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은 ‘표현의 수위’가 아닌 성폭력의 도구화다 

☁️미현

지난 5월 27일, 이준석은 제21대 대통령 선거의 마지막 토론회에서 여성 신체 훼손을 묘사하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는 권영국 후보자에게 해당 표현을 인용하며 “이것은 여성혐오에 해당합니까?”라고 물었다. 이 발언 직후, 많은 사람들이 강한 비판과 항의를 쏟아냈다.

이준석은 이튿날부터 지금까지 총 세 번 사과했지만 매번 자신의 언행을 정당화하는 해명을 덧붙였다. 이튿날 기자들에게 “불편한 국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며 그에 “심심한 사과”를 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어떻게 [더] 순화해서 표현할지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기사 보기). 다음 날 긴급 기자회견에서도 토론에서 사용한 표현이 “가치중립적인 단어”였으며, “워낙 심한 음담패설에 해당하는 표현이라 정제하고 순화해도 한계가 있었다”고 변명했다(기사 보기). 30일에는 개혁신당 당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표현의 수위로 인해 상처받으신 모든 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적었다(기사 보기). “표현의 수위”, “음담패설”과 같은 이준석의 단어 선택은 여전히 그가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준석은 누구인가? 그는 2011년 박근혜에 의해 발탁되어 ‘청년 정치인’으로 정계에 입문했지만, 이후 선거에서 줄줄이 낙선했고, ‘안티페미니스트’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존재감을 키워왔다. 이른바 ‘알페스’ 논란 당시 그는 팬 창작물을 ‘성착취물’로 규정하고 ‘알페스’ 제작·유포자 110명에 대한 수사 의뢰서를 제출했으며(기사 보기), 이후에도 일베, 에펨코리아 등 극우 성향의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를 대변하는 행보를 지속해왔다. 법무부가 강간죄를 ‘동의 여부’ 기준으로 개정하려 하자 페이스북에 “뭐? 비동간?”이라는 조롱조의 글을 올렸고(기사 보기), 지난해 딥페이크 성폭력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는 “위협이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언급했다(기사 보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주장하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워 윤석열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던 그는, 이번 대선에서도 여전히 여성가족부 폐지를 1호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단언컨대, 그는 성폭력 문제나 온라인 상의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의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혐오를 기반으로 한 극우 세력을 대변해 왔다.

그런 그가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에서 여성 신체 훼손을 묘사하는 표현을 인용하며 “이것은 여성혐오에 해당합니까?”라고 물었다. 문제는 ‘표현의 수위’ 따위가 아니다. 문제는 여성폭력의 현실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해 온 안티페미니스트가 굳이 필요치 않은 폭력적 표현을 통해 여성폭력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그 선정성을 미끼 삼아 상대 후보를 비방하려 했다는 점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여성혐오를 줄곧 외면해온 그가, 이제는 여성혐오와 성적 폭력을 도구화하고 소비하고 있다.

모든 성적 발화가 곧바로 폭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경우, 예컨대 구조적으로 자행된 성폭력의 피해자가 공적 공간에서 자신의 피해를 발화할 때와 같은 순간에는, 그 표현이 불편하거나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지라도 사회는 그것을 듣고 응답해야 한다. 그러나 성적 발화가 유희와 소비의 방식으로 이루어질 때, 우리는 그것을 언어 성폭력이라 부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남성연대(homosocial)를 위해 성적 대상화 발언을 하는 것이 문제적인 것처럼, 상대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여성폭력을 도구화한 이준석의 행위는 폭력적이고, 또 모욕적이다. 그는 애초부터 그 발언이 불편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고, 오히려 그 불편함이 촉발할 논쟁을 활용하려 했다. ‘수치스러워? 불편해? 바로 그 말을 대통령 후보 아들이 했다니까?’라는 식의 자극적인 프레이밍을 위해 여성혐오적 발화를 이용한 것이다.

발언 다음 날, 그는 페이스북 계정에 지난 토론회에 대해 쓴 게시글을 상단에 고정시켰는데, ‘답변을 회피한 민주진보진영의 위선’, ‘왜곡된 성의식’을 강조하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일부 언론과 사이버렉카 유튜버들은 ‘팩트 체크’에 몰두했다. 그러나 이준석이 인용한 표현은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저질 표현 중 하나일 뿐이다. 에펨코리아, 일간베스트, 디시인사이드의 갤러리 등에 접속하면 몇 번의 클릭만으로 이와 유사한 저질 표현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해당 후보자의 아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적 발언이 ‘정의 구현’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놀잇감이 될 수도 있고, 그들만의 ‘놀이’ 속에서 커뮤니티의 여성혐오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준석과 극우 세력(혹은 자칭 ‘진보’ 세력), 일부 언론과 사이버렉카들에게는 아무런 관심사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성폭력의 도구화’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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