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SF 함께 읽기] 2회 _ 옥타비아 버틀러, 「블러드 차일드」

[페미니즘 SF 함께 읽기] : 페미니즘 SF소설을 읽고 토론하는 페미니스트들의 독서모임입니다. Fwd 필진 일부가 비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모임에서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토론을 정리해 공유합니다. 격월로 올라올 예정입니다.

페미니스트 SF읽기 두 번째 모임은 옥타비아 버틀러의 단편 「블러드 차일드」를 읽고 모였습니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백인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SF계에서 문학적 성취와 상업적 성공을 모두 거둔 흑인 여성 작가라는, 독특하면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그는 페미니스트로서 인종과 젠더 문제를 작품에 완벽하게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작가는 「블러드 차일드」를 아주 다른 두 존재 간의 사랑 이야기이자, 소년의 성장 이야기이고, 또한 남성 임신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합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행성에서는 테란(인간)과 틀릭이라는 종족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테란은 틀릭의 영역에 거주하며 가족 단위로 틀릭에게 보호를 받고 있는데요. 이에 대한 대가가 무엇인지는 이야기가 진행되어 감에 따라 매우 충격적인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바로 자신의 몸을 틀릭 유체의 숙주로 제공하는 조건이지요. 틀릭의 유체는 테란의 몸을 파먹으며 자랍니다. 작품의 주인공인 테란 소년 ‘간’은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는 틀릭 ‘트가토이’의 아이를 가지느냐, 아니냐의 문제를 두고 갈등하게 됩니다. 

!! 대담 내용은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

1. 옥타비아 버틀러

상상: 「블러드 차일드」가 수록된 단행본 『블러드 차일드』에는 SF 장르가 아닌 것 같은 소설도 좀 있었죠?

만두: 네, 책머리에 인용된 작가의 말 가운데 사람들은 나를 ‘SF 작가’라고 규정하지만 나는 작가일 뿐이다,라는 말이 있기도 했고요. 

오온: 원래 옥타비아 버틀러는 장편을 주로 쓰는데요, 이번에 읽은 단행본은 작가의 단편들을 묶은 책입니다.

만두: 저는 소설들을 읽으면서 작가가 흑인 여성이었기 때문에 이런 통찰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많았는데요. ‘흑인’ 작가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한지 잘 모르겠지만, ‘내부의 외부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보였어요. 특히 그가 소설에서 친밀성을 다루는 방식이 인상 깊었습니다.

상상: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요?

만두: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 관계의 복잡성을 드러낼 때요. 버틀러의 소설을 읽으면 단지 젠더의 차이뿐만 아니라 인종, 계급 등 다양한 관계들을 상상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복잡한 관계는 다양한 억압이 교차되는 지점에 위치하는 사람이 아니면 떠올리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건을 볼 때, 하나의 권력 축만을 상상하기 쉬운데 그런 다소 뻔한 해석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2. 재생산과 SF소설 연결짓기

오온: 본격적으로 「블러드 차일드」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 소설은 지구인이 다른 행성으로 이주했다는 설정인데, 주인공 ‘간’과 그의 가족이 지구에서 노예 혹은 완전한 피종속인 신분이었음이 암시됩니다. 새로운 행성에 정착한 테란(인간)들은 틀릭 종의 재생산에 인간 몸을 숙주로 제공해 주는 동시에 틀릭의 보호를 받으며 생존해 나가고 있는데, 사실 이 관계는 일방적인 지배-피지배라기보다 서로가 서로의 생존에 가장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상호 의존적인 성격을 띠어요. 과거 지구에서의 피지배 신분과, 현재 행성에서의 상호 의존 관계, 혹은 상호 착취 관계가 암시적으로 대비되고 있다고 보았어요. 이 점은 작가의 후기를 읽을 때 더 분명해졌는데, 이 소설을 “노예 이야기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이 소설은 노예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다른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건 남성의 임신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못 박죠. 

새벽: 오랫동안 임신/출산은 여성의 문제이고, 여성이 여성의 몸을 통해서 임신/출산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졌죠. 그래서 남성의 임신을 SF적 상상력으로 보아 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미 기술의 발달로 여성의 몸 밖에서 수정이 가능한 상황이죠.

선녀: 상상이 현실에서 구현되는 것이 불가능할 때, 그 상상은 현실에 대한 하나의 비판으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반면 상상이 실제로 현실이 되면 상상은 구체적인 현실에 정착해 다양한 사회적 맥락에 놓이게 됩니다. 가령 현재 ‘리얼돌’이라고 불리는 사람 크기의 섹스토이는 그 현실화 가능성이 낮았을 때에는 상대방의 동의는 안중에도 없이 강간을 자행하는 남성들을 비판하는 상징물로 활용되었죠(차라리 저 남성들에게 섹스할 인형 같은 걸 줘버리자는 식으로). 반면 ‘리얼돌’이 현실이 되어 복잡한 사회망에 들어오니까, 지금과 같은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많은 여성들이 리얼돌에 동일시하면서 현재 강간 문화의 끔찍함을 계속해서 피부로 느끼게 된다든지.

새벽: 예전에는 달에 가는 것이 뜬구름 잡는 일로 받아들여지던 때가 있었잖아요. 근데 이런 건 권력과 기술, 국력에 따라서 현실 가능성이 다르잖아요. 러시아와 미국은 달을 탐험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졌기 때문에 상상이 아니었죠. 사실상 인공 자궁도 뜬구름 잡는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거죠. 이런 측면을 본다면 여성의 월경/출산능력이 여성의 경험뿐만 아니라, 기술력과 함께 이야기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상상: 지난번에 읽었던 『여왕마저도』라는 소설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어요. 기술을 통해 월경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도래했을 때, 모든 여성이 월경을 하지 않기로 선택한 건 아니었다는 점도 인상 깊었어요.

오온: 혹시 에일리언이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영화에서 인간 남성이 외계인—자궁 형상의—의 촉수에 쏘여 외계인 태아를 수태하게 됩니다. 이 수태는 모든 비극의 시작이고, 영화는 이 자궁-외계인에 의한 남성-몸 침입을 굉장히 공포스러운 일로 그리죠. 버틀러가 이 영화를 보고 블러드 차일드를 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에서도 인간 남성을 임신시키는 쪽은 틀릭의 암컷이에요. 사실 숙주가 되는 인간이 남성체이건 여성체이건 물리적으로는 상관이 없는데 주로 남성체를 선택하는 이유는, 여성체는 인간 종의 재생산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죠. 틀릭의 유체를 낳는 과정은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는, 꽤나 리스크가 큰일이고요. 에일리언이 대중문화에 남성 임신이라는 테마를 공포스럽고 파멸적인 이미지로 각인시켰다면, 「블러드 차일드」는 이 여성체 외계인과 남성체 인간 사이의 생식 관계를 공포스러운 것으로만 다루지 않죠. 이 과정에서 주인공이 성장하기도 하고. 이종 간의 관계가 일방적인 착취가 아니라, 공존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담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그 관계가 고통스러울 수 있겠지만, 아니 분명 고통스럽겠지만, 그래도 공존하면서 서로에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요. 만두가 이야기한 것처럼, 하나의 팩터만을 생각해서 이것을 전복해야겠다, ‘남성들아 임신 좀 해봐라!’와 같은 단순한 미러링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상상: 재미있는 것은 외계인이 지구 소년의 몸 안에 침을 삽입해서 임신시키는 설정인데요. 저는 이 과정이 섹슈얼함이 삭제된 임신 과정이라고 느껴졌어요. 이 과정 안에서는 섹슈얼리티와 재생산이 독립된 컨셉이었던 것 같아요. 임신과 출산하는 과정을 목격하고서 느낀 감정이 ‘끔찍함’이었던 것도 그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죠.

만두: 하지만 재생산을 위한 틀릭과의 관계에서 정말 섹슈얼리티가 배제됐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는데요. 저는 알 섭취가 섹슈얼한 쾌락에 대한 은유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인간들은 틀릭의 알을 먹으면 긴장이 풀리고 나른해진다는 식의 묘사가 있었잖아요. 틀릭을 미워하는 간의 형조차도 알은 받아먹죠. 그런데 ‘간’을 사이에 둔 트가토이와의 긴장 속에서 간의 어머니인 리언은 그 알을 거부하고요. 

태양: 저도요. 틀릭이 쏘고, 그것에 대하여 저항하는 과정에 어떤 섹슈얼한 긴장상태가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의 출산과 관련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요? ‘나른하다’, ‘“미안해요”라고 속삭였다’라는 식의 저항과 수용의 과정까지요. 

오온: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랄까? 주인공이 트가토이와 짝을 짓기로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이 쭉 그려지잖아요. 처음엔 간은 그저 공포스럽고 왜 트가토이와 그런 관계가 되어야 하는지 납득을 할 수 없어하다가, 왜냐하면 어린 소년이거든요. 그러다가 다른 인간의 출산 장면을 목격하죠. 어린 틀릭의 숙주가 인간의 몸을 안에서부터 먹어 나오는, 끔찍한 출산 장면을 직접 목격하면서 간은 굉장히 충격을 받죠. 자신이 해야 할 임신과 출산이 그렇게 피가 낭자하는 공포스러운 일이라는 걸 처음 깨닫게 된 것이죠. 그리고 숨겨두었던 총을 꺼내들고 트가토이를 쏘아야 할지, 어떻게 해야 자신이 보호를 받을 수 있을지 갈등을 겪다가 결국 임신 과정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서사가 마무리되죠. 공포라는 감정을 부인하지 않되, 공포와 마주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태양: 사실 그렇게 마음을 먹게 된 것은 자기가 하지 않으면 자기 누나가 하게 될 것이어서. 

상상: 누나를 구하는 선택이었죠. 

태양: 맞아요. 그런데 누나를 구하는 것도 구하는 거지만, 간의 입장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트가토이에게 보호를 받았고, 자기가 생각하는 게 사랑인지 친밀감인지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자라났거든요. 저는 스톡홀름 신드롬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웃음).

만두: 무엇이 사랑인가? 질문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조금 납작하게 보면, 전형적인 로맨스 도식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데요. 그게 외계인과 인간 남성의 관계이다 보니 ‘얘 괜찮은 건가?’하는 생각이 들게 되잖아요. 그렇다고 “너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게 사실 다 기생이고 착취일 뿐”이라는 이야기라기보다 사랑과 의존, 착취에 대해서 좀 더 복잡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나 싶어요. 

3. ‘블러드 차일드’의 의미

선녀: 「블러드 차일드」라는 책 제목은 어떤 의미일까요?

오온: 사실 제목의 의미를 드러내는 부분이 내용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데요. 

선녀: 아이는 사실 언제나 피로 연결되어 있죠. 그 피라는 것이 가족, 혈통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의 피라는 의미에서요.

오온: 수태를 할 때에는 피로 이어지지 않지만, 외계인의 유체가 숙주의 살과 피를 말 그대로 먹으면서 성장하죠.

만두: 주인공 간이 누나는 자신의 젖을 빨아먹는 아이를 원하지, 피를 빨아먹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잖아요. 작가의 후기에서 말파리에 대한 공포가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내용을 읽고 말파리 구더기가 뭔지 영상을 찾아봤거든요. 그게 너무 끔찍하게 느껴져서, 내 안에서 무언가가 나를 먹으면서 성장하는 것에 대한 혐오는 굉장히 보편적인 혐오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임신의 경우라면, 태아가 영양 섭취를 모체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도록 만드는 기제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상상: 모 여초 카페에서 태아를 기생충이라고 표현해서 논란이 됐던 일이 떠오르네요.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여성들이 직접적으로 ‘기생충’이라고 불렀을 때 충격적인 일로 다가왔던 것이 기억나요.

선녀: 그래서 「블러드 차일드」라는 제목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것이 재미있지 않나 생각해요. 작가가 당시에 여성을 둘러싼 일들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문제화하고 있는지. 

만두: 작중에서 간이 출산이 피투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다가, 그 피투성이의 현장을 실제로 봤을 때 충격을 경험하고요. 그 현장을 실제적으로 묘사할 때 나오는 게 트가토이가 유충시절 그랬던 것처럼 피를 핥아먹는다든지, 테란의 피는 당신들에게 무슨 맛이냐고 묻는다든지, 붉은 인간의 살 위를 기는 유충의 모습을 묘사하는 식으로 피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계속 언급하는데, 제목과 연관이 있겠다고 느끼면서도 정확히 무슨 연관일지 유추가 조금 힘들었어요. 한국에서 혈족이라는 표현처럼 재생산과 피가 연관되어 있는 식으로 표현하는데, 다른 문화에서도 그런 것일까? 해외작품을 읽을 때 고민하게 되는 지점인 것 같아요. 내가 가지고 있는 언어의 이미지로 해석해도 되는 것인지? 선녀님 말씀처럼 글이 쓰인 배경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블러드 차일드」의 SF적 상상력은 작품이 쓰인 바로 그 현실 위에 위치지어져 있는 한편, 시공간을 넘어 글을 읽는 지금 우리의 현실에 밀려와 닿기도 합니다. 나아가 현실의 역사성을 초월한 새로운 상상으로 우리를 데려다주기도 하지요. 이번 모임에서도 수많은 현실의 이야기와 고민들이 탁상 위에 올라왔습니다. 이제와 한국의 여성들에게 당면한 현실이 된 ‘리얼돌’의 문제, 모계제와 근친상간과 같은 친족 재생산 관계를 둘러싼 서사의 모티프들, 그리고 섹슈얼리티와 남성성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들이요. 지면의 한계 상 작품과 밀접하게 연관된 내용만 글에 담게 된 데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모임에서 더 다양한 주제에 관한 소설을 읽고, 보다 확장된 논의가 펼쳐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정리: 낑깡, 만두

글쓴이

Fwd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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