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라는 이름으로: 공학 전환 반대 시위로 시작된 동덕여대 학생들의 투쟁에 부쳐 (1)

소양

1. ‘여대’라는 ‘문제’

동덕여자대학교를 졸업한 페미니스트로서,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시위가 본격화된 지난해 11월 11일 이후 안팎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여대를 졸업한 뒤로 잊고 살았던 질문들도 떠올랐다. 한국 사회에서 ‘여대’ 혹은 ‘여대생’이라는 기표가 어떠한 사회적 기표로 떠돌고 있는가, 그리고 여대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외부’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어떠한 왜곡이 일어나는가 하는 문제였다. 하나의 투쟁이 특정한 프레임 속에서 어떻게 단순화되는지의 문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락카칠’된 교정을 직접 보았을 때, 나는 학생들이 분노를 표현한 방식의 과감함에 놀랐고 나는 동덕여대에서 이렇게 치열하게 투쟁적이었던 적 있었는지 자문했다.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라는 시위 슬로건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불통 행정으로 학사 개편을 강행해 온 학교에 대한 완강한 반대의 표현임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동덕여대를 다니면서 나 또한 매해 학교에 맞서 싸웠던 기억이 (여성학 과정의 일방적 폐지, 학과 통폐합 저지, 교수 성폭력 문제, ‘알몸남’ 사태 등…)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위 초반에 내가 체감한 ‘외부’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가장 먼저 언론이 ‘락카칠’과 취업 박람회장 점거 등을 ‘폭력 시위’로 규정했다. 대부분 언론은 학생들이 취업박람회를 거부하고 교정에 락카로 적어 넣어야 했을 정도로 긴급하게 말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았다.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동덕여대 학생들을 ‘폭도’로 폄훼하며, 동덕여대 학생들에 대한 조롱을 ‘도파민’ 삼았다. 소셜미디어에서는 학생 운동의 경험자들조차 시위에서 나온 몇몇 문구와 노련하지 못한 시위 방법을 꼬집었다. 평소 동료라고 생각해온 페미니스트 중 몇몇도 동덕여대를 필두로 시작된 시위가 ‘여대’의 이름으로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 살피기보다, 과거의 문제적인 ‘여대’ 이슈들을 다시 소환하며 동덕여대 시위를 향한 판단을 이미 마친 듯한 모습을 보였다. 2016년의 이화여대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반대 시위, 2020년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학생 입학 철회 사태, 2022년의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시위에 대한 학내 갈등이라는 각각 맥락을 가진 문제들이 여대에서 일어난 일들이라는 이유로 동시에 불려 나왔고, 심지어 ‘여대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소환되기도 했다.

나는 동덕여대 시위 초반부터 이것이 ‘여자대학’의 일이기도 하지만 동덕여대가 가진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동덕여대 시위가 촉발된 표면적인 계기는 ‘공학 전환’에 대한 반대지만, 대대적인 시위를 가능하게 한 즉각적인 분노의 배경을 보면 학교의 비민주적 의사결정 구조와 불통 밀실 행정, 학사 제도 개편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다. 좀 더 들여다보면, 이는 3대 족벌경영 사학비리에 저항해 온 ‘민주 동덕’의 오랜 투쟁과 연결된 투쟁이기도 하다. 

2. 이것은 동덕여대의 투쟁이다

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의 월곡 캠퍼스와 혜화 캠퍼스 공연예술센터 코튼홀, 청담 디자인연구센터를 다원화 캠퍼스로 가지고 있는 동덕여대는 재적학생 수 8,000명 남짓의 학교로, 서울의 대학 중에서는 유일한 중형대학이다. 2025년을 기준으로 재단인 동덕학원 창학 115주년, 동덕여자대학교 개교 75주년이 되었다. 동덕여대 교화인 목화를 의인화한 마스코트 ‘솜솜이’는 학우들이 서로를 부르는 별명이기도 하다. ‘락카 시위’와 ‘과잠 시위’, ‘근조화환 시위’ 등으로 11월 11일 본격화된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운동은 월곡 캠퍼스뿐 아니라 세 캠퍼스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11월 12일 백주년기념관에서 예정되어 있었던 취업박람회는 학생들의 거부와 점거로 진행되지 못했고, 세 캠퍼스에서의 점거와 수업 거부로 이어졌다.

2024년 11월 7일, 총학생회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공학 전환 논의가 시작된 정황이 학내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알려지자 학생들은 크게 반발했다. 다음 날인 11월 8일 총학생회의 “공학 전환 반대 및 철회 요구” 연대 서명이 시작되었고, 학내 자치기구들도 대자보를 통해 공학 전환에 대한 반대를 빠르게 표명했다. 11월 10일부터는 동덕여대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 사이렌에서 공학 전환 반대에 대한 외부인도 참여 가능한 개인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11월 11일에는 ‘락카 시위’와 ‘과잠 시위’, ‘근조화환 시위’, ‘트럭 시위’ 등과 함께 전면적인 수업 거부가 시작되었다. 11월 12일 백주년기념관에서 예정되어 있던 취업박람회는 학생들의 점거로 진행되지 못했고, 같은 날 오후에는 시위 이후 학교 홈페이지에 업로드된 첫 번째 글인 김명애 총장의 “공학 전환 논의 및 폭력사태에 대한 입장문”이 게시되었다. 졸업생 연대는 온라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비난 여론과 언어폭력에 정당성을 더하는 총장의 입장문을 규탄하는 반박문을 발표했다.

최초로 올라온 총장 입장문을 다시 보면 사태 초기부터 대학 본부가 학생들의 질의에 답하기 위한 소통 창구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사실을 호도하여 학생들에 대한 악의적인 프레임을 만들어냈음을 알 수 있다. 김명애 총장은 학교가 ‘밀실에서 공학 전환을 도모하고 있다’는 학생들의 지적에, “아직 정식 안건으로조차 상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지만, 동시에 2023년의 9월 대학비전혁신추진단 회의의 디자인대학과 공연예술대학의 발전 방안에 공학 전환 사안이 포함되어 있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총학생회와의 면담에서 처장단의 보인 입장도 이와 유사하다. 공학 전환은 정식으로 논의된 적 없이 아이디어 수준에 그친 안건이지만, 공학 전환 논의를 철회하고 학생들에게 사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동덕여대 본부는 11월 21일 총학생회와의 2차 면담에서 공학 전환 논의를 중단하겠다고 말하고 이를 기사로도 내보냈으나, 11월 25일 진행된 제3차 면담에서는 ‘남녀공학 전환 논의 철폐’는 약속한 적도 없고 약속할 수도 없다며 학생 시위를 두고 ‘불법’과 ‘법적 조치’라는 말로 겁박했다. 11월 28일 동덕여대 본부는 김명애 총장과 처장단의 명의로 학생들의 본관 퇴거 단행과 업무방해 금지를 요청하는 가처분 신청서를 서울북부지방법원에 제출했으며, 11월 29일에는 공동재물손괴·공동건조물침입·업무방해 등 6개 혐의로 21명의 학생을 고소했다. 12월 19일 제5차 면담에서 동덕여대 학측은 공학 전환 공론화위원회 설치를 제안했으나, 학생들에 대한 경찰 고소를 취하하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지난 몇 년 동안 학생 의견 수렴 없는 일방적인 학사 개편 문제를 반복적으로 겪어왔다. 이러한 경험은 동덕여대 학생들의 학교의 비민주적 의사결정구조와 불통 행정으로 인한 분노와 대학 본부를 향한 불신의 배경이기도 하다. 2024년 3월 새학기에는 상경계열 학사제도 개편으로 경영학전공, 국제경영학전공, 경제학전공의 통폐합이 있었다. 총학생회에서는 비민주적 학사제도 개편을 규탄하기 위한 연대 서명과 비상 집회, 대학평의원회 피케팅 등을 진행했으나, 대학평의원회에서 의결권을 가진 학생 대표는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 2인뿐이었기 때문에, 개편안은 학생들의 반대 의견과 상관없이 가결되었다. 거슬러 올라가서, 2021년에도 독일어 전공과 프랑스어 전공이 유러피언스터디즈학과로 통폐합된 전례가 있었다. 2021년도 입학한 신입생들은 입학 직후에 학과 통폐합 사실을 통보받아야 했다. 커리큘럼과 전임 교원 충원이 약속되었으나, 여전히 전임 교원이 부족하고 전공 필수 수업이 충분히 열리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동덕여대는 지난 10년간 8번의 학생총회를 성사시켰다. ‘공학 전환’ 안건이 논의된 2024년 학생총회에서는 재학생 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973명이 모여 찬성 0명, 반대 1,971표의 99.9%로 부결되는 기염을 토한 바 있다. 또 다른 안건으로 기권 1명을 제외한 1,932명 찬성이라는 압도적인 찬성표를 받고 가결된 총장직선제 또한 동덕여대 학생들의 오랜 염원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동덕여대 대학 본부는 “비정상적 상황과 폭력 사태 속에서 지난 20일 진행된 학생총회는 정상적인 절차로 보기 어렵다”라며 학생총회 결과를 묵살하고 “학내 정상화를 위해 폭력사태, 교육권 침해, 시설 훼손 및 불법 점거에 대해 법률적 조치를 포함한 모든 대응을 단호히 실행해 학교를 지켜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학생총회를 통한 압도적인 반대 의사의 표현까지도 불수용하는 것이다.

동덕여대는 2003년 동덕 민주화 투쟁으로 사퇴했던 비리 총장이 2015년에 이사장으로 돌아온 학교, 학교 법인 설립자 논쟁과 친일 설립자 행적 미화, 3대 족벌 사학재단의 세습경영과 비리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던 학교이다. 적립금이 사립대학 상위 10위 안에 들어갈 정도로 학교 규모에 비해 적립금 순위가 높고 교육비 환원율이 낮아서, 학생총회마다 열악한 교육 환경 개선에 대한 요구가 끊이지 않았던 학교이기도 하다. 2023년에는 교내 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26일간의 본관 점거와 1500명이 모인 추모 촛불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기습적으로 이루어진 학과통폐합 등 비민주적 대학 운영 때문인시위도 매해 꾸준히 진행되어왔다. 동덕여대 시위에서 학생들의 분노는 꾸준한 문제 제기에도 소통에 응하지 않은 대학 본부의 비민주적 태도와 학생 보호의 부재라는 상황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3. ‘여자대학’은 어디인가?

동덕여대에서 시작된 공학 전환 반대 운동은 다른 여자대학들에도 들불처럼 번져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학교에는 비민주적 공학 전환 예정이 있는지 묻게 했다. 그 과정에서 2025년 신설되는 국제학부에 남학생이 입학하게 된 성신여대와 성인학습자 전형과 국제학부에 남성도 입학할 수 있도록 학칙이 바뀐 광주여대에서 시위가 점화되었으며, 서울여대에서는 교수 성폭력에 대한 항의로 ‘락카 시위’가 시작되었다. 모든 여자대학이 공학으로의 전환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덕성여대와 숙명여대에서는 총장이 나서서 여대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겠다고 공언했으며, 한양여대는 총학생회가 공학 전환 진행 의사가 없다는 학생처의 입장을 확인하고 공표했다.

학생들의 의견 수렴 없이 검토된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 시도는 한국 사회에 ‘여대’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을 불러왔고, 여대 학생회들의 전례 없는 빠른 지지 성명 발표와 함께 여대 구성원들을 ‘여대’라는 정체성 아래 결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동덕여대를 비롯한 여대들의 공학 전환 논의는 공학 대학의 총여학생회들이 페미니즘 대중화에 대한 ‘백래시’로 공격의 대상이 되어 연이어 사라진 것에 비견되기도 했다. 동덕여대가 ‘뚫리면’ 다른 여대들도 도미노처럼 우르르 공학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일각에서는 정부개입설까지 제기되었다. 여자대학의 공학 전환을 반여성적 탄압으로 해석하는 이러한 입장은 여대의 공학 전환 반대 운동을 ‘여성 의제’로 만들었다. 

동덕여대의 상황이 기사화되어 외부에 알려지기 전이었던 11월 8일, 이화여대 학관에서는 ‘여성혐오와 여자대학, 그 변화의 시작’이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기사 보기). 같은 시간 동덕여대 교내에서는 대학 본부의 비민주적 공학 전환 시도에 대응하기 위해 “여성 교육을 통한 교육입국”이라는 대학의 창학 정신을 들어 여대의 존재 의의를 말하는 학생자치기구들의 대자보가 붙고 있었다. ‘여성혐오와 여자대학’ 토론회에서 나임윤경 연세대 인류문화학과 교수는 대학 서열화나 ‘입결(입시 결과)’에서 벗어난 여대들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고 한다. “이화여대의 여대 기표 선점”과 “이화여대, 숙명여대의 리딩 유니버시티(선도적인 대학)로서의 역할” 문제도 지적되었다(기사 보기).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에 여대 학생회들이 대대적인 지지를 표명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화의 학생자치기구들은 동덕여대 사태에 대한 공식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 11월 17일 이화학보 편집국장의 논설로 동덕여대 시위가 제기한 ‘여대 소멸’의 문제가 처음 거론되었다. 11월 21일에는 이화여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이하 ‘학소위’)에서 처음으로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를 위한 연대 성명문을 발표했다. 이틀 후인 23일 학소위는 학내 독립기구로서 학생 사회 여론과 대립하는 의견을 내놓을 수 있다는 입장문을 추가로 발표했다. 같은 날 이화생활도서관은 학소위 성명문에 연대를 전하는 자보 “지금 이화는 변화가 시작되는 곳이 맞는가?”를 통해 “이화라는 이름을 애지중지 아껴서 대체 어디에 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화여대 내부에서 이화의 이름의 쓰임을 두고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트위터 타임라인에서는 여대의 대규모 시위가 탄핵을 불러온다는 평행이론이 제시되면서 이화여대의 이름이 이미 빈번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박근혜 탄핵의 시초에 2016년의 이화여대가 있었던 것처럼 2024년의 정치적 흐름 속에는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 반대 운동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이른바 ‘밈적 사고’였다. ‘같은’ 여대의 대규모 시위와 비교했던 데에는 동덕여대 시위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지지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덕여대 시위가 지닌 쟁점이 더 많이 알려져야 했던 시점에 이화여대의 이름이 더 자주 호출된 것은 동덕여대 시위의 맥락을 가리기도 했고 동덕여대 시위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오해와 혼동에서 나는 사람들이 ‘여자대학’이라고 말할 때의 그 ‘여대’는 과연 어디인지 묻고 싶다. ‘여자대학’이라는 공간과 그 구성원인 ‘여대생’은 어떻게 상상되고 있는가? 동덕여대 시위를 둘러싼 토론에는 변화하는 ‘여자대학’의 사회적 의의와 지위의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 여대가 존립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정당성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지켜져야 하는 여자대학은 하나의 균일한 대문자 ‘여자대학’의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소위 이름 있는 대학의 이름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 반대 운동이 보여주는 것처럼, 여대를 둘러싼 맥락은 훨씬 복잡하다. 국내 대학 진학률이 70%가 넘고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의 대학 진학률을 앞지른 시대에 교육 기회에서의 성평등은 이미 달성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한편으로는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 소멸의 위기에서 여대가 예외일 수 있는지, 혹은 다른 공학 대학들과의 경쟁에서 어떠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도 질문의 대상이다. 대부분이 ‘인서울’에 해당하는 여대가 학벌주의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특권적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도 제기되었다. 대학 서열화의 논리는 여대들 사이에도 작동해서,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 소멸의 문제가 여자대학 사이에서도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논평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많은 질문들 속에서 지금 ‘여자대학’은 어디에 있으며, ‘여대’의 이름은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가? 

(2편에서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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