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장의 탄생』: ‘여사장’과 다시 쓰는 한국 경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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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선(2025). 『여사장의 탄생』. 서울: 마음산책. 표지 이미지

언젠가부터 ‘경제 위기’가 선언될 때마다 그 위기를 상징하는 얼굴로 어김없이 호명되는 사람들이 있다. 사업의 성공과 실패를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책임져야 하는 사람, 바로 자영업자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창업의 문턱이 너무 낮아 자영업자가 ‘많아도 너무 많은’ 상황 속에서 자영업자들은 ‘역대급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되곤 한다(기사 보기). ‘먹고 살기’를 둘러싼 정책과 담론이 어느 때보다도 자영업자를 주목하는 지금, 이러한 위기 담론 너머, 한국 경제사와 여성학 연구에서 가려져 있던 ‘여성 자영업자’의 역사와 의미를 비추는 『여사장의 탄생』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한국전쟁 이후 양장점을 운영한 여성의 경제적 실천에 주목한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에서 출발한다[1]. 박사논문에서 전후 여사장들이 자신의 기술을 가지고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나아가 지역사회를 회복해 내는 역량을 지닌 존재였음을 드러냈다면, 이 책에서는 보다 최근까지로 시기를 넓혀 전후 사회의 여사장에서부터 오늘날 청년 여성들의 창업까지 아우르는 여성들의 경제활동 경험을 다룬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1950~60년대 “한국전쟁이 ‘낳은’ 여사장”에서부터, 1970~80년대 “여성 기업인”의 등장,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청년 여성들의 사장 되기 분투 과정을 각각의 챕터로 설명한다. 각 챕터는 한국전쟁 이후와 산업화 시기,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 등 시기별로 ‘여사장’에 대한 의미가 어떻게 구성되고, 이들이 사회 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그 변화하는 양상을 다룬다. 이러한 구성으로 저자는 여성 자영업자인 ‘여사장’이 역사적 존재라는 점을 드러낸다. 그럼으로써 이 책은 대기업과 임금노동을 중심으로 쓰여 온 한국 경제사를 자영업과 여사장 중심의 젠더 경제사로 재구성한다.

먼저 1부에서는 한국 경제사에서 여사장이라는 주체가 어떻게 등장했는지, 그 시작을 그린다. 저자는 여성들이 장사에 뛰어들게 된 가장 커다란 계기로 ‘한국전쟁’을 꼽는다. 전쟁은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거대한 사건인 한편, 전시 체제는 남성을 대규모로 동원했기에 가족을 책임지는 실질적인 가장으로 여성을 위치시켰다. 산업과 생활 기반이 모두 폐허가 된 상황에서 여성들은 장사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여성들이 ‘여사장’으로서의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가 되었다. 전쟁 이후 여성들은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해 자신의 능력과 기술, 자본을 최대한으로 동원하여 사업을 시작했다. 시장에서 여성들은 자신이 집에서 해오던 일의 연장선상으로 음식을 만들어 내다 팔거나, 길거리에 재봉틀을 내놓고 옷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시장이 여성 중심의 공간으로 변모한 것도 전후의 이러한 풍경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저자는 한국전쟁 이후 여성이 진출한 업종, 이를테면 요리, 미용, 양재, 편물 등이 여성의 삶과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었으며, 이들의 자영업이 생계 그 자체를 위한 것이었던 만큼, 돈벌이를 하면서도 가족을 보살피고 살림을 할 수 있는 일의 형태가 자영업일 수밖에 없었음을 지적한다.

이어서 2부에서는 산업화 시기 여성 자영업의 성장을 다룬다. 한국전쟁이 여사장을 등장시킨 계기였다면, 국가 주도의 산업화는 여성이 경영하는 사업의 분야와 규모를 확대했다. 한국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여성은 노동자나 전업주부로 주로 그려져 왔지만, 이 시기 여성들은 다양한 규모의 사업체를 운영하며 경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전후 여사장들이 소규모의 생계형 자영업을 꾸려왔다면, 산업화를 거치며 여사장은 사업 규모를 확장하여 ‘여성 기업인’이 되었다. 1980년대 이후부터는 남편의 사망으로 기업을 이어받거나 재벌 2세가 되면서 경영에 참여하게 된 여성들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 챕터에서는 한국의 경제 성장세가 일정 부분 여사장의 사업을 성장시키기도 했지만, 경제 영역이 더욱 남성화되면서 여성의 자영업이 위축되고 계와 일수 같은 금융거래 등 비공식 경제 영역에서 여성의 활약이 어떻게 국가 주도의 경제에 통합되어 갔는지를 보여주었다.

한편, 1부와 2부에서는 각 챕터마다 여사장의 구술 인터뷰와 대중문화 텍스트에서 여사장이 재현되어 온 양상을 함께 보여주면서 여사장들이 당대 젠더규범과 부딪히고 협상하면서 어떠한 경제 주체가 되어가는지, 그리고 여사장 자신이 자기 일에 대해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지를 제시한다. 여성이 자신의 사업을 운영하는 것이 흔치 않던 시절, 미디어에서 전후 여성들의 사업과 자본에 대한 욕망은 여성의 성적 욕망과 동일시되었고, 산업화 시기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은 가정에 무관심한 부정한 여성으로 재현되었다. 여사장들은 당대 통용되던 젠더 규범을 어느 정도 내면화하면서도, 나름의 가치관과 기준을 가지고 사업 운영에 추진력을 발휘했다.

마지막으로 3부는 디지털 플랫폼 시대, 청년 여성의 창업과 자기 고용 양상을 주목한다. 먼저 저자는 많은 청년 여성이 사업에 뛰어들 수 있게 된 맥락을 제시한다. 오늘날 서비스산업의 성장과 인터넷 기술의 발전, 스마트폰의 보급이 사업의 진입장벽을 낮췄고, SNS를 중심으로 패션과 미용 분야의 여성 소비문화 영역이 형성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취업 자체가 어려운 저성장 시대라는 맥락에 성차별적 고용 환경이 더해져 청년 여성이 노동자로 살아남기 힘든 상황은 여성들이 자신이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자기 고용, 즉 자영업으로 향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또한 청년 여성들의 대중적 소비문화에 대한 오랜 경험과 지식, 열정은 라이프스타일과 하위문화를 둘러싼 여성 중심의 경제 생태계를 구성하기도 했다. 3부는 동시대 여사장들의 임금 노동 바깥의 경제 영역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실태 비평으로, 탈산업화 이후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과 경제 영역이 다양화된 현실을 반영하여, SNS와 디지털 콘텐츠, 대안적 삶의 추구, 노동시장의 성차별, 가치소비 및 팬덤 문화의 산업화 등의 주제를 아우르고 있다. 3부에서 다방면으로 언급되는 각 영역에서 여사장이 어떻게 자기 삶과 일을 꾸려가는지는 독립적으로 연구될 만하며, 추후 그 연구 결과를 기대하게 된다.

자본주의와 경제 성장에 대한 비판 담론이 이제 낯선 것이 아닌 상황에서 여사장에 대한 주목은 새삼스러워 보일 수 있다. 특히 오늘날 청년 여성들이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여 경제적 성공을 기획하는, 이른바 ‘야망 프로젝트’는 신자유주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거나 강화한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또한 책에서도 등장하는 사례로, 여성 사업가이면서 여성운동에 뛰어든 여사장도 있지만, 한편으로 최루탄을 제조하여 정부에 납품하거나 전두환 대통령에게 정치 비자금을 건넨 여사장도 존재한다. 당연하게도 여성이 사업의 주체이며 경제적 성공을 거뒀음을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여사장의 경제 활동이 기존의 젠더 질서와 자본주의적 가치 체계 속에서 어떤 비판적 의미와 대안적 가능성을 갖는지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저자가 지적하듯, 그간 ‘여사장’에 대한 학술적 관심은 새삼스럽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저조했다. 오히려 ‘사장’이라는 타이틀이 상기시키는 자본력이나 일정한 경제적 성취에 매몰되어 여사장의 경제적 실천이 가지는 다층적인 의미가 간과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경제사 속 ‘여사장’에 주목하는 이 책은 페미니즘 경제이론의 맥락에서 여성의 사업과 일, 자본을 새롭게 의미화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이 책은 여성의 자영업이 가진 의미를 ‘여성의 경제(female economy)’라는 분석 틀로 역사화한다. 이는 상품 생산과 소비가 여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젠더화된 경제활동 및 소비문화를 지칭할 뿐만 아니라, 기업과 임금노동 중심의 가부장적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상대화하는 경제 형식을 제시하는 것이다. 생산과 재생산을 넘나들며 생계를 위해 장사에 뛰어든 전후 여성의 삶, 그리고 오늘날 노동시장에서 탈주하여 지역으로 이주해 자영업을 시작하여 자신의 삶과 일을 재구성하려는 청년 여성의 삶은 이러한 맥락에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에코페미니스트 마리아 미즈와 베로니카 벤홀트-톰젠이 제시하는 ‘자급 관점’과도 상통한다. 자급 관점은 경제를 끊임없는 상품의 생산과 소비, 자본 축적, 산업의 확장에 목표를 둔 체제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소규모의, 지역화된, 비임금 노동을 기반으로 하여 삶 그 자체를 생산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관점이다(Mies·Benholdt-Thomsen, 2013). 자영업의 위기가 한국 경제의 위기를 대변하는 시대, 여성 자영업의 역사와 ‘여성의 경제’가 가진 잠재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여사장의 탄생』과 함께 지속 가능한 삶과 대안 경제를 모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 문헌

  • 김미선(2021). “양장점을 통해 본 1950년대 전후(戰後) ‘여성의 경제’”,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박사학위논문.
  • 김미선(2025). 『여사장의 탄생』. 서울: 마음산책.
  • Mies, M. and Benholdt-Thomsen, V.(1999). The Subsistence Perspective: Beyond the Globalised Economy, London: Zed Books, 꿈지모 옮김(2013),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힐러리에게 암소를』, 서울: 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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