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싱(passing)’하는 학교의 성소수자들: 학교 문화 속에서 체득한 숨김과 위장의 일상

김희연

1. 들어가며

성소수자가 학교 교육에서 ‘배제되는 존재’, 심지어 ‘없는 존재’로 여겨진 지는 오래되었다. 공식적 교육과정에서는 물론이고, 학교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내지는 비가시화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성소수자는 언제나 학교에 존재해 왔다. 이들은 주로 이른 청소년기부터 자신의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고민하고 정체화하며 학교에 존재한다.

대부분의 성소수자는 청소년기에 학교에서 교사와 또래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며 살아간다(남미자 외, 2023; 정성조·정용림, 2022; 김찬미 외, 2020). 이러한 감춤은 개인의 내면적 선택이라기보다, 이성애 규범과 성별 이분법이 지배적인 학교 문화 속에서 낙인과 배제를 피하고자 수행되는 사회적 행위이다. 이와 같은 행위를 고프만은 ‘패싱(passing)’[1]이라 개념화했는데, 이는 자신이 속하고자 하는 범주의 구성원으로 인식되기 위해 실제 정체성을 숨기고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모습으로 자신을 연출하여 위장하는 행위를 의미한다(Goffman, 1963: 113). 나는 성소수자가 학교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감추며 지내는지 직접 듣고 싶었다. 이들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교사, 또래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숨기고 위장하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시절의 학교 경험을 들려줄 13명의 성소수자[2]를 만나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의 패싱(passing)은 치열했고, 그만큼 다층적이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학교라는 공간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패싱(passing)이라는 행위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알 수 있었다.

2. 교사와의 관계에서 ‘모범생’ 되기

여느 학생들이 그렇듯, 성소수자 역시 학교에서 학업이라는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우리나라 학교 교육은 여전히 학업성취를 학생의 가치와 지위를 결정하는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교사와 학생의 관계 또한 이러한 능력주의적 질서 속에서 형성된다. 연구 참여자들의 경험에 따르면, 교사들은 학생이 ‘누구인지’보다 ‘얼마나 공부를 잘하는지’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성소수자 학생들이 교사와 자신의 성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운 것은 학생을 학업능력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게 하는 학교 문화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경험한 교사와의 관계는 자신이 ‘모범생’일 때와 ‘비 모범생’일 때 그 양상이 극명하게 달라진다. 학교의 교사들은 ‘모범생들’에게 일종의 보상을 제공하는데,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성실하고 말을 잘 듣는’ 학생들에게 호의적으로 대하기, 봐주기 등의 인센티브를 준다. 학교에서 ‘모범생’은 일종의 ‘이미지’로서 존재하며, 단지 수치상으로 성적이 뛰어난 것을 넘어 교사들에게 ‘성실하고 말을 잘 듣는’ 학생으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흥미롭게도 그러한 ‘모범생’ 이미지는 학생을 여성으로도 남성으로도, 이성애자로도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게 만든다. ‘모범생’ 정체성은 독특하게도 무성적인 이미지를 갖는다는 점에서 교사들에게 ‘말썽부리지 않는’ 학생으로 구현된다. ‘모범생’이라면 연애나 섹슈얼리티에 관심이 없을 것 같고, 설령 연애한다고 해도 공부만 열심히 하고 잘하면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모범생’ 성소수자들에게 자신의 ‘모범생’ 이미지는 학교에서 ‘비정상적’이라 여겨지는 성소수자 정체성을 가려주는 일종의 ‘정상적’인 정체성이었다.

연우는 고등학교 때 한 번 ‘모범생’ 이미지가 굳혀지면 교사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걸, 심지어는 모른 척 용인하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교사들은 ‘모범생’에게 성별에 대해서도, 성적 지향에 대해서도 질문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우는 탈성화되어 있는 ‘모범생’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게 하는 일종의 패싱(passing) 전략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정말 그냥 체득하게 돼요. 그런 모범생한테는 아무런… 터치도 안 하는구나의 그런 수준이 아니라, 모범생한테는 내가 여잔지 남잔지 이런 게 진짜 안 중요하구나, 이런 규범이 있구나(연우).”

은호는 학업이 언제나 자신의 취약성을 메꾸고 상쇄하는 데 중요한 것이었다고 한다. 은호에게는 학업이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일종의 자원으로 기능했던 경험들이 있다. 학교에서 은호가 ‘이상한 애’로 낙인찍혀도 또래들의 반응이 직접적인 혐오 표현이 아닌 외면하는 방식에 머문 것은 교사들에게 자신의 학업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퀴어 가시화 운동을 벌이다 징계위원회에 부쳐질 뻔한 사건은 우수한 9월 모의고사 성적 덕에 무마될 수 있었다.

성소수자들은 자신이 그러한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을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안전하게 은폐시키는 전략으로 여기게 된다. 그들은 학교에서 ‘비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성소수자 정체성을 지닌 자신이 획득할 수 있는 ‘정상성’인 ‘모범생’ 이미지에 집착하게 되며, 그러한 이미지를 잃는 것에 대해 불안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학교에서의 인정은 그들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능력이나 성취를 통해서만 주어졌다. 즉, ‘모범생’이라는 기준이 정상성의 척도로 작동하는 교육 구조 속에서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존재 그 자체로는 학교에서 인정받기 어려웠다.

3. 또래와의 관계에서 ‘튀지 않는 애’ 되기

성소수자들이 교사와의 관계에서 체득하게 되는 학업 능력주의(‘공부 잘하면 장땡이다.’)와는 달리, 실제로는 학업이 학교생활을 결정짓는 유일한 요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중∙고등학교는 그 어떤 곳보다 또래 사이에서 소속과 배제의 전쟁이 격렬하게 일어나는 곳이기에 언제나 적당한 ‘눈치’를 챙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다. 미래의 표현에 따르면, 학교는 “단짝을 만들지 않으면 도태”되는 곳이다. 특히, 성소수자들은 ‘급식 먹을 사람이 없으면 왕따가 되는’ 폐쇄성을 지닌 학교에서 또래 주류문화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과업을 짊어진다.

성소수자들은 커가며 자신이 ‘보통의 또래’들과는 다른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중학교에 진입하기 전부터 이미 깨닫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사회 주류문화와 다른 퀴어적인 문화들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학교에서 또래들을 대면할 때 또래 주류문화를 알게 되면서 자신이 그들과는 다른 비주류에 속한다는 인식을 지니게 된다. 한편, 또래들의 주류문화에서 통용되는 ‘정상성’은 시스젠더 이성애자의 모습이며, 그렇기에 그 외의 ‘비정상성’으로 여겨지는 존재들은 놀림감이나 비하의 대상이 된다. 청소년기 학교에서 또래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보통 놀이나 장난과 같은 방식으로 유통한다. 은호 역시 또래들 사이에서 “너 게이냐?”와 같은 발언이 장난식으로 자주 일어났다고 했다. 이러한 학교의 또래문화 속에서 성소수자들은 배제되지 않기 위해 ‘이상한 애’로 보이면 안 되고, 그러려면 ‘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또래들과 어울리기 위해 ‘튀지 않는 애’로 보이는 패싱(passing) 전략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연기를 거듭한다.

이수는 스스로 성소수자 티가 나지 않는 외양을 가졌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자기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 소위 ‘평범한 학생’처럼 보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걸 인식한 후로 튀지 않게 보이기 위한 패싱(passing) 전략을 과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고등학교에 다니던 초반에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을 또래들에게 증명하려고 일부러 과장해 티를 내고 다녔었다. 그런데 점점 그게 오히려 부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고, 더욱 평범하고 튀지 않는 모습을 연기하게 되었다. 남자와 연애하고 싶어 안달 난 여학생을 연기할 필요 없이, 가끔 남자애들 욕도 하고, 여자 아이돌을 덕질하는 평범한 여학생의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었다. 이수 스스로는 평범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평범을 연기하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 수월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이킬 때면 허탈함이 밀려왔다.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정체화한 다온은 중학교 때 자신이 마초적인 남성 또래문화에 어울리지 못한다고 느껴 튀지 않게 ‘남자아이’를 연기를 하며 지냈다고 한다.

“제가 그런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남자아이처럼 보이려고 연기를 많이, 연기하는 삶을 살았죠. 학교에서는. 어떤… 찐따 남학생, 이라는 거를 연기하면서 산 거죠. 사실. 12년 동안(다온).”

이처럼 성소수자들은 학교에서 배제되지 않고 ‘튀지 않는’ 존재로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연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패싱(passing)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안전하게 관리하면서 또래 문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 할 수 있다.

4. 패싱(passing)의 경계에서 시도하는 위험한 저항의 줄타기

성소수자들에게 학교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탐색하기에 충분한 지식과 문화를 담고 있지 못한다. 교과서에 성소수자 이야기는 거의 빠져 있다시피 하며, 성소수자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고 고민을 들어줄 교사도 거의 없다. 주류 또래문화는 좀처럼 자신과 잘 맞지 않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사회문화적인 의미에서 탐색하기 시작하는 것은 대개 학교 밖 인터넷이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다. 그들은 주로 X(구 트위터), 성소수자 커뮤니티, 카카오톡 오픈카톡방 등의 경로를 통해 퀴어 지식과 문화들을 습득한다. 이후 퀴어 퍼레이드, 정당 등 오프라인에서도 퀴어 관련 활동을 확장해 나가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의 퀴어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정체화 과정에서 굳혀간 신념들에 대한 확신이 높은 편이다.

학교에서 ‘정상성’이라는 가면 쓰기를 택한 이들이지만, 그들에게는 언제든 벗어던지고 싶은 답답한 가면이다. 그래서 때로는 패싱(passing)의 경계에서 가면이 아닌 자신의 진짜 얼굴을 종종 내비치기도 한다.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도 도전적이고 저항적인 행동을 감행하기도 한다. 수현은 학교의 모의국회 동아리에서 퀴어 프렌들리한 친구들을 모아 교사가 허락해 주지 않을 퀴어 퍼레이드 체험을 다녀오기도 하고, 교과서에 등장하는 성소수자 찬반에 관한 내용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기도 했다. 미래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은 밝히기 두려우면서도 항상 밝히고 싶은 것이었다. 대부분 자신에게 안전하고 커밍아웃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에서 커밍아웃하려고는 했지만, 불안하고 위험한 일인 줄 아는데도 답답함에 커밍아웃해 버리는 경우들도 종종 있었다.

“저한테 커밍아웃이 좀 정치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 그…런 선언 느낌으로 한 적, 네 주변에도 퀴어 있다, 의 그 퀴어의 역할을 맡으려고 했던 적도 있는 것 같고(미래).”

이처럼 이들은 위험을 감수하고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그리고 퀴어를 가시화하기 위해 학교라는 공간에서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행위들을 감행했다. 하지만 이러한 경계 넘기가 패싱(passing)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교 안에서 성소수자로 완전히 낙인찍히는 상황은 그들에게 너무도 치명적인 위험이기에 이들의 저항은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 기독교 대안학교를 다닌 담은 늘 학교의 또래들로부터 “엄청난 비판이 들어올 걸 아니까”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 중에서 “다른 친구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부분을 쳐내야지” 자신도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5. 나가며: ‘모범생’이 아니어도, ‘튀어도’ 괜찮은 학교를 꿈꾸며

성소수자들이 학교에서 보이는 패싱(passing)은 때로 연기라 느껴지지 않을 만큼 쉽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이는 그들이 떨어져서는 안 되는 줄 위를 살얼음판처럼 걷는 것이 일상이 될 때까지 숨 쉬듯 연습하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의 패싱(passing)은 성소수자들의 능동적인 전략이기도 하지만, 사회문화적 억압에 의한 반응이기도 하다. 성소수자들은 학교에서 자신을 숨기기를 택하기도 했지만, 숨기기를 요구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연우는 자신의 학교에서의 패싱(passing) 경험을 ‘동전의 양면’과 같은 의미로 해석하고 있었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커밍아웃을 한 적이 없다고 한 그는 “내가 너희한테 말을 안 해주는 거지”라는 생각으로 자신이 커밍아웃하지 않고 패싱(passing)하는 이유를 의미화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성 정체성이 드러나면 “굉장히 수치스럽고 문제가 될 수 있고 내가 왕따가 될 수도 있”다는 감각이 늘 불안하게 자리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여기도 진실이 있고 저기도 진실이 있는” -“필요가 없어서 말 안 하는 것도 진실인데, (…중략…) 일종의 강제적 규칙이 있었던 것도 맞고, 그래서 하나로만 얘기하긴 좀 어려운”- 것이다.

또한, 학교 안에서 성소수자가 교사, 또래들과 관계를 맺는 양상을 통해 우리는 학교에서 누가 ‘정상인’으로, 또 누가 ‘낙인자’로 여겨지는지 알 수 있다. 학교에서 어떤 행위가 ‘정상성’에 부합하고 어떤 행위는 ‘비정상성’으로 치부되는지도 알게 된다. 이 연구에서는 성소수자의 학교 경험을 통해 ‘정상성’에 부합하는 학생의 모습을 학교에서는 특정한 ‘학생상(像)’, 이를테면 ‘모범생’과 ‘튀지 않는 애’로서 규정하고 있음을 밝혔다. 성소수자에 대한 교사의 무지, 교육과정에서의 부재,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는 학교 문화 속에서 성소수자들은 ‘나’로 존재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는 성소수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취약성이 배제되는 공간에서는 누구도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학교는 ‘모범생’이 아니어도 괜찮고 ‘튀어도’ 괜찮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학교다.


참고 문헌

  • 김찬미·이지하·곽원준(2020). “포토보이스를 활용한 청소년 성소수자의 커밍아웃과 아웃팅 경험 분석”, 『사회과학연구』, 31(4), 231-255쪽. 
  • 남미자·김아람·김경미(2023). “성소수자 학생의 학교 경험에 관한 내러티브 탐구: 지정성별(assigned sex) 여성 성소수자 학생을 중심으로”, 『교육학연구』, 61(2), 59-91쪽. 
  • 정성조·정용림(2022). “청소년 성소수자와 안전공간”, 『공간과사회』, 80, 103-141쪽.
  • Goffman, E.(1963). Stigma: Notes on the Management of Spoiled Identity, London: Penguin Books, 윤선길·정기현 옮김(2009), 『스티그마: 장애의 사회심리학』, 한신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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