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는 페미니즘의 요새가 될 수 있을까?

🎶송유진

1. 정체성 정치와 장소의 정치가 ‘여대’에서 만날 때

학부를 졸업할 무렵, ‘사랑하는 나의 이화’로 시작되는 다른 졸업생의 글을 읽으며 펑펑 운 기억이 있다. 교문을 넘어서는 순간 달라지는 분위기, 복도 테이블에 아무렇지도 않게 널브러져 잠들어 있는 학생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몇백 명 단위의 학생들을 이끄는 학생 대표들, 온 학교를 뒤집어엎을 듯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해방이화, 비리척결’을 외치던 몇천 명의 물결이 선명히 떠올라서였다. 한 여대의 오랜 구성원이자, 그 안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페미니스트라는 나의 정체성은 내가 속한 공간과 다양한 층위에서 복잡하게 얽히며 형성되어 왔다. 그러므로 여성과 공간, 정확히는 페미니스트 정체성과 장소에 대한 이 글은 나의 가장 구체적인 위치에 관한 얘기로부터 시작되고 또한 마무리되어야 할 것이다.

페미니즘을 앞 번호 2로 시작하는 주민등록번호와 여성 억압의 경험을 가진 ‘생물학적 여성’들만의 정치학으로 이해하고, 이를 위한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몇 년 동안 꾸준히 이어져 왔다. 이를 분리주의적 페미니즘, 혹은 보수 우파의 정치학에 귀결될 수밖에 없는 페미니즘이라고 비판하는 흐름 역시 일관되게 이어져 왔다. ‘안전’이라는 가치가 그간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여성의 실질적 자유를 제한하고, 섹슈얼리티 실천에 있어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을 강화하는 데에 활용되어 온 역사를 고려해 봤을 때, 이는 분명 타당한 지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송유진, 2020).

한편 오늘날 여대라는 공간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정치학은 이러한 통찰을 이어가되, 동시에 새로운 관점에서의 접근을 요한다. ‘생물학적 여성’을 위한 페미니즘이 현실 속에 존재하는 물리적 공간의 경계와 만나면서 어떻게 구부러지고 있는지, 즉 특정 공간의 의의를 재구성하고 새로운 정치학의 토대로 삼음으로써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재강화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분리주의 페미니즘과 폐쇄적인 정체성 정치에 대한 추상적인 비판을 넘어, 실재적이고 물리적인 장소와 그 장소 속의 주체들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논의로 이행될 필요가 있다.

MTF(Male to Female)트랜스젠더 입학생이 여성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여대의 존재 의의를 훼손한다는 주장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운동이 여대라는 구체적인 장소와 만나 어떤 효과를 생산해내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생물학적 여성’에 기반한 정체성의 정치와, 여대라는 장소를 둘러싼 폐쇄적 장소의 장치가 서로를 구성하면서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이현재, 2018).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대는 마치 페미니스트들이 지켜내야만 하는 장소이자 더 이상 후퇴할 수 없는 ‘요새’처럼 이야기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생물학적 여성’을 위한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의가 비슷한 궤도만을 반복하고 있는 이 시기, 여대가 어떤 공간으로 이해되고 또한 상상되고 있는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2. 여대를 역사화하기

여대가 갖는 의미와 역사성은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초기부터 계속해서 언급되어 왔다. 좋든 싫든 여성이 모든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곳, 사회적 소수자로서 여성의 위치에 대한 인식이 기반이 되는 곳, 오랜 기간에 걸친 무용론과 불평등론에 맞서 존재 의의를 계속해서 지켜 온 곳으로서 여대가 축적해 온 상징성이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실제로 여대에 페미니즘 관련 강좌가 몇 개나 열리는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학생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등의 문제와는 관계없이, 여대는 페미니즘 의제와 관련된 시위 때 등장하는 크고 새빨간 깃발과 탈코르셋을 한 학생들의 이미지로 대표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와는 별개로, 여대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는 오랜 기간에 걸쳐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쉴 새 없이 재구성되어 왔다. 여대의 존재 의의를 둘러싼 유구한 논쟁은 이를 잘 보여주는 예시일 것이다. 예컨대 19세기 말 “여자가 고등교육 받아봤자 뭐 하냐”는 공격에 대응하는 방식과, 1970년대 “고등교육 받아봤자 졸업해서 제 가족이나 챙기는 여대생은 무용하다”[1]는 공격에 대답하는 방식은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서 축적된 여대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는, 당시 사회의 맥락과 요구에 맞추어 여대가 스스로의 의의를 계속해서 갱신해 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2016년 이화여대 시위 과정에서 재학생들이 ‘해방이화’라는 구호를 다시 들고나왔던 것 역시 유사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찰의 무력진압과 학내 비리, 단지 ‘이대’에서 전개된 시위라는 이유만으로 쏟아졌던 전사회적 여성혐오(이지행, 2016)에 맞서 재학생들은 1980년대 군사독재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제작되었던 슬로건을 다시 꺼내들었고, 이 과정에서 독재정권에 맞서는 민주화운동의 기억, ‘해방’이라는 단어가 주는 인상, 전통적인 여성성을 거부하는 젊은 여성들의 이미지 등이 복잡하게 차용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시위에 참여한 재학생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과정인 동시에 이화여대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 또한 역동적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이었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1] 이는 1970년대 지식인 집단 내에서 통용되었던 ‘여대무용론’ 혹은 ‘여대생무용론’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기는커녕 개인적 이기심과 가족의 안녕만을 위해 이를 낭비하고 있다는 요지의 비판이 이 시기 제기되었다(전경옥 외, 2004).

올해 초 숙명여대 사건을 통해 촉발된 논쟁 지형 속에서, “여대를 (트랜스젠더 여성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과 “여대는 소수자들을 위한 다양성의 공간이어야 한다”[2]라는 주장 간의 갈등 역시 위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전자는 여대를 ‘생물학적 여성’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학의 공간으로 의미화하고자 했던 한편, 후자는 소수자들의 발화를 가능케 하고 주류 사회 질서를 전복할 수 있는 대안 정치학의 가능성을 키우는 공간으로 의미화하고자 했던 시도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주장이 갖는 정당성을 떠나, 이러한 사례들은 여대가 단 한 번도 정지해 있는 공간인 적이 없었으며 여대가 갖는 상징과 역사 역시 논쟁 주체들의 이해와 기획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해 왔음을 증명한다.

[2] 숙명여대 사건 이후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지에서는 여대의 역사와 의의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여대가 여성들‘만의’ 공간이라는 일부의 주장에 맞서 여대는 모든 형태의 다양성을 위한 공간이며, 이를 폐쇄하려는 전략은 오히려 여대 설립 당시의 의의를 훼손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숙명여대 사건에 대한 직접적 대응으로 설립된 단체인 ‘여대 페미니스트 네트워크’(여페넷)가 2월 11일 업로드한 성명문은 이런 인식을 잘 담고 있다. (성명 보기)

지리학과 공간, 장소의 문제에 골몰해 왔던 페미니스트들은 공간과 정체성, 사회적 관계와 실천들이 맺는 역동적이고 쌍방향적인 관계에 주목했다. 우리는 보통 공간이 이미 물리적으로 명확하게 경계 지어져 있으며 공간과 나, 공간과 정체성 역시 명확하게 구분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지리학자들은 ‘나’를 구성하는 신체와 나의 실천,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나의 정체성이 그 구성 과정에서부터 이미 공간의 층위와 밀접하게 함께 엮여 있다고 이야기한다. 젠더가 사회적 수행을 통해 구성된다는 것이 버틀러의 이론이 갖는 통찰이었다면, 이는 페미니스트 지리학자들에게 이르러서 수행자들의 젠더와 정체성이 구성되는 과정에 공간이 핵심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통찰, 나아가 공간의 의미와 성격 역시 이 과정에서 함께 구성된다는 통찰로 확장되었던 것이다(맥도웰, 2010).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여대를 단순히 투블럭 머리 여성들과 빨간 깃발의 공간, 즉 ‘(생물학적 여성을 위한)페미니즘’의 공간으로 상상하는 것은 그 안에 존재하는 지형의 높고 낮음과 울퉁불퉁함을 싹 밀어버리고 동질화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일차적으로 여대를 몰역사적인 공간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적일 뿐 아니라, 여대라는 공간과 그 안의 구성원들이 상호 연결되며 경계를 구성하고 의의를 계속해서 갱신해 온 과정을 들여다볼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보다 문제적이다.

3. 여대를 낭만화하기?

여대를 두꺼운 성문이 달린 공간, 정적이고 분리된 공간으로 이해하는 것은 여대를 몰역사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한편 여대라는 공간이 갖는 특징을 단순하게 낭만화해버릴 위험성 또한 안고 있다. 이러한 낭만화는 여대가 마치 모든 형태의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롭고 평등한 공간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 가능성을 내포한다. 또한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여대 역시도 고유한 방식으로 권력화되고 젠더화되어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누락한다. 예컨대 성별이분법과 이성애중심성은 여대를 꿰뚫는 핵심적인 질서로 오랜 기간 작동해 왔으며, 오늘날에도 이성애자 비혼 여성이라는 모델은 여전히 여대를 구성하는 기본값이다. ‘정상적’인 이성애자 여성을 훈육해내기 위한 규율은 교내 곳곳을 채우고 있다. 학교 차원에서 재학생들을 장차 누군가의 아내나 어머니가 될 존재로 전제하거나, ‘남친’이 없으면 ‘나친(나무친구)’이라도 만들자는 농담[3], 또 여대를 성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무성’적 공간으로 상상하는 재학생들의 경향 등은 이 공간을 채운 권력이 어디로 기울어져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게 해 준다.

[3] 이화여대 채플 시간에 목사가 전교생을 대상으로 실제로 했던 농담이며, 이후 학생들이 자신의 ‘나친’을 만들 수 있도록 나무에 걸 이름표를 배부해주는 등의 행사로 현실화되었다.

또한 특정 공간에 대한 낭만화는 그 공간을 보다 매끄럽고 완벽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내부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덮어버린다는 점에서도 문제적이다. 내부의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논의는 너무나도 여러 버전으로 반복되어서, 어느새 무의미한 탁상공론처럼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대 내의 차이가 얘기되어야만 한다는 실존적 위기의식은 오랫동안 나를 채근해 왔으며, 이는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구체적인 나의 경험으로 인한 감각일 것이다. 2016년 이화여대 시위 이후 얻은 것과 놓쳐버린 것, 충분히 이야기된 것과 입 밖으로 내뱉어지지조차 못한 것에 대한 생각은 내 안에서 계속해서 이어지고 또 이어져 왔다. 얻은 것은 손에 잡힐 듯 선명한 학교 구성원들과의 연대감, 놓쳐버린 것은 그 연대감이 구축되는 과정에서 기준 밖으로 쫓겨난 것들에 대한 충분한 숙고였고, 이야기되었던 것은 ‘새로운 방식의 민주주의’라는 찬양[4], 이야기되지 못했던 것은 그 이후 오랫동안 흉터처럼 남아 구성원들을 싸우게 하면서도 익명사이트 밖으로는 한 발자국 내보여지지도 못한 갈등들이었다.

[4] 서상일(2016년 8월 10일). “운동권의 ‘고체 연대’, 이대생의 ‘액체 연대’”. 오마이뉴스. (기사 보기)
유소연(2016년 11월 5일). “시위 문화 바꾼 이대생… 외부 세력 내쫓고 민주주의 맞아들이다”. 조선일보. (기사 보기)
조윤진(2016년 9월 11일). “새로운 시위문화, 사회문화적 함의를 찾다”. 이대신문. (기사 보기)

이대 시위가 ‘정치적’이지 않은 ‘순수한 벗’들에 의한 시위임을 증명하기 위해, 즉 외부의 필요에 의해 선동되고 동원된 시위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그어진 선들은 더없이 세밀하고 구체적이었다. 시위 초기 ‘연대’와 ‘혁명’, ‘계급’ 등의 단어를 포함한 대자보들은 빠르게 철거되었고, 이후 시위가 본격적으로 전개됨에 따라 ‘순수한 벗’과 ‘꿘충’ 간의 구별은 시위 참여자와 ‘방관러(방관+-er)’ 간의 구별로 연장되었다. 시위의 중심이 되었던 본관에 방문한 총횟수, 시위 ‘총대’를 맨 횟수 등이 시위 참여자의 자격을 검증하기 위한 기준으로 채택되었고, 시위 종료 이후에도 본관의 내부 지리를 얼마나 외우고 있는지, 본관의 출입문이 총 몇 개이며 시위 본부로 사용된 방의 번호를 기억하고 있는지 등을 캐물으며 공간의 정당한 구성원을 가려내려는 시도들은 계속되었다.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한 기준이 점차 세부화되고 길어짐에 따라 기준 밖으로 밀려나는 이들은 계속해서 증가했고, 스스로가 이 공간의 정당한 구성원인지 아닌지 불안해하는 수많은 이들이 매일매일 검증 요청글을 올렸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은 어떤 형태로든 교문의 경계를 넘지 못했다. 이대 시위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시위로 인해 새롭게 구성된 이대라는 공간의 의미를 ‘순수’하게 만들기 위해 치러야만 했던 값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부의 이야기들, 그러나 은폐되고 침묵되었던 이야기들은 공간을 낭만화하고 동질화하려는 시도들이 갖고 있는 위험성을 가장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4. 차이를 통해 구성되는 공간

몇 년 전, 총여학생회 폐지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 대학가를 뒤흔들고 있을 때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곳은 바로 여대였다. 총여학생회 폐지를 둘러싸고 촉발된 논쟁들, 즉 사회적 소수자로서 여성이 갖는 위치와 이들을 대의할 수 있는 학생기구의 필요성 등은 여대에서 이미 ‘당연한’ 전제로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간 여대에서는 여성이 공간을 전유하고 대표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들이 축적되고 있었다. 이런 논의들은 분명 확고한 의의를 갖는다. 많은 이들의 말처럼 여성이 제 2시민 혹은 남성에 대한 타자가 아닌 ‘기본값’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여대가 갖는 가능성 역시 결코 부정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대를 외부적으로는 굳게 닫힌 상자로, 또한 내부적으로는 동질성과 완결성을 담보하는 공간으로 상상하는 것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논의는 종종 그저 당위적인 것으로, 옳고 그름과 도덕에 대한 추상적인 이야기로 해석되곤 한다. 그러나 가장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증명하듯이, 내부의 차이와 갈등들은 항상 말해지고 또 말해져야만 하며, 이에 대한 강조는 언제나 가장 현재적이고 실천적인 의의를 갖는다. 그리고 공간에 대한 이해와 상상은 이러한 차이를 적극적으로 참조하며 재구성되어야 한다. 공간은 언제나 만족스러울 만큼 동질화될 수 없고 평평해질 수 없으며, 그 공간과 관계 맺고 실천하는 주체들의 크기와 질감, 방향에 따라 들쭉날쭉하게 구성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차이가 공간을 구성하고, 공간은 다시 차이를 생산한다. 누군가는 설령 여대를 ‘생물학적 여성’들을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보호해주며 그들만의 페미니즘을 펼칠 수 있는 안전한 요새로 상상한다 해도, 내부에서 발생하는 차이들은 언제나 그 상상을 무너뜨리고 위협한다. 그리고 이는 공허한 부정이 아닌, 오히려 역설적인 형태의 위로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송유진(2020). “‘여성들만의’ ‘안전한’ 여대: 정체성과 장소의 판타지”, 『월간평등업』, 제 17호. (기사 보기)
  • 이지행(2016). “이대 본관 점거시위 리포트”, 『여/성이론』, 제 35호, 240-261쪽.
  • 이현재(2018). “디지털 도시화와 사이보그 페미니즘 정치 분석: 인정투쟁의 관점에서 본 폐쇄적 장소의 정치와 상상계적 정체성 정치”, 『도시인문학연구』, 제 10권 제 2호, 127-152쪽.
  • 전경옥 외(2004). 『한국여성문화사』.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출판국.
  • McDowell, L.(1999). Gender, identity and place: Understanding feminist geographies,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여성과 공간 연구회 옮김(2010), 『젠더, 정체성, 장소』, 파주: 한울아카데미.

댓글 1개

  1. 이 경험을 발화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이 글이 더욱 더 소중히 느껴집니다. 어렴풋이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이 언어화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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