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wd vol.3 “친밀성을 팝니다” & “페미니즘 사세요” 기획의 변

🎶송유진

1.

지나치게 당연한 말이지만, 오늘날 소비와 페미니즘 간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소비운동을 통해 페미니즘의 힘을 보여주자는 환호성이 울리는 한편으로 다른 편에서는 신자유주의적 기획에 페미니즘이 포섭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여성을 위한 소비’는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이 이미 SNS를 몇 번이나 휩쓸고 지나갔죠. 여성주의 소비운동의 대상은 물질적인 것들―폰케이스, 티셔츠, 후드티, 각종 스티커 등등―을 넘어서 각종 영화, 소설과 같은 재현물로 확장된 지 오래입니다. 시간이 안되면 내 자본과 ‘영혼’이라도 보내 여성주의 서사를 응원하겠다는 의지가 <82년생 김지영>과 <걸캅스> 등의 사례를 통해 증명되었고, 이는 여성들이 더 이상 경제적 약자가 아니며 주체적 소비를 통해 스스로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집단이 되었다는 선언과도 같았습니다. 한편으론 이 틈을 타서 페미니즘 팔아 배 좀 불려보려는 시도들이 있었고, 이에 대한 비판이 본격화되기도 했죠. ‘당당한 여성들을 위한 00’, ‘진정한 여성에 의한 00’ 등의 문구를 붙여 핑크 택스를 그럴싸하게 무마해보려는 시도들은 페미니즘의 가치가 얼마든지 시장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웠습니다.

2.

앤디 자이슬러는 페미니즘이 ‘힙’한 것이 되어 대중에게 잘 팔리는 현상에 주목하면서 ‘시장 페미니즘(marketplace feminism)’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자이슬러, 2018). 1980년대 미국의 ‘백래시’를 분석한 팔루디의 작업과 시기적 연속선상에 있는 이 작업은, 정치기획으로서의 페미니즘이 갖는 체제변혁적이고 ‘불편한’ 속성을 누락한 채 개인의 (소비할)자유와 선택만을 부각하는 페미니즘이 얼마나 위선적인가를 밝히고자 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지형에서 자이슬러의 작업은 여러 가지 의미로 읽힙니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 즉 페미니즘이 아직 대중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현 상황에서 언젠가 맞닥뜨릴 미래를 대비하라는 경고로 읽히기도 하고, 반대로 여성주의 소비운동이 갖고 있는 여러 한계를 비판하는 의도로 읽히기도 하죠. 여성을 계속해서 소비자로 호명하는 경제체제를 운동의 전제로 삼고, 끝없는 자기계발을 통해 자본을 손에 넣고자 하는 움직임에 대한 비판들을 참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김애라, 2019). 그러나 자이슬러의 작업을 인용하는 연구들이 갖는 의의와는 별개로, 시장 페미니즘에 대한 자이슬러의 비판이 오늘날 한국의 페미니즘이 경험하고 있는 지형과 어딘가 섞이지 않고 부유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한편으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비단 페미니즘 뿐만이 아닙니다. 작년 대리모 논쟁과 리얼돌 사태를 거쳐 시작된 논쟁은 여성의 신체, 혹은 신체에 대한 재현물을 통해 거래되는 것이 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남성의 욕망과 섹슈얼리티, 재생산 노동, 고도로 대상화된 여성 신체에 대한 이미지 등등,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 복잡하게 거래되는 양상은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새로운 고민들을 안겨주었죠. ‘친밀성(intimacy)’이라는 키워드는 이 고민들을 꿰어나갈 수 있는 한 가지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거래’라는 행위가 물질적인 것 혹은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재화에 한정된 것이라는 인식과는 달리, 친밀성이라는 형태의 감정은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활발하게 거래되어 왔습니다(일루즈, 2010; zelizer, 2005). 감정 노동이 중시되는 일터에서 친밀성이 거래되는 양상과 성매매 과정에서의 양상, 그리고 흔히 ‘거래’와는 상관 없다고 생각되는 부부관계 내에서의 양상은 분명히 구분되며, 이는 각 상황을 구성하는 관계와 맥락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죠. 친밀성이라는 감정이 형성되고, 구성되고, 또한 거래되는 과정을 고민함으로써 우리는 ‘00은 여성 거래인가 아닌가?’라는 익숙한 질문에 더하여, ‘00을 통해 거래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이러한 거래를 통해 발생하는 효과는 무엇인가?’ 등을 더 따져물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

Fwd의 세 번째 기획은 ‘소비’와 ‘거래’, 그리고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돌아왔습니다. 여성, 여성 재현, 남성성, 여성 신체, 여성 서사 등 수많은 것들이 정신없이 소비되고 거래되는 상황에 대한 호기심이 기획의 출발점이었고, 시장 페미니즘에 대한 익숙한 비판을 통해서는 미처 다 설명될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한 의문이 그 위에 더해졌습니다. 보라돌이와 상상, 오온은 「오빠를 빌리세요!: 도대체 ‘오빠’는 누구인가」 외 1편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오빠’라고 칭해지는 한국인 남성 가이드를 빌려주는 ‘오빠 투어’ 서비스를 통해 초국적 고유명사가 된 ‘오빠’의 의미를 밝힙니다. 나아가 어떻게 ‘오빠’가 상품성을 갖게 되었는지를 K-POP 팬덤 문화를 통해 분석합니다. 나루는 「리얼돌(1): 판타지를 팝니다」 외 1편을 통해 리얼돌이라는 주제에 주목하면서, 남성과 리얼돌 사이에서 주조되는 판타지와 함께 남성을 번번이 좌절시키는 리얼돌의 물질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또 허주영은 「동년배(contemporaries)의 여성서사 운동」에서 기존 서사의 상투적 여성 이미지에 문제를 제기하고, 동시대의 여성인물 재현을 요청하는 여성서사 운동의 양상을 분석합니다. 더불어 여성서사 운동이 비판받는 지점들, 즉 ’여성’이라는 기표를 절대 버리지 않는다는 점과 ’무조건 팔아주기’ 같은 전략에 대한 분석을 통해 소비 주체의 자리가 갖는 의미와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어서 만두는 「#피드백을_삽니다. 피드백 요구의 정치경제학」을 통해 기업 또는 정부의 성차별적 행위에 대해 행위자의 사과와 조정으로서 ‘피드백’을 요구하는 페미니스트 운동 방식과, 이 과정에서 소모되는 여성들의 자본과 노동력의 문제를 분석합니다. 마지막으로 젊은쥐는 「‘베일 벗기기/씌우기’의 정치학: 부르키니와 샤넬 히잡」에서 오늘날 서구 사회의 위협이자 명품의 새로운 틈새 시장이 된 히잡에 대한 서구의 이중성을 살펴봅니다. 나아가 무슬림 여성에게 부여되는 서구 국가들의 시민권에는 여성의 몸에 대한 시각 뿐 아니라 계급 또한 중요한 요소로 작동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합니다.

여러 필진들이 안고 있는 다채로운 고민 속에서 준비된 이번 호입니다만, 축약하자면 “친밀성을 팝니다”와 “페미니즘 사세요”로 묶어볼 수 있겠습니다. ‘오빠 투어’를 통해 판매되는 ‘오빠성’과 리얼돌 거래 과정에서 드러나는 남성들의 판타지, 그리고 피드백 운동의 흐름 속에서 부상하는 문제들은 비-가시적인 영역에서 ‘감정’이 거래되는 양상의 일부를 목격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또 여성서사 ‘팔아주기’ 운동이 구성하는 정치학과, 샤넬 히잡을 여성해방의 이름으로 구매하도록 만드는 전지구적 차원의 정치학은 소비주의 페미니즘의 흐름 중 일부가 모순적인 결말로 안착하게 되는 과정을 조명합니다. 

글의 시작부에서 언급했듯이, 무언가를 소비하고 거래하는 행위와 페미니즘 간의 관계는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어떤 고전으로도, 또 어떤 이론으로도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고민들을 안고 키워나가는 과정은 다소 막막했지만, 그만큼 서로를 키워주고 또 즐거운 연구 주제들을 개발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필진들이 각각의 관심사 위에서 치열하게 고민을 거듭한 결과 완성된 이번 기획을 부디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읽어주시기를, 발칙하고 경쾌한 사유를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으로 삼아주시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참고 문헌

  • Illouz, E.(2007). Cold intimacies: The making of emotional capitalism, Polity, 김정아 옮김(2010), 『감정 자본주의』, 파주: 돌베개.
  • Zelizer, Viviana.(2005). The purchase of intimacy, Princeton, N.J. : Princeton University Press.
  • Zeisler, Andi.(2016). we were feminists once: From riot grrrl to CoverGirl, the buying and selling of a political movement, Public Affairs, 안진이 옮김(2018), 『페미니즘을 팝니다: 우리가 페미니즘이라고 믿었던 것들의 배신』, 서울: 세종서적.
  • 김애라(2019). “‘탈코르셋’, 겟레디위드미(#getreadywithme): 디지털경제의 대중화된 페미니즘”, 『한국여성학』, 제 35집, 43-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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