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

2026년 1월 12일, 22대 국회에서는 처음으로 「차별금지법안」이 진보당 손솔 의원 대표로 발의되었다. 지난 몇 년간 반페미니즘을 위시하여 혐오와 차별을 선동함으로써 이익을 챙기는 극우 정치 집단이 세력화했고, 그로 인해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의 삶이 더욱 위태로워졌음을 고려한다면, 차별금지법안의 발의는 반가운 소식이다.
2007년 첫 발의 이후 19년간 차별금지법은 국회의 책임 회피 속에 번번이 좌초했다. 정치권이 극우 개신교 세력을 비롯한 일부 인구 집단의 동성애 혐오 주장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며 이를 일반 여론으로 호도한 탓이다. 그런데 근래 차별금지법 반대 근거에 ‘여성 인권’이 새롭게 두드러지고 있음은 우려스럽다. 차별금지법이 성차별을 해소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여성 공간과 여성 정책을 없애고 성범죄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는 등 여성의 권익을 침해할 것이라는 주장이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많은 오해와 왜곡이 있다.
이번에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차별에 공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기본법이다. 이 법은 차별 사유와 범주 등을 규정하고 차별 금지를 명문화하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차별 시정 의무, 노동, 재화·용역의 공급 및 이용, 교육, 정책 영역에서의 차별 및 괴롭힘 금지와 예방에 관한 사항, 차별로 인한 피해의 구제 수단으로서 진정 및 시정명령, 손해배상 등에 관한 사항 등을 규정한다.
차별금지법은 한국 사회 뿌리 깊은 성차별에 대응할 유용한 제도적 도구가 될 수 있다. 성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현행법으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고평법)」,「양성평등기본법」 등이 있으나 각자가 다루는 고유의 영역이 있고, 한계점도 가진다. 차별금지법은 이들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일례로, 「고평법」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 및 금지를 위한 조항은 가지고 있으나 성차별적 괴롭힘에 관해 규정하고 있지는 못하는 식이다. 이로 인해 직장 내에서 성적 의도가 없는 여성혐오 발언을 하거나 여자 화장실과 같은 업무공간을 배제하는 등의 괴롭힘에 피해에 제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미비하다. 이번 발의안에서는 ‘성별 등을 이유로 한 괴롭힘’을 금지하고 있어 이러한 사각지대를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성차별을 경험하는 이들이 단지 여성이기만은 하지 않다는 점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성차별 해소에 반드시 필요하다. 많은 차별은 여러 차별 사유가 서로 복합적으로 얽혀서 일어난다. 가령 장애 여성이 겪는 차별은 비장애 여성이 겪는 차별과도, 장애 남성이 겪는 차별과도 다르다. 이주민 여성, 청소년 여성, 젠더퀴어 여성에 대한 차별 역시 마찬가지다. 이주민 여성이기 때문에 혼인 여부에 따라 법적 지위가 흔들리고, 청소년 여성이기에 성착취에 더 취약해지며, 젠더퀴어 여성이기에 겪는 채용 차별이 있다. 이러한 한 인간의 교차적 정체성에서 일부만 따로 떼어 차별로부터 구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다양한 차별 사유를 포괄하여 다루는 법의 제정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이번 발의안은 제5조 ‘복합차별의 판단’에 대한 조항을 두어 “2가지 이상의 사유가 함께 작용하여 발생한 행위의 차별 여부를 판단할 때는 개별 사유에 따른 차별 여부를 판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각의 사유를 통합하여 차별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2016년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온 ‘페미사냥’ 또한 대표적인 복합차별이다. 페미니스트로 지목되어 해고당하거나 계약이 해지되거나 공개 사과를 강요당하는 괴롭힘을 겪는 등 피해는 성차별과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에 따른 차별이 결합해 일어난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이러한 피해를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구제할 수 있다. 또한 이번 발의안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노동 영역의 보호 범위를 ‘고용관계’에 그치지 않는 ‘노무 제공 관계’로 확대하고, ‘계약의 해지 또는 갱신 거절’을 차별 행위로 포함했다는 점이다.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당한 피해자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이를 차별로써 진정했으나, 진정인과 피진정인의 관계가 「국가인권위원회법」이 규정하는 고용관계에 해당하지 않아 기각당한 바 있다. 이번 발의안이 통과된다면 유사한 문제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차별금지법을 두고 많은 오해가 존재한다. 차별금지법이 악용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번 발의안을 포함한 이제껏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은 모두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행위는 차별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령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른 취업제한 명령에 따라 특정 기관에 취업을 제한하는 행위 등은 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차별행위가 아니다. 더욱이 “현존하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하여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행위”, 즉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는 ‘차별금지의 예외’로서 별도 규정되어 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정치에서의 낮은 여성 대표성을 높이기 위한 여성공천할당제와 같은 제도가 이 법으로 제재당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한편, 차별금지법을 빌미로 남성이 “여성이라고 주장하며” 여성 공간에 침입할 것이라는 주장은 기본적으로 트랜스 혐오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부정의하다. 또한 이러한 주장은 합리적이지도 않은데, 이미 단지 성별에 맞지 않는 공간을 이용했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처벌하고 있지는 않으며, 성폭력 범죄나 성적 불쾌감을 주는 행위를 저지른 사람은 그 성별에 상관 없이 처벌받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이 남용되고, 권력에 따라 해석·적용되어 오히려 사회적 소수자의 대항 표현이 가로막힐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타당한 우려다. 그러나 이번 발의안에서 “괴롭힘”을 정의하면서 ‘역사적·구조적으로 차별받았던 집단이나 그에 소속되었던 특정 개인에 대하여’라는 조건을 두고 있음은 그와 같은 문제를 막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또한, 이는 차별 문제를 다루는 기본법으로써 차별금지법을 통해 구조적 차별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고, 더욱 풍부하게 함으로써 함께 대응해 가야 하는 문제일 수 있다.
정치권은 차별금지법에 대해 계속 ‘나중에’를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도 “민생과 경제가 더 시급하다”라며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그러는 사이 한국 사회의 차별에 관한 논의는 무시되거나 왜곡되고 있다. 구조적 성차별로 여성이 일과 돌봄의 이중 부담을 지거나, 일자리를 잃거나, 혐오와 폭력에 생명을 위협받고 있음에도 ‘청년 남성의 역차별’ 주장이 성별 담론을 삼켜버리고 있는 식이다. 성차별 문제를 제대로 논의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차별 그 자체에 대한 사회의 감각을 되살리는 것이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이 그 토대가 될 수 있다.
이번 22대 국회의 차별금지법안 발의는 지난겨울 윤석열 탄핵 광장에서 많은 페미니스트 시민이 외친 가장 주요한 사회 개혁 과제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22대 국회가 「차별금지법」 발의를 넘어 제정으로 나아감으로써 사회적 차별과 혐오 문제에 대응하는 시대적 책무에 응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