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하는 남성성』

☁️미현

한국성폭력상담소 기획(2025). 『폭주하는 남성성』. 파주: 동녘. 표지 이미지

여성폭력은 늘상 발생해왔다. 언론 보도만을 기준으로 해도 하루에 한 명꼴로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당하거나 살해당할 위협을 겪으며(한국여성의전화, 2024), 일생동안 성적·신체적·정서적·경제적 폭력 피해를 겪는 여성이 전체 여성의 1/3에 달한다(여성가족부, 2024).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나 강남 의대생 교제 살인사건과 같이 지난 몇 년간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성/폭력의 사건들 또한 이러한 유구한 여성폭력의 흐름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어떤 사건들은 조금 달랐다. 일견 ‘여성폭력’과 무관해 보이는 흉기 난동 사건들이 잇달아 벌어졌고, 사이버레커들이 ‘정의구현’을 표방하며 가해자의 신상공개와 ‘나락’ 보내기에 힘썼다. 2025년 7월 출간된,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기획하여 저자 8명의 글을 담은 『폭주하는 남성성』은 이러한 폭력의 올드 앤 뉴를 아우르며 젠더화된 사회구조 속에서 남성성의 작동 방식을 설명한다. 

책은 각 저자들이 쓴 총 8장의 글을 구분하지 않고 나열하고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1장과 2장은 일종의 서론 격으로, 책 전반을 아우르는 젠더폭력과 여성폭력, 남성성의 개념 그리고 그에 연관한 한국의 현실을 정리한다. 추지현이 쓴 1장은 최근 몇 년간 벌어진 흉기 난동 사건과 여성폭력 사건들을 한데 묶으며 폭력을 수행하거나, 진압하거나, 공모하는 남성성‘들’의 역학을 다룬다면, 김효정이 쓴 2장은 친밀한 관계 내 폭력을 둘러싼 현실의 원인을 성별 통계의 미비에서부터 언론·법·정책의 문제점에까지 아우르며 짚어낸다. 

한편 3장부터 5장까지는 각각 딥페이크 성폭력(이한, 3장), 사이버레커와 여성폭력(유호정, 4장), ‘벗방’(황유나, 5장)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부분에서는 디지털 공간과 기술을 경유하여 성폭력을 자행하고 공모하는 이들의 남성연대, 피해마저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되는 현실을 만들어내는 엄벌주의와 피해자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위계에 관해 담아낸다. 마지막으로 6장에서 8장까지는 무수히 많은 젠더폭력을 뒤로한 채 ‘억울함’을 부르짖는 남성들의 정치화에 대한 분석이다. ‘페미니스트 카르텔’이라는 음모론적 세계관 속에서 안티페미니즘 정치를 실현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전략(이우창, 6장), 이준석을 위시한 ‘짤’의 정치(이리예, 7장), 윤석열 비상계엄을 거치며 결집된 남성들의 극우화 현상(권김현영, 8장)이 논해진다. 

남성성 수행의 일부로서의 폭력의 폭주

‘폭주하는 남성성’은 자칫 보면 남성성(식민지적 남성성, 하이브리드 남성성 등)의 명명 중 하나로 읽힐 수 있지만, 오히려 각기 다르게 배치된 남성성‘들’이 결합되며 폭력의 폭주를 이뤄낸 사회에 대한 명명에 가깝다. 1장에서 추지현은 흉기 난동 사건이나 등산로 성폭력 사건과 같은 사건들이 주변화된 남성성의 열패감 표출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들은 그저 남성사회에서 탈각된 예외적 존재가 아닌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상호작용 속에서 열패감을 드러내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그 속에서 폭력의 분출을 통한 ‘남자되기’의 열망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범행 계획을 적은 게시물에 달린 조롱과 비하의 댓글들은 한편으로 폭력과 거리를 두는 태도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범죄를 감행할 능력 없이 허세만 부리는 모습을 비난”함으로써 허세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범행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36).

한편 이를 ‘묻지마 범죄’나 ‘흉기 난동 범죄’로 규정하고 기동대와 같은 물리적 감시와 공권력을 강화하겠다면서 젠더 구조에는 눈 감은 채 단순히 피해자/여성을 ‘보호’하겠다고 나서는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은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공권력을 통한 물리력의 행사는 곧 합법적인 폭력의 실행으로서, 대안적 남성성을 모색하는 것과 무관할 뿐 아니라 주변화된 남성들이 폭력의 행사를 통해 남성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강화한다. 이처럼 다양한 남성성 수행의 맞물림 속에서 (성)폭력을 팔아 돈을 버는 남성들, 여성(혹은 성별과 무관한)폭력으로 자신의 남자되기(doing gender)를 실천하는 남성들, 범죄자들과 거리두기 하면서도 그들의 “열패감을 추동하며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이들이 서로 영향을 끼치며 한국 사회의 젠더 질서를 재생산하고 있다(47).

음모론적 세계관 속 ‘피해자’가 된 안티페미니스트

그러나 이러한 역학의 준거지인 남초 커뮤니티의 이용자들은 한편으로는 자신들을 약자, 소수자, 피해자로 규정한다. 이우창은 8장에서 이들이 ‘페미니스트들은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권력’이며, ‘나거한(나라 자체가 거대한 한녀)’이라는 음모론적 세계관 속에서 실천하는 안티페미니즘 전략을 분석한다. 남초 커뮤니티의 이용자들은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여성혐오 웹툰의 연재 중단과 같은 ‘승리’를 이뤄내는 페미니스트들의 실천의 힘이 “사소한 사실관계의 오류나 도덕적 갈등을 무시하고 단합된 실천을 유지하는 전략전 면모”에 있다고 보고(183), 이를 ‘미러링’하여 GS 불매운동과 같은 안티페미니즘 집단행동을 밀고 나간다. 이러한 집단행동은 ‘논란’을 만들어내어 음모론을 현실화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만들어낸 ‘논란’ 그 자체에 휘말렸다는 사실이 잘못이라는 논지로 귀결된다. 

이우창의 안티페미니스트 전략에 대한 분석은 매우 흥미롭지만, 제도 정치와의 연결고리에 대한 분석이나 정치권에서 페미니스트들의 역할에 대한 지적은 더욱 많은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이우창은 청년 여성들이 언론과 정당에서 ‘대표자’를 확보하는데 성공했지만 청년 남성들의 대변자는 부재하며, “청년 남성의 그것을 비교적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밝힌다(198). 여기서 ‘청년 남성의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도 궁금하지만, 제도권 정치에서 여성정책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민주당에 대한 청년 여성들의 높은 지지율만으로 이들이 언론과 정당에서의 ‘대표자’를 확보했다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안티페미니스트들의 인식을 깨뜨리지 못하고 있으며, “대화의 상대가 아닌 비판 혹은 교화의 대상으로 간주”하여 음모론적 피해의식을 강화한다는 주장 또한 더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한다(199).

윤석열 파면으로 폭주하는 남성성의 시대가 끝난 걸까?

‘폭주하는 남성성’이라는 문구는 윤석열의 비상계엄 당시 ‘폭주하는 남성성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구호로 먼저 등장했다[1]. 이 구호는 군사계엄이라는 폭력에 대한 반대이자, 여성가족부 폐지를 필두로 하여 차별과 혐오의 정치를 가속화했던 윤석열 정부의 끝을 말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윤석열의 파면 이후에도 해로운 남성성의 시대는 끝났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윤석열 파면 이후 시행된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권영국 후보자를 제외한 그 어떤 후보자도 성평등 정책에 대한 공약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고,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여성가족부 차관에게 ‘남성들이 받는 차별에 대한 연구와 대책’을 요청했다. 지난 6월에는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의 출연자인 한 여성이 과거 ‘벗방’ BJ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비난받고 출연 분량이 삭제되는 일이 일어났고[2], 스토킹과 폭력 피해를 신고하고 경찰에 보호조치를 요청하였음에도 가해자에게 살해당하거나 살해당할 뻔한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했다[3]. 즉, 윤석열의 파면과 정부 수장의 변화에도 “안티페미니즘을 정서적으로 표현하며 청년 남성에게 구애하는 정치인의 모습”이 계속해서 나타나고(237), 섹슈얼리티 규범에서 벗어난 여성에 대한 혐오는 현재진행형이며, 여성을 죽음으로 내모는 폭력은 여전히 방기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마리를 제공”하고, “이 실마리를 통해 폭력을 끊어내는 변화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이 책이 반갑고, 많은 이들에 읽히기를 희망한다(17). 헝클어진 실의 첫머리를 잡아당긴다고 해서 얽힌 타래가 술술 풀리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뭉쳐지고 방치된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방법은 조심스럽게 실을 당기고 만져지는 매듭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이기에.


참고 문헌

  • 여성가족부(2024). 『2024년 여성폭력 실태조사』 . 서울: 여성가족부 권익정책과.
  • 한국성폭력상담소 기획, 권김현영·김효정·유호정 등 8인 지음(2025). 『폭주하는 남성성』. 파주: 동녘.
  • 한국여성의전화(2024). 〈분노의 게이지: 언론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살해 보고서〉, https://hotline.or.kr/archive/?bmode=view&idx=15650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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