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2030 여성 ADHD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진단경험을 통한 정체성과 지식을 중심으로

박수려

1. 들어가며

한국 사회에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DHD)라는 질병은 낯선 이름은 아니다. 과잉행동과 부주의, 충동성을 대표적인 특성으로 갖는 신경발달장애로 규정되는 ADHD는 1980년대 초반에 처음 한국에 등장하였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주의력 결핍이 소아청소년 시기의 학습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관점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이정연, 2022).

하지만 2000년대와 201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학계에서도, 그리고 미디어에서도 ‘여성 ADHD’는 특별한 주목을 받지 않았다. ADHD는 전형적으로 남성, 특히 남성 아동에게 많이 진단되는 정신장애였기 때문이다. 1998년과 1999년 한 대학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진료한 7세~12세 아동 중 남아는 108명이었고, 여아는 12명이었다(정영철 외, 2001). 20004년의 서울시 조사에서 초등학생의 ADHD 남녀 비는 2:1이었다(양수진 외, 2006).

201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여성 ADHD는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활발한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2011년 513명이었던 2030 여성 환자 수는 2022년 25,267명으로 증가하였다.[2] 2010년대 후반과 2020년대 초반, 전체 ADHD 환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였는데[3], 성인 여성에서의 증가가 특히 두드러지는 것이다. 전반적인 진단 확장 추세 속에서도 가장 빠른 증가 폭을 보인 성별/연령 집단은 30대 여성이었으며, 20대 여성이 그 뒤를 이었다. 나는 한국 사회의 ADHD 진단 확장과 그 구성을 연구하던 과정에서, 2030 여성의 ADHD에 주목하게 되었다.

한국의 2030 여성들은 어떤 계기로 인해, 어떤 과정을 통해 ADHD를 진단받고 있을까? 남성-아동에게 주로 진단되었던 ADHD가 진단 범주를 성인-여성으로 이동시키는 현상을 어떻게 분석해야 할까?

2. ‘저성과의 의료화’를 넘어서

ADHD는 대표적인 의료화의 사례로서 자주 비판받는 질병 중의 하나이다. 의료화란, 기존에 의료적 문제가 아니었던 현상이 질병 또는 장애로서 재정의되어, 의학적 개입의 대상이 되는 과정을 지칭한다(김환석, 2014). 의료화 관점에서 ADHD는 ‘의학적인 문제가 아닌 것을 의학적으로’ 해결하는 의료화의 과정을 거쳐 진단받고 치료하게 된 질병이다. 또한 ADHD의 경우 의학적 치료의 대상이 되는 범주가 지속적으로 확장되었다는 사실이 의료화의 전형으로 다루어졌다.

아동과 성인의 ADHD, 그리고 전 세계적인 진단 확장을 연구한 의료사회학자 피터 콘래드는 소비자 단체와 환자들의 자가 의료화에 주목하였다. 그는 의사가 아니라 잠재적 환자군이 의료화의 동력을 제공하였고 광범위하게 의료화를 촉진하였음을 밝히며, 성인기 ADHD 진단 확장의 경향을 ‘저성과의 의료화’라고 명명한다. 성인기 ADHD 진단을 촉진하는 문제가 과잉행동이나 부주의 그 자체보다는, 업무 완수와 성과에 대한 인식에 달려있으며, 사람들은 성과를 개선하기 위해 ‘의학적 도움’을 구한다는 것이다(Conrad, 2007;2018, 141).

나는 논문에서 ‘성인 ADHD’라는 의학적 설명에 도달하기까지 2030 여성 집단이 ‘의료화’라는 관점으로 완전히 포착될 수 없는 2030 여성들의 풍부한 경험에 집중하고자 하였다. ‘저성과의 의료화’라는 콘래드의 분석은 성인 ADHD 분석에 있어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저성과’라는 설명은 진단에 도달하기까지의 개인의 경험을 선형적으로 묘사한다. 한국 사회에서 ADHD를 진단받는 여성들이 단순히 성과를 높이기 위해 ADHD 진단을 받고, ADHD 약을 먹는다는 것일까? 실제로 이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진단에 도달하게 되는지, 어떤 범주와 기준에서의 ‘저성과’인지, 자신이 의학적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판단하게 되는 계기는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저성과’라는 표현에 함의된 개인의 경험을 제대로 다룰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과정에서 진단에 도달하기까지의 사회적, 지식적 활동 상호작용과 당사자 집단의 연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3. 여성 ADHD 정체성과 지식의 구성

그렇다면 ADHD 진단 경험에서의 젠더화, 그리고 ADHD 환자들이 자신을 ‘여성 ADHD’로서 정의하는 과정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여성 ADHD 진단 확장의 과정에서 중요한 매듭은 1) 젠더 편향으로 인한 ADHD 진단 소외 2) 조용한 ADHD이다. 첫 번째는 여성 아동이 적게 진단받은 상황이 젠더 편향으로 인한 ‘진단 소외’의 결과라는 주장이다. 이는 ADHD 증상에 성차가 있으며, 여성 ADHD의 특성이 충분히 연구되지 않거나 진단 기준에 미흡하게 반영된 젠더 편향으로 진단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성의 경우 사회적인 성역할로 인해 자신의 ‘ADHD적인 면모’를 드러내지 않고, 이를 내재화시키기 때문에 진단에서 누락되기 쉽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 ADHD의 존재가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임상 실행에서의 젠더 편향으로 인해 진단에서 누락된 여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임상심리학자이자 당사자로서 여성 ADHD의 경험을 공유한 신지수의 수기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2021) 등이 ADHD 진단의 젠더 편향에 대한 비판을 이끈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조용한 ADHD’는 ADHD의 유병률 성차와 성인 여성 ADHD 진단을 다룰 때 핵심적인 문제이다. ADHD의 유형 중 하나인 ‘주의력결핍 우세형’의 ADHD를 통칭 ‘조용한 ADHD’라고 부르는데, 이 유형의 경우 눈에 띄는 행동이 적기 때문에 어린 시절 진단에서 누락되기 쉽다. 대부분의 소녀에게 ADHD는 내재화 장애, 즉 다른 사람들이 쉽게 관찰할 수 없는 방식으로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장애로서(Nadeau et al, 2015;2023), ‘상대적으로 조용하게 드러난다’는 점이 당사자 집단에 의해 주목받으며 진단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당사자 진단 경험에서 ADHD라는 진단명은 과거의 경험을 해석하는 틀이자,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등장한다. 어린 시절 진단받지 않았던 ADHD 성인 중 많은 수가 자신에 대한 비관을 내재화, 강화하며, 이는 장기적인 삶에 영향을 미친다(Ramsay, 2019:166-8). ADHD 진단은 당사자들이 지속적으로 고민해 온 어려움을 이해하고, 설명하며,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열어준다. ADHD 진단을 받고 필명으로 진단 경험을 교지에 실은, ‘살구’의 사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내 특성이 질환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꽤 큰 위안을 얻었다. 나에게 ‘성인 ADHD’로 진단받은 것은 그런 의미였다. 성인 ADHD에 대해 알지 못했을 때는 스스로가 정말 미웠다. (…) 자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혼자 머리만 싸매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살구)

이전의 경험을 ‘ADHD’라는 명명을 통해 해석하는 과정에서 당사자들은 자신의 과거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게 된다. 진단 이전에는 게으르고 무기력한 자신을 탓하고 다그쳤다면, 진단 이후에는 자신의 고통, 자책, 우울을 ADHD의 증상 혹은 결과로써 받아들이게 된다.

진단 직후에는 약물 치료에 대한 기대 역시 높은데, 약물치료는 지금까지와 다른 삶, 나의 변화를 돕기 위한 수단이며, 평생 이어져 온 타인의 부정적인 평가와 자기혐오를 벗어날 가능성으로서 다루어진다. ADHD 당사자가 약물치료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의 한 사례로서, 『젊은 ADHD의 슬픔』(2021)의 작가 정지음의 사례를 살피면 다음과 같다. 이때, ADHD 약물치료는 인지 향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청소년기 학교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문제없는 구성원이 되기 위한 것이다.

ADHD 약을 먹는다고 갑자기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이 되진 않았겠지만 누군가의 상냥한 친구나 딸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세월이 지난 후 ADHD의 가능성을 긍정하게 되었지만, 10대 시절에 한해선 늘 후회가 남았다. 놓친 가능성과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이 언제고 현재의 최선을 깎아내렸다. (정지음, 2021:146-9)

그러나 이렇게 진단명에 기반한 ADHD 정체성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자아가 다양하고 복잡(신지수, 2021)’하며, 모든 특성을 증상으로 설명하는 일이 ADHD를 데리고 살아가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약물치료가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ADHD 당사자들이 치료를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과정으로 인식하게 된다(민바람, 2021). 진단 이전에 경험했던 자책, 체념, 우울, 불안, 무기력 등을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ADHD라는 진단명에만 제한하지 않고 자신의 상태를 더욱 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일상에서의 대처 기술을 접하고 연습하면서,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스스로에게 적용하면서, 이전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다르게 대처할 수 있는 자원을 만들어 나간다.

결과적으로 진단과 치료의 과정을 통해 ADHD 당사자들은 ‘ADHD 정체성’과 ‘ADHD 치료와 대응 지식’을 구성해 나간다. 30대에 ADHD를 진단받은 ‘해수’가 자신의 일상을 따라가는 형태로 작성하여 브런치북을 통해 공개한 <나의 ADHD 사용설명서>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사자 커뮤니티, 블로그, SNS,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으로 출간된 당사자 수기 등에서 반복적으로 당사자로서 작성한 ‘인지행동지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사자들의 자조(Self-help)에 기반하여 구체적인 맥락 위에서 작성된 대처법은 다른 ADHD 당사자들에게 유용한 참조가 된다. 자신이 경험하는 상태를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과 공유하고, 다른 ADHD인들을 위하여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는 과정을 통해 이들은 연대를 구성한다.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참여하거나, 자신의 치료 경험과 일지를 세세하게 밝히는 등의 행위가 넓은 의미의 자조(Self-Help) 모임을 형성하고, 연대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당사자들이 공유하는 지식은 ADHD 인지행동치료지침의 자료, ADHD와 공존장애에 대한 치료 등, 다양한 배경과 지식을 참고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성인 ADHD로 분투해 온’ 경험이 없었다면 이들의 지식은 생산되지 않았을 것이다.

4. 나가며

나는 2030 여성 집단의 진단 경험을 중심으로 당사자 집단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질병이 구성되는 과정을 다루었다. 한국 사회의 여성 ADHD의 구성은 2030 여성 당사자 집단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여아로서’ 어린 시절 진단받지 못했던 경험에 주목하고, ‘여성이기 때문에’ 진단받지 못했던 젠더 편향을 비판하고 진단을 장려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들은 분명, ‘의료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진단받은 개인이 수동적인 대상으로서만 의학적 진단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단명을 수용하되 넘어서는 과정을 통해 의료화로만 설명할 수 없는 ‘ADHD 정체성과 ADHD 지식’을 구성한다고 보았다.

당사자들은 진단과 치료의 과정을 겪으면서 ADHD를 삶의 일부로서 받아들이고 이를 다루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당사자 집단이 ADHD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의학적 개입을 배제하지도, 의학적 개입에 완전히 의존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적극적인 진단 경험과 대처 기술의 공유를 자원으로 삼아 자신을 진단 이전과 다른 상태로 변화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변화는 한편으로는 ‘ADHD에 대한 치료’이지만 동시에 ‘ADHD를 데리고’ 함께 살아가는 과정으로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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