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방의 정치학

리예

1. 일곱 글자가 새겨진 한 장의 이미지

[이미지 1] 출처: 윤석열 페이스북

지난 1월 7일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윤석열은 본인의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한 줄의 공약을 게시했다. 작년 10월 21일 여가부를 재편성해야 한다는 발언에서 폐지로 말을 바꾼 것이다. 이 한 줄은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켰다. 이재명과 심상정 후보도 여가부 존속에 관한 의견을 냈으며, 이는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로도 이어졌다. 1월 12일 여성가족부 폐지 찬반을 물었을 때 폐지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과반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으며(리얼미터) 19일 조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코리아정보리서치). 그러나 찬반 외의 응답지를 추가한 조사들의 경우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이 ‘폐지 찬성’보다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관련 기사). 설문의 질문이 이분법적으로 주어지지 않을 때 여론은 대안적인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이미지 2, 3, 4, 5] 출처: 시계방향으로 심상정, 허경영, 이재명, 윤석열 페이스북

윤석열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일곱 글자가 새겨진 한 장의 이미지’는 여론을 어떤 방향으로 유도하는가? 이 이미지에는 여성가족부를 폐지해야 하는 타당한 근거도, 구체적인 실행방안도, 대책이나 후속 조치도 적혀있지 않다. 차후 중앙선거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에서야 “청년들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시대적 소명이 다한 여성가족부를 폐지”한다고 그 당위를 덧붙였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 당선인 공약 자료집). 마치 여성가족부 존속이 곧 ‘불공정’의 실존 상태인 것처럼, 그리고 그 기관을 폐지함으로써 불공정이 시정될 것처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강렬하고 허황한 메시지를 이 ‘일곱 글자 이미지’는 선언하고 있다.

이 ‘이미지’는 정연한 논쟁보다도 ‘패러디된 이미지’를 불러들인다(이미지 2-5). 일곱 글자만을 가지고 토의나 사실 검증, 논박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왜 여성가족부를 폐지해야 하는지, 폐지하게 되는 것으로 공정은 보증되는지에 대한 논의보다는 반복되는 형태와 차이 있는 내용을 지닌 이미지가 뒤따른다. 예컨대 심상정은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여성가족부 강화’라는 일곱 글자로 패러디하고, 허경영은 ‘결혼부 신설’이라는 메시지를 덧붙였다. 윤석열은 ‘여성가족부 폐지’ 이후 ‘사드 추가 배치’, ‘탈원전 백지화’ 등의 메시지를 동일한 형식으로 연이어 게시했다. 윤석열의 ‘주식양도세 폐지’라는 이미지에 대해 이재명은 ‘부자 감세 반대’라는 이미지를 맞붙였다. 이미지 메시지는 논의되어야 할 내용을 파격적으로 절감한다. 컴팩트한 용량의 메시지는 다운로드되고 재업로드되며 무한히 퍼져나간다.

그렇다면 윤석열이 페이스북에 게시한 ‘이미지’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1월 첫째 주까지 윤석열의 지지율은 26%로 이재명보다 10% 뒤지고 있었다. 그것이 이미지 게재 후 둘째 주가 되자 31%로 반등하며 격차를 6%로 좁히게 된다.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그 중에서도 20대 남성의 경우 윤석열 지지율이 24.8%에서 59.2%로 급상승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윤석열이 1월 5일 선거대책위원회 해체와 함께 선언한 ‘청년 중심 선거운동’의 일환이었다. ‘여성가족부 폐지’, ‘병사 월급 200만원 지급’ 등이 적힌 이미지를 게재한 것은 이후 일주일 간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윤석열이 정세의 주도권을 잡고 지지율을 뒤엎을 수 있었던 힘에 이 이미지들의 특정한 양식이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특정한 양식을 쓰고, 읽어내고, 이해하고, 반응하는 방법은 2000년대 이래 한국 사회 온라인 공간이 인터넷 밈, 또는 짤방을 유통하며 향유자들에게 꾸준히 이식된 것이다. 그 결과 한국 남성은 가엾고, 한국 여성은 이기적이며, 여성가족부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자동화된 반응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2. 루저남.jpg와 김치녀.jpg

밈은 문화 내에서, 또는 문화 간에서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가는 사상, 행위, 또는 양식을 뜻하는 용어다. 밈은 미디어를 통해 한 정신에서 다른 정신으로 전송될 수 있는 사상들, 상징들, 또는 관행들을 나르는 “문화적 단위”이다. 그런데 근래 들어 밈이란 텍스트를 곁들이는, 의도적으로 투박하고 엉성한 이미지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이 이미지는 우리를 웃기고, 느끼고, 생각하게끔 하기 위해 설계되었으며, 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통되고,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간다(Pettman, 2019). 한국 온라인 공간이라는 맥락에서 이러한 형태는 ‘짤방(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짤방은 “특정한 맥락을 공유한 사람들끼리 이해하고 무한 변조, 확산되는 이미지(관련 기사)”라는 점에서 인터넷 밈과 동일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인 바, 이 글에서는 ‘짤방’이라는 용어로 사용하고자 한다.

짤방은 앞서 만들어진 짤방을 레퍼런스로 삼으며 만들어진다. 그렇게 새로 만들어진 개개의 짤방은 자동적으로 친숙하고 인지 가능한 것이 된다. 짤방이 지니는 이러한 형식적인 속성은 “공감(empathy)이라는 간접적인 탑재물”을 전달하는 일을 특히 효과적으로 만든다. 좋아요 및 공유 기능을 통해 밈을 소비하는 데 있어 소셜 미디어 사용자는 공통성이라는 순간에 참여하고 있다. 각종 이미지를 공유하며 “나도 이렇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밈들은 “인간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유사성을 인식하는 일”에 근거한다(Pettman, 2019). 즉 밈 향유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보여줄 수 있도록 이미지를 다른 이미지 또는 텍스트와 합성해 게시하고 퍼뜨린다. 

표정을 보이는 이미지들로서 ‘이모티콘’과 같은 기능을 하던 짤방은 점차 어떤 메시지를 담는 독자적인 이미지로 발전했다. 그 한 갈래는 ‘루저 남성’ 상태를 자조하는 것이었으며, 다른 갈래는 ‘이기적인 여성’을 질타하는 것이었다.

짤방 향유자들은 남성으로 상정되곤 했다. 그들이 자학하고 자조하는 것은 곧 남자답지 못한 처지, 여자와 관계 맺지 못하는 처지와 직결되어 있었다. 위 이미지에서 보듯 (너 나 우리가) 사귀는 여자가 없는 일, 가치 없이 ‘그따위’로 살고 있는 일 등의 ‘찌질한 처지’가 주로 자조의 대상이 되었다. 남성화*된 찌질한 처지에는 여러 이름이 붙게 된다. 미국적 맥락에서는 정상인/일반인(normie)이 아닌 일, 자신이 동정인 건 여자의 탓이라는 ‘비자발적인 독신(INCEL; involuntary celibate)’, 알파 메일에 뒤떨어지는 ‘베타 메일(beta male)’, 날백수 상태인 니트족(NEET; 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 등으로 표현되는 존재양식이 그러하고, 한국적 맥락에서는 ‘잉여’, ‘루저’, ‘◯◯충’, ‘호구’, ‘히키(은둔형 외톨이)’, ‘모쏠(모태솔로의 변형)아다(동정의 은어)’라는 신조어들이 그러하다. 이들에게 있어 서글프게 울상을 짓고 있거나, 눈물이 나도록 웃고 있는 표정에 적절한 자막을 달아 연출되는 짤방은, 온라인 공간 바깥의 정상인과 다른 자신들, ‘충분히 남성답지 못한 남성’들, ‘루저 남성’들의 ‘웃픈’ 상태를 탁월하게 톺아낼 수 있는 도구였다.

[이미지 8] “개똥녀”(2005)

‘이기적 여성성’을 질타하는 짤방은 이러한 ‘루저 남성성’ 짤방과 발맞추어 생성되어왔다. 카메라폰과 인터넷의 보급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 여성들의 사진은 “◯◯녀”라는 텍스트와 함께 게시되고 공유되었다. ‘개똥녀’, ‘된장녀’, ‘민폐녀’ 등은 일련의 여성 이미지와 텍스트가 결합된 짤방 형식으로서 생성·공유·전파되었다. 짤방에서 여성은 이기적인 태도로 타인에게 폐를 끼치거나, 순박한 남성을 이용하는 뻔뻔한 존재로 재현되어왔다.

그 중에서도 2009년 ‘루저녀’ 사태는 ‘이기적 여성’ 짤방과 ‘루저 남성’ 짤방의 합일점으로서, 두 갈래가 같은 생성논리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 여성이 방송에서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한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짤방 향유자들은 이 여성에게 ‘루저녀’라는 이름이 붙이고, 짤방화하여 호되게 조롱하고 질타했다. 동시에 자기자신들에 대한 짤방화도 진행하며 ‘루저’인 자신들을 자학·자조하였다.

“루저의 난”은 동학농민운동을 묘사한 삽화에 당시 유행하던 개그콘서트 꽁트 코너 ‘남성인권보장위원회’ 출연진의 얼굴을 합성하고 말풍선 등을 배치했다. 희화화된 호남 사투리로 위너를 박살내자는 주변인에게, 위원회장은 된장녀로 대표되는 ‘이기적인 한국 여성’이 우리 루저의 진정한 적임을 근엄한 의고체로 지시한다. 이미지 좌측 하단에는 이 날을 기념해 “이념을 뛰어넘은 루저들의 대동단결의 날”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이미지 11] “위아더월드”(2012)
(원 출처는 커뮤니티 ‘오늘의유머’로 추측된다)

실로 인터넷 커뮤니티의 남성화된 이용자들은 ‘이기적인 한국 여성’의 사례가 주어질 때마다 ‘루저 남성’이라는 정체성 아래 “이념을 뛰어넘어 대동단결”하곤 했다. 2012년 ‘김치녀’와 그 남자친구가 시시덕거리느라 조별과제를 망쳤다는 일화에 대하여 ‘오유’로 대표되는 ‘좌익’적 유머 커뮤니티든 ‘일베’로 대표되는 ‘우익’적 유머 커뮤니티든 이 여성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미지에서 보듯, “조별과제 김치년”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경상도’와 ‘전라도’로 갈음되는 지역감정과 정치성향을 뛰어넘어 “위아더월드”를 이룩한 것이다. 본디 이 짤방은 해외축구 커뮤니티에서, 각기 다른 구단 팬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다가도 박지성이 골을 넣으면 한국인이라는 동질적인 정체성 아래 대동단결하게 되는 현상을 극적으로 그린 것이었다. ‘조별과제 김치년’은 원본의 ‘박지성 골’과 마찬가지로 각기 다른 커뮤니티의 이용자들을 동질한 정체성으로 결집시킨다. 이기적인 한국 여성을 혐오하는 한국 남성이 그것이다. 한국의 대표 음식으로 이야기되는 김치를 ‘-녀’ 접미사와 결합시킨 ‘김치녀’라는 표현은 한국 여성을 집단화한 멸시적 호명임과 동시에, 한국 남성을 그에 대치시키는 표현인 것이다.

‘꼴페미’, ‘된장녀’, ‘민폐녀’, ‘김여사’, ‘김치녀’, ‘맘충’, ‘아몰랑’, ‘메갈’이라는 호명에 이르기까지, 한국 온라인 공간은 “한국 여성의 집단화” 기획을 통해 “사회적 불안이 만들어내는 분노를 쏟아부을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안전망”으로서 여성을 공격해왔다(김수아, 2015). 짤방이라는 형식은 한국여성에 대한 이러한 집단화 작업에 효과적으로 기능했다. 짤방은 “개별적인 내용을 보편적인 형식으로 치환”하여, “부분이 전체인 것으로 오인되거나, 의도적으로 해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Bristow, 2019). 한국여성을 짤방으로 재현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사회문화역사적 맥락, 그 국면과 맺는 역동적인 관계 등은 결락된다. 짤방화의 과정을 거쳐 한국 사회의 젠더지형은 ‘이기적인 한국 여성’과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평범한 ‘루저 남성’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재현 요소로 재단되고, 이항대립적 이미지의 세계로 환원된다.

3. 여성부에 대한 자동화된 혐오

짤방화는 개개의 ‘무개념녀’들과 집단화된  ‘김치녀’를 비난할 수 있는 온라인 지형을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 지형에서 ‘여성부’는 “전국에 흩어진 불특정 여성이 아닌 ‘가시화된 대상’(기사)”으로서 재편된다. 여성부는 (자격이 의심스러운) 그들이 진출하여 권력을 쥐는 공기관이자, 그들의 특혜를 국가 차원에서 비호해주는 정부부처, 그리고 남성의 권리를 억압하는 데 앞장서는, 무능하고 부패한 정책기관으로 이해되었다. ‘이기적인 여성’은 ‘여성부’와 긴밀하게 연관되었다. 때문에 짤방화된 여성들은 종종 그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여성부’로 호명되곤 했다. 예컨대 98년 한 토론 프로그램에서 “총 대신 책 잡고 싶다는 남성 방청객을 비웃는” 듯 짤방화된 여성 패널은 ‘여성부 관계자’로 널리 알려진 채 지금까지도 온라인 공간을 떠돌고, 회자되고, 인용되며, 분노를 ‘재업로드’ 하고 있다. 이 분노는 “여성부가 군 가산점을 폐지시켰다”는, 호도된 믿음을 토대로 하고 있다.

‘여성부가 죠리퐁을 유통 금지시켰다’는 식의 허위사실이나 ‘여성부가 주도했다’는 식의 단순화된 책임 소재는 ‘여성부의 업적’, ‘여성부의 만행’, ‘여성부 레전드.jpg’등의 명칭으로 짤방화되어 업로드되고, 다운로드되고, 확산하며 온라인 공간을 순환한다. 이러한 짤에 대해 유관단체들이나 언론이 사실관계를 정정하고, 오해를 바로잡는 노력은 허사가 되기 일쑤다. “점차로 온라인 공간에서의 정보 공유에서 중요한 것은 오류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평소 신념과 일치하는지의 여부”이기 때문이다(김수아, 2017). 즉, 이들은 다만 크고 명확한 신호를 보내고, 어떤 선언을 하고 싶기 때문에 짤을 생성하고 게시하고 공유하는 것(Owens, 2019)이다. 이 신호, 이 선언이란 곧 “여성부는 여성의 특혜를 보장하고 남성에게 권리를 박탈하는, 불공정한 정책을 집행한다”는 것이다. 여성부에 대한 증오는 여성부의 실제 ‘업무’보다도, 이들 집단에게 ‘업적’과 ‘만행’ 짤로 목록화된,‘ ‘공유된 집단 서사’(Sloman & Fernbach, 2017; 김수아, 2017 재인용)를 통해 구축된다. 한 장의 이미지로 요약 압축된 짤은 이 서사를 탑재시키고 수송하기에 탁월한 ‘문법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한 장의 이미지에 역대 여성부 장관의 사진을 늘어놓고, 그 아래 허위 ‘업적’ 텍스트를 배치한다. 신빙성은 그 텍스트가 아니라 그 배치의 형태에서 나온다. 마치 만화 독자가 일정한 간격을 둔 사각형의 컷 배치만으로 그들이 연속되어 있음을 읽어내듯, 짤 향유자는 인물의 사진 곁에 텍스트가 배치되어있는 형태만으로 그 텍스트가 그 인물과 관계되어 있음을 읽어낸다. 

4. 온라인 공간이 축적해온 짤방 리터러시

근 20년 간 한국 사회 온라인 공간은 ‘여성혐오’의 정서를 확산해왔다. ‘짤방’은 그 주요한 수단 중 하나였다. 짤 향유자들은 짤방을 쓰고 읽는 특정한 ‘문법’을 형성해왔으며, 짤방에는 향유자들이 공유하고자 하는 지식, 서사, 신념이 탑재되었다. 남성으로 상정되는 짤 향유자들은 ‘루저 남성이라는 내집단에 대한 자조’의 정서와 ‘이기적인 여성이라는 외집단에 대한 비난’을 짤에 실어 날랐다. 취미 동호회 등으로 발족된 인터넷 커뮤니티는 점차 ‘짤방화된 여성혐오’를 생성하고 유통시키는 창구로 기능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 사회 온라인 공간에서 한국사회, 남성과 여성, 그리고 여성부는 간결하게 환원된다. 한국사회는 이미 성평등이 충분히 (때로는 과잉하게) 달성된 공간이다. 남성은 자타의적으로 루저의 상태에 놓여있다. 약한 척 하며 그들을 이용하는 이기주의자 여성들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부는 그런 여성을 비호하는 정부기관이다. 

이런 배치에 대하여 의문은 제기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어째서 남성 중심 커뮤니티에서는 평등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전제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가에 대해 김수아(2017)는 “오랫동안 해당 플랫폼에서 유사한 종류의 정보가 계속해서 축적되어 왔으며, 여성이 기입된 정보를 배제하면서 해석을 정당화하는 과정을 거쳐 왔기 때문”으로 분석한 바 있다. 이런 식으로 ‘축적된 정보’는 인터넷 환경에서 소멸하지 않는다. 시간성도 맥락도 결락된 채, 끊임없이 ‘재업로드’되며 상기된다. 

“여성부는 불공정한 정책을 집행한다”는 정보의 경우도 그러하다. 2015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여성혐오 현상과 관련하여 남성 청소년 및 청년층의 삶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성혐오가 발생하는 이유가 ‘여성가족부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여성 16.0%, 청소년 53.8%, 대학생 48.4%, 취업준비/무직 41.8%, 직장인 38.3%). 뒤이어 두 번째로 높게 뽑은 것은 ‘남자에게 의존해서 사치를 일삼는 여자들 때문’이었다(여성 39.75, 청소년 40.8%, 대학생 33.7%, 취업준비/무직 33.6%, 직장인 37.9%). 이들 중 78.9%는 거의 매일 인터넷 및 SNS를 통해 게시물과 뉴스를 읽는다고 응답했다는 점, 전반적으로 모든 집단이 기사나 댓글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에 대해 높은 동의를 보였다는 점, 83.7%가 여성혐오표현 게시물 및 댓글을 접했다고 응답했다는 점을 미루어보면 이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이러한 인식을 접해왔을 가능성이 크다.

동 연구의 심층면접 분석에서는 그러한 분석결과가 확인된다. 참여자는 대부분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여성혐오적 현상이 대단히 넓고 깊게 퍼져 있다는 것에 공감했다. 또 그런 담론은 ‘가상적으로 빚어진 여성의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는데, 그 내용과 표현이 ‘재미’ 있기 때문에, 또 공감 표시와 공유가 손쉬운 매체 특성 때문에 수용되고 확산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10대 남자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김치녀’ 등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가 무엇을 뜻한다고 생각하는지 질문하였을 때, 대부분의 학생들이 미디어와 온라인에서 재현되는 여성 이미지들을 예시로 답변하였다는 점은 짤방의 저력을 반증한다. 

5. 정치가 짤방으로 약속할 때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무책임한 메시지는 왜 정연한 비판보다 패러디된 메시지를 불러왔는가? 왜 그 선언 방식이 경계와 질타보다 호응을 받을 수 있었는가? 왜 그 호응이 특히 2030 남성에게서 두드러지는가? 그 메시지가 기존 정치영역의 언어와 다르게 ‘짤방’의 문법으로 쓰였다는 점이 강력하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 메시지는 페이스북이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텍스트가 배치된 이미지의 형태로, ‘루저 남성 – 을 이용하는 이기적인 한국여성 – 을 비호하는 여성부’라는 공유된 집단 서사 및 ‘여성부는 불공정한 정책을 집행한다’는 축적된 지식을 토대로 삼아, 남성으로 상정되는 향유자에게 공감을 얻고자 했다는 점에서 짤방과 같은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메시지와 축약적인 짤방들은 공통적으로 ‘여성가족부를 폐지함으로써 공정은 보장될 수 있다’는 식으로 논리를 환원하고 있는 것이다.

짤방이 유세의 수단으로 정치영역에 수용되는 것은 분명 문제적이다. 윤석열측은 ‘여성가족부 폐지’ 이전에도 짤방을 활용해왔다. 예컨대 윤석열이 전두환 옹호 발언에 사과한 지난 10월 22일, 개에게 사과를 주는 이미지가 포스팅되었다. 가 유행하던 지난 1월 10일에는 이마트에서 멸치와 콩나물을 구입하는 이미지가 포스팅되었다. ‘사과는 개나 준다’는 표현이나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촉발시킨 ‘멸공 챌린지’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일들에 대해 윤석열은 해명하지 않았다. 일상적인 이미지로부터 그런 맥락과 음모를 연상하는 자들이 오히려 수상한 것이다. 이러한 모호성은 짤방의 강력한 면책특권이 된다. 의도가 ‘농담’ 속에 암시적으로 들어있기 때문에, 이미지라는 애매모호한 속성(ambiguity) 때문에 뜻하고자 하는 바를 뜻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아서 존스, 다큐멘터리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 2020). 

[이미지 16] “개에게 사과 주기” 출처: tory.stagram 인스타그램
[이미지 17] “멸치와 콩” 출처: 윤석열 인스타그램
[이미지 18] “홍보물 컨테스트” 출처: 이준석 페이스북

짤방이 지닌 또 다른 특성 중 하나는 유머의 탈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짤방을 업로드하게 된 데에는 이준석 국민의당 대표와의 극적 타결이라는 배경이 선행했다(관련기사). 이준석은 오세훈 서울시장 선거 때처럼 2030 청년표심을 끌여 들여야 중장년층까지 설득에 성공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이른바 세대포위론을 주창한 바 있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이준석의 이러한 조언을 수용하고, 신지예를 선대위에 영입했을 때 잃었던 2030 남성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이준석은 남초 인터넷 커뮤니티 은어나 짤방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정치인이다. 2월 20일 그는 각종 지역 특산물의 사진과 “(지역 특산물)의 힘으로 정권 교체!”라는 텍스트를 배치한 홍보물을 대거 업로드했다. 함께 게시한 “민주적이나 객관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제 마음대로 골랐습니다”라는 코멘트는 남초 보수 인터넷 커뮤니티의 반-민주화운동 정서를 활용한 것이다. 이 ‘홍보물’에는 해당 지역에 관한 정책과 공약이 전혀 적혀 있지 않다. 그곳엔 진지해야 할 후보 홍보물이 요란한 수퍼마트 전단지처럼 보이는 갭에서 오는 ‘웃김’만이 있다. 이러한 유머성은 모호성과 더불어 짤방이라는 형식에 대해 면책 특권을 부여한다. 유머가 첨가된 짤방은 “이슈들에 대한 변증법적인 관여를 의도적으로 회피”(Bristow, 2019)한다. 유머는 논리로부터 벗어나 있기에, 정당한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 없게 만든다.

유머는 혐오와 결합할 때 더욱 심각한 결과를 만든다. 연지영과 이훈(2020)의 연구에 따르면 혐오표현이 유머의 형태를 띨 때 그 수용자들은 비교적 혐오에 둔감해지며 혐오 메시지에 대해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또, 유머는 그 자체로 혐오의 포장지가 되어 혐오를 숨기는 동시에 외집단에 대한 혐오를 더 확산시키는 증폭제로 기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인이 우리 사회의 약자에 대한, 역사에 대한, 또 젠더 지형에 대한 의견이나 주장을 유머러스하고 애매모호한 짤방의 문법으로 개진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정치 영역의 언어는 논리적인 비판이 가능하도록 명료하게 적혀야 하는 것이며, 유머 속에서 혐오를 추동하는 식으로 개진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글에 사용된 많은 이미지 자료는 자동차, 스포츠, 영화 등의 취미 동호회로 시작된 커뮤니티로부터 추출되었다. ‘일베’는 DC인사이트로부터, DC인사이트는 디지털 카메라 갤러리 게시판으로 시작되었다. 이들 게시판은 ‘재미’로서 자신들의 처지를 자조하거나 여성 이미지를 성희롱하거나 이기적인 여성을 비웃었다. 짤방화된 여성혐오는 ‘유머’라는 카테고리명을 달고 이들 사이를 순환하며 공유된 서사를 구축해왔다. “성평등은 이미 (초과)달성되어 있는데 한국 여성은 이기적이며 그들을 비호하는 여성가족부는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과정에서 외집단화된 여성의 경험을 비롯하여 다층적이고 이질적인 국면은 의도적으로 결락된다. 짤방은 지금, 여기, 나의 경험을 중심으로 세계를 환원시키며, 그에 대한 지적을 무화시킨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정치 영역이 이러한 문법을 활용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우리는 짤방의 문법이 구사하는 잘못된 재현을 인용할 것이 아니라 비판해야 한다. 짤방화될 수 없고, 되어서는 안 되는, 사회 현상의 환원불가능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참고문헌

  • 김수아 (2015). 온라인상의 여성 혐오 표현. 페미니즘 연구, 15(2), 279-317.
  • _____ (2017). 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페미니즘 주제 토론 가능성. 미디어, 젠더&문화, 32(3), 5-45.
  • 연지영, 이훈 (2020). 혐오가 유머를 만날 때 : 타인 혐오를 증폭시키는 유머와 한국 사회의 젠더갈등에 대한 함의. 한국정치학회보, 54(4), 219-250.
  • 안상수, 김인순, 이정현, 윤보라 (2015). 남성의 삶에 관한 기초연구(Ⅱ): 청년층 남성의 성평등 가치 갈등 요인을 중심으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 Bristow, D. (2019). The Work of Art(iculation) in the Age of Memic Rhythmicality: Memes between Form, Content, and Structure. In D. Bristow & A. Bown (Eds.), Post Memes: Seizing the Memes of Production (pp. 115–136). Punctum Books. 
  • Owens, J. (2019). Post-Authenticity and the Ironic Truths of Meme Culture. In A. Bown & D. Bristow (Eds.), Post Memes: Seizing the Memes of Production (pp. 77–114). Punctum Books. 
  • Pettman, D. (2019). Memetic Desire: Twenty Theses on Posthumanism, Political Affect, and Proliferation. In A. Bown & D. Bristow (Eds.), Post Memes: Seizing the Memes of Production (pp. 25–30). Punctum Books.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