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예륜

디지털 전환, 탈중심화된 퀴어성의 신화
여기서부터는 앞서 논의했던 도시의 밀도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대도시규범성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팬데믹 당시 우리의 네트워크는 대부분 스크린을 통해 이어지지 않았던가요. 적당한 도구만 있으면, 물리적 거리에 큰 제약 없이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공간은 현실의 공간에 비해 불평등이나 제약이 적어 보입니다. 관계와 만남이 스크린 단위로 존재하기 때문에, 서울에 있든, 강릉에 있든, 심지어는 미국 뉴욕주에 있든 별 차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거리가 아주 멀어질 경우 시차의 문제가 있긴 했지만요). 같은 공간에 있지 않더라도, 보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당시 렌트비가 그리 비싸지 않은 소도시의 근교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주거에 많은 비용을 치러가며 서울(또는 여타 대도시)에 굳이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에서 저는 한 가지 질문에 착안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팬데믹이 촉발한 디지털 공간의 활성화, 또는 확장은 도시만이 퀴어적인 삶의 가능성과 가시성의 ‘자연스러운 장소’라는 믿음을 조금이라도 흔들어 놓았을까? 지금부터 이 물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 합니다.
팬데믹은 도시의 물리적 움직임을 멈춰 세웠지만, 디지털 공간은 그 공백을 메우며 빠르게 팽창했습니다. 줌, 유튜브, 디스코드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행사와 모임, 심지어는 퍼레이드까지 온라인으로 재구성되었고, ‘연결성’은 새로운 생존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함께 있거나 만나지 못해도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감각이 일종의 안심으로 기능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물리적으로 안전한 거리 두기가 동시에 정동적 연결의 유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감각은, 이전의 도시 중심 집결 방식과는 다른 종류의 ‘함께 있음’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김정민, 2025). 특히 한국의 맥락을 생각해보았을 때, 주변에 커뮤니티 공간이 전무한 이들, 서울행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감당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온라인에서의 만남은 임시방편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접근 가능한 안전지대였던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적 담론은 그 이면의 불균형과 위계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우선 빠르고 안정적인 인터넷 환경이라는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 환경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다른 가족 구성원과 전자기기를 공유해서 써야 할 수도 있고, 데이터 요금 때문에 장시간 접속을 망설일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온라인 미팅 또는 라이브 행사에 접속하기와 끊김을 반복하거나, 채팅은 포기하고, 아예 나중에 영상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요약만 확인하는 식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과 같이 ‘자기만의 방’의 유무 역시 불균형을 만듭니다. 팬데믹이 만든 온라인 소통은 카메라를 켜고 소리를 내도 괜찮은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합니다. 가족과 같이 방을 공유하거나, 쉐어하우스나 기숙사같이 항상 누군가가 드나드는 환경은 이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특히나 주변에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성소수자라면 정체성이 노출될 위험으로 소통에 거의 끼지 못하거나, 아예 접속을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온라인 소통에 사용되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이해도 또한 소통의 불균형을 만듭니다.
접속 링크만 열어두면 모두가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특정한 조건을 갖춘 이들에게만 부분적으로 참일 수 있습니다. 실상은 화면을 켜고 말하는 이들/묵묵히 꺼진 검은 화면/아예 접속하지 못하는 이들로 참여의 깊이와 밀도에서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즉, 온라인으로 옮겨간 퀴어 공간에서도 어떤 이들은 다시 ‘조용한 주변부’로 밀려나게 됩니다.
도시의 멈춤과 되돌아온 서울 중심성
그럼 다시 서울 중심성의 문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다들 2020년과 2021년의 퀴어 축제를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당시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는 재빨리 온라인으로 축제의 공간을 옮기고 기존에 구축해 둔 인프라와 미디어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온라인 퍼레이드와 부스 운영 등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비서울 지역의 퀴어문화축제들은 기술 인력과 장비, 홍보 채널, 예산의 한계로 인해 행사를 축소하거나 아예 중단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쉬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격차는 팬데믹 이전부터 각 지역 축제가 반복적으로 겪어온 재정 적자와 인력 부족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팬데믹은 단지 그 불균형을 가속하고 가시화했을 뿐입니다. 온라인 전환의 성공 여부는 애초에 어떤 조직이 얼마만큼의 인프라와 자원을 가지고 있었는가의 문제였고, 그 결과 인프라의 불평등이 디지털 환경에서도 그대로 재생산되었습니다.
압두말리크 시몬(AbdouMaliq Simone)이 말하는 ‘인프라로서의 사람(people as infrastructure)’이라는 개념을 떠올려 보면, 이 상황의 아이러니가 조금 더 뚜렷해집니다 (Simone 2004). 여기서 인프라란 도로, 전기처럼 눈에 보이는 설비가 아니라, 제도적 보호와 안정적 자원이 거의 없는 조건에서 사람들이 서로의 시간과 기술, 공간과 관계를 이어 붙여 만드는 비공식적 생존 기반을 가리킵니다. 안정된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불안정한 삶들이 서로를 잠시 지탱해 주는 관계망 자체가 인프라가 되는 셈입니다.
한국의 퀴어 커뮤니티 역시 비슷한 의미에서 오랫동안 국가의 보호나 안정적인 공적 재원 없이, 각자의 취약한 삶을 조금씩 맞물리게 하며 축제와 온/오프라인의 커뮤니티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각 지역의 퀴어 조직들이 구축해 온 기반은 거대하고 견고한 시스템이라기보다 사람들의 몸과 관계가 곧 인프라가 되는 구조에 더 가깝습니다. 그런데 팬데믹이라는 위기 속에서, 이 비공식적 기반들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자원과 인력을 가진 조직들의 생존력만이 부각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위기 속에서 끝내 버티고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 관계적 인프라 전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도 이미 상대적으로 덜 취약했던 일부 인프라였던 셈입니다.
이처럼 디지털 전환은 퀴어 정치의 탈중심화를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형태의 중심성을 강화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디지털 대도시규범성(digital metronormativity)’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팬데믹 이후의 디지털 퀴어 공간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주체가 더 잘 보이고 더 멀리 도달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권력 재배치의 장이었습니다 (Wei 2024). 온라인 플랫폼은 이론적으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조회수, 구독자 수, 알고리즘 추천 등 가시성과 영향력을 수치화·자본화하는 구조 위에서 작동합니다. 그 안에서 누군가는 더 많은 노출과 도달 범위를 확보하며 다시 중심에 서게 됩니다.
결국 디지털 공간은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장이라기보다, 기존의 문화적 위계가 다른 형식으로 반복·확장되는 또 하나의 도시적 인프라로 기능합니다. 서울이 오프라인에서 가진 장악력은 온라인에서도 이어졌고, 어떤 의미에서는 더 공고해졌습니다 (김정민 2025). 팬데믹은 탈도시적 퀴어 정치의 가능성을 연 듯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조직력, 기술, 자원, 가시성이 한데 모여 있는 곳만이 디지털 국면에서도 계속해서 중심으로 남는 구조를 강화했습니다. 다시 말해, “의미 있는 퀴어 정치와 공동체는 충분한 인프라를 갖춘 곳에서만 가능하다”는 대도시규범적 상상력이 디지털의 형식으로 재확인된 셈입니다.
비체화된(disembodied) 연결의 한계
사실 이 글을 쓰면서 가장 안부를 묻고 싶었던 지점은 바로 이곳입니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기에 저는 익숙한 곳을 떠나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이중의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받은 매뉴얼은 분명 존재했고, 수업과 회의도 다들 처음 겪는 방식이긴 하나 어쨌든 계획대로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과 만나 말을 섞으면서도, 관계가 오로지 음성 언어와 화면 속 얼굴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이 주는 공백감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화면을 통해서만 관계를 이어간다는 감각이 주는 어색함과 위화감 때문에 저는 꽤 정신적으로 버거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은 타인의 공간감과 비언어적인 몸의 감각이 얼마나 중요한지였습니다.
여러분은 접촉이 없는 시기를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제가 겪었던 감각의 결핍을 퀴어 공동체로도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셰데드와 스칸달리스 (Cheded & Skandalis 2021)가 말하듯, 팬데믹은 일종의 ‘촉각의 위기(tactile crisis)’를 가져왔습니다. 우리가 퀴어 퍼레이드에서 경험하는 것은, 사실 언어적 소통보다 비언어적 감각이 훨씬 더 다채로울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타인들과 몸을 부딪치며 걷는 퍼레이드의 감각, 진동으로 전달되는 앰프의 음악 소리, 손을 맞잡을 때 생기는 압력, 광장에서 우연히 옆에 선 사람과 나누는 짧은 농담 같은 것들입니다. 이들은 인터넷 회선과 스크린으로 온전히 들어올 수 없는 것들입니다.
돌아보면, 우리가 공동체라고 부르던 것의 핵심에는 늘 몸, 그리고 몸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정동이 있었습니다. 세라 아메드(Sara Ahmed)의 표현을 빌리자면, 몸은 단순한 물질적 경계가 아니라 ‘정동이 들러붙는(sticky)’ 표면입니다 (Ahmed 2004). 우리의 공동체는 단지 정체성이나 발화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냄새, 온도, 리듬, 우발적인 접촉 가능성 속에서 구체화되는 경험이기도 합니다. 퀴어 퍼레이드에서 누군가를 마주치는 일이 단순하고 중립적인 시선 교환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 마주침은 서로 얼마나 가까이 혹은 멀리 설 것인가를 가늠하는 긴장 그 자체이자, 몸들이 공통의 리듬 속에서 정동적 집합을 이루는 정치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캐슬린 스튜어트(Kathleen Stewart)가 말하는 ‘분위기의 조율(atmospheric attunement)’ 역시 이러한 장면들을 포착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Stewart 2011). 이때 중요한 것은 개별 행위자보다, 공간을 흐르는 미묘한 기류와 정동의 패턴 자체입니다. ‘분위기의 조율’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미세하게 맞추어 가는 와중에, 어느 한순간이 편안함, 긴장, 위험, 연대감 같은 감정으로 채색되어 가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앞선 두 개념에 이어, 하나의 개념을 더 가져와 보겠습니다. 로렌 벌란트 (Lauren Berlant)의 ‘친밀한 공공(intimate public)’을 떠올려보면 (Berlant 2008), 퀴어 공동체는 결국 반복적인 신체적 만남과 감각의 누적 위에 구축되는 신뢰의 회로입니다. 퀴어 퍼레이드가 해마다 비슷한 루트를 따라 걷는 이유, 이를 확보하기 위해 동원되는 노력, 축제 기간이 아니어도 우리를 품어주는 단골 바와 카페 같은 공간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같은 장소에 여러 번, 여러 해에 걸쳐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연대의 발화와 실천만큼이나 ‘우리’라는 감각을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팬데믹 기의 디지털 전환은 겉으로는 이런 연결을 유지해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감각의 시간성을 압축 또는 생략하고, 또 다른 형태의 고립과 외로움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렇게 보면, 팬데믹 기의 디지털 퀴어성은 어떤 의미에서는 ‘몸 없는 공동체’에 대한 집단적 실험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실험이 보여준 것은, 퀴어 정치와 공동체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몸의 밀도, 촉각, 공기를 함께 나누는 경험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도시가 멈추었을 때 사라진 것은 단지 물리적 이동의 자유가 아니라, 몸들이 서로를 매개로 만들어내던 정동의 인프라였습니다. 이 시기를 지나오며, 저는 여러분 각자가 어떤 방식으로 이 비체화된 연결의 한계를 견디고 나름의 감각과 관계를 지켜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 질문이 이 글에서 안부를 반복해서 떠올리게 만드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가며: 다음 위기를 함께 견뎌낼 퀴어 공동체-인프라를 상상하며
이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게 됩니다. 축제가 거리로 돌아오고, 더 이상 백신이나 자가격리 같은 것 따위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지금, 제가 정말로 묻고 싶었던 질문은 “팬데믹 동안 퀴어 정치는 새로운 공간적 지평을 열었는가?”에서 출발해, 오히려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바뀌었습니다. 도시가 멈춰 있던 그 시간 동안,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규범성은 어떻게 그 모습을 바꾸었고 우리는 어떤 정동과 피로, 외로움 속에서 버텼는가?
팬데믹은 서울의 중심성이 교통, 광장, 단체들, 클럽, 축제 같은 물질적 인프라에 얼마나 의존해 있었는지 드러내는 한편, 그 인프라가 멈추었을 때 비체화된 연결이 얼마나 깊은 공백감과 고립감을 낳는지도 보여주었습니다. 화면을 통해 서로를 보며 말할 수는 있었지만, 같은 공기를 마시고 몸의 거리를 가늠하며 ‘함께 있다’는 감각을 만드는 정동의 인프라는 크게 흔들렸습니다. 도시가 멈춘 것은 단지 이동이 제한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몸들이 만들어오던 분위기와 감정의 기반이 일시적으로 꺼졌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서울은 기존에 축적된 조직력과 상징 자원을 기반으로 비교적 빠르게 활동을 복구했고, 많은 지역의 축제가 중단된 이후 다시 퀴어 정치의 무대로 가장 먼저 부상했습니다. 팬데믹 동안의 비체화된 연결 경험과, 이후 재개된 서울 중심 행사와 네트워크로의 회귀를 나란히 놓고 보면, 여전히 특정 도시를 퀴어한 가능성의 중심축으로 삼는 규범적인 상상력이 얼마나 쉽게 되살아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질문은 “어떻게 탈중심화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인프라를 함께 재분배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서로를 돌볼 것인가”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합니다. 디지털 공간은 결국 우리에게 충분히 안전한 인프라가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어느 지역에 있든 위기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안전과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공간, 사람, 시간, 기술, 재정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그리고 다시 몸이 만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을 때 관계와 감각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도록 어떤 돌봄의 회로를 마련할 것인지가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논의는 다음 위기가 어떤 형태로 찾아오든, 또다시 서울만이 퀴어 가능성의 유일한 무대가 되는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준비이기도 할 것입니다.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도시 없는 퀴어 정치’를 꿈꾸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도시를 포함하되 도시를 넘어서는 퀴어 정치, 서울이라는 좌표 하나에만 기대지 않고 다양한 속도와 규모, 서로 다른 장소들 속에서 동시에 살아 움직일 수 있는 인프라를 함께 상상해보자는 제안에 가깝습니다. 그 인프라는 건물과 예산만이 아니라, 다음 위기가 왔을 때도 서로의 존재를 잊지 않고, 비체화된 연결의 한계 속에서도 완전히 끊기지는 않도록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정동의 기반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 글이 그런 상상을 조심스럽게 나누면서, 동시에 그 시절을 통과한 서로의 몸과 마음의 안부를 다시 한번 묻는 편지로 읽힌다면 좋겠습니다.
참고문헌
- 김정민. 2025.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도시 공간 감각의 변화와 서울규범성의 재구성: 남성 동성애자의 위치기반 데이팅 앱 경험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 Ahmed, S. 2004. The Cultural Politics of Emotion. Edinburgh University Press.
- Berlant, L. 2008. The Female Complaint: The Unfinished Business of Sentimentality in American Culture. Duke University Press.
- Cheded, M., and A. Skandalis. 2021. “Touch and contact during COVID-19: Insights from queer digital spaces”. Gender, Work & Organization 28 (S2):340–347.
- Simone, A. M. (Abdou M). 2004. “People as Infrastructure: Intersecting Fragments in Johannesburg”. Public Culture 16 (3):407–429.
- Stewart, K. 2011. “Atmospheric Attunements”. Environment and Planning D: Society and Space 29 (3):445–453.
- Wei, J. 2024. “Rethinking Queer (Asian) Studies: Geopolitics, Covid-19, and Post-Covid Queer Theories and Mobilities”. Journal of Homosexuality 71 (6):1442–14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