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

* 본고는 필자의 석사학위논문 “청년 이주민의 대안적 활동과 농촌성의 변화 – A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연구와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28살에 처음 농촌을 향했다. 하루하루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데에 일조하며 살아가는 도시에서의 삶을 그만두고 싶었고, 얼굴이 있는 사람들과 이웃해서 살아가고 싶었다. 경험으로 보아 나처럼 농촌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주거, 일자리, 네트워크 중 한두 개만 충족되면 의외로 선뜻 도시를 떠난다. 나의 경우에는 건너 건너 아는 분이 일할 청년을 간절히 찾고 있는 곳에서 주거와 일자리를 한꺼번에 해결해주겠다고 제안해 왔다. 살고 있던 서울에서 5시간이나 걸리는 곳이었지만 시도해 볼 만했다.
시도만 해 볼 생각이었지만, 결국 그곳에서 2년 넘게 살았다. 그동안 기후위기를 심화시키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는 나의 가장 큰 동기는 바람처럼 흩어졌다. 차 없이 살지 못하는 곳이 곧 농촌이었고, 택배를 받는 것이 가장 큰 낙이었다. 일회용품 사용량도 늘어났고, 8년 넘게 이어간 채식은 그만두었다. ‘배출한 탄소를 농사를 통해 되돌릴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농촌으로 이주하며 현관 앞의 장미나무 한 그루조차 꾸준히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농사는커녕 마당에 나는 풀조차 징글징글해 하며 대신 시멘트에 애정을 갖게 되었다. 얼굴이 있는 이웃들은 처음에만 좋았고, 곧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과 방의 청소 상태를 지적하는 사람의 수가 엄마 한 명에서 온 동네 할머니들로 늘어났다. 주말이면 어떻게든 마을을 떠나 도시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이런 변화는 한 계절로 충분했다.
그런데 어떻게 2년을 살 수 있었을까. 게다가 나는 서울로 돌아가 농촌에 대해 논문을 썼고, 35살에 다시 농촌으로 왔다. 비록 생태적인 삶은 포기하고 읍내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농촌이 좋다. 애증이 되긴 했지만 말이다.
사회적 단위를 형성하지 못하는 삶
르페브르는 공간을 3요소로 나누어 정의했다. 반복적인 생활의 배경이 되며 지각되는 공간 외에 지배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한 공간 계획, 그리고 상상력과 저항적 실천을 통해 변화하는 역동적인 삶의 공간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요소가 결합하여 공간이 생산된다고 보았다. 이 중 공간 계획의 역할은 청년에게 중요하다. 오랫동안 농촌은 농업 생산의 공간일 뿐 역동적인 삶의 공간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농촌이 도시인들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도구적 공간으로서 계획되는 동안 교통, 통신, 안전, 교육, 여가 등에 대한 인프라는 낙후되고 문화는 더욱 지체되었다. 평등, 인권 같은 사회적 가치 추구와는 거리가 멀며 소자본을 가진 지역의 유지들, 복잡한 인맥, 가부장적 전통, 그리고 강한 관성이 큰 힘을 발휘하는 농촌 문화는 새롭게 지역에 진입하려는 청년을 전혀 환영하지 않는다. 설사 지각되는 농촌 공간이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간이라고 해도, 이러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청년의 삶은 좀처럼 상상력과 변화의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나의 첫 번째 농촌살이가 그러했다. 적은 월급과 열악한 집, 외로움 속에서 다만 풍경에 기대 살았을 뿐이었다. 지각되는 공간의 아름다움이 위로가 되었지만, 나는 행정의 공간 계획 속에 있지도 않았고, 할 수 있는 상상의 여지도 적었다. 당시에도 귀농·귀촌인을 유치하기 위한 정책은 있었지만 2인 이상의 가구만이 대상이었다. 혼자 사는 여성 청년으로서의 어려움은 정책에서의 배제만은 아니었다.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지역의 사람들을 만났지만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아직 주인이 없는 여자’로서 대해진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딱히 연애나 결혼을 원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자 오히려 별의별 사람이 치근대어 오기 시작했다. 결혼을 해서 한 명의 사람, 또는 그 안정적인 부속으로 대해질 수 없다면 이곳에서 아무런 관계도 맺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구 단위로 구성된 농촌 사회에서 하나의 사회적 단위를 형성할 수 없는 나는 안전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최소한의 관계 속에서 혼자 일하고 월급을 받고 여행을 다니며 지역의 풍경을 소비하는 것뿐이었고, 곧 그러한 삶에는 한계가 찾아왔다.
공간과의 협상과 새로운 ‘레이어’ 생산
정체된 농촌이 소멸 위기에 처하자 농촌 공간은 도시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농촌에서의 저출생이 도시 유입인구의 감소로 이어져 연쇄적 붕괴를 일으키는 위협이 될 것이라는 ‘지방소멸’론이 등장하며 농촌 공간 계획은 변화했다. 농촌이 청년에게 매력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힘을 얻었고 창업지원금 등의 청년 유치 정책이 시도되었다. 이제 이주해 오는 청년은 농촌에서 공간과의 협상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공공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여지가 생겼고, 그게 되지 않으면 돈을 내고 공간을 구할 수도 있다. 서울에서는 그에 필요한 자본을 엄두도 내기 어렵지만, 농촌에서는 꿈꿔 볼 만한 일이다. 주거공간의 가격도 훨씬 낮다. 주거환경이나 구할 수 있는 일자리의 임금 수준에 비교해 보면 그것도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만, 절대적인 가격은 도시에 비할 바 못 된다.
공간 계획에 들어갈 수 있고 지각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공간이 주어지는 것의 힘은 크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농촌에서의 매일매일의 삶이 쉽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가부장적 관계망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관계망을 구성하고 상상력에 기반한 새로운 시도를 통해 공간을 사용하는 방법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공간 생산의 3요소에 청년이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농촌에서 농업 생산의 공간 외에 청년의 활동 공간이라는 새로운 공간이 생성될 수 있다. 내가 연구를 위해 찾아간 곳은 그 예시가 될 만했다. 이곳에서는 대안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군청에 셰어하우스 사업을 건의하여 함께 지낼 집을 얻고, 사무실과 가게를 내어서 모일 공간을 만들었다. 협동조합을 구성하여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을 넘어 대안 활동을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망을 구성했다. 무엇보다 페미니즘을 활동의 중요한 기반으로 삼아 함께 공부하고 관련 활동을 하고자 했다. 이곳에서 필드워크를 하며 경험한 농촌은 이전과는 다른 곳이었다. 나를 성적 대상이나 미완성의 임시적 존재가 아니라 나름의 취향과 개성, 살아온 역사를 지닌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해 주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주거환경 역시 훨씬 나아졌으며 무엇보다 일과 후에 여가를 위해 찾아갈 수 있는 공간들이 있었다. 자신들이 편안하게 술 마실 공간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한 한 여성 청년이 직접 청년몰 안에 연 칵테일 바도 있었고, 페미니즘 소모임을 비롯한 다양한 공부 모임과 취미 모임도 있었다.
이들의 활동이 구성하는 농촌의 새로운 공간은 기존 공간과 대척하지 않는다. 기존 주민들과 이주해 온 청년들은 지속가능한 농촌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추구한다. 그를 위해서는 농촌을 도시의 식량 생산을 위한 도구적 공간에서 삶의 공간으로 바꾸어 사고할 필요가 있으며, 삶의 공간으로서의 농촌에는 복잡하고 다양한 성질이 요구된다. 청년들이 구성하는 공간은 농촌의 복잡성 속에서 하나의 ‘레이어’로 기능하며, 경합적이지 않고 패치워크적인 농촌성을 구성한다. 농촌의 이러한 패치워크적 다양성은 청년의 활동으로 인해 새롭게 형성된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삶의 공간이었던 농촌에서 늘 존재했으나, 기능적 관점에서 선택적으로 조명 받아 온 농촌을 새롭게 사고할 필요가 생기며 농촌에 대한 공간 계획과 인식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농촌에 대한 인식과 계획이 이러한 다양성에 주목할 때 공간 생산은 더욱 활발해질 수 있다.
공간 사이의 갈등과 가능성
물론 청년들의 활동이 기존 공간과의 아무런 갈등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주해 온 청년들의 대안적인 활동은 기존의 농촌이 가지고 있는 가치 체계 안에서 인정받기 힘들다. 대안학교에서의 교육을 통해 형성된 청년들이 체화하고 있는 인식과 평가 구조는 농업 생산 공간으로서 기능해 온 농촌 사회가 체화하고 있는 것과 큰 차이가 있으며, 청년들이 자신들의 생산물을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받고 타당성 있는 지원의 대상으로 여겨지기 위해서는 투쟁과 협상이 필요하다. 문화적 다양성, 생태적 지속가능성, 성평등 등의 가치를 추구하며 다양한 예술적 활동을 하는 청년들을 지역사회는 “놀고 먹는” 것으로 본다. 청년 지원의 목적은 무엇보다 이들이 지역 내에서 가구를 구성하고 ‘주민’이 되는 것이며, 그를 위해서는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최소한의 수입으로 만족하며 경제적 보상이 없는 활동에 몰두하는 이들은 지원금을 받아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려” 하는 이기적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기존의 지역사회 내에도 스펙트럼은 존재하며, 청년들의 활동에 동의하는 일부의 사람들이 문화적 매개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남성적 위계구조로 이루어진 기존 지역사회에 대한 환멸감과 무기력이 보다 쉽게 청년들의 활동을 지지하게 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동문 등으로 연결되어 성인이 되기까지 유지되는 지역 남성 커뮤니티의 인맥과 자본, 토착 권력에 대한 반감이 지역 내에 폭넓게 존재하며, 이로 인해 새로운 시선으로 무엇인가를 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것이다.
2년이 지나도록 성원으로 인정받으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을 농촌에서 찾지 못했던 나에게 이 지역 청년들의 활동은 대단히 생산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기존의 남성 중심적, 가부장적 농촌에서 자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공간 생산 활동은 농촌을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곳으로 느끼게 하며, 그러한 역동적인 공간 속에서 자신을 상상력과 변화의 주체로 둘 수 있게 한다. 다시 농촌에 살고 싶었던 나는 그러한 가능성을 통해 연구했던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아직 여성 청년에 속하는 내가 이곳에서 어떠한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확언할 수 없다. 여전히 가구를 구성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가부장적 공간으로서의 농촌에서 나는 이전과 비슷한 경험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기존 공간과의 갈등을 겪다 다시 농촌을 떠나게 될 수도 있다. 지금 이곳은 내가 연구를 할 때에 비해 많은 사람이 떠났고 소중하던 청년몰의 바도 없어졌다. 그러나 농촌에서 내가 머물 수 있는 다른 공간을 생산하는 일은 작물을 키우는 일과 비슷하다. 작물에서 씨앗과 퇴비가 남는 것처럼 가능성과 희망이 남기 때문이다. 농촌을 단일한 공간으로 인식할 때 여성 청년에게는 자리가 없지만, 패치워크적 다양성을 바탕으로 그곳에 애정을 두고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함께 삶터를 지키려 애쓰는 협상적인 공간일 수 있다면 농촌에서의 매일매일의 삶은 변화를 향한 상상력으로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 Bourdieu, Pierre.(2006). La Distinction : Critique sociale du jugement, 최종철 역(2006), 『구별짓기』, 새물결.
- Lefebvre, Henri.(2006). (La)production de l’espace, 양영란 역(2011), 『공간의 생산』, 에코리브르.
- Woods, Michael.(2006). Rural, 박경철, 허남혁 외 역(2016), 『농촌』, 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