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

코로나19의 대유행은 분리된 세상을 더 극단적으로 드러냈다. 시설에서 집단감염이 되어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들, 실업과 사측의 부당해고로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진 사람들, 학교가 문을 닫으며 돌봄 노동의 강도가 과중해진 사람들의 반대편에는 이때가 기회라며 소위 ‘동학개미운동’에 편승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배달과 택배는 늘었지만, 과도한 노동과 과로로 물류노동자들이 숨졌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가격리는 가정폭력, 아동학대의 증가를 가져왔으며, 탈가정 청소년, 홈리스, 성판매 여성들의 공간과 자리를 위협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최장이자 최악의 여름 장마가 기후위기 때문이라는 것이 공공연하게 드러났음에도 그린뉴딜을 실현하겠다던 정부의 발언 뒤에는 제주 제2공항 사업 추진과 같은 토건 사업과 해외 석탄 투자가 있었다. 상반된 현실 속에서 코로나19는 젠더, 돌봄, 장애, 노동, 의료, 보건, 환경 등 곳곳에서 산재해 있던 문제들을 가시화했다.
이에 ‘뉴노멀’이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같은 ‘시대’와 관련한 새로운 명명이 등장하고, 코로나 이후를 고민해야 한다는 시론이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금에도 여전히 코로나19는 종식되지 않았으며, 코로나19가 현재와 미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는 미지수다. 그보다도, 과연 코로나19 전후를 분리된 ‘시대’로 인식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점이 남는다. 이러한 공공연한 소외, 차별, 혐오, 폭력, 기후위기 등은 코로나 이전에는 없었던 문제였을까? 코로나19 전과 현재를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와 같이 위기를 바탕으로 시대를 구분하고, 정치적으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시도는 코로나19 이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이러한 시대 구분은 특히 환경정의 운동과의 연결 속에서 등장했는데, 인간의 신체가 물질, 권력, 비인간 세계와 상호작용(interact)하고 내부작용(intra-act)[1]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기제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지구 전체의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파괴하는 주동자가 인간이라는 데에서 등장한 인류세(Anthropocene) 담론은 인류가 비인간을 포함한 세계와의 얽힘 속에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질문하는 지질학적 시대 개념이다(김상민·김성윤, 2019: 58). 인류세 담론은 기후변화에서 인간의 책임을 질문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으나, 인간중심적인 차원에 치우친다는 점, 그리고 지식인들이 정보 자원이 풍부한 선진국에서 담론을 형성해왔기에 논의 자체가 서구의 경험과 이익을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한계적이었다(차크라바티·박현선·이문우, 2019). 반면 무어(2020: 286)는 이 시기를 자본세(Capitalocene)로 명명하며, 기후변화와 부의 불평등이 세계생태로서 자본-권력-자연이 결합되는 자본주의적 과정에 의한 것임을 지적한다. 즉 자본주의를 생명의 그물과 관련하여 외부의 행위자가 아닌 내부의 행위자이자 흐름으로서 인식하는, 인간/자연, 자연/사회라는 근대적인 이분법적 범주 구분을 해체하는 작업이다. 나아가 이러한 자본세의 인류세 담론 비판을 확장한 해러웨이는 툴루세(Chthulucene), 즉 무수한 집합적-존재들과 시간성, 공간성을 얽어매며 탈가족화하는 방식으로 친족을 형성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해러웨이·김상민, 2019). 특히 자본세와 툴루세 논의는 기후변화 및 불평등과 같은 ‘위기’를 일차원적인 사건이 아닌 다양한 행위자와 세계를 상호연결되어 있고 내부작용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로 평가된다.
[1] 내부작용(intra-action)은 상호작용(interaction)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어떤 것의 경계와 특성이 결정되고, 의미를 갖는 것은 행위자들의 얽힘(entanglement) 혹은 분리 불가능성 속에서 내부작용을 의미한다(Barad, 2007).
코로나19와 이로 인한 사회적, 물리적인 변화를 새로운 시대로 명명하고 정의하는 것은 앞서 자본세, 툴루세에 관한 해석과 무관하지 않다. 코로나19 또한 2019년 하반기에서 2020년에 발발한 하나의 일차원적인 위기보다는 기후위기, 불평등, 환경부정의, 착취, 소외가 낳은 복잡다단한 사건인 동시에 계속해서 소외, 차별, 혐오를 생산하는 기제다. 서보경은 코로나19가 대유행한 것이 바이러스의 팽창적인 정복욕이기보다는 인간 군집이 환경에 가한 충격 때문이라고 분석한다(서보경 2020: 29). 따라서 바이러스를 ‘적’으로 상정하는 것은 비인간 행위자와 인간이 맺고 있는 복잡한 사회성과 관계를 지워버린다. 즉, 코로나19는 무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늘날의 위기가 복수의 위기가 아니라 단일하면서 다면적인 위기”에 가깝다(서보경 2020: 23).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자본주의와 자연의 위기는 분리되지 않고 자연-속-인류가 권력, 생산, 지각 등과 뒤얽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코로나19를 과거 혹은 미래와 동떨어진 하나의 시점보다는, 과거-현재-미래가 복잡하게 연결되며 얽혀 있는 사건이자 위기로 해석하기 위해 Fwd 필진들은 다섯 번째 기획을 위해 사전 세미나를 진행하였다. 특히 경제, 환경, 문학, 정치 등을 페미니즘적이고 신유물론적으로 분석하는 연구들과 문헌들에 관한 공부는 코로나19와 이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현상을 다층적이고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에코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는 국제 자본주의의 억압이 제3세계 여성과 자연에 미치는 영향과 이의 대응 방안으로 돌봄과 상호 보살핌을 강조하며, 환경 부정의를 유지하는 성장 패러다임과 자본주의 구조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인간-비인간 관계망 중심에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페미니즘적 접근과 인간을 넘어서 세계와 맞물리는 지점인 횡단-신체성(trans-corporeality)에 대한 공부는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탈피하면서도 페미니즘적으로 코로나19를 바라보게 하였다(앨러이모 2010).
이러한 세미나를 바탕으로 이번 기획에서는 비인간 바이러스,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페미니즘적으로 읽어내고, 이를 통해 대안적이고 정치적인 상상력을 제안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필진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로지스틱스, 주식, 요양시설과 늙음, 성교육, 돌봄노동 등의 주제를 페미니즘을 통해 풀어나간다. 필진들 내부의 논의와 세미나를 거쳐 정리된 몇 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방법론적으로 어떻게 코로나와 그 이후의 ‘뉴 노멀’을 상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정치적인 질문(허주영)이다. 허주영은 김혜순의 시 「피어라 돼지」를 통해 문학이 팬데믹 상황에 개입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한다. 은유는 문제를 드러내고 동시에 숨긴다. 돼지의 문제를 돼지의 문제로 보지 않고, 돼지의 문제를 모두의 문제로 본다면 돼지 동물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도, 인간 동물의 문제도, 즉 아무것도 이야기할 수 없다. 문학에서 ‘뉴 노멀’을 상상하는 일은 어떠한 종도 위기를 피해갈 수 없고 모두 연루되어 있다는 점을 상기하고, 익숙하지만 제일 모르는 것에 개입하는 일이다.
둘째, 코로나19 상황에서 인간 군집(herd)의 상호의존성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김보영, 고은)이다. 먼저 김보영은 코로나19의 대유행 시대의 노인요양시설에서 나이든 사람들의 죽음을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코로나19와 무관하게 ‘격리’되어온 나이든 몸들의 세계를 함께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한다. 어떤 몸들은 당연히 시설에서 살아도 된다고, 그게 이들을 ‘보호’하는 길이라고 믿어져 왔다. 코로나19로 집단거주시설에서 살아가는 취약한 삶들이 세상에 드러나기도 했지만, 시설에서의 위험과 폭력은 코로나19가 종식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나이들고 아픈 이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상상력을 시설이라는 구조적 조건에 가두지 말자고 제안한다. 또한, 고은은 포괄적 성교육을 중심으로 코로나19와 상호의존을 사유한다. 팬데믹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는 단절과 경계에 대한 인식을 강화했고, 구성원들의 연결성과 상호의존이 마치 상실된 것 같은 현실을 구성하고 있다. 이 글은 비대면이 포스트 코로나의 새로운 규범이 된다면 포괄적 성교육의 가치와 조응할 수 있을지 촉각의 경험과 신자유주의 구조를 통해 비판적으로 사유하고자 노력한 글이다. 사라지는 촉각의 경험과 신자유주의 구조가 상호의존과 연결성을 상실하게 만들고, 폭력과 위력의 개념을 기계적으로 학습하게 만드는 현실에서 포괄적 성교육의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셋째, 코로나19 속 자본과 물류가 어떻게 국민국가 안팎에서 이동하며 인간과 관계 맺는지에 관한 질문(싱두, 보라돌이)이다. 싱두는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일어난 ‘동학개미운동’의 구조적 배경에 비판적으로 개입한다. 왜 사람들은 이러한 위기 국면에 주식 시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는지, 그 맥락에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가 어떤 권력 지형에 놓여있는지를 고찰한다. 또한 무엇이 투자할 만한 가치인지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지워지는 목소리에 주목함으로써 신자유주의 금융화에 내재된 약탈성을 드러낸다. 한편, 보라돌이는 코로나 이후 국제이동이 불가능해보임에도 어떤 면에서 물류업은 폭발적으로 성장이 가능했다는 발견에서 착안하여 로지스틱스에 거시적으로 접근하였다. 정치적 영역과 무관해 보이는 물류의 흐름, 즉 로지스틱스가 어떻게 물자의 순환과 속도를 인간의 삶 위에 올려놓게 되었는지 설명하며 최근 코로나 이후 계속되는 택배 노동자들의 죽음에도 속도를 멈추지 않는 우리 사회 모습을 돌아본다. 또한 새로운 지경학 공간인 로지스틱스가 변형시킨 국민국가의 역할을 소개하며 국경 작동 방식의 자의성을 드러낸다.
2020년부터 현재까지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시화되는 문제를 드러내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기 위한 글 또는 연구는 다양하다. 그럼에도 Fwd에서 코로나19이 유행한 지 1년을 넘기는 이 시점에서 코로나19를 주제로 다섯 번째 연구를 기획한 것은 코로나 전과 현재에서 제도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이어지는 문제들을 일회적인 사건이 아닌 연속된 시공간 속에서 해석하기 위함이다. Fwd의 필진들이 전개해 나가는 논의가 이 단순히 코로나19라는 이 ‘시대’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석하는 것을 넘어 코로나 이전과 현재를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는 현상으로 해석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참고문헌
- 김상민·김성윤 (2019). 「물질의 귀환: 인류세 담론의 철학적 기초로서의 신유물론」. 『문화과학』, 97, 55-80.
- 서보경 (2020). 「서둘러 떠나지 않는다면-코로나 19 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돌봄의 생명정치」. 『문학과사회』, 33(3), 23-41.
- 차크라바티·박현선·이문우 (2019). 「기후변화의 정치학은 자본주의 정치학 그 이상이다」. 『문화과학』, 97, 143-161.
- 해러웨이·김상민 (2019). 「인류세, 자본세, 대농장세, 툴루세: 친족 만들기」. 『문화과학』, 97, 162-173.
- Alaimo, S. (2010). Bodily natures: Science, environment, and the material self. Indiana University Press. 윤준·김종갑 역 (2018). 말, 살, 흙: 페미니즘과 환경정의. 서울: 그린비.
- Barad, K. (2007). Meeting the universe halfway: Quantum physics and the entanglement of matter and meaning. Duke University Press.
- Moore, J. W. (2015). Capitalism in the Web of Life: Ecology and the Accumulation of Capital. Verso Books. 김효진 역 (2020).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 자본의 축적과 세계생태론』. 서울: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