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 페미니즘 대중화 시대의 학문 가이드

정민주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에디투스 2019) 표지 이미지

2015년, #나는_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를 시작으로 메갈리아의 탄생,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00계_내_성폭력, #미투, 낙태죄 폐지 등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페미니즘 대중화’는 대한민국 곳곳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울리는 과정이자, 여성운동의 현장이 발견되고 구성되는 역사였다.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이 책은 2016년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훑으며 현 한국사회에서 ‘다시’ 고전을 읽는 필요성을 설명한다. 고전의 가치와 의미, 그리고 정의는 “지금 여기의 현장”(김상애, 김은주, 유민석 외, 2019: 7)에서 증명된다는 시각은 이 책이 한국의 현실에 발 딛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상 속 차별과 분노-슬픔-용기 등 다양한 층위의 감정이 뒤섞인 현장 속에서 이론은 단절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내 경험을 읽어내기 위해 꼭 필요하다. 

총 6명의 저자가 참여해 12편의 고전을 소개하는 이 책은 크게 6개의 파트로 이뤄져 있다.  6개의 파트들은 각각 우리 사회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위 구호로서(‘여성은 인간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보다 섬세하게 읽어주는 언어로서(‘만들어진 여성을 부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다’, ‘가부장제의 숨은 전제를 들추다’), 그리고 대안적인 상상력으로서(‘페미니즘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하다’, ‘페미니즘 영역을 확장하다’, ‘차이의 감정으로 정의를 설명하다’) 유효하다. 각 고전에 대해 전문성을 가진 필진이 현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고전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지식의 대중화: 학문 가이드가 필요해!

페미니즘이 학문인 동시에 운동이자 세계관이라지만, 이론서를 아무런 도움 없이 이해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는 페미니즘 이론을 공부하기에 적합한 학문적 가이드 역할을 해준다. 필진들은 각 고전 당 20여 페이지 분량을 할애해 책 내용의 요약 뿐만 아니라 고전 저자의 삶과 책이 탄생한 사회적 맥락과 함께 소개한다. 이는 고전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한다. 게일 루빈이 발표한 「여성 거래: 성과 ‘정치경제’에 관한 노트」(1971) 와 「성을 사유하기: 급진적 섹슈얼리티 정치 이론을 위한 노트」(1982)를 연달아 소개하면서, 두 노트가 가지는 관점의 차이가 기인하는 저자의 삶과 당시 여성 운동의 경향을 설명하는 식이다. 

페미니즘의 초학제적인 성격을 고려해 고전이 놓인 학문적 계보를 언급하기도 한다. 낸시 초도로우의 「모성의 재생산」이 보충-비판하고 있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설명한 후, 해당 고전이 갖는 정신분석학적 의미를 해설하는 식이다. 주디스 버틀러의 경우, 정체성에 대한 그의 분석을 설명하기 위해 이리가레, 푸코, 위티그, 크리스테바가 각각 주장한 내용들을 도식화된 표(김상애 외, 2019: 231)로 한눈에 보여주기도 한다. 비록 압축적이고 거칠지만, 이런 친절한 설명들은 학문 가이드로서 제 역할을 다한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페미니즘 대중화’를 겪으면서 메갈리아 세대, 제 4물결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며 기자회견장에서, 광장에서 적극적으로 그리고 내가 속한 학교-가정에서, 일터에서 매일같이 페미니즘을 외쳐 왔지만 내가 느낀 제일 큰 감정은 고립감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는 위기 의식과 내 경험을 표현할 언어의 부족함, 연일 쏟아지는 자극적인 언론의 보도들은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책을 읽는 경험은 극단적이고 복잡하며 때로는 구질구질한 내 감정과 경험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게 도왔다. 역사적 맥락 속에서 우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 나로 회귀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참고 문헌

  • 김상애, 김은주, 유민석 외(2019).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 분당: 에디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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