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예 미현 영경 윤소이

*본 대담에는 영화 〈세계의 주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대담은 각자 영화를 보고 온 뒤 입이 근질거렸던 필진들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며 별도의 기획 없이, 다소 즉흥적으로 모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25년도 10월 22일 개봉한 〈세계의 주인〉은 평단의 호평과 관객의 입소문으로 25년도 한국 독립·예술 실사 영화 중 유일하게 20만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있는데요(기사 보기), 영화 속 내용에서부터 영화를 둘러싼 반응까지, 한 번쯤 가져볼만하지만 정답은 없는 생각들을 주제로 삼아 대담을 진행하였습니다.
1. 성장을 말 하는 다른 문법: 〈세계의 주인〉 그리고 〈벌새〉
미현 : 제가 〈세계의 주인〉을 보고 〈벌새〉 각본집을 샀거든요. 왜 샀는지는지 모르겠는데 〈벌새〉 각본집이 너무 갖고 싶은 거에요. 갑자기 그냥. (웃음)
윤소이 : 저도 영화를 보고 나서 떠올랐던 게 영화 〈벌새〉였어요. 〈벌새〉의 경우에는 성폭력은 아니지만 젠더폭력의 범주에서 ‘가정 폭력’을 다루잖아요. 그 영화에서는 가해자가 주인공의 형제, 친오빠였죠. 〈세계의 주인〉에서는 가해자가 감옥에 있어서 주인공과는 생활환경이 분리되어 있지만, 〈벌새〉의 주인공은 가해자와 함께 사는 집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고요. 그래서 〈세계의 주인〉이 회복적인 정의의 가능성과 조건을 이야기한다면, 〈벌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이 불가능한 순간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자 라는 것을 더 얘기했다고 생각해요. 〈세계의 주인〉에서 삼촌은 이미 감옥에 있기 때문에 가족과 단절된 상황이지만, 〈벌새〉는 오빠가 감옥은 커녕 경찰에 신고도 안 되었고, 언니는 집에 안 들어오고, 그래서 〈벌새〉의 대사 중에 “우리 가족은 역시 따로 살아야 돼”라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세계의 주인〉과 〈벌새〉를 비교했을 때, 두 영화가 서로 다른 방향의 성장을 보여주는 것 같더라구요. 소위 말하는 ‘페미니즘 대중화’라는 게 한 번 휩쓸고 간 뒤에 등장한, 젠더 폭력과 관련된 성장을 이야기하는 굉장히 다른 장르의 성장영화로 좀 다가왔던 것 같아요. 어쩌면 〈벌새〉만이 할 수 있는 얘기가 있고 〈세계의 주인〉만이 할 수 있는 얘기가 있는 것 같아요.
리예 : 과거의 시간을 빌어서 여성의 서사를 성장담이라는 형태로 이야기하는 작품들이 종종 있었죠. 〈벌새〉와 같은 것은 ‘나한테도 저런 어른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와 같은 종류의 감동을 주며 사람들에게 많이 받아들여졌거든요. 그런데 〈세계의 주인〉에 대해서는 비판이 있기도 했어요. 왜 〈세계의 주인〉은 ‘이건 현실과 다르다’라는 비판이 〈벌새〉보다 좀 더 감지되게 되었는가라는 게 궁금해졌어요.
미현 : 어떤 관객들이 〈세계의 주인〉에 대해서 느꼈던 불편함이나 미움의 감정이 이해가 되긴 해요(리뷰 내용 후술). 우리가 〈벌새〉를 보면서는 영화 속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언젠가 나한테 올 거라는 기대를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있는 2차 피해를 주는 누군가가 새로운 인물이 될 거 라고 바뀔 거라는 건 기대할 수 없어요. 친족성폭력에서는 가족이 가장 잔인한 2차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해심 많은 엄마와 심지어 학예회에 안 왔는데도 화 안 내는 동생. 저 나이에 저 남자아이가 저렇게 누나의 삶을 이해한다고? 〈벌새〉에서의 선생님과 같은 것은 바랄 수 있는 희망적 판타지라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주인이의 세계는 자신을 위한 판타지는 아니라고 느낄 수 있어요.
윤소이 : 저는 〈벌새〉랑 〈세계의 주인〉을 비교했을 때 공통적으로 또 보였던 게 있다면 어떤 주변부에 있는 상식적인 선량한 어른의 존재였어요. 주인공 다니는 태권도장 관장님은 뭔가 대단한 걸 해주는 건 아니에요. 그 관장님의 일 그냥 본인의 직업이 그냥 애들을 가르치는 거죠. 그래서 자기 일을 그냥 열심히 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주인이한테 도움이 되는 거잖아요. 〈벌새〉에도 마찬가지로 의사 선생님이 나오거든요. 은희가 오빠한테 맞고 나서 귀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그 의사 선생님이 ‘혹시 필요하면 진단서를 내가 써줄게.’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뭐 대단한 어떤 젠더 감수성이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닐 수 있고, 본인의 직업이기 때문에 한 말이지만 주인공을 돕고자 하는 이야기가 되는거죠. ‘각자의 자리에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했을 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라는 최소한의 기대치를 윤가은 감독, 김보라 감독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리예 : 청소년물을 만드는 여성 감독이라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방식인 것 같기도 해요. 어떤 선량한 어른들이라는 존재가 고통받는 청소년에게 주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미현 : 너무 그렇지 않을까요? 여성 감독들이 여성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 때 거기에 투영되는 욕망 중에 이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욕망이 엄청 클 것 같거든요. 전 그 욕망에 동감하고 너무 좋아요.
2. 주인이의 세계가 남긴 물음들: 연애, 꼬집기, 그리고 사과
윤소이: 영화 안에서 청소년들이 섹슈얼리티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잖아요. 근데 그거를 보여주는 방식도 되게 재밌었어요. 그리고 주인이 친구인 유라가 야한 만화를 그리기 위해 남자친구가 있는 애들한테 인터뷰를 하고 다닌단 말이에요. 그게 되게 재밌고 뭔가 공감되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주인이가 남자친구와의 스킨십을 어떤 선을 두고 거부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폭력의 경험으로 인한 트라우마처럼 보여질 수도 있겠지만, 트라우마가 없더라도 어떤 상황에서든 동의의 문제는 일어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좀 생각해 볼 지점들을 되게 많이 던져준 것 같았어요.
미현 : 맞아요. 남자친구가 나중에 ‘주인이가 어렵다’고 얘기하면서 차잖아요. 근데 소이가 얘기한 대로 10대 여성들이 내가 되게 적극적으로 스킨십에 참여하긴 하지만 나름의 선을 두거나 어떤 행위에 대해선 신체적인 거부감이 드는게 너무 자연스럽죠. 주인이도 자연스러운 거부감이 있는데, 그것을 스스로 피해 경험과 연관지어서 생각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리예 : 꼬집는 행위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도 되게 궁금해요. 〈벌새〉에서는 주인공에게 도벽이 있잖아요. 〈세계의 주인〉에서는 ‘꼬집기’가 그런 종류라고 느꼈어요. 인물의 다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장치. 폭력과 엮이게 된 주인이가 그 부산물들을 이성적으로 컨트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보다 훨씬 약하고 어린 다른 존재에게 폭력을 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영경 : 꼬집기 장면이 저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영화 속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저는 주인이가 말했던 피해 시기가 지금 누리의 나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봤거든요. 그래서 누리를 꼬집음으로써 공격이나 곤경의 상황을 주고, 누리가 보이는 반응을 주인이가 다시 본다는 설정이 어쩌면 주인이가 과거의 자기 자신을 우회해 바라보는 행위처럼 느꼈어요. 꼬집기는 과거의 주인이가 자기 자신을 다시 마주하는 장치이고, 주인이에게 누리는 자신의 과거가 투영되는 존재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그리고 주인이는 자신이 그 나이대에 느꼈을지도 모를 무기력과는 다른 태도를 누리를 통해 확인했죠. 그래서 누리가 수호를 통해 주인이를 꼬집었을 때, 주인이가 꼬집힘을 당하면서도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자신이 그때 하지 못했던 어떤 반응이나 선택을 다른 아이가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일종의 안도나 작은 위로를 얻는 순간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윤소이 : 주인이가 누리를 꼬집을 때 그냥 꼬집기만 한 게 아니라 ‘아파?’ 하고 계속 물어보면서 강도를 조절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리고 그렇게 주인에게 꼬집혔던 누리는 나중에 유치원 원장 선생님에게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해”라는 이야기를 해주죠. 저는 누리가 주인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아픔도 알아차리게 되지만,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어린이가 되었다는 이야기로 느껴졌거든요.
미현 : 그러면 사과는 어떠셨어요? 사과 되게 좀 영리한 트릭이었다고 생각했어요. 성폭력이 평생의 고통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뭔가 있지 않을까’를 찾게 되는데 그게 사과와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라는추측을 하게 되잖아요. 결말부에 교실에 떨어진 사과를 주워서 책상에 놓는 것을 보여주며 그 예측을 뒤집는 것이 재미있어요.
리예 : 저는 이 사과 장면을 보면서, 감독은 참 모범적인 수재구나 싶었어요. 주인이의 진심은 알 수 없지만 관객이 사과의 의미를 생각하는 그 모든 과정이 성폭력 피해 경험에 대해 관객이저 나름대로 궁리하도록 만드는 장치인 거잖아요. 이걸 보고 ‘역시 사과는 그 피해 현장에 있었겠구나’라고 상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또 ‘아, 별거 아니구나 역시’하는 사람들이 있겠죠. ‘성폭력은 이 사과 같은 것이구나. 부대끼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건가봐’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며.. 뭐 이런 ‘더 생각해 볼 점’을 의도한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3. 수신자 이주인: 익명의 쪽지, 이름없는 발신자들
리예 : 그래서 여러분은 그 쪽지 엔딩이라는 것에 대해서 어떤 느낌이었는지 궁금하네요.
미현: 원래에도 영화의 설정들이 이상적인 현실을 그린다는 점에서 판타지 같았지만, 정말로 ‘누구나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의 발화가 타인에 용기가 된다’라고 이야기하는 결말이라는 점에서 약간..
윤소이 : 그러니까 약간 갑자기 보건복지부 캠페인 같은 공익 광고 느낌으로 끝난 거죠. (웃음) 또, 결말 부분에 진로 희망을 쓰는 게 있잖아요. 그때도 주인이에게 앞으로 뭐 하고 싶냐고 물어봤는데 ‘사랑’ 이렇게 적었잖아요. 생각해보면 감독이 왜 그렇게 했는지는 알겠어요. 주인이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정말로 사랑을 하고 싶고, 자유롭게 자기가 원하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 세계가 더 많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그렇게 진로 희망에 ‘사랑’을 쓰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실 그런 당위적이고 교훈적인 결말까지가 영화를 어떤 공익 광고의 연장처럼 느껴지게 만들기도 했어요.
미현 : 맞아요. 성폭력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의 조심스러움이 공익광고로 마무리된 것이 아닐까요?
영경 : 저는 이 영화가 다른 방식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미현이 앞서 말한 것처럼, 관객에게 ‘자신을 위한 판타지’가 되는 방식으로요. 가령, 가족 간의 관계가 더 강해질 수도 있죠. 삼촌은 핵가족 개념에서는 약간은 외부인이잖아요. 그러니 그 경계에 있는 주인이의 아빠가 자신의 동생인 삼촌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며 죄책감을 갖기보다, 완전히 주인이 편에 서서 주인을 지키는 입장을 명확하게 보이게 되었다는 등의 다른 결론도 가능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된다면 주인공은 보다 안전해질 수 있어 관객은 안심할 수 있고, ‘저런 어른이 되어야겠다’하는 정확한 모델도 제시될 수 있었죠.
그런데 감독의 꿈은 한편으로는 굉장히 소박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관심 대상은 분명히 주인이기도 해서, 주인이 본인의 이야기를 밝히기 전과 후를 기준 삼아, 주인이가 자신의 세계에 안전하게 재입성해 그 세계를 누리는 모습으로 주인이의 회복을 그려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각본집을 보면, 주인이가 마지막 쪽지를 받아 확인하는 장면 이후, ‘주인이 남학생을 잡으러 쫓아간다. 왁자지껄한 웃고 떠드는 아이들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주인 세계와 하나가 된다.(윤가은, 2025: 138-139)’는 장면으로 끝이 나거든요. 그렇게 보면 쪽지는 주인이가 자신의 세계로 다시 들어가는데 있어 어떤 용기, 위로, 안도감을 느끼게 해주는 계기 혹은 장치로써 역할을 하게 되는 거고, 그렇다면 감독의 입장에서는 목표에 맞는 완벽한 결말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현 : 쪽지라는 게 주인이한테 굉장한 스트레스였고 어떤 본인의 행동이나 나의 위치에 대해서 되게 고민하게 하는 그런 거였는데 그거를 자신의 피해 경험이라는 것이 세상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에 대해서 다른 이렇게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어떤 깨닫게 하는 순간 이었을 것 같아요. 되게 중요한 키포인트였을 것 같아요.
4. 성폭력 사건을 둘러싼 재현의 윤리
리예 : 저는 영화를 보고 난 후, 반응을 찾아보는 걸 좋아하는데, ‘왓챠’라든가 ‘트위터’ 쪽 반응을 보다 보니 몇몇 리뷰들이 눈에 띄었던 것 같아요. 해당 영화의 촬영진들이 영화에 대해 발설하지 말아달라고, 영화 초반에는 최대한 내용이 안 알려지도록 약속을 요청하던 방식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 영화가 입소문을 타기까지는 잘 뭔가 순조롭게 진행되다가, 성폭력이라는 것을 ‘반전요소’처럼 다룬 영화 홍보 방식에 대해 사람들이 느낀 불쾌감 내지는 모욕감이 이야기되기 시작을 한 거죠. 이를테면은 성폭력을 주제로 다루면서도 숨긴 것, 그리고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숨김을 유지하려 했다는 정황에 대해서요.
영경 : 생각해보지 못한 반응이네요. 관객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 주인이의 세계를 앞서 왜곡해 바라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라 생각했거든요. 저는 영화가 어떤 인물이 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아닌, 그냥 ‘살아가는 사람’을 보여주려 한다고 느꼈어요. 그렇다면 영화를 홍보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사람을 먼저 볼 수 있도록, 낙인이 될 수 있는 폭력 피해의 사실을 뒤로 미뤄둬야했을 것 같아요. 물론 해당 주제를 보고 듣고 말하는 데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던 관객 분들의 입장에서는 당황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어떤 면에서는, 대중을 상대로 영화를 알리는 홍보라는 것이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태도와 본질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미현: 주인이의 삶을 ‘성폭력 피해자’로서만 바라보지 않기를 바라는 메세지의 차원에서도 그 사실을 모르는 채로 영화를 마주하는게 조금 더 있는 그대로의 주인이를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요?
리예 : 어떤 분들에게는 성폭력이 소재화된다 라고 느껴지는 지점들이 불쾌한 거 같아요. 왜냐면 누군가에게는 성폭력은 지난한 삶의 요소이지 서사의 소재일 수가 없는데, 이 영화가 마치 ‘성폭력이라는 문제가 제기되자 일어난 우당탕탕 좌충우돌 파란만장 이야기!’라는 톤으로 이야기 되는 것이 가증스러웠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누군가는 성폭력에 연루되는 이야기를 ‘이야기의 형태’로 다뤄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세계의 주인〉을 보면서는 폭력을 말하는 방식에 있어서, 완전한 픽션화를 택하는 일도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했거든요. 현실을 말하는 것, 서사화에 반反하는 방법으로 말하는 것과 더불어, 허구적 이야기를 통해 입을 뗄 방법도 마련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성폭력을 아예 모르려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한테 말 걸기를 위해서 필요한 영화였다. 하지만 성폭력을 너무 알고 있는 어떤 사람들이 사랑하기 어려운 것도 당연지사다.
영경 : 리뷰 중에 ‘내버려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잖아요. 그래서 ‘불쾌함’에 대한 다른 방식의 생각도 하게 되는데요, 저는 이 영화의 스토리가 어떤 한 인물만을 주인공 삼아 조명한다거나, 거창한 결론이나 주제를 교훈처럼 내비치기 위해 이야기를 쌓아가는 식이 아니기 때문에 선택하게 되는 연출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고, 어쩌면 그 장면들에서 당사자들이 내버려진 듯한 느낌을 받았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령, 영화를 보다 보면 대체 주인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싶어요. 주인이의 감정이나 생각이 주인이만을 중심에 두고 표현되거나 주인이의 입을 통해 말로써 표현되지 않아요. 주인이가 교장실에서 자기의 의견을 정확하게 요구하는 장면에서도 주인이의 결연한 표정이 클로즈업 되지 않는 식으로요. 다만, 그냥 그 상황 속의 주인이가 외부의 시선에서 비춰질 뿐이죠. 어쩌면 그런 연출 방식이 관객들에게는 감정적으로 혼란스럽고 어려웠을 어떤 상황 속 자신을 그저 바깥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눈처럼 느껴질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여진/지는 나’만이 있는거죠.
비슷한 맥락에서, 같이 영화를 봤던 분께서 ‘영화가 서스펜스 장르 같았다.’ 이런 표현을 했거든요. 친구 유라가 저 다음 도대체 무슨 말을 할지, 동생이 ‘화해’ 같은 단어들을 편지에 쓰며 가해자와 주인이가 만나기를 바라는 입장이면 어떡하나 싶은거죠. 주인이 옆에 있는 인물들의 모습이 행동으로만 담기기 때문에 그게 너무 긴장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건 실제 상황이기도 하죠.
폭력 피해자들은 사건과 관련해 보여지는 자신에 수치심을 갖게 되기 쉽고, 주변이 자신의 편이 되어줄 거라는 믿음을 갖기 어려워요. 당연하게도, 카메라가 인물을 보여내는 방식, 그리고 그 장면이 개별 관객에게 어떻게 이해되는지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리예 : 윤가은 감독은 관찰자를 위한 영화를 잘 만들 수 있는 창작자인 것 같아요. 우리는 다들 등장인물들의 삶이라는 거를 엿보는 사람들인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참 정확한 말인 것 같아요. 이 영화를 주인이 입장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자기가 관찰되는 느낌이겠지.
이야기를 듣다보니, 또 한편에서는 성폭력을 다루는 픽션이라는 것은 ‘재미’가 있어도 되는 것인가, 내지는 재미를 논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생각들이 드네요. 왜냐면 우리가 성폭력을 소재로 한 픽션이라고 할 때는 항상 현실 다른 다른 소재의 픽션들보다는 훨씬 더 현실과의 대비라는 것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미현 : 영화 〈도가니〉처럼 사회적 사건으로 성폭력 사건을 다룬 작품들은 좀 생각이 몇 개가 나는데 성폭력 피해자와 그 주변인들의 세계에 대해 다루는 작품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어쨌든 세상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성폭력 사건을 어떤 사회적인 사건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실제로 피해자들의 삶과 경험에 대해서 조금씩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다정하게 잘 보여준 영화였어요. 이런 영화가 더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리예 : 네, 〈세계의 주인〉이 시작을 끊어준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청소년/가족내성폭력이라는 걸 말하자면 개인적 삶의 한 요소처럼 다루었는데, 첫 스텝으로 안정적이었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또 다른 굉장히 훌륭한 감독들이 더욱 야심차게 이 영화에 대항하는 안티테제를 또 만들어주기를 기대하게 돼요. 그렇게 해서 우리가 성폭력이라는 것을 더욱더 층층이, 각양각색으로, 많이 말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요. 감독님들아! 재현의 불가능성이라는 난제 때문에 그만두면 안 돼! 주인이가 주인이‘들’이 될 때까지, 여기저기서 계속해서 불완전한 재현을 거듭 겹쳐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또, 젠더 폭력이라는 것이 제도화/의사결정화될 때, ‘씻을 수 없는 상처’라는 관념을 우리 사회가 자주 끌어다 쓰잖아요. 이 영화의 가장 소박한, 최초의 목적은 그 진면목에 대한 탐구였던 것 아닐까 싶어요. ‘‘씻을 수 없는 상처’라는 것을 겪었다고 여겨지는 한 인물을 창조하고 그 삶을 재생해보자’ 라는 느낌으로 만들어진 게 아닐까. 그 탐구가 ‘상처를 준 부정의를 시정하고, 상처를 회복시킬 방안을 우리 손으로 마련을 하고 싶을 때, 주인이와 같은 피해자들을 의사결정에 포함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로 이어지고, 감독이 제시하는 대답은 쪽지의 목소리인 것 같네요.
5. 영화가 끝난 후: 계속해서 성폭력을 말하기
대담을 마치며, 영화를 나와서도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하기에 필진들은 현행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화 〈세계의 주인〉은 “미성년자 의제 강간” 그리고 “친족 성폭력”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고, 한국 사회에서는 관련 법을 둘러싸고 개정을 위한 논의가 계속되어오고 있습니다.
이 중 미성년자 의제 강간 관련 법(형법 제305조(미성년자에 대한 간음, 추행))의 경우, 기준 연령을 둘러싼 논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의제(擬制)’란 ‘본질은 같지 않지만 법률에서 다룰 때는 동일한 것으로 처리하여 동일한 효과를 주는 일’이라는 뜻입니다(의미 보기). 즉, 미성년자는 법적으로 동의가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 기준 연령 미만의 청소년에 대하여는 성인이 합의였다고 주장하거나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더라도, 법의 관점에서는 강간과 같은 수준의 범죄로 보고 처리한다는 의미이죠.
법 개정은 2020년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 대한 여파로 기존 의제 강간 연령 ’13세 미만’을 ’16세 미만’으로 상향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청소년 성폭력 방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입장과, 형법상 청소년(16세 미만)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비판이 맞붙기도 했죠. 당시 개정안은 성관계 동의 능력을 특정 연령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스트들 사이에 ‘적극적 동의가 연령에 따라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능력인가’에 대한 논쟁을 또한 불러일으켰습니다(FWD, 2025 : 175).
특히, 2025년 12월에는 친족 성폭력 피해와 관련하여,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1]. 이번 개정으로 공소시효가 적용되는 연령은 기존 13세 미만에서 19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으로 상향되었죠(기사 보기). 다만, 해당 법률에 대하여 소급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점, 일반법을 상회하는 특례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내 공소시효 관련 조항에 상향된 연령에 대한 내용이 아직 반영되지 않는 등 한계점이 여전히 있습니다. 또한, 피해자의 연령이 19세를 넘어선 경우, 현재 기본적으로 10년 이후 공소시효가 끝이 나고 DNA 등 과학적 증거가 있을 경우에 한해서만 20년까지 공소시효 연장이 가능한데요. 피해자의 연령을 조건으로 두지 않는 공소시효 전면 폐지에 대한 필요도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1]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친족의 범위는 4촌 이내의 혈족·인척과 동거하는 친족이다.
필진들은 미성년자 의제 강간 관련 법과 관련된 논의가 기준 연령 그 자체보다, 안전하고 적극적인 동의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환경과 조건들에 더 큰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보았습니다. 또,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전면 폐지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달의 마지막 토요일 마다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전면 폐지를 위한 시위를 이어오고 있는 공폐단단(친족 성폭력을 말하고 공소시효 폐지를 외치는 단단한 사람들의 모임)에 연대하는 마음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세계의 주인〉 이후 성폭력을 말하는 새로운 영화들에 대한 기대와 함께, 영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관련 법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봅니다.
정리 : 리예, 미현, 영경, 윤소이
참고 문헌
- 윤가은(2025), 『세계의 주인 각본집』, (주)안온북스
- FWD(2025), 『페미니스트 플래시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