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wd 9호 “플래시백: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10년”을 닫으며

🌙상상, 🎶송유진

유난히 기획 준비 기간이 길었기 때문일까? 필진들과 함께 아홉 번째 기획을 마무리하며 나눈 대화 자리에서는 ‘힘들었다’는 회고가 주를 이루었다. 기획 구상과 세미나, 원고 집필을 약 2년 동안 진행하면서 필진들은 각자의 원고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갱신되는 페미니스트 타임라인에 붙들려야 했다. 기획 준비 단계가 거의 끝나고 원고 집필만을 남겨둔 상황에서는 12·3 계엄 사태가 터지기도 했다. 계엄-내란에 대응하며 즉시 조성된 광장, 광장을 둘러싼 거대 서사들, “응원봉을 든” 광장의 여성 주체들에 대한 과잉 재현, 그러한 과잉 재현과 양면을 이루는 대선 국면에서 ‘여성’ 정책의 실종. 이 흐름의 틈새마다 새로운,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페미니즘 이슈가 끊임없이 발생했다. 계엄과 내란, 탄핵과 대선이 모든 이슈를 삼키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터져나오는 정동적 주장들, 이를테면 ‘공포’ 혹은 ‘고통’을 기반으로 연대 거부를 선언하는 발화에 우리는 동의하기 어려웠지만, 동시에 페미니즘 리부트에 깊이 연루된 페미니스트로서 이러한 발화를 하는 이들과 맘 편히 거리를 두고 타자화할 수도 없기에 깊이 고통스러웠다. 이 모든 상황에 기시감이 들면서도 과거와 꼭 같은 감정은 아닌 상태로 대부분의 필진들이 기획 및 연재 기간을 보냈다.

Fwd 필진들은 페미니즘 리부트의 시간이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로, 우리의 경험이 ‘미성숙했던 시절’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웠고, 이 기획을 언젠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숙원 사업’으로 여겼다. 페미니즘 리부트는 우리에게서조차 ‘우리가 가장 뜨거웠던 시기’라는 식의 과거형으로 말해지곤 했고, 시니컬한 태도나 얻은 게 없다는 허탈감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Fwd 아홉 번째 기획 “플래시백: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10년”은 이 거리감을 되돌아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우리 스스로에게 “그렇게 뜨거웠던 우리에게 지금 무엇이 남아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페미니즘 리부트와 그 유산을 단순화하고 타자화하는 비평 담론에 대항하여 페미니즘 리부트를 역사화해보고자 했다. 리부트의 감각이 아직은 남아있는 상태에서, 그리고 리부트의 추진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이후 공허함과 무기력을 호소하는 페미니스트 동료들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우리가 그려온 궤적을 재방문하고 재해석할 필요성을 느꼈다.

2023년 여름, 기획 준비를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Fwd 필진 전원이 참여하는 특별 기획의 형식으로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10년” 기획을 구상했다. Fwd라는 집단 자체가 페미니즘 리부트의 자장에서 생겨났고, Fwd 필진들은 페미니즘 리부트와 함께 페미니스트 연구자로 성장했기에 무리없이 페미니즘 리부트를 비평하는 작업을 대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먼저 기획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모든 필진이 인터뷰어이자 인터뷰이가 되어 서로의 생애사, 그리고 페미니스트-되기의 순간과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질문하고 기록했다. 기획팀에서 인터뷰를 기록하고 정리하면서, 상당히 동질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필진들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다양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각각의 필진들이 페미니스트가 되어 페미니즘을 받아들인 과정은 언뜻 유사하면서도 굉장히 달랐고, 더더욱 다른 방향으로 그 실천의 가지를 뻗어나가고 있었다. 필진 전체의 생애사를 기록하고 정리한 이후, 기획팀에서는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를 대표했던 페미니즘 도서들을 함께 읽고 토론했다.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현상과 동시적으로 만들어진 페미니즘 리부트 담론 자체를 메타적으로 들여다보고, 페미니즘 리부트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공유된 출발점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다음으로, ‘포스트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라는 배경 하에 진행된 여성-청년-페미니스트에 대한 경험 연구(오혜민, 2024)를 함께 읽고, 저자 오혜민 선생님을 초대하여 페미니즘 리부트를 둘러싼 담론 지형과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처럼 9호 기획팀에서는 기획의 공통 기반을 마련하고, 방법론을 합의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하지만 ‘페미니즘 리부트를 역사화한다’는 목표만이 합의된 채, 글쓰기는 도무지 진전되지 않았다. 필진 각자에게 끈적하게 달라붙어있던 정동과 고민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왔기 때문이었을 테다. 이 과정에서 결국 글쓰기를 포기한 사람도 있었고, 처음의 아이디어와 아주 다른 글을 쓰게 된 사람도, 평소에 해오던 방식과 다른 글쓰기를 시도한 사람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9호 기획을 마무리하면서 되돌아보니, 어쩌면 ‘메타’와 ‘거리두기’보다는 이러한 정동적 과정 자체가 바로 페미니즘 역사쓰기일 수도 있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기획의 출발점에서 필진 각자의 페미니스트 생애사를 통해 확인했던 것처럼, 페미니즘 역사는 객관적이고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일반화된 내러티브로 적힐 수 없다. 우리의 기획이 진행된 궤적과 같이 복잡한 정동들이 개입돼서 논의의 장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내러티브들이 계속 난입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페미니즘 역사쓰기의 장면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동들은 글쓰기를 통과하여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페미니즘 리부트 10년의 감정과 이 감정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기획의 문을 연 〈‘우리’들의 피부를 느끼며 페미니스트-되기〉의 저자 윤소이는 이번 기획 과정이 개인적으로 20대로 보낸 지난 10년의 시간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기획 원고를 작성하면서 『붕대 감기』를 다시 읽고 기획 글을 끝까지 쓰고 나니, 물론 글에 담지 못한 순간들이 훨씬 많지만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Fwd 기획글을 마무리한 것이 윤소이에게는 이제까지 거쳐온 ‘페미니스트-되기’의 과도기를 마침내 졸업한 기분이다. 이제 이후의 시간을 써내려가는 것을 새로운 과제로 삼고, 『작은 아씨들』의 저자인 루이자 메이 올컷의 말을 빌려서 앞으로는 즐겁고 명랑한 이야기들을 써보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쓴다.”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치적 지향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드러내고자 했던 싱두는 〈지향과 현실, 모순된 감정들 사이를 방황하며 나아가기〉를 발행한 지금도 자신 내부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 채이다. 찝찝함과 자괴감은 페미니즘 리부트를 경험한 이후 결코 내버리지 못하는 감정이 됐다. 그럼에도 이번 기획글을 통해 지난 10년 동안 회피하고만 싶었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마주함으로써 그로 인한 자기혐오를 조금이나마 언어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자기혐오가 결국은 언제나 페미니스트로서 다음 국면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도 한다. 

소셜 미디어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기사, 〈돌봄의 실패 속에서〉를 집필한 하영은 이번 기획 기사를 통해 공적으로 말하기 어려웠던 활동에서의 어려움을 글로 풀어내본 중요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주제가 내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 혹은 우리가 같이 경험했던 고통을 너무 쉽게 혹은 얕게 재현해내고 싶지는 않은 마음들에 하영은 글 내기 자체를 망설였었다. 그럼에도 고통과 함께 돌봄이 실패한 서사를 다른 이들과 함께 쌓아올릴 수 있다는 작고도 큰 희망들을 글로 정리해낼 수 있어 기쁘고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페미니즘 리부트 10년과 Fwd 6년을 함께 정리하는 마지막 기획 기사 〈Fwd, 엇박의 궤적들이 엮어가는 공간〉의 저자 보라돌이는 글을 쓰며 이토록 감정적으로 힘든 적은 정말 오랜만이었다고 회고한다. 보라돌이가 의도했던 것은 페미니즘 리부트의 10년과 리부트의 자장 한복판에서 탄생한 Fwd를 “공간”과 “선”의 이론으로 풀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쓰다보니 이상하게도 페미니즘 리부트를 거쳐오며 보라돌이를 따라다닌 두려움, 불안, 이전에 소화하지 못하고 억지로 덮어놓은 자신에 대한 회의감이 다시 올라와 너무 괴로웠다고 말한다. 보라돌이는 솔직하게 끄집어낸, 리부트의 동시대성과 불화하는 감정이 다소 개인적이기도 하고 날 것이기도 해서 동료들과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렵기도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실패로 기억하며 단절하고 있던 리부트 시절의 자신과 마주보고 화해했고, 이제야 비로소 해방된 느낌이 들어서 기쁘다는 후기를 남긴다.

2년여 간 준비한 기획을 닫으면서도 여전히 페미니즘 리부트를 어떤 유산으로 남길 것인지는 선명한 언어로 정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페미니즘 리부트 10년이 페미니즘 역사의 한 챕터로 끝났다거나,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챕터가 또 다른 챕터로 대체되었다는 역사화에만큼은 저항한다. 이 기획의 시작을 연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과거의 경험은 현재의 우리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며, 동시에 현재의 우리는 그 과거를 끊임없이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실천의 토대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또한 “예상치 못한 순간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플래시백처럼, 하지만 그 파편적인 기억을 통해 비로소 설명되는 과거의, 그리고 현재의 경험들처럼, 페미니즘 리부트는 지금 이 순간의 여러 장면과 공명하며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글 읽기).

플래시포워드(Flashfoward)는 이야기의 장면을 잇는 기법 중 하나로,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전개되던 중 갑자기 전혀 다른 장면들 속으로 관객을 내던진다. 과거의 사건들이 현재 시점에서 파편적으로 펼쳐지는 플래시백과 달리, 플래시포워드의 장면들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시간들이다. 플래시백이 지나간 과거와 현재가 연속선상에 있음을, 우리가 이미 끝났다 생각되는 과거의 자장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기법이라면, 플래시포워드는 미래 역시 현재와 완전히 독립적인 시간은 아닐지언정 예상치 못힌 방향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관객을 계속해서 과거, 혹은 미래의 순간들로 밀어넣으며 질서정연한 시간성을 뒤흔들고 ‘현재’의 감각을 교란하는 영화 기법들처럼, 페미니즘 리부트의 장면들은 우리를 붙드는 정동과 함께 끝없이 찾아오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살아보게 만든다. 그것들을 해석하고 의미화하려는 시도는 어쩌면 과거나 현재, 미래 중 하나만으로는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미래와 현재, 과거가 서로 물고 물리듯 이어지는 시간선을 살아가고 있다면, 지나간 과거를 가늠해보려는 노력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빚어내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또 이번 기획을 쓰고 읽고 반응했던 모든 사람들은 이미 어느 정도 미래의 시간들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 그 미래는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오래되었지만 낯설고, 어딘가 또 익숙한 이름을 띠고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 오혜민(2024). “포스트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 여성 청년 페미니스트의 부상과 인식론적 취약성”,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여성학과 박사학위논문.

댓글 남기기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