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rls Can Do Anything”의 정치학

예원

1.

2018년 2월, 한 걸그룹 멤버의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한 장의 사진 속 ‘girls can do anything(소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이라는 휴대폰 케이스 속 문구를 두고 벌어진 ‘메갈’ 색출 사건[1]은 ‘소녀(girl)’들에게 한국 사회에서 ‘무엇이든’ 할 경우 ‘메갈’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소녀’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트위터,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자신들의 소셜 미디어 프로필에 ‘girls can do anything’을 걸어놓으며 ‘내가 메갈이고,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고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스쿨 미투’ 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여자고등학교의 창문에서 ‘we can do anything(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으로 전유되며 매우 강력한 정치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실제로 이제까지 수십 년 동안 묵인되어왔던 교사들의 일상적인 성폭력이 이들의 트윗과 포스트잇을 통해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기 때문이었다.

[1] 일부 (남성)팬들은 ‘girls can do anything’이라는 ‘페미’ 문구가 새겨진 휴대폰 케이스를 사용하는 이 아이돌 연예인이 ‘메갈’/ ‘페미’임을 의심하여 해명을 요구하는 등 악플을 달고, 더러는 ‘메갈’임을 확신하고 앨범을 불태우기도 했다. 이와 같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아이템’은 소설『82년생 김지영』이 포함되는데, ‘girls can do anything’이『82년생 김지영』과는 다른 맥락을 지닌 점은, 이 문구가 새겨진 휴대폰 케이스는 이 연예인이 글로벌 패션 기업으로부터 협찬을 받은 물품이었다는 것이다. ‘메갈’이라는 낙인과 ‘메갈’에 대한 공격이 실제로 페미니스트인지, 혹은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작동한다는 점이 이 사건을 통해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소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어떻게 보면 매우 당위적이지만, ‘소녀’들은 자신들이 그렇지 못한 현실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소녀’들이 스스로 사용하는 ‘girls can do anything’은 소녀들이 무언가를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현실에 저항하는 ‘소녀’들의 용기와 자신감, 변화의 의지를 함축하며 매우 강력한 정치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십대 여성들의 정치화는 페미니스트 임파워링을 배경으로 한다. ‘메갈리아’, 강남역 살인 사건, ‘미투 운동’으로 이어져 온 페미니즘 리부트 혹은 페미니즘 대중화의 흐름은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을 가장 뜨거운 이슈로 부각시켜왔고, 여성들로 하여금 페미니즘이 ‘나의 문제’이며 자신이 ‘여성’이라는 젠더화된 범주에 속해 있음을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유사한 맥락에서 십대 여성들 또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겠다’, 혹은 ‘나는 페미니스트다’라는 감각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와 같은 페미니즘 흐름의 초창기에 유독 십대 여성들은 페미니스트 주체로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2.

사실 십대/여성이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 그리고 정치적 집단으로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새로운’ 페미니스트 주체를 성인으로 상정하는 경향과, 십대/여성들이 처한 환경적 조건을 고려했을 때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보통 여성학 수업 등의 대학 교육이나 여성주의 동아리, 여성주의 운동 단체를 통해 전승되어 왔기 때문에 십대 여성들뿐만 아니라 성인 여성들 또한 학문적 또는 실천적으로 페미니즘을 접하고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대개 공교육 제도를 중심으로 조직되는 십대 시절을 보내는 십대 여성이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더욱 제한적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학업 외의 정치적 활동이 거의 불가능하며, 허용되지 않는 십대 여성들의 삶의 조건은 십대 여성들과 페미니즘을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했던 것이었다.

페미니즘의 성인중심성은 2010년대 중반 이후 ‘페미니즘 대중화(정희진, 2018)’로 명명된 새로운 페미니즘의 흐름에서도 드러나는데, 페미니즘 의제화를 이끄는 새로운 페미니스트 주체가 ‘2030’세대의 ‘젊은’ 여성들로 지칭되며 십대 여성들이 페미니즘 운동의 주체로서 가시화되지 못하는 경향이 존재했다. 십대 여성들은 자신이 십대인 것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젊은 (성인) 페미니스트에 암묵적으로 포함되곤 한 것이다. 그러나 2018년, 십대 여성들은 스스로를 가시화하며 새로운 정치적 집단으로 부상했다. 앞서 언급한 ‘girls can do anything’과 ‘스쿨 미투’는 이처럼 ‘성인’ 여성에게 할당되던 페미니스트 주체의 자리에 십대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가져다놓은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십대 페미니스트’의 등장은 2010년대 중반 이후 디지털화된 방식으로 페미니즘 지식과 실천 양식이 대중화된 것과 연동한다. 기존의 학계, 운동 집단 등을 기반으로 가지고 있던 페미니스트들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페미니스트들이 온∙오프라인에 속속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페미니즘은 여성학 강의실이 아니라 ‘메념글’[2], 트위터의 ‘띵문’[3], 온라인 서점의 순위권에 오른 페미니즘 도서들, 웹툰, 유튜브 채널 등등 온라인을 통해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이는 특히 오프라인에서의 학업 외 활동이 쉽지 않은 십대 여성들이 일과 시간의 틈틈이 페미니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온라인에서 페미니즘을 학습하고 페미니스트가 된 십대 여성들은 ‘새로운’ 실천양식을 가진 페미니스트 집단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2] ‘메갈리아’와 ‘개념글’의 합성어로 온라인 사이트 ‘메갈리아’에서 추천을 많이 받은 글을 의미한다.
[3] ‘명문’을 의미하는 인터넷 신조어.

3.

‘스쿨 미투’ 운동의 기반이 트위터였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4] 십대 페미니즘 운동이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소셜 미디어는 십대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적인 통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십대 여성 개인이 오프라인에서 가지고 있는 자원과 비교적 무관하게 페미니즘 운동의 주체로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면서 십대 여성들은 소셜 미디어를 경유하여 개방적이고 제도화되지 않은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소셜 미디어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대중화되면서 소셜 미디어를 놀이 공간이자 자아가 재구성되는 장으로 삼아온 십대 여성들은 트위터라는 하위 공론장에서 페미니즘과 중첩하게 되었다. 취미생활이자 문화적 양식인 ‘덕질’의 중심지이며, 또래 집단의 놀이 공간으로서 소셜 미디어에 거주해 온 십대 여성들은 덕질을 하거나 놀이를 하는 것처럼 페미니즘을 ‘한다(doing)’.

[4] 스쿨 미투 운동은 대개 트위터에서 ‘OO여고 스쿨미투’와 같은 형태의 익명 계정이 학내 성폭력을 고발하고, 그 계정이 공론화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2018년 트위터 코리아의 사회 분야 키워드 1위가 스쿨 미투였다는 점은 이와 같이 스쿨 미투가 트위터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트위터에서의 페미니즘 이슈 중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것이 스쿨 미투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셜 미디어에서 접하는 페미니즘 관련 글이나 영상, 이미지(짤), 웹툰 등을 보면서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계정을 만들어서 ‘영업’하거나 트윗을 올린다. 물론 온라인에서만 페미니즘을 ‘하는’ 것은 아니다. 트위터에서 많이 회자되는 책을 읽기도 하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학교에서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온오프라인의 수행들은 십대 여성들이 스스로도 ‘페미 한다’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페미니즘 ‘실천’이라고 하기에는 딱 알맞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정치적 입장인 동시에 생활양식으로 페미니즘을 채택함으로써 삶의 방식을 재조직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다양한 방식과 내용의 페미니즘 ‘하기’는 십대 여성들이 자신들의 삶이 젠더화된 것임을 인식하고, 삶의 조건들 속에서 개인의 행동, 욕망, 취향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이들의 ‘하기’는 사실상 탈(脫)-하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탈덕’, ‘탈코르셋’ 등 기존에 이들의 삶을 젠더화된 양식으로 구성하던 것들을 ‘하지 않는’ 것이 페미니즘 ‘하기’의 주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개인은 욕망과 취향, 정치적 지향이 충돌하는 전쟁터(battleground)가 된다. 개인의 몸을 통과하여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탈-하기’로서의 페미니즘은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 ‘탈’하기로 결정했음에도 어쩔 수 없이 남아 있는 개인의 욕망과 취향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갈등을 빚어내는 경우도 발생한다.

4.

십대 여성들 각자가 놓여 있는 십대/여성/학생/페미니스트 등등의 주변적인 조건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자원 없음’의 상황은 십대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하고, 페미니스트가 되어가는 과정을 구획한다. 특히 이는 소셜 미디어 외에 정치적 자원이 부재한 것과 연결되는데, 십대 여성들이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십대 여성들은 익명적 정치적 주체로서 현실의 조건에 구애 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인 소셜 미디어로 수렴된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의 특성상 페미니즘 지식들은 소셜 미디어를 경유하며 ‘정보’로서 파편화된다. 소셜 미디어의 콘텐츠들은 원본을 재/가공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지식이 가지고 있는 맥락을 삭제 또는 누락한 채 유통가능한 ‘정보’로 재탄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보에 접근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식을 구조화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또한 소셜 미디어의 차단과 블락, 선택적 친구/팔로우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배타성은 소셜 미디어의 공론장과 개인의 타임라인이 특정 의견과 정보에 의해 과잉대표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예컨대 ‘알티(RT)를 탄다’고 표현되는 다수의 리트윗은 각 계정의 타임라인에 리트윗이 게재되면서 트위터 공론장을 가득 채우지만, 이는 사실상 주목을 받는 것에 성공한 하나의 트윗으로만 소셜 미디어의 공론장이 채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어떤 의견이 트위터 공론장에서 발화되더라도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되거나 다수의 의견과 배치될 경우에는 “텅 빈 운동장”에서 소리치는 것과 같이 아무런 힘을 얻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파편화된 페미니즘 ‘정보’들과 공론장의 불균형한 배치는 페미니즘 활동이 트위터에 한정되었을 때 십대 여성들의 선택과 결정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미 트위터에서 수많은 페미니즘 정보들을 접했을지라도 페미니즘에 대해 더 알고 싶다거나 페미니즘과 관련한 트위터 외의 활동을 하고 싶을 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난감함을 가지게 한다. 또한 과잉대표되는 소수의 의견들을 통해 페미니즘을 학습함으로써 페미니즘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이 제한되기도 하는 것이다. ‘통과의례’가 되고 있는 소셜 미디어의 ‘래디컬 페미니즘’의 규범들을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탈덕’, ‘탈코르셋’을 할 것인지, MTF 트랜스젠더를 여성으로 인정할 것인지, 게이와 연대할 것인지 등등 ‘래디컬 페미니즘’이 제시하는 의제에 대해 입장을 설정하는 것으로 자신이 어떤 페미니스트인지 정의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활동하는 소셜 미디어의 페미니즘 ‘판’이 이와 같은 의제들에 대한 입장을 중심으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이때 각각의 의제들에 대한 일정한 입장을 지니지 않을 경우 ‘내가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닌가?’라는 의심을 스스로에게 가하도록 하며 그 규범에 들어맞지 않는 생각이나 욕망, 취향을 가까스로 폐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5.

소셜 미디어에서의 페미니즘 공론장이 이와 같은 한계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셜 미디어가 십대 페미니스트들의 주요 활동 무대이자 레퍼런스가 되고 있는 까닭은 십대/여성/학생/페미니스트 등등 이들이 놓여 있는 중층적인 사회적 조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회적 공간인 학교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기에 안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없다. 또래 친구들로부터 ‘남혐(남성혐오)’하는 ‘메갈년’으로 낙인찍혀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되거나 ‘진지충’이라는 야유를 듣기도 하며, 수업 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메갈은 남자 일베”라고 말하는 교사들이 산재한 학교에서 십대 여성들이 페미니스트이자 여학생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여러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만 한다.

따라서 취향과 마음과 정치적 지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팔로우 관계를 맺고 서로가 재생산하는 정보들 가운데에서 취사선택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는 십대 여성들에게 ‘페밍아웃(페미니스트+커밍아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 된다. 또한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것으로 구성되는 ‘학생’으로서의 일상과 정치적, 경제적 시민권으로부터 박탈되어 있는 ‘미성년’으로서의 위치는 이들의 활동 영역을 더욱 소셜 미디어에 한정될 수밖에 없도록 한다. 십대 여성들에게 소셜 미디어는 부모와 학교의 통제 및 훈육, 또래 문화의 압력으로부터 분리되어 “진짜” 자신을 마음껏 구성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세계인 것이다.

그렇다면 온라인이 비록 제한적이지만 십대 여성들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자유로운 페미니스트 정체성 형성의 공간인가? 학교는 십대 여성들에게 완벽하게 억압적인 공간인가?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는 것, 실천하는 것은 금지되거나 제한되고, 심각하게는 페미니스트라는 것이 낙인이 됨으로써 페미니즘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오프라인은 때로 미약하게라도 페미니즘을 ‘직접’ 해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경우도 있다. ‘페미 친구’들과 모여서 페미니즘을 대화의 주제로 이야기를 하거나 학교 내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며 세력화하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학교는 단순히 십대 여성들을 정치적 시민이 되지 못하도록 훈육하는 근대적 기관이 아니라, 온라인 세계 바깥에서 ‘말’과 ‘행동’으로 이루어진 페미니즘 ‘하기’를 가능하게 하는 물리적, 관계적 장소이자 자원이 된다.

6.

십대 여성들이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살아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세계는 각각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상호연관되어 있으며, 십대 여성들이 그 안에서 선택하는 행위들이 항상 각 주체의 완전한 ‘행위성’을 지니고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이들은 각자에게 주어져 있는 선택지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들을 택하고, 그에 따라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 페미니즘을 하기 위한 미세한 차이를 지닌 수행들을 반복한다. 이는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2007)가 동일하지 않은 반복들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차이와 균열이 생성된다고 말한 것처럼, 십대 여성들의 페미니스트가 되고자 하는 반복되는 수행들이 미세하게 어긋나면서 규범과 구조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십대 여성들이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서 하는 행위들, 결정해야 하는 선택지들은 모두 개인의 문제로 귀결된다. 페미니즘이 스마트폰의 소셜미디어 계정에서, 몸과 취향에서, 나의 생각과 결정을 통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차원에서 실패하게 되는 경우(이와 같은 실패는 너무나도 흔하게 발생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선언하며 그러기 위한 조건들을 요구하는 십대 여성들을 개인으로 고립시키지 않으며 이들이 더 많은, 더 나은, 또는 기존과 다른 ‘무엇’을 상상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논의를 함에 있어서 이들에게 한정된 선택지를 제시하고 있는 ‘틀’에 대한 질문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참고 문헌

  • 권김현영·루인·정희진·한채윤·<참고문헌 없음>준비팀(2018), 「피해자 정체성의 정치와 페미니즘」,『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서울: 교양인. 202-238쪽.
  • 조남주(2016), 『82년생 김지영』, 서울: 민음사.
  • Butler, Judith (2007). Gender Trouble: Feminism and the Subversion of Identity. Routledge, 조현준 옮김(2008), 『젠더 트러블』, 파주: 문학동네.

글쓴이

Fwd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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