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라는 이름으로: 공학 전환 반대 시위로 시작된 동덕여대 학생들의 투쟁에 부쳐 (2)

소양

편집자 주: 1편에서 이어집니다.

1. ‘여자대학’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

지난 11월 17일 논설에서 이화학보 편집국장은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동덕여대’가 올라온 것을 보고 불안감을 느꼈다고 소회한다. 이 불안감은 이어지는 문장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여성혐오와 안티 페미니즘의 시대”에 여자대학이 사회적으로 페미니즘 그 자체로 상징되어 여성혐오적 공격과 페미니스트 낙인의 손쉬운 표적이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생겨나는 불안감이다(기사 보기). 11월 27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서울여대 재학생의 기사는 여대 시위를 향한 사회적 관심의 방향성을 지적한다. 성범죄 교수와 학교에 대한 규탄 시위의 초반에는 언론 보도를 통한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지만, 갈수록 “피해 학생 보호와 범죄 재발 방지에 소극적인 학교”가 아닌 “래커칠 하는 학생”에만 주목하는 언론 보도에 답답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언론 보도를 거치면서 “안전한 학교를 원하는 재학생으로서, 젠더 폭력에 대항하는 여성으로서, 살아남은 당사자이자 그들의 연대자로서” 낸 목소리가 “‘여대생’의 목소리로 납작해”진 결과였다(기사 보기).

여대와 그 구성원을 둘러싼 언론과 여론의 적대적인 태도는 이번 사태에서 처음 드러난 것이 아니다. 여대의 사회적 의미는 변화하고 있지만, 여대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선입견은 여전히 여대를 둘러싼 말이나 이미지와 쉽게 다시 결합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를테면, 나는 학내 교수 성폭력 문제[1]나 이른바 ‘알몸남’ 사건[2] 등으로 동덕여대의 이름이 세간에 오르내릴 때마다 대학 본부를 향한 학생들의 요구에 적대적인 여론이 형성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교수 성폭력에 대한 공동행동은 피해자에 연대하는 학생들을 ‘페미’로 낙인찍을 이유가 되었고, ‘알몸남’ 사건에 대한 학생들의 경악과 분노는 과민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알몸남’ 사건에서 학생들은 ‘우리의 배움터는 성적 페티쉬를 충족시키는 공간이 아니’라는 슬로건으로 여대를 성적 판타지의 장소로 삼는 남성들의 왜곡된 성 인식과 대학 본부의 미온적 대처를 문제 삼았지만, 뉴스 댓글창에서는 빈 강의실에서 일어난 일에 유난스럽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학생총회마다 제기되었던 책걸상 교체 요구는 한때 ‘정숙한 현모양처 양성소’이자 ‘금남구역’이었던 여대의 이미지와 결합하여 ‘성적(性的) 결벽’ 혹은 ‘정조 관념’ 등의 꼬리표가 붙은 비아냥의 대상이 되었다.

내가 관찰한바,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시위에 대한 반응에서 학생들에 대한 비난 여론은 다음과 같았다. ‘이대남’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이기적이고 못된 ‘젊은 여자애’들의 ‘떼쓰기’… 그러나 같은 세대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이십대 여성들을 이십대 남성과 대칭적인 존재로 배치하는 것은 성차별적 현실 속 비대칭적인 젠더 관계를 무시한다는 점에서 부당하다. 여대의 공학 전환을 반대하는 여대 학생들의 목소리를 이기적인 ‘떼쓰기’로 취급하는 반응은 여대생들을 미숙하고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보는 여성혐오적 시각으로, 사회가 이들의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여자대학’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은 하나의 여대에서 일어난 사건과 그 때문에 생겨난 인상을 다른 여대에 쉽게 전치하는 여자대학에 대한 선입견의 일반화로도 나타난다. 동덕여대 시위 초기에도 이러한 전치를 통해서 2016년 이화여대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반대 시위, 2020년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학생 입학 철회 사태, 2022년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시위에 대한 학내 갈등이라는 서로 다른 복잡한 맥락을 지닌 사건들이 만든 여자대학과 그 구성원들에 대한 인상이 하나로 뭉쳐져서 동덕여대라는 이름에 달라붙었다. 그렇게 해서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시위는 앞뒤 상황이 충분히 설명되기에 앞서 이전의 ‘여대’ 이슈의 연장선상에서 다른 ‘여대’ 이슈의 경유를 통해 이야기되면서, 아직 진행 중인 미결의 상황임에도 이미 다 끝난 일처럼 평가되고 함부로 지레짐작 되었다. 

2. ‘여자대학’은 하나가 아니다

2016년의 이화여대 미래라이프대학 시위가 지닌 다양한 면모를 몇 마디 말로 소략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3] 다만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운동이라는 맥락에서 다시 소환된 이화여대 시위는 크게 두 가지 맥락에서 언급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탄핵까지 이끌어낸 ‘해방 이화’의 자랑스러운 유산이거나, ‘순수한 시위’ 강박과 내부 ‘운동권 색출’로 대표되는 트라우마적인 사건이거나. 그러나 동덕여대를 비롯한 여대 학생들은 공학 전환을 여대라는 정체성의 존립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평생교육원인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신설과는 그 사안의 성격이 다르다. 게다가 8년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맥락에서 일어난 시위였음에도, 이화여대 시위에서의 운동권 색출이 동덕여대 시위에서도 똑같이 일어난 것처럼 혼동되었는데, 동덕여대는 학생들 내부에서 운동권 배제의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대학 본부에서 고소 고발을 위해 ‘외부 세력’ 및 시위 주동자를 색출했다는 점이 크게 달랐다. 관심과 연대가 절실했던 시위 초반에 동덕여대 시위가 운동권 배제와 혐오의 기조를 가지고 있다는 오해는 동덕여대 시위를 시민 사회의 연대로부터 고립시켰다는 점에서 치명적이었다. 

한편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2020년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학생 입학 철회 사태의 현재적 소환은, 동덕여대 시위를 이른바 ‘래디컬 페미니즘’ 의제인 것처럼, 그리고 트랜스젠더 혐오에 영합하는 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 반대 운동은 시위 초반까지만 해도 지지하기에 까다로운 사안처럼 취급되었으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숙명여대의 트랜스젠더 학생 입학 거부 운동 이후 여대의 존재 이유를 정당화할 윤리적 정당성이 사라졌다는 징벌적 언사마저 등장했다.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 반대 운동에서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학생 입학 반대 운동이 소환된 것에는 다음의 몇 가지 이유가 혼재된 듯하다. 첫 번째로, 학측의 공학 전환 시도에 대응한 학생자치기구 연합체인 ‘총력대응위원회’에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 ‘사이렌’이 속해 있다는 점과, 외부인 참여 가능한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개인 서명을 사이렌에서 제안했다는 점이 문제되었다. 이는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를 시위의 ‘배후 세력’으로 지목하여 ‘랟펨’에 대한 낙인을 이용해 학생 시위를 억압하고자 한 동덕여대 학측의 언론플레이 전략이었으며(기사 보기), 실제로 사이렌 구성원의 신상유포와 집중적인 사이버불링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여론전은 동덕여대 시위를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가 주도했다는, 더 나아가 동덕여대 시위 전반이 트랜스젠더 배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두 번째로는 여대를 성폭력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으로 강조하는 논의가 여대 존립의 문제를 ‘젠더 분리’된 공간의 문제로 협소하게 이해하게 하였다. 지난 몇 년간 여대 공간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났던 ‘외부인 침입’ 문제로 확산된 ‘외부인 남성’에 대한 경계는 곧 몇몇 ‘여장 남자’ 침입 사례에 특히나 주목하게 했고, 안전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트랜스젠더 혐오를 불러오고 확산시켰다. 여기에 더하여, 공학 전환 논란이 불러온 ‘여자대학’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여대를 구성하는 ‘여성’은 누구인가라는 여성 범주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면서, 트랜스젠더 구성원 수용에 관한 논쟁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러나 여대의 공학 전환 반대나 여대 존립 요구는 반드시 트랜스젠더 배제적 함의를 갖는가? 나는 반대로,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 없는 비민주적 학사 개편을 감행하는 폭력적인 대학 본부가 학내 다른 소수자들의 권익은 얼마나 보장해줄 수 있을 것인지 묻고 싶다. 여대가 여성만이 아닌 다른 ‘젠더 마이너리티’들에게도 열려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 사회적 소수자로서 여성의 교육권을 보장해온 여대의 의미를 재정의할 방법이라는 제안도 이미 여러 차례 제시되었다. 무엇보다도 여대에 이미 존재하는 트랜스젠더퀴어들은 학내 자치 활동을 통해 여대 공간의 의미를 다시 쓰고 있다(기사 보기). ‘여대’ 공간에 대한 더 많은 고민과 논의가 계속되게 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여자대학’은 존립해야 할 것이다. 

또 한편, 2022년의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시위를 둘러싼 학내 갈등은 두 학교가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복잡한 맥락들을 소거한 채로, 단순히 여대 내부의 가시적인 갈등 상황이라는 점에서 소환되었다. 동덕여대 시위는 초반부터 학내 청소노동자들이 학생 시위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음에도, 시위의 본질과 동덕여대 학생들이 학내 청소노동자들과 맺어온 노학연대의 역사는 무시되고 동덕여대 시위대의 ‘이기적인’ 시위 방식 때문에 청소노동자들의 업무가 가중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시위를 둘러싼 학내 갈등에서 비난과 혐오를 표출한 학생들의 ‘이기적인’ 모습이 가장 지배적인 이미지로 남게 된 것에 대해서도 물음을 제기하고 싶다. 대학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 문제에서 가장 주요한 책임의 주체는 대학 본부일 것이다. 그러나 “특혜 바라는 집단 이기주의”라는 말로 청소노동자 파업을 비난한 덕성여대 대학 본부와 김건희 총장이 주도한 학생과 청소노동자에 대한 ‘갈라치기’ 사이에서 그러한 책임 소재는 사라졌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투쟁이 장기화되기 이전부터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해온 학생들의 이야기가 사라지고, 이후 촉발된 갈등의 모습만이 남게 된 것은 학측 여론전의 결과이기도 하다. 2010년 한 경희대 학생이 고령의 여성 청소노동자에게 ‘막말’을 한 이른바 ‘여대생 패륜녀’ 사건에 대해(기사 보기), 같은 시기 동덕여대 청소노동자 투쟁에 함께한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명숙이 “저임금과 고용불안, 청소미화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만들고 유지해 온 대학 당국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한 여학생의 막말에만 분개하는 사회는 이상하다”고 발언한 것을 다시금 떠올려보게 된다(기사 보기).

앞서 열거한 ‘여대’ 이슈들에서 정말로 제기되었어야 하는 문제는 무엇일까? 먼저 ‘여대’를 둘러싼 사회적 이미지가 여대 내부에서 일어나는 많은 투쟁의 본질과 복잡성을 가렸던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특히 언론은 ‘갈등’ 중심의 보도를 통해 여대 내부의 치열한 분투를 지우고 사태를 대립 구도로 단순화한 면이 있다.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철회 사건에서도 언론은 학내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이전에 자극적인 ‘갈등’을 중심으로 보도하며 혐오 표현을 확산시켰다.[4]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시위에서도 학측의 입장을 받아 쓴 ‘단독 보도’와 ‘락카칠’ ‘54억’ 등의 자극적인 보도가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11월 18일 언론개혁시민연대에서 “동덕여대 학생들의 질문에 사회와 언론은 답할 준비가 돼 있나”라는 제목의 논평으로 자성을 촉구한 것과 같은 언론 내부에서의 반성이 제기되기도 했다(기사 보기).  

최근에 제출된 여대 공간에 관한 여러 논의는 여대 구성원이 동일하고 균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차이’에 주목한다.(기사 보기, 기사 보기). ‘여자대학’이라는 공간의 의미는 여대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투쟁을 통해 거듭나고 있으며, 그 투쟁은 현재 진행 중이다. ‘여대’의 존재 이유와 의미 또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사회적 맥락과 함께 변화해왔으며, 다양한 층위를 가지고 있다. 앞선 ‘여대’의 사례들을 통해 볼 수 있듯이, 때로 단순한 ‘갈등’의 구도로 외화되더라도 그 내부에는 다양한 투쟁의 주체들이 분투 중일 때가 많았다. 

그리고 여대 구성원들 간의 차이가 존재하는 만큼, 서로 다른 복잡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 여대들 간의 차이도 존재한다. ‘여대’의 존재 이유를 단순히 남녀공학과의 대립항을 통해 이해하지 않는다면 다른 논의를 시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자대학’은 하나의 균일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고, 내가 아는 한 여대들은 각기 다른 학풍 속에서 의미 있는 학생 자치와 역사를 만들어 왔다. 여대의 공학 전환 반대 운동은 ‘여자대학’ 의 존재 이유에 질문을 던지며, 여대 간 연대를 통해 ‘여대’ 문제에서도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여자대학을 둘러싼 논쟁에서 이러한 내부의 투쟁들이 더 많이 이야기되면 좋겠다. 

(3편에서 이어질 예정입니다.)


참고 문헌

  • 김환희, 최승훈, 조진영. (2016, 9). “청년이슈 인터뷰 달팽이 민주주의를 통해 ‘다시 만난 세계’ : 이화여대 점거 농성을 통해 살펴본 새로운 학생운동의 가능성과 우려_이화여자대학교 학생 조진영”. 『오늘의 교육』, 34, 147–164쪽. 
  • 이지행. (2016). “이대 본관 점거시위 리포트”, 『여/성이론』, 35, 240–261쪽.
  • 이콴다. (2020). “내부자 시각에서 고찰한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철회 과정, 그리고 그 후”,  『여/성이론』, 42, 106–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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