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사를 다시 쓰기: 디나이얼 퀴어가 본 지방-퀴어-공간을 퀴어가 다시 읽다

조용화

0.

나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흩어져 가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 잊혀갈 기억들에 대한 기록,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나에 대한 기록. 그 기록은 이곳에 있던 우리에 대한 이야기이자, 결코 우리가 될 수 없었던 나를 되짚어가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1.

나는 논문 속 연구자의 위치성 파트에 이렇게 적었다.

“이 연구의 상당 부분이 전주 지역 퀴어들과 연관성이 있는 모임 또는 공간을 다루고 있지만 이에 관한 서술이 조심스러운 것은 연구자가 관련 모임과 공간에서 스스로를 내부자로 느껴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구자는 항상 지역에서의 퀴어와 관련된 활동에 참여할 때 거리를 두고자 했다. 이는 정체성과 지향을 고민하는 시간이 길고 지난한 과정이기도 했지만 ‘완전히 뛰어들었을 때 노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신을 연대자‧참여자‧조율자‧조력자의 위치에 놓으려 했으되, 내부자의 위치인 적은 없었다.”(조용화, 2022: 27-28)

아주 오랫동안 나는 내가 퀴어가 아니길 바랐다. 아니어야 했다. 감당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참는 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어서 버틸 만했다. 분명, 종종 남성이 아니라는 감각이 오래, 아주 오래 나를 휘감고 고통스럽게 만들었지만, 그 생각을 나와 분리해 묻어두면 견딜 수 있었다. 내가 아닌 너, 드러난다면 주변을 힘들게 만들고 말 더러운-오염된-역겨운 욕망을 표면으로 끌어내려 하는 너, 퀴어이길 바라고 여성이길 바라고 남성이 아니길 바라는 상상 속의 가짜. 몰아넣고 분리해 깊숙이 파묻은 나의 밑바닥은 내가 착한 아이로 남아있을 수 있게 도왔다. 동시에 나는 도저히 나로 느낄 수 없는 나의 몸을 증오했고 때로는 진단받지 못한 아픔을 느꼈으되 부정하고 부정하며 남성으로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논문에서는 “스스로를 내부자로 느껴온 적이 없었” 다고 적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문장은 자기검열에 가깝다. 나는 스스로를 내부자로 느끼지 않으려 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안 돼. 내게 허락된 자리를 벗어나면 안 돼. 내 ‘바깥’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노력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부여된 ‘착한 아들(장남)’이란 역할에 충실하기 위한 강박 때문이었다. 나는 아빠의 이른 죽음 이후 홀로 남은 엄마에게 내 문제까지 얹어주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감정을 억누르고 욕망을 삭제하며 자라났다. 한편 부모님은 발이 넓고 소식이 빨랐다. 이곳에서 오래 산 우리 가족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도 관심이 많았고, 엄마를 잘 도와주라는 말을 만날 때마다 덧붙이곤 했다. 나는 갈수록 웃는 얼굴 뒤에서 내 일부를 잘라내는 일에 능숙해졌다.

그러므로 전주에 대외적인 퀴어 모임과 공간이 생기고 퀴어 친구들과 만나고 때로는 정체화 과정을 지켜보고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동안, 내가 ‘앨라이’와 ‘퀘스쳐너리’라는 이름표를 선택한 것은 필연적이었다. 나는 퀴어가 아니어야 했으므로 퀴어 모임에 들어가지 않았다. 퀴어인 나는 착한 아들로 남아있을 수 없었으니까. 나는 페미니즘 모임에서 페미니즘-퀴어 이론을 공부하며 종종 퀴어 활동에 연대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응, 나는 퀴어 지지하는 사람이야. 응,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 지금 내 상태가 이상한 거 같긴 한데 잘 모르겠어. 응, 이 주제에 대해 더 질문은 안 하려고 해. 다른 사람들에게는 결코 할 수 없는 말들을 내게 던지는 건 너무 쉬웠다. 퀴어라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자기도 비슷한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패션 퀴어, 가짜 퀴어 녀석. 이상화하고 낭만화한 껍데기만을 부러워하는 위선자. 주변 사람들이 알 수 없게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으로 잘 눌러두렴, 그 더러운 욕망을.

그렇게 벌리기로 선택했던 ‘퀴어’와의 거리는 내 논문의 뼈대를 구축했다. 논문에서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2016년부터 전주에 생겨난 가시화된 퀴어 모임과 하나둘 공간을 퀴어링해나가던 시도들에 주목한다. 나는 그 공간들에서 “연대자‧참여자‧조율자‧조력자”로서 함께 했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도, 결국 내가 논문에서 분석한 것은 전주라는 물리적 공간에 함께 했을지언정 그 경험이 비슷할 순 없었던 앨라이-퀘스쳐너리-디나이얼 퀴어가 바라본 퀴어 공간이었다. 논문 속에 드러난 전주의 퀴어 공간을 보는 내 시선은 분석적이다가도 때로는 관조적이며, 때로는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정동에 뒤엉킨 말들을 흘려내고 있다. 그 공간에서 주변 퀴어들을 관조하려 애쓰던 나를 관조하는 시선으로 쓴 글. 나는 내가 억눌러두던 것들이 터져 나온 후에야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종종 내 논문을 다시 읽으면 건조한 척 서술하는 연구자와 연구참여자의 아찔한 거리, 그리고 동시에 간절히 참여자들에게 가까이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하는 내 갈망의 크기에 질려 버리곤 만다.

2.

전주는 ‘경계에 놓인 도시’다. 인구 65만, 대도시와 중소도시 사이의 그 어딘가에 있으며, 한국에서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명확히 주변에 위치해 있지만 전라북도에서는 중심에 위치한 그 경계. 이 모호한 경계의 도시는 ‘규범들’, 즉 이성애규범성과 대도시규범성, (2019년 이후에는) 코로나19에 대한 방역규범성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사회와 인간의 기본값을 이성애로, 대도시(한국에서는 특히 서울)로, 일상 수호를 위해 방역 수칙과 체제에 순응하는 건강하고 합리적인 ‘몸’들(푸코의 표현을 빌리면 생명관리권력[1]의 대상이 될 몸들)로 설정하는 이들 규범은 규범적 정상성에서 벗어난 지방-(청년)-퀴어의 신체와 삶을 제약한다. <너는 왜 결혼하지 않아? 남자(여자)친구 있어? (서울의) 광장에서 봐, 그래도 전국에서 모이려면 서울이 제일 낫지. 그래도 공부하고 나면 그 직군은 일자리가 많아서 좋겠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집회는 제한됩니다. 비대면 강의라 신규회원 모집이 어려워져 활동을 중단하려 해.>

내 논문은 이러한 지방도시 전주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규범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퀴어들의 ‘퀴어한’ 공간 수행을 탐색한다. 전주의 퀴어들은 공간에 공기처럼 녹아있는 이성애규범성과 충돌한다. 이성애규범성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규정하는 생애주기와 정상신체에서 벗어난 존재는 소극적으로든 적극적으로든 규범적 공간이 요구하는 규칙과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끊임없이 타협하고 협상해야 한다. 전주의 퀴어들은 서울을 갈망하고 질투하며 떠나고 돌아온다. 지역 격차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시공간에서, 지방의 존재들에게 서울에 대한 정동은 간단히 풀어내 설명할 수 없다. 전주의 퀴어들은 모두가 자가격리가 가능한 자원이 있는 것으로 상정되고 확진자의 소수자성이 집단에 대한 비난으로 확대되는 것이 당연한 방역규범 속에서 생존전략을 찾는다. 이동이 제한되고, 동선이 노출되고, 모임이 해체되는 사이 어떤 이들은 단절을, 또는 연결을 선택한다. 논문에서는 이렇듯 지방에서 살아가는 퀴어와 공간의 관계, 규범적 공간을 둘러싼 지방 퀴어들의 일상적인 수행, 퀴어한 공간 실천과 기록되지 않는 시간의 흔적을 심층 면접을 통해 되짚어가며 분석하고자 했다.

논문의 결론은 한편으로는 내 희망이기도 했다. 이성애-대도시-방역 ‘규범들’이 제약하는 일상과 마주하는 전주의 퀴어들은 끊임없는 충돌에 직면하며 우울에 빠지고 소진되지만, 흥을 생성하고 경계를 넘어서며 전주에서 정주감을 만들어 낸다. 경계를 유동하는 퀴어들의 수행은 규범적 공간에 꾸준히 균열을 낸다. 일상적 퀴어공간의 가능성을 찾아내고 유목주의적 공동체를 만들어 내거나 지향하려고 시도한다. 그러한 일상적 연결로 전주는 바뀌어 왔다. 그리고 나는 연결이 멈추지 않고 지속되길 바랐다. 나는 자유로움을, 우리의 공간을, 내가 나여도 환대받을 공간을 꿈꿨다. 우리의 몸짓은 미약했지만 공간에 분명한 흔적을 남겼다. 하지만 논문에서, 그 공간은 내가 들어갈 수 없는 전주 퀴어들의 공간으로 남았다. 나는 들어갈 수 없었다. 결국에는.

3.

심층 면접을 선택했던 이유는 별것 없었다. 내겐 선택지가 그것뿐이었다. 석사과정 내내 다른 주제로 글을 써보려 시도했지만, 끄적이던 글들은 항상 퀴어-공간(전주)-(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긋지긋하게도 벗어나지 못했던 이 전주처럼, 지방도시의 퀴어라는 주제는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면 이걸 어떻게 써야 하지? 양적인 자료를 쓰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16년 이후 전주에서 가시화된 퀴어 활동이 활발하던 시기 연대 단위를 다 모아도 50명이 될까 말까, 하던 집회들. 흩어져 버린 퀴어들. 코로나 이후 고립된, 어디 살아있긴 한지 소식조차 희미한 친구들과 나. 참여관찰이나 포토보이스 같은 관심을 두고 찾아보던 방법론은 내 상태 때문에 어려웠다. 대학원에 있는 동안 내 정신건강 상태가 좋지도 못했을뿐더러 알던 사람들에게 연락하는 일은 고통을 동반했다. 모두 풀어헤쳐 둔 이제 와 기억을 헤집어 보면 나는 다른 퀴어들과의 지속적인 만남이 불편했던 것 같다. 간절히 바라지만 내가 닿을 수 없는 이름에 닿은 이들. 부러움과 질투, 고통과 외로움, 연대자로서의 예의와 거리, 차단, 단절, 과거, 미래, 아찔함과 두려움이 부글거리는 만남은 나를 항상 진지하지만 멈칫거리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만난 이들에게도 나는 불편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애매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도 명확히 하지 않는 모호한 형체.

그러므로 나는 심층 면접을 선택했다. 길어도 두어 시간 남짓한 만남으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대면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곱씹을 방법으로서(방법론적으로 우스운 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심층 면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4.

Fwd에 기고된 구지윤 선생님의 글, “T 없는 TERF (역)담론에 대항하기”(원문 보기)를 읽었다. 연구참여자들의 삶을 듣는 과정을 “대화를 나누고 마음에 남는 말들을 곱씹고 나의 방식대로 기억하고 해석하고, 다시 그 순간에 녹음한 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적으며 그들 삶에 접속과 재접속을 반복했다”고 묘사한 문장이 가슴에 박혔다. 나 또한 그랬다. 그때 이곳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살았던 퀴어들의 경험을 타자화하고 낭만화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접속하고 또 접속하려 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단절되어 있었다. 나는 결코, 연구참여자들의 삶의 일부에 접속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연구자였으니까. 적어도 논문을 쓰는 동안 나는 나를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심층 면접을 마친 후 녹취록을 수없이 읽었지만, 읽을수록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말들이 있었다. 내가 읽는 이야기는 결국 내가 불편해하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이 작은 도시에서 모집한 퀴어 연구참여자란 결국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포함될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래서 더더욱, 어떤 말은 이해하면 느낄 고통 때문에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말은 내 삶뿐만 아니라 지식과도 연결되지 못했다. 그런 말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벌판에 맨몸으로 내동댕이쳐진 기분을 느꼈다. 나는 언제나 어설픈 가면이 벗겨지는 걸 두려워하는 애매모호한 연기자였으므로.

내가 느끼기에 내 아픔은 가짜였고, 내 혼란은 연기였으며, 내 삶은 동경과 가식과 망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타인의 이야기를 ‘이해’하려 들 때는 나와 온전히 분리해 두곤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삶과 접속된 이야기들이 거짓처럼 흐리멍덩해져 버렸기 때문에. 그러나 이 주제로 쓰는 논문만큼은 나와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분리할 수 없었다. 나는 수시로 그들의 삶에 접속하면서도 깔끔하게 일부가 도려내진 것 같은 감각에 시달렸다. 나는 스스로 단절하는 자리에 뿌리처럼 다리를 박고 움직이지 않았다. 흔들리면 넘어질 테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설 수 없을 터였다. 그래서 이곳에 그대로 서 있는 동안 나도 모르게 살랑거리는 가지가 자라 연구참여자들에게 닿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런 일은 불가능했다.

5.

내가 에이스펙트럼에 속하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은 꽤 오래전부터 해왔다. 성애적 공간은 불편했고 성애적 관계는 때로 고통스러웠다. 불편함과 고통. 그리고 내게 중요한 건 언제나 정체성이었지 지향성이 아니었다. 한편으로 나의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고민은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착한 아들’로 남기 위해 삭제되어야 하는 영역이었다. 나는 내 삶에 그런 부분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거나, 어쩔 수 없을 때는 팔짱을 끼고 물러나 흘겨보고는 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성적 지향에 관한 질문은 뒤로 미루고 미뤘다. 그렇게 표백된 채로 거부되어 온 내 섹슈얼리티의 흔적이 논문에서도 그대로 남았다. 심층 면접 과정에서 섹슈얼리티에 관한 질문은 쉽사리 나오지 못했고 조심스럽게 꺼낸 질문은 상대에게 가닿지 못했다. 당시에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한계점으로 섹슈얼리티와 공간의 관계를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고 고백했지만, 사실은 다루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접속할 수 없던 영역. 나는 섹스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텍스트로 이해하려 시도했고, ‘접속해선 안 되는 지점’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데도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섹슈얼리티와 공간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면서 끊임없이 머뭇거렸다. 사회적거리두기가 성적 실천의 공간을 줄여나가고 과학기술로 동선을 파악하며 그 내용을 문자로 뿌릴 때 정체성과 지향성이 드러나고 만난 사람이 까발려지고 만남을 가진 장소가 드러나는 공포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파고들면 내 안에 있는 공포스런 괴물이 깨어날 것처럼 겁먹고 도망쳤다. 그래서 내 논문은 퀴어들의 섹슈얼리티와 공간이 맞물리며 만들어 내는 복잡한 수행 과정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다. 논문 속에서 그것은 희미하게 존재하거나, 알아낼 수 없거나, 별도의 과제로 수행되어야 할 것처럼 묘사된다. 앨라이-퀘스쳐너리-디나이얼 퀴어이고자 했던 내게 섹슈얼리티와 공간이란 그런 의미였다.

6.

지방의 퀴어들은 언제 자신에게 퀴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는가? 이는나의 자리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환대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감각, 그리하여 나에게 붙여진 규범성의 이름이 사실 나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감각이 퀴어를 퀴어로만든다.’ 작은 도시에 나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는 자신의 존재에 관한 질문이자 나의 공간과 시간에 얽힌 역사성을 돌아봐야 하는 작업이다.”(조용화, 2022: 36)

기고글 요청이 들어오고 나서도 한동안 고민했다. 내 논문을 건드려 볼 수 있을까. 학위논문을 다듬어 학술지에 내라는 이야기를 오랫동안 들었다. 그러지 못했다. 그럴 수 없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고, 시간이 흐르고는 논문을 썼던 내가 너무나 낯설어져 버렸다. 지금의 나와 다른 시선으로 사람들을, 자신을 관조하는 너의 글을 나는 건드릴 수 없었어. 그래서 이번에 나는 나에 대한 글을 썼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나의 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자리를 찾아 헤맨다는 건 지금-여기를 내 자리로 여길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 자리가 운 좋게 눈앞에 뿅 나타날 거란 기대는 처음부터 없었다. 상상 속의 난 언제나 장소의 규칙을 정하는 이들에게 내쫓기는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나와 상상 속의 나를 분리해 버렸다. 심연에 틀어박혀 있어야 할 ‘너’와 매끈하게 웃고 있어야 할 ‘나’를 분리하지 않게 된 지금, 나는 이곳 전주와 나의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톺아보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떠나야 할까. 새로운 관계를 꾸리며 이곳을 환대의 장소로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나에 관한 질문을 부정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나는 어떤 이들과 연결될 수 있다. 삶과 삶의 접속을 끊는 자리에 우두커니 벽처럼 있던 건 나였고, 고개를 들고 몸을 돌리자 소리가 들려온다. 그게 내면의 소리인지 외부의 소리인지는 모른다. 그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 거다.

그래서 나는 그저 소리를 듣고 기록을 남긴다. 어딘가에서 무언가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 사그라들지만 때로 선명해지는 기억에 대한 기록, 가만히 어떤 소리를 듣는 나에 대한 기록. 야고스(2012)의 말처럼, “퀴어는 항상 작업 중에 있는 정체성이고, 영구적인 되기의 장이다.” 그 모든 시간은 결코 의미 없지 않았으며 늦지도 않았다. 스펙트럼 속 어딘가에서 헤매 온 나의 역사는 지금 여기에 남아 누군가와 접속을 시도한다.


참고 문헌

  • 조용화 (2022). “지방도시에서 퀴어로 살아가기: 공간 경험과 퀴어 수행”.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석사학위 논문.
  • Foucault, Michel. (1978). Security, Territory, Population, St Martin’s Press, 심세광 옮김(2011), 『안전, 영토, 인구』, 난장.
  • Jagose, Annamarie. (1997). Queer Theory: An Introduction, New York University Press, 박이은실 옮김 (2012), 『퀴어이론 입문』, 서울: 여이연.

댓글 1개

  1. 저의 상황으로 다가오는 문구들로, 너무 괴롭지만 꼭 끝나지 다 읽고 싶은 글입니다. 책갈피처럼 접어두고 싶어 댓글 남깁니다. 저자께서는 꼭 원하시는 방향의 그 길을 찾을 수 있으실 겁니다. 저 또한 그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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