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계속될 일상 속 탈코르셋을 위해

🥟만두

웹툰 <탈코일기> 비평

그래도 일상은 돈다. 오늘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던져도 다시 옷장을 뒤져야만 하는 내일의 아침은 오고, 자른 머리카락은 자꾸만 자라난다. 삶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어낸 탈코르셋 행위자들은, 이 지난한 일상을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혹은 살아내고 있는가? <탈코일기>는 여기에 대한 한 가지 의미 있는 대답이다.

‘탈코르셋’(이하 탈코) 운동은 방법적 측면에서 일시적인 사건으로서의 집단행동이나 시위가 아닌, 개개인이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신체 재현의 변화를 실천의 핵심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독특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탈코가 문제시하는 억압이 발생하는 장이자, 억압의 구조를 흔드는 기점으로서의 일상에 집중하여 탈코의 효과를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웹툰 <탈코일기>를 창으로 삼아 탈코 행위자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탈코일기>는 탈코를 둘러싼 세 여성의 일상을 가상의 일화 형식으로 그려낸 웹툰이다. <탈코일기>는 일화를 통해 여성들이 탈코를 수행하거나 거부하면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변화와 갈등, 사회적 압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코가 여성들에게 갖는 의미를 드러낸다. <탈코일기>가 탈코‘일기’라는 제목이 보여주듯 기본적으로 일상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일상툰의 재미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는 공감과 이입의 용이성이다. 즉, 일상툰은 독자를 평범한, 보통의 존재로서 호명하는 장르인 것이다. 이는 <탈코일기>가 탈코 행위자들이 무엇을 보통으로 여기고, 누구를 불러내어 함께 공감하고자 하는지 보여주는 창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탈코일기>의 첫 화는 하나의 극적인 전환을 보여주는 데에 할애된다. 맨 첫 장면에서는 한국사회에서 젊은 여성에게 요구하는 이상에 상당 부분 부합하는 한 여성의 사진이 비춰지며, 해설을 통해 독자는 그가 주인공 ‘김뱀희’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다음 장면부터 사진을 삭제하는 화면이 차곡차곡 쌓이고, 그 끝에는 짧은 머리에 티셔츠와 바지를 걸친 채 침대에 누워 사진을 삭제하고 있는 지금의 김뱀희의 모습이 드러난다. 극명한 전후 대비를 통해 탈코로 인한 변화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탈코에 관한 대개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기만적인 여성성 규범에서 탈주한, 페미니스트가 지금 여기에 나타났노라고. 그러나 <탈코일기>는 바로 그 지점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2화는 김뱀희가 잠에서 깨어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김뱀희의 아침 일과는 행동의 단계로 구분하자면 매우 단순하다. 따라서 이 회차의 분량은 단순한 행동을 사소한 부분까지 클로즈업하여 매우 느린 호흡으로 그려냄으로써 채워지고 있다. 여기서 오는 위화감은 독자로 하여금 어떤 공백을 인식하게 한다. 통념상 젊은 여성의 아침 일과로서 연상되는, 보다 복잡하고 세세한 외모 가꾸기의 과정이 사라졌음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전형과의 차이가 부각되면서, 탈코 행위자의 일상이 갖는 특징으로서 여유와 편안함이 자연스럽게 강조된다. 한편, 분주한 꾸밈의 과정을 대신하여 집중적으로 조명되는 장면이 김뱀희가 천천히 눈을 뜨고, 식사를 하는 모습임은 의미심장하다. 이를 통해 독자는 이야기의 느린 시선을 쫓으며 김뱀희와 눈을 마주하고, 그가 누구인가에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탈코를 수행하는 것이 단지 누군가의 외양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의 태도와 마음가짐, 나아가 타인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까지를 변화시키는 일임이 이와 같은 연출을 통해 주장되고 있는 것이다. 일상의 전환으로 인한 태도의 변화는 다시 일상의 구체적인 내용에 영향을 미친다. 김뱀희가 탈코로 인해 생긴 여가에 권투 배우기에 도전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는 이후의 이야기는 이러한 순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탈코일기>는 이처럼 탈코 행위자의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드러내어 긍정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일상적인 저항으로서의 탈코로 인해 경험하는 좌절과 갈등, 협상의 과정 또한 중요하게 그려내고 있다. <탈코일기>에는 주인공 김뱀희 외에도 김뱀희의 가장 친한 친구인 ‘백로아’, 이미 오래 전에 탈코를 한 ‘도수리’라는 중심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은 각각 반복적으로 수행되는 점진적 과정인 탈코에 있어 ‘다른 단계’에 속해 있는 인물로 묘사되며, 서로 다른 일상을 경험한다.

백로아는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는 인물이다. 그는 적극적으로 규범적 여성성을 수행하며, 그 대가로 주어지는 사회적 인정에 만족감을 느껴왔다. 그러나 김뱀희가 탈코를 하게 되면서 백로아의 일상에도 변화가 생기게 된다. 백로아는 친구인 김뱀희가 자신과 다른 모습이 되어 공감대가 사라진 데에 대해 어색함을 느끼는 한편 김뱀희가 사회적인 불이익을 받을 것을 염려하여 김뱀희에게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을 권유한다. 이는 일상영역의 친밀한 관계 안에서 규범이 강제되고 재생산되는 양상을 잘 보여준다. 김뱀희가 스스로의 신념을 밝히고 탈코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하자, 백로아는 어렵게 얻은 사회적 인정이 허위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거부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내가 꾸미는 건 자기만족인데?”라는 대사이다. 이는 일상 속 비가시적인 억압, 그리고 그 안에서의 자기감시-수정의 과정이 규범에의 순응을 자발적인 것으로 여기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던 백로아가 입장을 바꾸게 되는 결정적 계기 역시 결국은 김뱀희의 존재이다. 백로아의 남자친구가 백로아까지 김뱀희에게 ‘물드는 것’을 두려워하여 백로아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백로아는 자기만족의 근거였던 남성의 인정과 사랑이 자신이 규범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사라지는 불안정한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백로아의 이야기는 탈코를 거부하는 여성에 대한 징벌-폭력-을 통해 탈코를 강요하는 서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작중 백로아의 의구심과 비판의식이 김뱀희의 탈코 이후로 조금씩 싹트기 시작함이 드러나며 계기로서의 남자친구의 폭력 역시 김뱀희의 존재로 인한 불안에서 기인하였음을 고려하면, 이는 탈코 실천이 주변에 끼치는 영향력을 보여주는 서사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탈코 경력 2개월 차’ 김뱀희의 일상은 주로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자기관리의 습관과, 규범에 순응함으로써 얻어온 사회적 보상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과정으로 묘사된다. 이미 규범적 여성성이 내포하는 부조리와 차별을 인지한 김뱀희는 자신을 꾸미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끼던 시절로는 완전히 돌아갈 수도 없는 상태에서 갈등한다. 김뱀희가 겪는 갈등의 또 하나의 주된 원인은 바로 친구인 백로아와의 관계이다. 친밀한 관계였던 백로아와 탈코에 대한 의견차이로 인해 멀어지면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과 고민은 같은 탈코르셋 수행자인 도수리와의 만남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되게 된다.

다른 두 인물과는 달리, 도수리는 탈코 이전의 자신에 대한 미련을 거의 느끼지 않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런 그도 갈등을 경험하는데, 그것은 가족관계에서 오는 갈등이다. 도수리는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아래서 자신과 어머니에 대한 폭력을 줄이기 위해 ‘착하고 예쁜 딸’로 살아오다가, 성인이 되어 탈코를 한 뒤 부모로부터 독립한 상태이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예전의 착한 딸로 돌아와 줄 것을 호소하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은 도수리를 번뇌하게 한다. 도수리의 경험은 특히 가족중심적인 사회인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개인을 규율하는 주된 요인이 가족이며, 그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려움을 드러낸다. 이러한 갈등은 작품 말미에서 도수리의 아버지가 사망하고서야 겨우 끝을 보인다. 도수리는 어머니에게 그 또한 자신을 억압해온 가해자임을 이야기하며 연락을 끊게 되고, 이로 인해 가족 간의 왜곡된 의존관계가 해소될 것임이 암시되고 있다.

이렇듯 규범적인 여성의 패션으로부터 이탈하는 존재로서, <탈코일기>에 등장하는 탈코 행위자들은 일상에서 다른 이들, 특히 친밀한 관계에 있는 이들로부터 식별되고 배제되는 불안과 소외감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러한 식별성은 타인의 일상에 균열을 내어 변화를 이끌어낼 뿐 아니라, 탈코를 실천하는 이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로써 인식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정치집단의 존재를 확인하고 연대를 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뱀희가 도수리를 만나는 과정은 그런 연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김뱀희는 자신에게 화장을 하고 꾸밀 것을 권유하는(‘코르셋을 조이는’)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부담을 느끼던 중 탈코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모습의 도수리를 마주쳐 반가움을 느끼나, 그녀가 탈코를 한 것이 아닌 ‘그냥 스포츠 하시는 분’일까봐 말 걸기를 주저한다. 그러나 도수리 또한 가방 안에 든 페미니즘 서적들을 일부러 보이게 두는 등의 행위로 스스로를 어필하며, 둘은 결국 연락처를 교환하고 친구가 된다. 그 이후로 도수리는 김뱀희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해주는 동료이자 멘토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김뱀희는 용기와 위안을 얻으며, 갈등 속에서도 탈코를 지속할 의지를 다지게 된다. 결국, 김뱀희와 백로아, 도수리의 서로 다른 이야기는 모두 탈코르셋 행위자들이 일상 속의 누군가로 함께 존재하고,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힘껏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뱀희가 동지를 구함에 있어 상대가 탈코를 한 것인지, 아니면 단지 패션인지를 고민하는 모습은, <탈코일기>에 재현된 탈코 행위자들의 연대가 뚜렷한 조건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이들의 연대는 단지 여성성 규범에서 이탈함으로써 균열을 일으키는 존재라고 해서 무조건 성립하지는 않는 것이다. <탈코일기>에서 재현되고, 호명되는 탈코운동의 연대 대상은 특정한 여성 범주, 즉 긴 머리에 화장과 스커트에 하이힐을 요구받는 집단에 속하며, 여성주의 관점에서 여기에 문제의식을 갖고, 식별 가능한 형태로 규범으로부터 이탈한 이들에 한정된다. 이처럼 좁은 연대의 폭을 전제하면서도 <탈코일기>가 청자로서 ‘여성’을 호명하고 있다는 점은 문제가 된다. 이는 서로 다른 입장에서 다른 규범 아래에 있는 여성들의 다양한 경험을 배제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여성들은 탈코에 있어 ‘서로 다른 단계’를 걷고 있다는 <탈코일기>의 서술은 모든 여성들이 같은 종류의 규범성 아래 놓여있으며, 따라서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과정과 목표도 단일함을 전제하고 있다. 사실, <탈코일기>에 등장한 중심인물들은 연령과 계급, 성적 실천 등의 측면에서 비슷한 입장에 놓여있으며 결국은 같은 방식의 탈코 실천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들이 다양한 입장의 여성들의 예시인 듯 표현되는 것은 실제 여성들 사이의 차이를 효과적으로 은폐하며, 좁은 연대를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무엇보다 여성성 규범의 원인과 양상을 단일한 것으로 진단하고 그로부터 외길로의 탈주를 추구하는 <탈코일기>의 전략은, 규범 그 자체가 갖는 권위를 해체하는 데에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작중 탈코 행위자들의 시선에서 여성성 규범은 ‘이상함’, ‘기괴함’, ‘가짜 여성’과 같은 말들로 묘사된다. 이와 같은 관점은 코르셋을 재현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나는데, 작품 안에서 화장, 하이힐, 장식적인 옷차림 등은 그 특징이 매우 과장된, 다소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특정한 외모를 긍정하며 그와 다른 외모를 ‘이상한’ 것으로 의미화 하는 재현방식은, 비록 그를 통해 장려하는 외모-신체 수행이 기존 규범에 대한 전복일지라도 문제적일 수 있다. 여전히 올바르고 정상적인 외모가 존재한다는 관념, 정상성의 권위는 공고히 하기 때문이다.

<탈코일기>에서 규범적 여성성의 ‘이상함’과 대비되는, 탈코 수행을 묘사하는 언어는 ‘사람다움’이다. 특히 탈코가 남자를 모방하는 것 아니냐는 백로아의 질문에 김뱀희가 “남성성이 아니라 사람다운 모습이고, 그것이 자연스럽고 편하기 때문에 남성들이 점유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대답하는 장면, 그리고 백로아가 여성성 규범의 억압을 인식하고 나서 자신이 가진 ‘사람다운 옷’은 잠옷뿐이었다고 중얼거리는 장면은 작품이 ‘사람다움’이라는 말에 부여하는 가치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사람다운’ 모습, 즉 짧은 머리카락과 간편한 옷차림, 그리고 적절한 체력의 유지를 통해 만들어지는, 노동을 비롯한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는 모습은 정말로 자연스러운 ‘사람’의 모습인지를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근대 자본주의 체계에서 이분법적 성별규범이 강화되고, 성별에 따른 분업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생산영역은 남성에게, 재생산영역은 여성에게 배당되었다-정확히는 배당될 것이 전제되었다-. 이에 따라 생산노동에 적합한 외모가 남성성으로 정의되었으며, 그 대척점으로 여성성 규범이 성립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고려할 때, 외모-신체 수행에 있어 여성성 규범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남성성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는 없다. 두 관념은 상호적으로 서로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코일기>는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탈코의 목적은 사회적 여성성을 파괴하는 것임을, 그를 통해 더 나아가 사회적인 남성성까지 해체하는 것임을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의식에도 불구하고, 규범적 여성성이 오직 남성의 성적인 만족과 여성 신체의 구속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남성의 욕망이 단일하고 변함없는 실체라고 여기도록 만든다. 또한 남성이 전족부터 코르셋, 현재의 화장과 성형까지 부자연스러운 복식을 여성에게 강요해왔고, 편안하고 자유로운, ‘사람다운’ 신체 수행을 독점하고 있었다는 서술 역시 남성에 의한 억압의 항구성을 상정한다. 이는 욕망과 억압의 주체로서 남성 또한 자연적인 실체로 존재한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남성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한, 남성성의 세부적인 양상이 변화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근본적으로 해체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담론은 규범적 여성성, 남성성을 차별적으로 구성하는 젠더 체계를 교란시킬 수 없으며, 오히려 강화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탈코일기>가 재현하는 탈코르셋 행위자들의 일상은 한국사회의 규범적 여성성에 균열을 내고, 여성에게 가해지는 신체적 억압과 자기검열의 기제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러나 <탈코일기>의 서사는 규범적 여성성을 단일하고 항구적인 것으로 진단하고, 그것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기존 규범을 오히려 비정상으로 지칭하고 재의미화 하는 전략을 시도함으로써 정상성이 갖는 권위를 강화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정상성 규범 자체에 대한 보다 다층적인 문제제기가 없다면, <탈코일기>가 재현하는 규범으로부터의 일탈은 사회문화와의 피드백을 통해 다시 정상성 안으로 포섭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일상생활은 이데올로기와 문화, 사회관계가 재생산되는 총체적인 장이므로, 일상 속 개인의 수행은 그 자신의 인식과 의도를 넘어서는 다양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탈코일기>는 탈코 행위자들의 일상을 재현함에 있어 그들의 목적과 의지를 직접적으로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와 한계를 동시에 갖는 작품이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탈코가 우리의 일상에 가져오는 효과를 새로이 발견하고 의미화 하는 보다 풍부한 재현이 필요할 것이다. 탈코를 실천하는 이들의 삶은 앞으로도 여러 갈래 길로 흘러갈 것이고, 우리는 계속해서 <탈코일기> 밖의 일상 속 김뱀희를, 백로아를, 또는 도수리를 반가이 마주칠 것이기에.

글쓴이

Fwd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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