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 불타고 있다: 한국 볼룸 씬의 미학적 가능성

김하연

예술에서 대두한 여성과 퀴어의 몸과 그 역할은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한국에서 1990년을 전후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 속 페미니스트 예술가 일부는 자신의 열등한 몸, 비천한 몸을 표현매체로 삼아 사회적으로 부여된 정체성을 반문하고 탐색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예술 사조는 모더니즘의 제도, 양식, 소재로부터 탈피하고자 한 흐름으로,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 이에 퍼포먼스는 대상화되고 통제되었던 몸을 전면에 드러낼 수 있는 동시에 회화나 조각 같은 전통매체의 형식적 절대주의를 벗어나기에 유용한 수단으로 대두했다. 오늘날 한국 미술 씬에서 퍼포먼스의 상연 빈도는 눈에 띄게 늘어났지만 혹자는 퍼포먼스가 제도권 안쪽으로 편입되는 양상, 더 나아가 기성 시각예술의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도구로 작동하는 실정을 꼬집는다(김정현, 2024; 문지윤, 2022).

여성과 퀴어가 구심점을 이루는 퍼포먼스에 줄곧 관심을 가져온 나는 석사논문을 통해 현 제도 아래 ‘고급’ 예술로서의 퍼포먼스의 대열에 끼지 못한 ‘저급’ 예술로서의 퍼포먼스 사례에 주목하기로 했다. 연구는 2010년대 중후반 한국에 상륙한 ‘한국 볼룸 씬(Korea ballroom scene)‘을 다룬다.[1] 한국 볼룸 씬은 기본적으로는 뉴욕 볼룸 씬의 양식을 답습하지만, 문화 구성적인 면에서 한국이라는 지역의 특수성에 기반한 유의미한 차이들을 드러낸다. 이에 나는 비판적 문화기술지를 방법론으로 채택하였고, 뉴욕 볼룸 씬을 비교대상으로 삼아 한국 볼룸 씬의 현 국면을 대표하는 미학적 특성을 고찰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 볼룸 씬은 제도권 예술에 동화되어 가는 퍼포먼스 예술에 대한 대안적 존재론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체계에 의해 포착되지 않는 에너지로서 여성성의 잠재성을 시사해 주었다.

존재의 미학으로서 펨

한국 보거(voguer)들과의 인터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패턴 중 하나는 그들의 개인사에 있어 보깅이 큰 전환점으로 역할했다는 점이다. 이들 중 대다수는 전업 댄서로, 업계 여건상 공연이나 안무 작업보다 레슨과 아르바이트 같은 부차적이고 일시적인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볼룸 씬을 위해 적잖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는 인터뷰어들은 보깅이 자기 삶 자체에 다름없다고 입을 모은다. 보거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 주체성의 핵심은 미셸 푸코의 『주체의 해석학』이 말하는 ‘존재의 미학’ 개념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푸코는 주체화가 외부적으로 지시되는 수동적 방식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자기에 재작동을 거는 실천이 되어야 함을 환기하며, 단순한 표현 매체 또는 재현 형식으로서 예술로부터 해방되어 자기 삶을 하나의 작품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2]

이런 맥락 속에서 나는 일종의 자아 실험으로 볼 수 있는 보거들의 실천을 미학적 차원으로 확장해보고자 했다. 이들의 실천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펨(femme) 미학’으로 수렴될 수 있다. ‘펨’이라는 표현의 기원은 2차 대전 이후 여성이 노동시장에 진입했던 시기의 미국 사회로 거슬러 올라가며, 남성적인 레즈비언을 뜻하는 ‘부치(butch)’와 전통적으로 한 쌍을 이루는 여성적인 레즈비언을 지칭한다. 뉴욕 소재의 기관 ‘레즈비언 허스토리 아카이브(Lesbian Herstory Archives)’를 설립한 조안 네슬(Joan Nestle)은 펨이 역사적으로 과소 재현되어왔다고 주장한다(Nestle, 1992: 15-18). 그에 따르면 1960년대 말 미국 게이 해방 전선(Gay Liberation Front) 운동 당시 레즈비언들은 대체로 제2물결 페미니즘의 조류 안에서 가부장제적 억압 구조를 종식시키려면 여성성을 거부해야 한다는 의식을 공유했다. 이에 펨은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일로부터 암묵적으로 배제되었다.

흥미롭게도 한국 보거들은 레즈비언 관계 안에서조차 이성애 규범적 관점의 여성성에 한정되기 일쑤인 펨 개념을 다양한 양태로 펼쳐낸다. 오늘날 보깅을 대표하는 카테고리인 ‘보그 펨’은 명칭에서도 드러나듯이 여성 섹슈얼리티와 연계될 만한 과장스러운 몸짓을 특징으로 한다. 예컨대 보거들은 자신의 허벅지, 성기, 골반 등의 부위를 손바닥으로 쓸어 올리거나 양쪽 가슴을 양손에 쥐고 중앙으로 오므리는 동작을 춤에 녹여낸다. 이 같은 움직임은 사회적 여성성과는 꽤 거리가 멀다. 댄서 신은 보그 펨을 출 때의 마음가짐을 다음과 같이 구술했다.

신 : 보그 펨 할 때 컨티(cunty)의 느낌을 중심으로 풀어내요. 펨이다 보니까 여성성을 극대화해야 해서 일부러 골반을 빼거나 가슴을 털거나 하는 느낌으로… 보그 펨이 어찌 되었건 펨퀸이 올드 웨이 추는 걸 게이들이 봐서 따라하게 되면서 새로 만들어진 카테고리이다 보니까 무드나 손짓이나 태도 같은 건 펨퀸 무빙 위주로 보면서 영감을 얻게 되고, 그러면서 춤을 춰요. 나는 지금 여자라는 느낌, 나는 비치(bitch)다.

신이 언급하는 ‘컨티(cunty)’는 여성의 성기 혹은 여성 자체를 칭하는 비속어지만, 볼 문화 안에서는 여성성을 극대화하는 행위를 칭찬하고 응원하는 의미로 쓰인다. 일상적으로는 멸시적으로 읽힐 수 있는 용어가 볼룸 씬 안에서는 보거들이 추구하는 핵심적 미학으로 의미화된다. ‘퀴어’에 담긴 전복과 반전의 역사처럼 말이다.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우리가 불리는 이름을 떠맡는 것은 과거의 권위에 대한 단순한 종속이 아니”며 “과거의 영토를 파괴하는 재배치 속에서 저항의 도구가 된다”고 주장하며, 혐오 발언의 또 다른 가능성을 거론한다.[5] 한국 보거들에게 ‘펨’은 그들을 경계 짓고 종속시키는 언어가 아니라, 그들을 상호 주체적으로 연결해주는 미적 실천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한국 볼룸 씬의 펨 미학을 들여다보는 과정은 서구중심적 이론과 시각이 관통하지 못하는 ‘퀴어’와 ‘아시아’ 사이의 교차의 양상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탈구적 정체성으로서 펨

한국 볼룸 씬은 서구 볼룸 씬의 펨 개념이나 실천과는 차이를 갖는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첫 번째로 헤게모니적 남성성에서 미끄러지는 이성애자 남성 보거의 섹슈얼리티가 서구 볼룸 씬의 동성애규범적 질서에까지 균열을 일으킨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한국 씬 형성의 선두에 섰던 댄서 란은 서구권의 유명 보깅 댄서들을 서울로 초대해 보깅 워크숍 강사라든지 보깅 행사 저지(judge) 혹은 심사를 맡기며, 국내 댄서들을 대상으로 한 보깅 교육에 적극 힘썼다. 란은 서구 씬에 비해 한국 씬에는 시스젠더 남성 이성애자가 많은 까닭에 벌어졌던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란 : 제 제자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얘가 A를 너무 좋아했었거든요. 그래서 A가 저지로 왔을 때 너무 좋아하니까 아예 데려갔어요, 식사 자리에. “얘가 너 너무 좋아해!” 근데 이제 그 식사 자리가 있기 전에 얘기를 해줬죠. “볼룸, 한국 볼룸에는 이런 친구들도 있어.” 그랬더니 [A가] 의심을 하는 거예요. “아닌데, 에이~” 이러는데 “아 근데 진짜야, 진짜고 그러니까 네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미리 얘기를 해주고 데려가서 식사를 하게 됐죠. (…) 근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있고, 아시아계가 좀 그럴 것 같아요.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아시아권에는 이런 문화가 있다는 거를 아마 잘 모를 거예요. 외국에서는 보깅 씬 안에 있는 사람은 무조건 다 성소수자라고, 그렇게만 알고 있을 거예요.

란은 ‘망원 볼 2019’를 개최할 당시 북유럽 기반의 유명 보거 A를 저지로 초대했고, 볼 행사가 끝난 뒤 가졌던 뒷풀이 자리에 A를 유난히 좋아했던 이성애자 남성 제자를 대동했다. 란은 A가 제자를 게이로 당연시할 것을 우려하여 미리 언질을 주었는데 A는 처음 그 말에 의심쩍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란의 부연 설명처럼 아시안 남성의 섹슈얼리티는 서구적 남성성의 헤게모니에서 곧잘 미끄러진다. 그러한 벌어짐은 특히 서구 미디어가 생산하는 케이팝 담론에서 빈번히 드러나는데, 이를테면 다른 인종에 비해 평균적으로 작은 체구와 가는 체형을 가진 아시안 남성을 정상성에 미달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게이일 것이라고 기정사실화하는 시각을 들 수 있다(이지행, 2020; 허윤, 2021). 위의 일화 또한 아시안의 상징적 형상을 취해 이성애 아니면 동성애라는 이분법에 고착시키는 서구 볼룸 씬의 자체모순적인 규범성을 예증한다.

두 번째는 이성애/퀴어, 규범/전복과 같은 이분법의 경계를 깨뜨리며 새로운 연결의 가능성을 만드는 몸들이다. 이 신체들은 미국 LGBTQ 문화에서 기원하는 볼룸 씬의 특성과 한국 사회에서 보편화된 젠더 및 섹슈얼리티의 틀에 이중으로 부딪히는 경험들을 드러낸다. 

나우 : 아무래도 외국에서 공부해 오신 선생님들도 외국 스타일처럼 구성하기보다 한국의 유교적인 관념들이 있잖아요. 그런 부분도 고려해서 미성년자들도 많으니까 컨티한 부분에 대해서 조심하는 편인 것 같아요.

앞서 신의 구술은 펨이라는 우산에 속하는 미적 형식으로서 ‘컨티’의 수행을 예시한다면, 나우는 ‘컨티’라는 기표가 한국 사회에서 규범과 도덕의 영역에 귀속되는 여성성과 불화하는 현실을 토로한다. 서구와 한국 양쪽의 여성성 규범에 대한 한국 보거들의 복잡한 존재론적 양식을 포착하는 데 있어 호세 에스테반 무뇨즈(Jose Esteban Muñoz)가 이론화한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s)’는 유용한 틀망을 제공한다. 무뇨즈에 따르면, 탈동일시는 “지배 이데올로기(동일시)의 압력에 굴복하거나 결코 피할 수 없는 그 영역을 탈피하려는 시도(반동일시, 유토피아주의) 대신에 (…) 그러한 문화적 논리를 내부에서부터 변형시키는 전략으로, 구조의 영구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상시 노력하는 동시에 국지적 및 일상적 투쟁을 중요시한다.”(Muñoz, 1999: 148) 한국 볼룸 씬 안팎에서 보거들은 헤게모니적 여성성과의 관계에 있어 일치와 불일치, 동화와 불화 사이의 지속적인 긴장 속에서 펨 미학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의 수행성은 문화와 신체 사이의 경계 지대에서 부정되고 갱신되기를 반복하며, 여성성을 고정된 정체성이 아닌 열린 질문으로 펼쳐내는 펨 미학을 낳는다.

헤테로토피아로서 한국 볼룸 씬

헥시 : 사회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제가 살이 있으니까 비난을 받고, 댄서들 사이에서도 비난하고, 여성스럽지만 게이가 아니잖아요? 내가 서 있을 자리가 없었는데 이런 나 또한 받아주는 곳도 볼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정체성까지도 성립될 수 있는 곳이구나를 느끼고.

란 : 내가 지금 남잔데 여자 옷을 입었다. 내가 뚱뚱한데, 살집이 있는 편인데 이만큼 노출했다, 이런 걸 비난할 사람이 한명도 없죠. 오히려 환호해주고 더 멋지다고 칭찬해주는 곳이 볼룸이잖아요. 안전한 곳이죠. 안전하게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곳.

한국 볼룸 씬 내부에서 펨 미학이 보거들의 정체성을 재구성한다면, 볼룸 씬 자체는 이들에게 어떻게 의미화되고 있을까. 헥시는 외부 세계의 이성애 규범적 질서와 동성애 규범적 기대에 의해 디스포리아에 노출되는 자신의 감정을 고백한다. 그런 그에게 한국 볼룸 씬은 자신이 비로소 설 수 있는 장소, 다시 말해 사회가 상정하는 정상 신체와 불화하는 자신의 몸을 포용하고 환대하는 장소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 장소는 그가 느끼는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곳이기보다 그 불쾌감과 나란히 자신의 몸에 대한 욕망을 비로소 실현시키는 곳이다. 이 맥락에서 란이 한국 볼룸 씬을 묘사하는 대목을 살펴보자면, 그곳은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 한해서 “안전한 곳”인 것이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2009: 48)는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 개념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해 신화적인 동시에 현실적으로 일종의 이의제기를 하는 상이한 공간들”의 존재를 말했다. 그는 이어서 “내게로 드리워진 이 시선에서부터, 거울의 반대편에 속하는 이 가상공간의 안쪽에서부터 나는 나에게로 돌아오고, 눈을 나 자신에게 다시 옮기기 시작하며, 내가 있는 곳에서 자신을 다시 구성하기 시작한다. 거울은 헤테로토피아처럼 작동한다.”고 설명한다(푸코, 2009: 48). 자기 몸이 타의적으로 읽히는 방식, 거울 속 나처럼 내가 아니지만 나에게 드리워지는 몸. 그리고 내가 끌고 다니는 몸, 스스로 인식하는 자기 몸. 그 사이에서 보거들의 몸은 갈라진다. 그러나 한국 볼룸 씬은 이들의 몸에서 벌어지는 틈새로부터 피난해가는 벙커 혹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기꺼이 틈새를 인정하고 열어젖히는 해방구로 기능한다. 

에리얼 : 사람들이 많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드랙 퀸이 아니더라도 그냥 게이도 나왔으면 좋겠고,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 씨디[3]여도 괜찮으니까. 그러니까 정말 그냥 아무 사람도 괜찮으니까, 그냥 LGBTQ에 속해 있는 사람이 그냥 볼룸에 관람이라도 왔으면 좋겠고, 언젠가 자기가 뽐내고 싶을 때 그냥 걸었으면 좋겠는 마음인 거예요.

이제 한국 볼룸 씬을 헤테로토피아로 상정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세계와 몸 사이 거리보다는 세계를 초과하는 경험에 주안을 둔다. 이 퀴어 헤테로토피아는 세상에서 의미화되지 못하고 지워질 위험에 처하는 퀴어 주체의 생애를 가시화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에리얼의 바람처럼 주체들 내부의 모순과 복잡성을 연합하는 곳, 일종의 아카이브로서 가능성을 가진다. 이 가능성은 현재를 달리 이해할 수 있는 힘을 만드는 것, 미래와 새롭게 연결될 수 있는 방식을 상상하는 힘을 기르는 중요한 미학적 토대이기도 하다. 볼을 걷는 몸들을 타고 흐르는 정동은 이들의 몸에 침전된 역사를 동인으로 삼는다. 이들의 수행이 지배적인 힘을 가진 역사와 현실을 곧장 무력화시킬 수는 없다 해도 우리는 이 몸짓들을 매개로 현재 주어진 시간을 탈선하고 우회하며 퀴어의 위상을 찾아 나선다.


참고 문헌

  • 김정현(2024). 『쏟아지는 외부: 소진된 미술의 퍼포먼스』, 서울: 미디어버스.
  • 문지윤(2022). “퍼포먼스 존재론 2.0- 재상연 퍼포먼스와 현재성의 균열”, 『한국예술연구』, 제36집, 163-183쪽.
  • 이지행(2020). “서구미디어의 지배담론에 대한 방탄소년단 글로벌 팬덤의 대항담론적 실천 연구”, 『여성문화연구』, 제50집, 79-114쪽.
  • 허윤(2021), “케이팝의 남성성과 트랜스내셔널리티의 불/가능성”, 『여성문학연구』, 제53집, 418-442쪽.
  • Butler, Judith(1997). Excitable Speech, London: Routledge, 주디스 버틀러 글, 유민석 옮김(2022), 『혐오발언』, 서울: 알렙.
  • Foucault, Michel(2009). Le Corps Utopique, Les Heterotopies, NOUVELLES LIGNE, 미셸 푸코 글, 이상길 옮김(2009), 『헤테로토피아』, 서울: 문학과지성사.
  • Nestle, Joan(1992). The Persistent Desire: A Femme-Butch Reader, Alyson Publications.
  • 武田宙也(2014). フーコーの美学: 生と芸術のあいだで, 人文書院, 다케다 히로나리 글, 김상운 옮김(2018), 『푸코의 미학: 파르레시아로서의 예술』, 서울: 현실문화연구.

댓글 4개

  1. 안녕하세요! 볼룸 씬에 있는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해당 논문의 공개 범위에 대해서 연구자와 인터뷰이간의 정확한 합의가 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제가 연구자분 연락처를 알지 못하여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인터뷰이의 이름과 인터뷰 내용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활용되는 데에 연구 당시 연구자와 인터뷰이 간의 적합한 합의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저 역시 사회학 연구자이기도 하여 문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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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입니다.

      Fwd는 필자를 통해 연구 참여자들의 연구 참여 동의에 관한 내용을 확인하였습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필자께 직접 문의를 부탁드립니다. 추가로 웹진에 전달할 내용이 있으실 경우 포워드 공식 메일(fwd.feminist@gmail.com)로 문의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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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안녕하세요, 연구자 본인입니다. 인터뷰 시 동의서 4항에 “연구 참여자의 의사에 따라 개인 신상 정보에 대한 익명성을 보장 받을 수 있다.“는 내용에 대해 명시하고 온라인 서명된 동의서를 1부씩 나눠가졌습니다. 또한 인터뷰 시작 전 구두로 동의서 전체 항에 대해 해제드리고, 익명을 원하실 경우 인터뷰 이후라도 언제든 말씀해주실 것을 요청드렸던 바입니다. 추가 문의나 질문 주실 부분 있으시면 hayeonkim7@gmail.com 으로 연락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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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또한 논문의 공개 범위에 대한 동의 여부 관련 추가 답변 드립니다.

      이 글은 볼룸 씬을 기록하고 활동명에 대한 크레딧을 부여하고자 하는 연구 의도에 대한 연구 참여자 분들의 동의를 바탕으로 출판한 석사학위논문을 재구성한 2차적 저작물로, ‘연구윤리확보를 위한 지침’에 따라 논문의 인용구에 대한 추가적 동의를 요하지 않음을 안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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