주례일정을 알아봐주겠다고 했고 당일날 사무실에서 송아의 호텔로 연락을 주었는데 송아는 그 다음날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6] 미국령 괌의 경우 면제 진술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혼인증명서 발급에만 5일이 소요된다.
(…) (송아가 말하길) “그 다음 날이 돼 가지고 이제 부주지사 사무실에 전화를 했거든요. 어떻게 된 거냐, 예약은 잡혔냐, 너네가 잡아주기로 했잖냐.” (부주지사 사무실에서 답하기를) “너네 어저께 내가 너네 호텔로 전화 엄청 했는데 너네 전화 엄청 안 받더라고 근데 OO지역 시장님 거기가 오늘 1시에 된대. 그러니까 거기 얼른 전화해 봐. 그래서 얼른 약속 잡고서 너네 결혼해!” 이렇게 된 거예요. 어떻게 그래서 얼른 전화를 해가지고 “시장님, 저희 거기 레즈비언 둘인데요. 아무튼 저희 오늘 결혼할게요.” 해가지고 그날 하게 된 거예요. _송아
송아는 바로 차를 몰고 가 ‘콩 구워 먹듯’ 서약식을 치렀다. 일이 예상한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돌아가는 비행기 표가 예약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돌발상황은 ‘법률혼 지위의 획득’이라는 이동의 목표를 무산시키거나 돌아갈 날을 미루게 만드는 걸림돌이 된다. 하지만 이런 일은 비단 송아 커플만의 일은 아니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 서약식을 하면 손에는 한 장의 혼인증명서가 주어진다. 이 때의 감정은 참으로 묘하다. 연구참여자들은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느꼈는데 하나는 성취감이고 다른 하나는 허탈함이다. 해외 혼인신고를 통해 여성/퀴어 커플은 관계에 대한 ‘국가’의 공적 승인을 받고 법적 가족이 되었음을 느끼면서 성취감을 느낀다. 한 연구참여자는 서약식날 그 모든 노력들이 눈앞에 주마등처럼 스쳤다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동시에 허탈함이 뒤따라오기도 한다. ‘그 모든 고생이 이 한 장의 혼인증서를 받기 위해서였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미국령 괌에서 해외 혼인신고를 마친 은솔이 들려준 서약식에서의 일화는 그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렇게 혼인증명서(Marriage Certificate) 받았을 때는, 이렇게 쉬운데 (한국에서는) 왜 안 되지? 이거 이게 다야? 약간 이런 생각도 들었고 진짜 이 종이가 뭐길래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고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가지고… 왔다 갔다 하면서 이제 혼인허가서(Marriage License)가 받았을 때는 진짜 와 나 진짜 인정받았어. 진짜야. 이게 약간 이런 마인드가 많이 들었어요.” _은솔
은솔의 입장에서 혼인허가는 괌에서 처음 받아보는 결혼 관련 서류였다. 때문에 이 서류를 받아들었을 때, 비록 서약식을 치르기 전이었지만 은솔은 ‘관계를 인정받았다’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서약식을 치르고 혼인증명서를 받게 되었을 때, 은솔은 그 종이 한 장을 위하여 본인이 해온 ‘고생’을 돌아보며 허무함을 느꼈다. 이처럼 서약식 날은 여러 고생을 거쳐 두 사람이 법적으로 맺어지는 특별한 날이지만 동시에 씁쓸함을 남긴다. 이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은 해외 혼인신고를 통한 ‘법적 혼인’의 위치를 보여준다. 법적 혼인이라는 ‘성취’ 뒤에 오는 허탈함은 사실 그것이 개인의 노력으로 이뤄야 하는 일이 아니었음을 드러낸다. 국가의 인정을 성취하기 위해 다른 국가로 떠나는 여정의 시작은 국적국의 사회구조적 배제로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법적 효력 없는 혼인증명서의 ‘효력’
해외에서 발급받은 여성/퀴어커플의 혼인증명서는 국내로 들어오는 순간 그 법적 효력을 잃는다. 다시 말해 이 혼인증명서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에서 혼인한 부부에게 보장하는 법적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혼인증명서는 법의 강제력이 닿지 않은 영역에서 ‘부부’임을 인정하게 하는 근거로 사용되거나 ‘국가가 법률적으로 승인한 혼인’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예컨대 혼인증명서를 토대로 항공사에서 가족 마일리지를 합산하거나 가족 경조사 휴가[7]를 부여하도록 회사에 요청하기도 한다.
[7] 법률상 경조사 휴가에 관하여는 규정된 것이 없으며 경조사 휴가는 회사 내규로 정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다만, 고용노동부에서는 표준취업규칙을 참고하여 내규를 정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한국에 돌아와 결혼식을 올린 재은의 이야기는 법적 효력없는 해외 혼인신고가 어떤 식으로 관계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잘 보여준다. 재은은 캐나다에서 올린 서약식을 촬영하여 결혼식에서 하객들과 함께 보는 시간을 가졌다. 캐나다 주례의 “legally married”라는 선언은 한국에 있는 재은의 결혼식장에서도 울려퍼졌다.
“제가 캐나다에 가서 캐나다에서 법적인 결혼식을 제대로 한 걸 찍어와서 그걸 영상으로 편집해서 보여준 것도 잘했다고 생각을 했어요. (…) 심지어 그 주례사 분이 정말 딱 집어서 얘기를 해주시거든요. 너네는 legally married(법적으로 혼인한) 커플이다 라고 되게 능숙하게 선언을 해주시는데 이게 진짜 필요하구나.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냥 진짜라고 생각을 안 하니까. 근데 직접 보고 나면 생각이 많이 바뀌는 거죠. (…) 얘네들도 진짜 실제 부부구나라는 거를 더 이제 알게 됐던 것 같고(…)”_윤주
Legally married. 엄밀히 따지면 이 말은 캐나다의 법률상 혼인관계를 이르며 국내법상으로 여전히 이들은 미혼이다. 하지만 이 영상 속 주례의 한 마디는 한국의 하객들로 하여금 재은 커플이 ‘진짜 실제 부부’라는 것을 확인시킨다.
미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고 온 예린의 이야기는 이러한 사회적 인정이 어떤 경로를 통해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예린의 파트너는 해외 혼인신고 이후에 커밍아웃을 했는데 주변에 커밍아웃을 할 때 결혼 사실을 먼저 밝혔다고 했다. 예린은 이렇게 ‘결혼해버렸다’라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 말을 못 얹는다고 하며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 왜냐면 이것은 보수적인 사람일수록 결혼은 아주 중요한 일인 거잖아요. 무조건 축하해 줘야 되는 일이고. 함부로 말을 얹지 못하고 동성 부부 관계를 인정하게 되는 효과가 있어요. 미국까지 가서 서류까지 썼어? 하면 뭐라할 수 없는 정도의 인풋이기 때문에. 그리고 전혀 사실 잘 몰라요. 약간 미국 가면 돼? (웃음) 요런 수준으로 이해를 하기 때문에 미국 가면 법적으로 되나 보다 이렇게 대충 알아 듣는 거죠.”_ 예린
예린이 말하는 보수는 “가족을 만들려면 결혼을 해야지”와 같이 결혼을 가족 구성의 중심 원리로 바라보는 시각을 일컫는다. 결혼을 했다고 하면 ‘무조건 축하해줘야 하는 일’이 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앞선 연구참여자들의 사례는 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어떠한 맥락과 전제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가족이 혈연과 혼인 관계로 정의되고 이것이 법을 통해 강력하게 하나의 규범으로 작동하는 사회에서 다른 국가가 법적으로 승인한 혼인관계는 ‘인정할 만한 것’으로 인식된다. 국가의 인정을 받은 법률상의 가족을 중심으로 법 밖의 가족/관계를 차별하는 사회적 규범의 작동은 역설적으로 다른 국가의 법률혼을 통해 ‘법적 가족’이 된 여성/퀴어커플들을 가족으로 인정하게 하는 통로가 된다.
나가며: 우리가 ‘증명’하지 않아도 가족일 수 있다면
여성/퀴어커플의 해외 혼인신고는 동성혼이 법제화 되어 있지 않은 한국의 상황과 근 10년간 빠르게 이루어진 해외 여러 나라의 동성혼 법제화, 그리고 사회적·경제적 자본을 가진 개인의 실천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우리는 해외 혼인신고를 통해 ‘누가 누구와 가족이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국가 권력의 임의성과 상대성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법’이 가족에 대한 규범을 형성하고 작동하게 만들었던 상황은 역설적으로 해외 혼인신고를 통해 여성/퀴어커플이 ‘법적 부부’라는 것에 대한 사회문화적 인정을 작동시키는 조건이 된다.
한편 이 인정이 국가의 권력을 경유하면서 구성된다는 점에서 해외 혼인신고는 여전히 ‘인정하는 주체’로서의 국가와 ‘증명해야 하는 자’로서의 시민의 구도를 지속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권리를 얻기 위해 국가에 관계를 증명하는 그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구태여 증명서를 받아오지 않아도 우리가 ‘가족’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법과 제도 앞에 관계를 증명받지 않아도 관계를, 삶을 보장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글의 뒤에 길고 긴 물음표를 달아본다.
참고 문헌
- 김규진(2020).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위즈덤하우스.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친구사이(2006). 『동성애자 가족구성권 자료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