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를 빌리세요!”: 도대체 ‘오빠’는 누구인가

👻보라돌이 / 🌙상상 / ⚓️오온

“한국 여행을 위해 한국인 오빠를 빌리세요(Rent a Korean Oppa for a tour)”

2018년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한국 여행 가이드 업체 Oh My Oppa(페이지 보기)의 홍보 문구이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이 업체는 ‘오빠(Oppa)’라고 칭해지는 한국인 남성 가이드를 외국인 관광객에게 ‘빌려’준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은 Oh My Oppa 홈페이지에서 마음에 드는 ‘오빠’를 고른 뒤에 두 시간여의 투어를 예약할 수 있다. ‘오빠’와의 투어는 경복궁, 한강 공원, 가로수길, 코엑스 등 정형화된 서울 관광 코스를 따른다. 여타 관광 가이드 서비스와 Oh My Oppa가 다른 점은 이 관광 코스를 소개해주는 사람이 ‘오빠’라는 것뿐이다. 아니, 사실 ‘오빠’라는 것이 이 서비스의 핵심이자 전부이다. Oh My Oppa 홈페이지는 관광 코스가 아닌 ‘오빠’에 따라 디렉토리가 나뉘어 있으며, 각 ‘오빠’의 페이지는 흡사 데이팅 앱의 프로필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오빠’의 사진으로 가득하다. 관광 코스는 각 ‘오빠’의 프로필 하단에 아주 간단히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한국인들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는 이 서비스는 ‘오빠 투어’라는 약칭으로 불리면서 한국을 방문하고자 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고 한다.

‘오빠’가 그 자체만으로 상품이 될 수 있다니. 도대체 ‘오빠’가 뭐길래. ‘오빠 투어’의 존재를 처음 접했을 때 들었던 생각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사실 ‘오빠’라는 말은 한국어 사용자라는 작은 언중을 넘어 국제적인 공용어가 된 지 오래다. 영어 신조어나 유행어, 슬랭의 의미를 정리해 놓은 크라우드 소스 인터넷 사전 <Urban Dictionary>에는 ‘Oppa’ 항목이 버젓이 존재하며(페이지 보기), 중국어 문화권에서는 ‘오빠’가 손위 남자 형제를 가리키는 단어 ‘哥哥(gege)’로 번역되지 않고 ‘오빠’를 음차한 신조어 ‘歐巴(ouba)/欧巴’로 표기되고 있다. 이렇게 ‘오빠’가 번역되지 않은 채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은 ‘오빠’가 그만의 독특한 의미를 지닌 초국적인 고유명사가 되었다는 뜻일테다. 게다가 ‘오빠 투어’와 같은 서비스의 탄생은 ‘오빠’가 한국에 오면 한 번쯤 체험해 보고 싶은, ‘빌리고’ 싶은 무엇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필자들은 이러한 ‘오빠’—Oppa라고 표기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의 난데 없는 상품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여기에서 ‘오빠’는 도대체 누구인지 이해하고 싶어 본 연구를 시작했다. 이렇게 초국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오빠’의 의미는 무엇인가? 여기에서 ‘오빠’는 정확히 누구인가? 어떻게 ‘오빠’는 빌릴 수 있고, 살 수 있는 상품이 되었는가? ‘오빠 투어’라는 상품에 집중해 이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데이트 상대 ‘오빠’

유튜브에서 ‘Oppa’를 검색하기만 해도 ‘오빠 투어’에 대한 영상이 여럿 뜬다. ‘오빠 투어’를 취재하여 소개하는 뉴미디어 채널의 뉴스부터 ‘오빠 투어’를 직접 체험한 외국인 유튜버들의 브이로그까지 다양하다. 주로 영어나 중국어로 진행되는 이 영상들은 ‘오빠 투어’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소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빠 투어’를 체험하는 이들이 ‘오빠’라는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좋은 분석 대상이다. 먼저 이들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초국적으로 통용되는 ‘오빠’의 의미가 무엇인지 추측해보고자 한다.

사실 ‘오빠 투어’의 모든 관광 코스는 한국의 정형화된 이성애 데이트 코스와 거의 일치한다. 경복궁, 익선동, 한강, 남산, 코엑스 등 ‘오빠 투어’가 안내하는 서울 관광 스팟은 대표적인 서울 데이트 스팟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빠 투어’는 이러한 데이트 스팟에서 연인들이 으레 하리라고 여겨지는 실천들을 충실히 따르면서 진행된다. 한복을 빌려 입고 인사동(영상 보기)이나 경복궁(영상 보기)을 산책하거나, 한강에서 함께 치킨을 먹거나(영상 보기), 벽화 마을에서 다정하게 셀카를 찍는(영상 보기) 식이다. 결국 ‘오빠 투어’는 곧 ‘오빠’와의 데이트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오빠 투어’를 체험하는 이들이 생각하는, 혹은 기대하는 ‘오빠’가 무엇인지는 편집과 자막을 통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영상(영상 보기)은 ‘오빠’의 특정한 행동을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오는 얼굴 모습의 ‘가산점加分’ 스티커를 붙이면서 강조한다. 이렇게 가산점을 받을 만한 ‘오빠’의 행동이란 문턱을 오를 때 잡아 주는 것, 한복을 직접 골라 주는 것, 한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면 예쁘다고 칭찬해 주는 것, 식당에서 미리 수저를 놔주는 것 등이다. 상대방 여성을 배려하는 건지 무시하는 건지 다소 헷갈리는 이러한 ‘오빠’의 행동들은 모두 하트 뿅뿅 스티커가 붙으면서 설렘을 유발하는 행동으로 적극 해석된다.

사실 길을 걸을 때 상대방 여성을 인도 안쪽으로 걷게 하거나, 수시로 상대방의 안녕을 묻는 등의 행동은 한국의 고도로 양식화된 이성애 연애 관계에서 남성이 수행하리라 기대되는 것들이다. 본성 상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어떤 관계가 ‘연애’로 의미화될 수 있기 위해서는 연인 관계에서 필수적이라고 여겨지는 구체적인 행동들이 필요한데, 한국은 젠더에 따라 행해야 하는 행동들이 특히나 구체적으로 양식화되어 있는 사회이다. 이렇게 양식화된 연애 행동 매뉴얼은 미디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재생산되면서 한국식 연애 관계의 전형을 만들어 낸다.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동남아 등지에서 크게 유행한 가상 결혼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리고 ‘오빠 투어’에서 ‘오빠’들의 특정한 행동은 이렇게 양식화된 매뉴얼을 적극적으로 따르고 있다. 이렇게 ‘오빠 투어’가 매뉴얼화된 한국식 연애 관계를 참조하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은, ‘오빠’가 초국적인 맥락에서 데이트 상대 혹은 연애 상대로 의미화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아이돌 같이 생긴 ‘오빠’

그렇다면 한국식 연애 매뉴얼을 수행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오빠’라고 호명될 수 있는가? 당연하게도 많은 이들은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실 ‘오빠 투어’는 ‘오빠’의 역할이 한국식 연애 매뉴얼을 상연하는 데이트 상대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을 뿐, 어떤 사람이 ‘오빠’가 될 수 있는지 그 조건에 대해서는 답해주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보자. ‘오빠’의 역할이 데이트 상대라면, ‘오빠’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오빠’는 정확히 누구를 가리키는가?

이 유튜브 영상(영상 보기)은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한 힌트를 준다. 해당 영상에서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에게 ‘오빠’의 조건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가장 처음으로 나온 답은 “아이돌 같이 생겨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오빠’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은 외모라는 뜻인데, 사실 ‘아이돌’이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이 너무 다양하고 많기 때문에 ‘아이돌 같이’ 생긴 것이 정확히 어떤 생김새를 가리키는지는 다소 모호하다. 따라서 ‘오빠’의 조건으로 제시되는 ‘아이돌 같은’ 외모는 ‘오빠’가 되기 위한 특정한 외모 조건이 존재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한국 남성 아이돌의 이미지로 ‘오빠’라는 단어가 대표/재현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좀 더 타당할 것이다. 이는 구글 이미지 검색에 ‘Oppa’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결과가 대부분 방탄소년단 정국, 아스트로 차은우 등 한국 남성 아이돌의 사진이라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다시 말해, ‘오빠’라고 자주 호명되는 한국 남성 아이돌의 구체적인 이미지가 ‘오빠’의 조건을 구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오빠’란 1) 한국 남성 아이돌로 대표/재현되는 2) 한국식 연애 매뉴얼을 수행하는 데이트 상대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두 가지 의미가 ‘오빠’라는 단어 하나에 결합된 것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오빠’가 남성 아이돌과 여성 팬 사이의 관계를 지칭하는 대표적인 호칭임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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