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내

이 연구는 낙태죄 폐지 운동의 현장에서 시작되었다. 필자는 2018~2019년 〈모낙폐(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의 집회에 참여했다. 당시 집회장에서 청소년 시기에 불법 임신중절 시술을 경험했던 발언자(대독)의 얘기를 들으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눈물은 비극이나 슬픔을 마주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낙태를 경험한 수많은 여성들에 대한 존경심, 그것을 세상에 드러낸 용기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동시에 죄책감을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낙태죄 폐지 운동을 접하기 전까지, 나는 낙태를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면서도, 낙태는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불행한 일, 가능하면 숨겨야 하는 일로 여겼다. 그러나 낙태죄 폐지 운동의 주체로 나선 여성들은 그저 피해자로 남아있지 않았다. 낙태죄 폐지 운동은 여성들의 수치심과 고통이 자긍심이 되어 발화되는 경험이었다. 낙태가 ‘숨겨야 하는 죄’로 여겨지던 사회에서 이는 놀라운 변화였다. 무엇이 이러한 감정의 전환을 가능하게 했을까?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나는 두 운동의 차이를 주목하게 되었다. ‘낙태죄의 폐지’라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해당 운동을 주도했던 〈BWAVE〉와 〈모낙폐〉의 운동은 구호, 전략·전술, 시위 현장의 모습이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BWAVE〉는 2016년 10월 14일 10대~30대의 젊은 여성들이 의견을 모아 포털사이트에 카페 커뮤니티를 만들면서 구성되었으며, 2016년 10월 23일 ‘임신중단 합법화 시위’를 시작으로 2019년 3월 9일까지 지속적으로 총 19차례의 임신중단의 전면 합법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BWAVE〉의 참여자들은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검은 옷을 입고, 울분에 차서 “내가 생명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서로의 이름과 소속을 알지 못했고, 집회를 주최하는 이들도 온라인에서 주로 소통하며 서로를 닉네임으로 불렀다.
반면 <모낙폐>의 참여자들은 각양각색이었는데 차림새뿐만 아니라 나이와 성별도 다양했다. 자신을 젠더퀴어나 장애여성으로 소개하는 이들도 있었다. 〈모낙폐〉는 2016년 10월부터 낙태죄 폐지를 위해 움직였던 주체들 중에 〈BWAVE〉를 제외한 이들이 서로 소통하며 운동을 이어 나가다가 2017년 9월 28일에 발족하게 된 연대체이다(이은진, 2020). 그래서 〈모낙폐〉의 운동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성과 재생산 포럼(현 “셰어”)과 같은 여성단체 소속의 활동가들이 주도했다. 당시 낙태죄 헌법소원 대리인단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낙태죄 폐지 운동을 전개했으며, 2019년 4월의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에도 대체입법을 요구하는 공개 토론회, 기자회견 등 행동을 이어갔다.
필자의 현장 경험은 다음과 같은 연구 질문으로 이어졌다. 두 운동의 차이는 어떤 감정과 프레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가? 이것은 단순히 전략·전술의 차이인가, 아니면 한국 여성운동 지형의 분화를 반영하는 것인가? 이 글은 먼저 〈BWAVE〉가 남성권력에 대한 분노를 어떻게 동원했는지, 그리고 이어서 〈모낙폐〉가 재생산 정의 프레임을 통해 감정 규범을 어떻게 재구성했는지 살펴본다.
1. 〈BWAVE〉의 남성권력에 대한 분노
〈BWAVE〉 운동은 여성의 선택권과 낙태권이 억압되고 여성들이 출산을 강요받는 것이 근본적으로 공고한 남성권력 때문이라 보았다. 따라서 〈BWAVE〉는 남성 개인들이 낙태와 낙태죄에 대해 함께 책임을 지도록 해야한다고 요구하고, 남성 권력을 배태하는 국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연구자 : 분노는 어떤. 누구를 향한 분노일까요?) 남자요, 남자. 네, 남자. 그 싸고 튄 놈 처벌하라. (연구자 : 아, 그 싸고 튄 놈이요.) 네, 허수애비 처벌하라. 이 구호에 담긴. 그리고 그 사법부 같은 경우도 지금 거의 다 판사가 남자고.” (J)
J의 발언처럼, 〈BWAVE〉 시위의 구호들은 남성의 면책을 직접적으로 문제화한다. J는 낙태죄의 가장 큰 문제가 “남성은 처벌하지 않음으로써 빠져나가” 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낙태죄를 폐지하는것과 더불어 생부의 연대책임과 남성에 대한 낙태죄 처벌을 제시한다. 이러한 주장은 낙태죄라는 체제를 유지하면서 단지 남성을 처벌 대상에 포함시키는 엄벌주의로 귀결될 위험성을 내포한다. 그럼에도 〈BWAVE〉가 남성의 책임을 강조한 것은, 남성이 낙태 문제에서 면책되어 온 역사적 현실에 대한 반발로 이해할 수 있다.
〈BWAVE〉의 운동이 남성 권력을 겨냥하는 것은, 비단 남성 개인이나 남성 집단에 대한 문제제기에 머물지 않고 국가가 여성의 몸을 인구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간다.
여아낙태 권장하고 여성에게 책임전가 (책임전가 하지말라)
인구정책 수단으로 여성신체 사용말라 (수단으로 사용말라)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라 (결정권을 존중하라)
(중략)
국가가 키울거냐 (국가가 키울거냐)
생각이 있는거냐 없는거냐 (있는거냐 없는거냐)
성교육이나 똑바로해라 (똑바로해라 똑바로해라)
여자는 기계가 아니다 (임신중단 합법화)
– 2016년 12월 11일 임신중단 합법화 시위 공지문 구호 중
이 구호들은 국가가 인구 정책의 필요에 따라 여성의 몸을 통제 수단으로 사용해 온 역사를 비판하며, 여성을 재생산 도구로만 취급하는 가부장적 국가 권력에 분노를 표출한다. 〈BWAVE〉의 관점에서 국가는 여성을 ‘애낳는 기계’로 취급하는 반면 남성에게는 낙태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남성권력의 상징이다. 당시 정부의 각 부처가 낙태죄 폐지에 보수적인 입장을 보였기 때문에 〈BWAVE〉는 해당 정부의 보수성과 이중성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 (<BWAVE> 시위의 구호는) 좀 전형적으로 이제 사회운동 시위에서 사용하는 구호들이랑 좀 거리가 멀었어요. 그냥 욕도 막 하고 막 좆까라, 이런 구호도 있고. 그런 부분이 진짜 좀 많이 감정이 분출이 됐던 것 같아요. 해소되는 느낌” (I)
I의 경험은 〈BWAVE〉의 시위 현장이 가진 특징을 잘 보여준다. 시위 현장에서는 기존의 정제된 운동 방식과 다른 급진적 표현이 등장했다. 그리고 남성에 대한 분노의 감정은 집합적 의례를 통해 집합적 감정으로 변형되고 확산된다. 시위 현장에서 욕설이 섞인 과격한 구호를 외쳤던 I의 경험은 사회적 금기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분출구” 같은 것으로 이야기된다. 전형적이고 정제된 구호들이 아니라 감정을 폭발적으로 표출하는 구호를 외침으로써 분노를 해소하고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다. 〈BWAVE〉 시위 현장은 참여자들이 분노를 공유하고 집합적 감정을 경험하는 의례 공간이 되었다[1].
[1] 콜린스 (2001) 는 사회적 의례가 성공적으로 작동함으로써 참여자들의 개인적 감정을 집합적 감정으로 확대· 변형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2. 〈모낙폐〉의 재생산 정의 프레임
“2012년도 합헌 결정이 날 때도, 마치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두 개의 어떤 공익과 사익이 대치하는 것처럼 오독이 되는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었고. 또 미국의 사례를 볼 때나 여러 나라들의 사례를 볼 때, 이걸 자기 결정권으로만 이야기를 하게 되면 이길 수 있는 전략이 아닌 것 같아 보인다. 우리는 이것을 사회 정의의 문제 혹은 평등권의 문제, 건강권의 문제로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라는 게 처음 발족 논의를 할 때부터 있었어요.” (K)
〈모낙폐〉 집행위의 구성원이었던 K의 문제의식은 구체적 전략으로 이어졌다. 〈모낙폐〉가 구성되기 전까지 기존 낙태 문제를 둘러싼 사회운동에서는 낙태죄를 ‘여성 개인의 자기결정권’의 문제로 프레임화하고 있었다. 〈모낙폐〉가 구성된 이후 집행위원회를 비롯한 운동 주체들은 이러한 프레임의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낙태를 “사회 정의, 사회 평등, 건강권, 의료 서비스 접근권”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였다. 이는 미국과 유럽의 재생산정의(Reproductive Justice) 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제 법에서 보는 국가의 생명보호 의무나 이런 워딩이, 사람의 실제 삶이랑은 되게 차이가 있는 추상적인 개념이예요. 그래서 법정 내에서 사용된 논리가 사회운동이나 대중적인 담론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중략) 태아 생명이 상상이 되는 순간. 그 단어가 주는 상징적 힘을 상대방이 가져가고, 우리는 젊은 여성의 이기적인 결정이라는 이미지로 귀결되기 쉽기 때문에요. 어쨌든 그, 그냥 단어만 조악하게 보면 여기는 ‘생명’이고 여기는 ‘결정’이거든요. 당연히 이게(생명이) 숭고해 보이기 때문에. 이런 불리한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법적 담론과 사회적 메시지를 명확히 분리하려 했던 겁니다.” (E)
〈모낙폐〉는 법정 안팎의 담론을 분리하면서도, 사회운동은 명확한 메시지를 내세웠다. E에 따르면, 기존 낙태권의 논리가 여성의 선택권에 초점을 맞췄던 것과 다르게, 헌법소원 대리인단은 생명권이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했으며, 여성의 삶과 건강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펼쳐갔다. 다만,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개념을 거부하거나 비판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그 개념 자체를 인정해야 한다. 대리인단은 태아의 생명권을 전략적으로 인정하고 재구성함으로써 그 개념이 내재하는 모순과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개념과 논쟁을 비롯한 ‘법정 안에서의 논리가 사회운동에서 안 쓰이도록 노력했다’는 것은 생명권 대 선택권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이 가지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권은 흔히 절대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로 간주되어서, 이를 인정하는 순간 여성의 권리와 선택권은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게 된다.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여성의 선택권과 결정권은 생명을 경시하는 선택으로 비춰질 위험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헌법소원 대리인단과 〈모낙폐〉 운동 진영에서는 여성의 생존권과 건강권, 그리고 의료행위의 평등권을 중심으로 논의를 펼쳐갔다.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라는 구호를 통해서 이 문제를 이제 국가적 재생산 통제에 대한, 인구 정책을 통한, 재생산 통제에 대한 문제로 프레임을 바꾸게 된 것이고. 그래서 여성의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이 양자 간의 대립 구도를 넘어서서 국가의 책임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정말 이런 생명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무엇이 되어야 하고, 그것을 국가는 어떤 목적에서 어떤 이유로 통제해 왔는가를 좀 드러내는 운동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이 2016년에 또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D)
여성의 선택이 문제가 아니라, 재생산권을 비롯한 ‘생명권과 행복추구권, 자기결정권’을 책임져야 하는, 그러나 그 책임을 방기해 온 주체로서의 국가가 문제라고 선언한 것이다. 〈BWAVE〉가 남성에 대한 분노를 동력으로 삼았다면, 〈모낙폐〉는 인지적 프레임을 통해 국가를 재생산 보장의 주체로 소환하고 낙태를 둘러싼 문제를 재구성한다. 이후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라는 구호는 <모낙폐>의 운동을 대표하는 슬로건이 되었다.
국가 책임을 강조하는 프레임은 낙태 경험의 다양성을 드러내는 전략과 연결되어 있었다. 낙태를 국가의 재생산권 보장 실패로 본다면, 낙태 경험자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권리를 박탈당한 시민이기 때문이다. 2016년 이전에 낙태죄를 둘러싼 운동에서 감정선이 슬픔, 충격, 죄책감에 가까웠는데, 이는 한국사회라는 청자의 권력이 낙태 경험에 대한 발화를 특정한 감정(슬픔, 죄책감)에 한해서만 허용한 결과였다.
“이런 굉장히 같은 상황 안에서도 굉장히 복잡한 다양한 맥락의 스펙트럼이 있고. 그것이 나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는 슬픔만이 아닐 수 있거든요. 사실 임신 중지를 하고 나서, 그래도 그 걱정을 덜고 이제는 좀 그다음에는 좀 폭력적인 관계를 끊어내고, 이제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던가. 이런 이야기들도 할 수 있는 건데” (D)
여성의 낙태 경험이 슬픔에 머물게 된다면 이는 낙태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축소시킬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 죄책감과 부정적 감정을 강요하는 사회적 낙인을 강화시킨다. 낙태를 한 여성은 때로는 해방감, 안도감,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를 드러내고 조명하는 것은 기존의 낙인과 편견을 극복하고, 여성의 권리와 주체성을 확장하기 위한 전략이다.
감정 규범의 재구성은 당사자성의 확장과도 맞물려 있었다. 또한 〈모낙폐〉는 청소년 여성, 성매매 여성, 장애 여성, HIV 감염 여성, 논바이너리(Non-Binary)를 포함하는 젠더 퀴어 등의 낙태 경험을 비롯하여 사회적으로 말해지지 않던 낙태 경험을 발화하고자 했다. 낙태의 당사자로 여겨지는 단일한 ‘여성’ 범주가 아니라, ‘모두’가 재생산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접근은 교차성(intersectionality) 이론에 기반한 것으로, 계급, 연령, 장애, 성정체성 등 다양한 사회적 위치가 재생산 경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려한다. 이처럼 두 운동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낙태죄 폐지를 추구했다.
3. 나가며
이 연구는 2018~2019년 낙태죄 폐지 운동에서 〈BWAVE〉와 〈모낙폐〉가 보여준 서로 다른 운동 방식이 어떤 감정과 프레임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탐색했다. 두 운동의 차이는 단순히 전략과 전술의 차이가 아니라,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 여성운동 지형의 분화를 반영하고 있었다.
〈BWAVE〉는 남성권력에 대한 분노를 직접 분출하며 젊은 여성들의 정치적 주체화를 이끌었고, <모낙폐>는 재생산 정의 프레임으로 낙태를 둘러싼 감정 규범과 담론을 재구성했다. 두 운동 모두 낙태를 둘러싼 지배적 질서에 도전했지만, 그 방법과 지향은 달랐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이 운동들의 성과였다. 그러나 운동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대체입법은 지지부진하고, 낙태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의료 접근성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여성운동 내부의 지형 분화는 때로는 연대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앞으로 더 다루고 싶은 질문들이 남아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감정과 전략을 가진 이들과 어떻게 함께 싸울 수 있을까?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연대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낙태죄 폐지 운동이 남긴 것은 법적 성과만이 아니다. 여성들이 자신의 낙태 경험을 수치심이 아니라 자긍심으로 발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재생산권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정의와 평등, 건강권의 문제로 확장시켰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분노하고, 슬퍼하고, 연대했던 이 운동의 경험들은 앞으로의 페미니즘 운동과 재생산권 운동에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 이은진 (2020), 「낙태죄와 재생산 평등권」. 서울대학교 석사학위 청구논문.
- 콜린스, 랜달 (2001), 「사회운동과 감정적 관심의 초점」. 제프 굿윈, 제임스 M. 재스퍼, 프란체스카 폴레타(편), 『열정적 정치: 감정과 사회운동』. 박형신, 이진희 옮김. 경기도: 한울,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