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캠’은 어떻게 여성 BJ의 자리로 구성되는가?

신성연이

1. ‘여캠’이라는 여성혐오 현상

아프리카TV(지금의 숲TV) 등의 인터넷 개인방송 플랫폼에서 송출되는 여성 BJ들의 방송, 특히 ‘여캠’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방송은 대체로 흥겹고 밝은 분위기다. 짧으면 서너 시간, 길면 하루종일 방송이 이어지는 동안 BJ는 시청자들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친밀감을 표현하고, 리액션 댄스를 비롯해 룰렛이나 뽑기 등의 장치로 후원금을 얻는다. 방송의 흐름이 점차 고조되며 시청자들의 환호와 후원금이 만발하고, BJ가 그날의 목표치로 설정한 후원금 총액 달성에 다다르는 것이 실시간으로 확인된다.

SNS 등의 미디어에서 유통되는 여성 BJ에 관한 재현은 주로 이런 풍경이다. 생일을 맞이한 BJ가 6천만 원에 달하는 후원금을 받았다는 기사는 그가 “인형 같은 외모와 글래머러스한 몸매” 덕분에 큰돈을 쉽게 벌어들였다고 암시하고(기사 보기), 그보다 좀더 노골적인 어조의 기사는 “몸에 완전히 밀착되는 원피스”를 입고 춤을 춰 한 달에 2억 원을 벌었다고 설명한다(기사 보기). 미디어를 타고 흐르며 구성되는 여성 BJ에 관한 담론에서 이들은 ‘여캠’으로 명명된다. 이때 ‘여캠’은 성적 볼거리, 그리고 이로써 큰돈을 쉽게 버는 일종의 디지털 성 노동자다. 

나는 이 연구에서 ‘여캠’이 ‘캠 방송을 하는 여성’을 가리키는 중립적 단어가 아니라, 여성 BJ의 이상적 형상을 제시하고 규율하는 담론의 이름이라고 주장한다. 인터넷 개인방송 플랫폼의 첫 화면에 등장하는 여성 BJ들의 방송 제목과 썸네일이 천편일률적이라는 비난, 여성 BJ들은 콘텐츠 없이 신체 이미지만으로 후원금을 얻는다는 멸시는 ‘여캠’ 담론의 지배적 효과에 관한 반증이다. ‘여캠’은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위계를 부여해 등급을 나누고 그에 맞춘 태도를 보이는 것이 합당하다는 가부장제의 신념, 곧 여성혐오를 근간으로 제시되는 여성 BJ의 제자리다.

2. 시청자 공동체의 ‘여캠’ 담론

인터넷 개인방송은 시청자의 존재 없이는 성립 불가능한 매체다. 시청자들과의 상호작용은 BJ가 자신의 방송을 브랜딩하고 수익을 얻는 절대적 바탕에 가까운데, 이것의 막강한 영향력은 방송과 채팅과 후원금 등의 핵심적 기술이 실시간으로 구현되는 미디어 환경을 기반으로 발휘된다. 쉽고 빠른 미디어의 형식이 수용자들을 수동적 위치에서 능동적이고 참여적인 위치로 전환하게 해 특정한 참여와 공유의 문화를 이끌어낸다는(김수아, 2021) 분석은 인터넷 개인방송의 핵심 참여자인 시청자들의 위상을 설명한다. 이처럼 방송의 성패를 결정하는 시청자 공동체가 ‘여캠’ 담론을 구성한다. 다시 말해, ‘여캠’은 화면에 송출되는 한 명의 BJ가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아니라 시청자 공동체의 관리와 감독 아래에서 구성되는 노동의 결과다.

‘여캠’에게는 시청자의 성적 대상으로서 순종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예컨대 한 시청자는 방송에 입장하자마자 BJ에게 골반이 보이도록 일어서라고 대뜸 지시했고, 다른 시청자들은 그가 BJ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잘된 일이라고 기뻐하며 동조했다. 또 다른 방송에서 시청자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따르지 않는 BJ의 태도를 불만스러워했다. 한 시청자는 언짢은 이유를 “모두가 해달라고 하는데…”라는 말로 간단히 전달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두 사례 모두에서 시청자들은 원하는 바를 얻어냈다. 여성 BJ를 ‘여캠’이라는 제자리에 정박시키려는 시청자 공동체는 이처럼 BJ들이 인격을 갖춘 인간임을 부정하고, 방송 진행자로서의 자율성과 역량 발휘를 억지한다. 이처럼 여성 BJ를 ‘여캠’으로 환원하려는 끊임없는 시도가 시청자 공동체의 ‘여캠’화 전략이고, 이것의 집행에는 실시간 채팅과 후원금 등의 기술 요소가 이용된다.

신체 노출 규범을 준수하는 것 역시 ‘여캠’의 역할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여캠 바지’에 관한 명시적 요구다. ‘여캠’ 바지[1]는 시청자 공동체가 제시하는 여성 BJ의 이상적 신체 규범으로, 이것을 충실히 준수했다고 판정된 BJ에게는 “ㅓㅜㅑ”[2] 등의 집단적인 환호와 후원금이 전송된다. 별풍선이 ‘터지는’ 순간은 시청자 공동체의 ‘여캠’화 집행이 목표를 달성한 순간이다.

‘여캠’ 규범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BJ에게는 “갈통”[3] 등의 채팅으로 조롱과 불만이 전달되는데, 이것은 집단적인 온라인 괴롭힘을 일컫는 사이버 몹(cyber mobbing)[4]의 양상을 띤다. 시청자 공동체가 발휘하는 집단성은 ‘여캠’화 전략 집행의 핵심 요소다. ‘여캠’을 요구하는 메시지들이 집단적으로, 한꺼번에, 와르르 쏟아진다. 사이버 몹의 공격 효과는 채팅 하나하나에 담긴 표현만이 아니라 집단성으로 발휘된다. 이때 BJ는 ‘채팅창 얼리기’ 등의 기능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시청자들의 메시지를 차단하는 것은 더 위협적인 공격으로 격화될 가능성을 만든다는 면에서 선택하기 쉽지 않다.

시청자 공동체는 여성 BJ의 소비자로서 ‘여캠’화 집행을 정당한 ‘권리’로 보유한다고 믿는다. 경제적 보상을 지불하므로 대상화와 폭력이라는 문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 성인과 성인 사이의 필요를 합리적으로 거래할 뿐이라는 인식은 BJ에 대한 더욱 모욕적인 여성혐오를 정당화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3. 여성 BJ들의 ‘여캠’ 경험과 저항의 가능성

다수의 시청자가 한 명의 BJ를 대상으로 집행하는 ‘여캠’화 전략은 때로는 환호로, 때로는 멸시로 나타나지만 이것은 표현의 차이일 뿐 근본적으로는 ‘여캠’ 규범의 준수를 요구하는 일관된 반응이다. 실시간 방송에서 이 반응들은 매순간 엎치락뒤치락한다. 이를 기본적인 노동 환경으로 둔 여성 BJ들은 시청자들의 요구와 반응을 감당할 만한 수준으로 조절하기 위해 방송 규칙을 만들어 공지하기도 하지만[5] 가장 효과가 있는 것은 ‘여캠’의 표현규칙을 준수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여캠’화 집행의 장면들에서 BJ의 저항이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다. 오히려 BJ와 시청자들은 욕설과 비속어를 섞어 대화하고, 서로 면박을 주고받기도 하는 등 마치 친구 사이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연구참여자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거에 익숙해져 있어요. 여자 BJ들은. 그리고 여기 문화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는 쿨하다, 성격 좋다, 라는 걸로 조금, 그렇게 굳어져 있어요.” (B)

“얼굴 보고 ‘좆같이 생겼네’ 이런 것들은 놀래지도 않아요. 처음에야 뭐 ‘좆같이 생겼네’ 그러면 헉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그렇게 상처받기도 하는데, ‘저 얼굴 다 뜯어고쳤네’ 하면은 코밖에 안 했어, 그냥 그래버리고. 그러면은 ‘다 고쳤잖아’, 그러면은 돈 줘봐, 내가 다 고치고 와서 얘기해줄게, 그렇게 되고, 뻔뻔해지고.” (D)

여성 BJ들의 노동은 일상적인 외모 평가, 신체 노출 요구 등 성적 대상화를 견디고 버텨내는 것이다. 그것을 잘할 수록 ‘쿨하고 성격 좋다’는 평판을 얻고 수익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시청자들에게 정색하는 것은 ‘여캠’의 표현규칙에 위반되고, 공격의 표적이 될 위험을 만든다. 이런 조건에서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는” 것, 혹은 “뻔뻔”해지는 것은 BJ들이 개인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이 된다.  

연구참여자 A는 자신을 “여자 쫄병” 취급하는 시청자들의 성적 대상화를 차단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항상 얘기해. 내가, 내 입에서 남자친구 없다는 얘기는 절대 안 나올 것이고, 없어도 있다고 할 것이고, 그러니까 나는 항상 남자친구가 있다. 그리고 설령 없더라도 너랑은 안 사귄다, 그걸 아예 못 박아놔요.” (A)

그러나 “남자친구가 있다”는 선언으로도 자율성을 확보하기 어렵자 A는 후원금 수익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A는 이 결정이 “본업에서 돈을 벌고 이거는 취미로 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가능했다고 말했다. 한편 후원금 작동이 만들어내는 재미 요소가 반감되면서 시청자들은 그의 방송을 실시간으로 보지 않게 됐고, 방송의 지속에 관한 고민이 시작됐다. 시청자 공동체에 대항한 A의 사례는 대단히 의미 있지만, BJ 일을 생업으로 하지 않을 때 가능하다는 면에서 선택하기 쉽지 않다.

5. 나가며

시청자 공동체가 설정하는 위계질서의 최하층에 위치한 여성 BJ들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존중받고, 문제 제기와 해결을 도모할 수 있는 존재라고 인정되지 않는다. 이들은 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남혐’ 표현으로 간주되는 “웅앵웅” 등의 언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페미’라고 공격받아 해명하기 위해 애쓰거나(그러나 해명은 애초 불가능하다), “별창”[6]이라는 멸칭으로 불리거나, 자주 성희롱과 스토킹 범죄 피해를 겪는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 2018년부터 거의 매해 여성 BJ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이어지고 있지만 사회문제화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의 노동은 그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시되는 탓에 모든 고통이 그의 책임으로 떠밀리고 만다. ‘여캠’을 여성의 억압적 현실로서 목도하는 동시에, 나는 여성 BJ들에 대한 거센 비난과도 마주쳤다. 몇몇 BJ들이 대중적인 매체에 모습을 드러내자 날선 목소리들은 이들에게 “양지로 올라오지 말라”고 소리쳤다(기사 보기). BJ들이 “양지”에서, ‘나’와 같은 곳에서 볕을 쬐는 것은 왜 문제일까? 정말로 보기 싫은 것은 그 여자들일까, 아니라면 무엇일까?

이 연구는 여성혐오적 일자리가 어떻게 조성되고, 왜 그 자리에 여성이 참여하게 되는지를 함께 이해하자는 의지에서 비롯했다. 이들이 방어하거나 옹호될 정당한 권리를 보유하지 못했거나, 보유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은 여성 BJ들이 어떤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지 알기 어려운 조건에서 ‘여캠’ 재현만이 지배적일 때 강화된다. 이 서툰 연구가 ‘여캠’의 사정이라는 이유로 문제화되지 못한 부정의한 일들을 점화하는 데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참고 문헌

  • 김수아(2021). “팬덤의 능동적 참여와 소비자-권리주의”, 『문학동네』, 28(2), 274-292쪽.
  • 김수아(2023). “젠더 기반 온라인 폭력의 개념화와 규제 패러다임의 전환”, 『다문화사회연구』, 16(1), 33-62쪽.

댓글 3개

  1.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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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설득력 있는 명확한 글과 단호한 힘에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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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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