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유 노 4B?”: K-페미니즘과 디아스포라 곤경

⚓️오온(강은교)

0.

지난 2024년 11월 5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두 번째 승리를 거둔 후, 대한민국 여성들의 4B 운동—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의 네 가지 실천을 지칭하는 것으로, 남성과의 이성애적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를 표방하며 2019년 경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다—이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미국에서 헌법상 임신중지권을 보장했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이 트럼프 행정부가 지명한 대법관들에 의해 뒤집히며 재생산권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에서, 트럼프가 다시금 당선되고 남성 유권자의 과반이 트럼프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나자 미국 여성들이 한국 페미니즘의 슬로건을 빌려 저항의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틱톡과 트위터(현 X)에서 4B 운동 관련 게시물이 폭증했고, 구글 트렌드 데이터에 따르면 선거 다음 날 “4B”의 검색량이 450% 급증했다. 뉴욕 타임즈, 워싱턴 포스트, 가디언, 뉴요커 등 영미권 주요 언론들도 이 여성들의 움직임을 비중 있게 다루며 한국의 4B 운동을 조명했다. 

사실 4B 운동의 초국적 확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4B 운동은 한국에서 ‘비소비’와 ‘비돕비(비가 비를 돕는다)’를 더해 6B로, 다시 탈코르셋, 탈아이돌, 탈오타쿠, 탈종교를 뜻하는 4T를 더해 ‘6B4T’로 진화했으며, 이 확장된 버전이 2020년경 중국어로 번역되어 중국 소셜 미디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Cheng, 2023). 영어권에 한정해서 이야기하자면, 2024년 4월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과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을 소개하는 한 틱톡 영상이 바이럴되면서 트럼프 당선 이후 4B 운동에 대한 폭발적 관심에 촉매 역할을 했다(영상 보기).

1.

이 글은 한국에서 여성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바로 이 격변의 시기에 미국에서 한국학 박사 과정을 시작하게 된 나의 개인적인 여정, 무엇보다 ‘페미니즘 리부트’로 인해, ‘페미니즘 리부트’를 통과함으로써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 나의 위치성에서 비롯한다. 지난 9월, 트럼프 당선 이전에 미국으로 건너온 나는 스스로를 여성학 배경을 가진 한국문학·문화 연구자로 소개할 때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라고 또 당황하곤 했다. 처음 한두 번은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한국 페미니즘’에 대한 언급은 백이면 백 마치 자동 응답처럼 ‘4B’에 대한 알아차림으로 돌아왔다. 한국 현대 문학·영화를 다루는 토크의 Q&A 세션에서 정말 뜬금없이 4B 운동이 언급되는 일도 있었다. 대학의 리버럴한 환경과 한국학 인접 분야에 국한된 매우 제한적인 표본이었지만, 이는 전 세계의 진보적 소수자 운동 혹은 한국 사회나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이들 사이에서 4B가 한국 페미니즘의 대표적인 액티비즘, 혹은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음을 암시하는 장면들이었다.

그런데 트럼프의 당선 이후 ‘4B’가 소셜 미디어에서 바이럴되면서, 내 개인적 관찰은 더 이상 추측에 그치지 않게 되었다. 아니,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불과 며칠 만에 한국 페미니즘은 곧 4B 운동, 4B 운동은 곧 한국 페미니즘이 되어버린 것이다.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에서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옹호하는 슬로건 “My Body, My Choice”를 뒤집은 “Your Body, My Choice” 같은 폭력적인 언설이 고삐 풀린 듯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남성과의 모든 관계를 보이콧한다는 한국 페미니스트들의 선언은 많은 미국 여성들에게 환호를 받았으며, 그 신조를 직접 실천하고자 하는 이들을 만들어냈다.

2024년 3월 28일 업로드된 @wtfaleisa 틱톡 영상 갈무리
해당 영상은 2025년 3월 30일 현재 약 627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4B 운동이 미국, 그리고 전 세계에 알려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중대한 역사적 오류다. 앞서 언급한 틱톡 영상은 『82년생 김지영』을 4B 운동의 기원으로 설정하면서, “4B 운동이 너무나도 성공적인 나머지 이제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을 가진 나라 중 하나”(인용자 강조)라며 인과관계를 왜곡했다. 4B 운동의 실질적 규모나 성패에 대한 판단을 제쳐두더라도, 기실 출생률 하락은 여러 사회경제적 요인들의 복합적인 결과인 바,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 개별 주체들의 결단으로 인해 출생률이 급락하기란 단순히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오해는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와전되어, 퀴어 언론 Them은 4B 운동의 트랜스혐오적 경향을 다루는 기사에서 4B라는 용어가 『82년생 김지영』에서 조남주에 의해 고안되었다고 잘못 서술했는가 하면(기사 보기),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 바바라 캠퍼스의 학생 언론 The Bottom Line은 미국에서 4B 운동의 실현 가능성에 회의를 표하면서 “한국은 미국보다 작고 정치적·사회경제적 구조가 달라 4B 운동의 인기로 인해 실제로 출생률이 감소했다”는 주장을 펼쳤다(인용자 강조, 기사 보기). (한국이 얼마나 작은 나라라고 생각하는 걸까?)

약간만 조사해봐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 잠깐만 생각해봐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오해가 재생산되는 이유는 ‘서구보다 가부장적인 아시아’라는 오리엔탈리즘적 인식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서구의 언론과 소셜 미디어는 버닝썬 게이트, N번방, 딥페이크 성착취물 등으로 이미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한국의 (기술적으로 따지자면 그 어디에서보다) ‘선진적인’ 젠더폭력 사례들을 조명하면서,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압받는 아시아 여성들의 필사적 저항이라는 서사를 재/생산한다. 또한 이는 오랫동안 서구 담론에서 재생산되어 온 ‘순종적인 동아시아 여성상’이라는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리액션이기도 한데, 순종적이고 수동적이었던 동아시아 여성들이 마침내 ‘깨어나’ 능동적으로 저항한다는 서사는 서구 독자들에게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즉, 4B 운동과 출생률을 직결시키는 언설의 기저에는 ‘저렇게나 억압적인 환경에 놓인 여성들이니 세계에서 가장 낮은 대한민국의 출생률은 응당 그들의 필사적인 저항에 따른 결과일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한다.

애초에 4B 운동이 미국에서 그만큼 바이럴되었던 이유가 ‘결혼, 출산, 연애, 섹스를 모두 하지 않는다’는 선언에 담긴 선정성에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지적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4B 운동은 소셜 미디어 상에서 지지하는 이들 만큼이나 조롱하는 이들을 끌어모았는데, 이들의 조롱에는 네 가지의 행동 지침 중에서도 주로 ‘비섹스’에 관심이 쏠려 있다. 비혼을 중심으로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를 포함하며 점차 넓어진 한국에서의 담론 궤적과는 달리, 4B 운동에 대한 영어권 소셜 미디어 포스트와 언론 기사에서는 대체로 ‘no sex’가 선두에 놓인다(기사 보기, 기사 보기). 이는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맥락과 역사를 괄호친 채 가장 자극적인 요소만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한국 여성들의 저항을 성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축소시킨다. 동아시아 여성들에게 덧씌워져 온 스테레오타입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은 극단적 대비—순종적이고 보수적이라고 여겨지던 여성들이 가장 급진적인 형태의 저항을 선택했다는 대비—는 서구 청자들의 호기심과 관음증적 시선을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렇게 4B 운동을 설명하는 특정한 서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한국은 미국 여성들이 자신들의 상황을 비교해 볼 수 있는 더 열악한 거울로서 위치지어진다. 이러한 담론 틀에서 4B를 실천하는 한국 여성들의 행위성은 인정되고 축복받는 동시에 타자화된다. 이들은 용감한 저항자로 묘사되지만, 그러한 저항이 불가피할 만큼의 희생자로도 여겨진다. 그리고 이 두 이미지—저항자와 희생자—를 매개하는 것은 바로 동아시아 여성들의 섹슈얼리티를 페티시화하는 시선이다. ‘비섹스’와 같은 요소에 대한 선정화된 관심은 정치적 행동주의를 성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환원시킨다. 이런 이미지들 속에서 한국은 미국이 맞이할 수 있는 암울한 미래로, 또는 미국이 반드시 피해야 할 경고로 상상된다. 결국 이는 한국 사회를 극단적인 젠더폭력의 테크노-디스토피아적 공간으로 상정하고, 4B를 그러한 극단성에 대한 불가피한 대응으로 해석하는 타자화된 독해 방식이다. 이러한 프레임은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복잡한 맥락을 지우고, 서구중심적 시각에서 재해석된, 이국적인 페티시의 대상으로서의 단일 내러티브만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2.

이렇게 글을 끝마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시아를 타자화하는 서구, 스테레오타입에 갇힌 한국 여성, 그에 대한 탈식민적 관점의 비판. 서구의 오만에 따끔하게 일침을 놓는 한국인 페미니스트 여성 연구자인 나. 그렇게 된다면 참 상쾌할 텐데.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당연하게도 한국 언론들은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에서 4B 운동이 주목받자 이 ‘해외의 관심’을 곧바로 국내에 보도했다. “미국 여성들이 한국의 4B 운동에 열광하고 있다”, “뉴욕 타임즈가 한국의 4B 운동을 다뤘다”는 식의 보도는, 한국 사회 내에서 젠더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부재해온 현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젠더 이슈에 대한 국내 담론의 적극적 무관심 혹은 악의적 왜곡을 ‘해외’의 관심으로 대체하려는 이와 같은 시도는, 식민지기부터 이어져 온 ‘서구의 인정’에 대한 대한민국 사회의 뿌리 깊은 욕망 및 열등감과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내에서 젠더폭력과 성차별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무시와 침묵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후식민적 역학 관계는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생존 전략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한국 언론이 젠더폭력 사안들을 무시하거나 축소보도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외신—특히 영어권 미디어—에 한국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림으로써 국제적 관심을 유도해왔다. 예를 들어, 불법촬영 편파수사를 규탄한 ‘불편한 용기’ 시위의 슬로건 “나의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의 공식 피켓은 영문으로도 제작되었다(기사 사진 보기). 이는 외신이 보도한 이후에야 비로소 반응하는 한국 언론과 사회의 식민성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기 위함이다. 코로나19 시기 한국 언론의 오보와 정파적 보도가 만연한 상황에서 주요 외신이 한국 정부의 체계적인 대응을 ‘객관적으로’ 보도하자 국내 독자들이 외신으로 눈을 돌리며 만들어진 “BBC가 한국의 민족정론지”라는 자조적 농담(기사 보기)은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그 전부터 국내 언론의 젠더 이슈 보도 부재 상황에서 활용해 온 외신 의존적 생존 전략에서 그 선례를 찾을 수 있다.

EBS 다큐멘터리K 인구대기획 초저출생 10부 《0.78 이후의 세계 PART 2》 갈무리 (영상 보기)
이후 EBS 창사특집 《조앤 윌리엄스와의 대화》에서 윌리엄스는 “제가 현명하지 못했네요. 보통 이렇게 말하지 않아요”라고 사과했다. (영상 보기)

이러한 전략은 ‘헬조선’ 담론에서 이미 구체화된 바 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이 용어는 한국 사회의 살인적인 입시 경쟁, 불안정한 고용 상태, 천문학적인 주택 가격, 사회경제적 양극화 등을 비판하는 자조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한국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헬조선 담론에 성차별과 젠더폭력의 요소를 강조하며,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구조를 비판하는 데 활용했다. 최근에는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법학대학원 명예교수이자 노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조앤 윌리엄스가 한국의 초저출생률을 듣고 머리를 감싸쥐며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Korea is so screwed. Wow!)”라고 말한 자막이 담긴 방송 장면이 밈이 되어 자주 사용되고 있다. 백인 여성 학자의 얼굴과 반응을 대한민국의 상황을 자조하거나 비판하는 데 활용하는 이 현상은, 후식민 상황에서 여전히 민족국가의 ‘내부식민지’ 상황에 놓인 소수자 집단이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구의 권위와 시선을 차용하는 복잡한 역학을 보여준다.[1]

닷페이스 리베카 솔닛 방한 기념 기자간담회 스케치 유튜브 영상 썸네일(영상 보기

이 역학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이른바 ‘랟펨’ 대 ‘쓰까펨’이라는 한국 온라인 상에서의 페미니즘 논쟁 구도이다. 4B, 나아가 6B4T가 한국 ‘랟펨’의 주요한 슬로건이자 행동 방침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랟펨’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피해자됨을 여성의 핵심 정체성으로 강조해왔다. 이들에게 여성은 가부장제의 근본적이고도 유일한 피해자이므로, 가시성이 희소한 자원이 된 온라인 담론장에서 이 피해자성을 인정받고 가시화하는 것은 페미니즘의 주요 과제가 된다(홍보람 2021). 그런데 이러한 피해자성에 대한 애착은 역설적으로 행위성과 역량강화보다는 구원과 보호를 필요로 하는 존재로서의 여성상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대표적으로 트위터의 몇몇 “여성인권운동”—페미니즘은 게이나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챙기지’ 않음을 내포한다—계정은 최근 텔레그램에서 발생한 딥페이크 성폭력 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해당 이슈를 ‘해외’의 개입이 필요한 사안으로 의미화하면서 외국 여성들을 한국 여성들의 잠재적 구원자로 위치시켰다. 영어로 한국의 여성혐오를 ‘알리는’ 한 계정은 심지어 “오직 외국 여성들만이 한국 여성들을 구할 수 있다(Only foreign women can save Korean women)”고 노골적으로 선언하기도 했다.[2]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앞서 이야기한 오리엔탈리즘을 스스로 내면화하고 활용하는 일종의 ‘셀프 오리엔탈리즘’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는 우리를 ‘구해줄’ 이가 없다는 이러한 절규는 실상 ‘한국 남성’만을 그 원흉으로 지목하고 있지 않다. 4B의 주요 입안자이자 실천자인 이들은 한국의 ‘기성’ 페미니스트들, 즉 게이와 트랜스젠더 인권을 옹호하는 ‘쓰까’ 페미니스트들이 그들의 운동을 대변해주지 않는다는 소외감을 표출해왔다. 국내 언론이나 정계가 한국의 젠더폭력이나 성차별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인식, 그럼에도 ‘기성’ 여성학계는 여성의 현실에 천착하는 ‘랟펨’을 대변하기보다 이들의 혐오를 꾸짖고 타이르기만 했다는 배신감이 결합되어 이들은 자신들의 이론적 원류를 ‘해외’에서 찾고자 했다. 영국 출신 호주의 래디컬 페미니스트 쉴라 제프리스의 저서들이 한글로 번역되어 트랜스 배제적 페미니즘의 이론적 근거로 적극 활용되어온 것이 대표적이다(관련 논평 읽기). 이는 한국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서구 이론의 권위에 의존하는 오랜 지적 식민성의 또 다른 사례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남성중심적인 지식 생산 체계 속에서 여성주의 지식이 제대로 축적되거나 계승되지 못한 결과로 인해 나타나는 세대 간 단절 및 인정투쟁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이렇게 한국을 성차별적 디스토피아로 묘사하는 ‘당사자’의 발화는 한국의 맥락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국제 청중에게 거의 절대적인 진실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특히 소셜 미디어 환경에서 ‘당사자’의 목소리, 특히 고통받는 타자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정당성과 진정성을 획득하기 마련이다.[3] 물론 이들의 절규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수많은 통계에서도 드러나듯 한국 사회의 성차별 및 젠더폭력의 현실이 온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당사자’들이 한국의 대상화된 오리엔탈리즘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활용하는 상황에서, (4B 운동으로 과대대표되는)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복잡한 역학에 대해 논의하기란 매우 어려워진다. 위에서 이야기한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대상화에 비판 역시 너무나도 손쉽게 무력해지고 만다. 당사자들이 맞다는데 네가 왜? 너는 누군데?

3.

글쎄, 나는 한국에서 여성학을 전공한 페미니스트인데…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나는 4B 운동에 대한 순진하고도 잔인한 질문들을 마주할 때마다 어떻게 대답할지 망설인다. 한편으로, ‘페미니즘 리부트’를 온몸으로 통과한 연구자로서, 4B 운동이 리부트 이후 대중화된 한국 페미니즘 운동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그 운동의 슬로건이 함의하는 정치적 효과는 무엇인지 이야기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4B 운동의 가장 열렬한 주창자들이 여성을 가부장제의 근원적이고도 유일한 피억압자로 위치시킴으로써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젠더비순응적 존재들에 대한 혐오를 적극적으로 재생산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4B 운동의 트랜스포비아는 최근의 초국적 바이럴로 인해 유입된 새로운 추종자들이 믿는 것처럼 4B 운동의 핵심 레토릭에 외재적이지 않다. 다시 말해, 4B 운동의 슬로건은 표면적으로 트랜스혐오와 무관해 보일지 모르나, ‘~을 하지 않는다(非)’는 부정문은 이미 어떤 행동을 수 있는 주체를 전제하며, 그 주체성의 범주에서 젠더 비순응적 존재들은 애초에 배제된다. 결국 이성애 규범성과 여성 억압에 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4B의 슬로건은 ‘운동’으로 세력화되는 과정에서 일종의 규제적 이상으로 고착되었고, 그 과정에서 누구를 주체로 포함하고 누구를 배제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경계 획정의 정치로 나아갔다. 이를 고려할 때, 4B 운동의 한국적 맥락과 의의를 밝히는 대부분의 영문 논평(칼럼 보기)이나 서구 언론 보도 내의 한국 페미니스트 활동가 인터뷰 코멘터리(기사 보기, 기사 보기)에서 4B 운동의 트랜스혐오적 경향에 대한 언급이 (Them을 제외한다면) 놀랍도록 부재한다는 사실은 거의 으스스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4B 운동의 초국적 바이럴과 “세계적 인정”은 한국 내의 트랜스혐오가 더욱 활개치도록 부채질하는 역할을 한다. 앞서 이야기한 한국 담론장의 후식민적 역학을 고려한다면 이와 같은 인정의 구도를 더더욱 끊어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내부’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 나는 내 발화가 점유하는 특정한 담론적 위치와 그러한 담론이 만들어내는 효과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레이 초우(1993)는 코스모폴리탄 디아스포라적 공간에 위치한 지식인들이 ‘본토’의 ‘타자’를 대변하는 행위가 역설적으로 그들 자신의 학문적 위치와 상징 자본을 강화하는 메커니즘을 비판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초우는 서구 아카데미아에서 활동하는 비서구 출신 지식인들이 자국 또는 출신국의 문제를 비평할 때, 그 비평이 서구 청중에게 소비되는 과정에서 해당 지역의 타자성이 공고해지고, 비평자 그 자신은 그 타자성에 대한 ‘진정한 해석자’로서 특권적 지위를 획득하게 되는 모순적 상황을 포착한다. 이는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이 역설적으로 또 다른 형태의 오리엔탈리즘—이번에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정당화된—을 재생산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는 초국적 담론장의 불균등한 권력 관계와 지식 생산의 정치경제학에 따라 기존의 위계질서와 권력을 재생산하게 된다.

따라서 내가 미국 대학의 리버럴한 청중을 상대로 한국의 4B 운동의 트랜스혐오를 힘주어 비판하는 것은 자칫하면 4B 운동에 대한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대상화를 꾸짖는 것만큼이나 상쾌한 일이 될 수 있다. 트랜스혐오를 일삼는 한국의 4B 운동, 그에 대한 교차성 페미니즘 관점의 비판, 서구 아카데미아에서 트랜스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계몽된’ 한국인 페미니스트 연구자인 나! 심지어 나는 한국에서 여성학을 전공한 배경 덕분에 일말의 전문성까지 부여받게 된다. 워낙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모여 있기에 각자의 경험적 지식에 어느 정도의 인식적 특권이 부여되고 또 존중되는 다원주의적 대화 환경에서 한국 페미니즘의 ‘진정한’ 대변자이자 비판자라는 특권적 위치를 잠시나마 점유하는 것은 유혹적이다. (내 부족한 영어로 인해 이런 스탠스를 취한 적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음을 고백해야겠다.)

그러나 이렇게 “피억압자와의-연대를-통한-피해자화”를 통해 형성된 “대항적 관점”(Chow 1993: 17)으로 한국 ‘본토’와 나 사이의 본질적 관계를 상정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의 맥락과 나를 분리시킨다. 즉, ‘나’와 ‘그들’을 구분짓는 순간, 그리하여 4B 운동이 서구 리버럴리즘과의 공명 속에서 손쉽게 혐오로 기각되는 순간, 그 비판은 더 이상 한국의 특정한 맥락에서 작용하지 않고 오히려 그 맥락을 지우는 기제로 작동할 위험을 안게 된다. 내가 4B 운동에 대한 질문에 답할 때 ‘they’와 ‘we’를 혼란스럽게 오가는 것도 바로 이러한 곤경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단순히 외부에서 비판을 던지는 ‘지식인’이 아니라 그 내부에서 형성되고 싸우고 고민하며 살아온 주체로서 발화하고 싶다. 이는 단순히 내가 페미니즘 리부트를 거치면서 정체성을 형성한 연구자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비판하고자 하는 현장에 대해 판단이 아닌 이해가 선행하는 태도로 접근할 설명책임(accountability)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지난 10년 간의 궤적을 어떻게 평가하고 기록할 것인지의 문제와도 이어진다. 반격을 넘어 반동의 거센 파도를 맞고 있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이 운동의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가? 대중화된 페미니즘의 급진적 외침과 분열적 전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겨난 배제와 혐오의 문제들을 어떻게 의미화해야 하는가? ‘처음부터 그렇게 했으면 안 됐다’고 결과론적으로 비판하는 것, 반대로 그 모든 문제적 양상을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다고 정당화하는 것 모두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일 테다. 페미니즘 리부트가 한국 사회에 던진 충격과 그 운동이 대중적 지지를 얻기 위해 취했던 전략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겨난 내부의 균열과 갈등을 책임 있게 설명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트랜스혐오와 같은 배타주의가 강화된 과정을 비판하고 반성하되, 그것은 단순한 과거 청산이 아니라 리부트 이후의 대중화된 페미니즘 운동이 새로운 연대의 정치를 만들어가기 위한 윤리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 이는 운동의 일부로서, 그 운동으로부터 형성된 정치적 주체로서 내가, 그리고 우리가 천착해야 할 문제이다.

결국 이 딜레마는 단순히 4B 운동의 ‘결함’을 ‘해외’의 청중들에게 말할 것인지, 말하지 않을 것인지, 또 그렇게 함으로써 4B 운동의 초국적 확산을 지지할 것인지, 방해할 것인지—애초에 ‘본토’의 증언으로 초국적 확산 및 변형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자문화중심적 오만이다—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주의적인 포함-배제의 논리가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담론 환경에서 4B 운동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그렇게 함으로써 바로 그 서구중심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인식틀을 어떻게 탈구축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어쩌면 그 ‘어떻게’는 발화자를 특권적 위치에 올려놓는 비판이 아니라 바로 그러한 비판이 작동하고 해석되는 담론장의 복잡한 역학과 각자의 위치성을 직시하는 대화적 실천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대화는 통쾌하고 후련하기보다 영 찝찝하고 불편할 것이다. 한국과 미국 사이의 불균등한 권력 관계, 한국 페미니즘 내의 각축하는 담론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디아스포라적 위치에 놓인 나의 곤경을 성찰적으로 드러내며 대화를 시작하는 것. 바로 그것이 지금 내가 이 글을 통해서 시도했던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한국인들이 ‘외국인’에게 줄기차게 던지던 그 질문, “두 유 노?”의 발화 방향은 이제 정반대를 향하고 있다. 이제 ‘외국인’들이 한국인에게 묻는다. “두 유 노 4B?” 한국이 K-팝, K-드라마, K-뷰티, K-푸드에 이어 이제는 K-페미니즘까지 수출하고 있는 것이다. 늘 영어나 프랑스어로 된 ‘서구’의 페미니즘 이론에 의존하며 번역서를 목말라했던 우리 한국 페미니스트들에게 이런 상황 전환은 언뜻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할 만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희진이 지적했듯, 접두사 ‘K-’가 내포하는 우월감은 뿌리 깊은 열등감에 기반한다. “‘한국적인 것’은 세계적인 것, 즉 서구의 시각에서 규정된 것을 한국인들이 수용한 식민주의적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서구가 자신은 보편이고 우리를 ‘K’라고 한정한 것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고 ‘주체적으로’ 소비한다.”(정희진 2024) K-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수출품’의 등장은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세계적 인정’인 동시에, 그 인정 자체가 여전히 서구중심적 시선에 의해 규정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준다.

‘K-페미니즘’에서 오리엔탈리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해석틀을 벗겨내는, 즉 ‘탈식민화(decolonizing)’하는 일은 곧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지난 10년을 책임 있게 의미화하는 작업과 맞닿아 있다. 4B 운동을 한국 사회의 극단적 가부장제에 대한 필연적 저항으로 단순화하거나 반대로 트랜스혐오적 운동으로 일축하는 것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불균등한 글로벌 담론장에서 발화자의 특권적 지위를 확보하고, 더 나아가 한국의 후/식민적 지위를 공고히하는 데 봉사하기 쉽다. 서구의 관심이 한국 페미니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것도 그 결함을 폭로하는 것도 아니듯,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다층적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그것이 초국적 담론장에서 단일한 상품으로 소비되는 구조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일이다. 앞으로 4B 운동이 얼마나 더 확산될지, 또 어떻게 변형되어갈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할 때만이 우리는 진정한 초국적 페미니스트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페미니즘 리부트가 남긴 복잡한 유산을 토대로 앞으로 나아갈 길을 함께 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 Cheng, Xiaoyi. (2023). “6B4T in China: a case of Inter-Asian feminist knowledge negotiation and contestation through translation.” Asia Pacific Translation and Intercultural Studies, 10(2), pp. 125–140.
  • Chow, Rey. (1993). Writing Diaspora: Tactics of Intervention in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 Indianapolis and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 홍보람 (2021). “한국 ‘여성’ 동인문화와 페미니즘의 관계에 대한 연구: 탈BL(Boys’ Love) 담론을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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