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드백을_삽니다, 피드백 요구의 정치경제학

 🥟 만두

0. #피드백_요구, 새로운 운동 방식의 등장

“그 업체 아직도 피드백 안 했대.”라는 정보만으로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도 오늘날 온·오프라인 상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피드백’ 문화에 익숙한 사람일 것이다. 어떤 원인에 의한 결과가 다시 그 원인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의미하는 피드백이라는 용어는,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주로 행위자가 수행한 어떤 행위의 결과물에 대하여 영향을 받는 수용자가 내놓는 반응, 그 반응을 수렴하는 일, 그리고 그 반응을 반영한 새로운 결과물, 또는 반응에 대한 행위자의 입장 표명 따위를 통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흥미로운 현상은, 최근 문화콘텐츠와 상품, 나아가 정책에 대한 여성주의 관점의 비평이 ‘피드백’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기업 또는 정부의 어떤 행위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행위자(피드백을 요구받는 자)의 반응과 조정으로서 피드백을 요구하는 일(이하 피드백 운동)이 하나의 페미니스트 운동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의 운동은 특히 행위자와 수용자 간의 즉각적이고 긴밀한 소통이 가능한 디지털 공간에서 강한 영향력과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피드백 운동에서 적절한 피드백으로 평가되는 요소는 사건의 발생과 책임의 인정, 사건 경위의 해명, 사과, 재발 방지 대책과 같은 것들이다. 따라서 운동의 효과성에 대한 자체 평가 역시 이러한 요구 사항과 결과가 적절했는지에 치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피드백의 내용이 정당한지만 분석할 경우, 이와 같은 운동 방식 자체의 의미에 대해서는 충분히 논의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페미니스트 정치에서 어떤 문제에 대하여 ‘이해당사자’인 소비자 정체성을 기반으로 행위자(기업 또는 정부)와 소통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운동 방식이 내는 효과에 대하여 분석해보고자 한다.

1. 피드백 요구가 요구하는 자격

피드백 운동에는,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상품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소비를 통해 기업의 존속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소비자의 의견을 기업이 받아들일 의무가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따라서 문제를 제기하는 집단이 그럴 만한 자격과 정당성을 가진 이해당사자라는 사실을 행위자(기업 또는 정부)가 인정할 것을 먼저 요구한다. 피드백 운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주체는 ‘소통 테이블에 함께 앉을 만한 집단’으로서 적법한 구매자(소비자), 서비스 대상자라는 자격을 필요로 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피드백을 요구하는 집단은 자신의 지위에 대한 인정 여부를 행위자에게 맡기는 수동적인 지위로 전락하게 된다. 결국, 피드백 운동을 주요한 페미니스트 운동 전략으로 삼고자 한다면 운동의 자격으로서 일정한 지위를 획득하는 과정, 그 가운데서의 비용과 노동력에 대한 고려 역시 필요해진다. 

그렇다면 피드백 운동의 주체인 여성들이 ‘자격’을 획득하고자 투쟁해야만 하는 장은 어떤 곳인가? 우선, 피드백 운동은 그것이 소비자운동이라는 측면에서 시장이라는 장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구매력에 따른 힘의 논리이다. 따라서 시장 안에서 효율적으로 투쟁하기 위해서는 공통된 소비 욕구를 가진 더 큰 집단이 되어 목소리의 힘을 키울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피드백 운동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목소리는 점점 더 균일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통일된 해시태그를 달고, 같은 내용을 복사한 민원을 넣으며, 하나의 청원 게시글에 ‘동의’를 표현하는 식으로 ‘하나의 대상’으로서 피드백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안에 대한 다른 목소리는 행위자의 즉각적인 피드백이라는 일차적인 목적을 위해 묵살되기 쉽다.

한편 피드백 운동이 주로 인터넷을 통하여 이루어지기에 디지털 공간이라는 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성원이 기본적으로 남성으로 상정되는 남성중심적인 인터넷 환경에서, 여성들은 스스로가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증명하고  타인 역시 ‘아군인 여성’임을 검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와 같은 불안한 상황은 피드백 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들로 하여금 운동 과정에서 나타나는 주류와 다른 움직임들을 토론의 대상으로 여기기보다, 외부자의 개입으로 간주하고 방어하도록 만든다. 다른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실제로 상품을 구매하는 적법한 소비자가 아닐 것이라고 추정되는가 하면, 팬덤 문화 안에서 이루어진 운동일 경우에는 해당 팬덤 전체를 공격하려는 경쟁 상대, ‘타팬’일 것이라는 의심을 받게 되는 식이다. 이렇듯 서로의 의견보다 입장 자격으로서의 정체성을 검증해야 하는 환경은, 서로에 대한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의심과 색출, 망신 주기로 인해 운동의 참여자들에게 극도의 피로감을 유발한다.

2. 돌아오지 않는 피드백, 소통이 결렬될 때

어떤 문제를 인식한 페미니스트 집단이 피드백의 과정으로 진입하지 못했을 때, 즉 정당한 소통의 대상이라고 인정받지 못했을 때 지금의 페미니스트 운동은 쉽게 무력해지는 한계를 보인다. 즉, 여성이 가치 있는 소비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야로서 남성을 주요 대상으로 상정하는 문화콘텐츠 및 상품-게임, 스포츠, 각종 인터넷 하위문화 기반 콘텐츠 등-에 대해서는 여성주의 관점으로 비판할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남초’ 분야는 여성에 대한 혐오를 기반으로 집단적인 남성성을 구축하며, 여기서 만들어진 남성문화는 단지 제한된 분야에 그치지 않고 주류문화에 쉽게 편입되어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기에 오히려 반드시 여성주의 관점으로 비판이 이루어져야 할 부분이다. 

심지어 소위 ‘남초’ 분야가 아니어도, 피드백을 요구받는 행위자가 이미 성차별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남성 소비자는 과잉 대표된다. 대개 여성의 소비는 감정적이고 일시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반면, 남성의 소비는 합리적이고 확고한 의사 표현으로 여겨져 피드백에 반영되는 것이다. 따라서 적법한 소비자로서 인정받고자 하는 노력은 남성이라는 경쟁 집단이 있을 때 훨씬 더 어려운 싸움이 된다. 2016년 게임회사 넥슨의 성우 부당 해고 사건을 계기로 촉발되어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는 소위 ‘서브컬처계 메갈 색출’의 문제에서, 피드백 운동이 여성 소비자 비중이 높은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이와 같은 현실을 방증한다.

이처럼 소통이 결렬되는 상황에서, 어떤 여성들은 소통할 가치가 있는 소비자로 인정받기 위해 해당 분야에 더 큰 비용을 지불하고, 더 많이 진입하여 힘을 키우고자 애쓰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 소비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분야는 대개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배제와 혐오 문화가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분야에서 더 큰 비용을 지불하면서 남아있고자 결정한 여성들은, 성차별적인 문화로 인한 피해와 그것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무력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소비를 통해 성차별적인 문화를 존속시키고 있다는 비난으로 인한 이중고를 겪으며 변화의 의지와 동력을 소진하는 데에 이르기도 한다.

3. 누구를 위하여 피드백은 돌아가나?

일단 피드백 요구가 받아들여졌다면, 여성들이 소통의 테이블에 앉았다면 문제가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 성공적인 피드백 과정에 진입함으로써 이익을 취득하는 쪽은 행위자(기업)이기 때문이다. 에바 일루즈는 그의 저서 『감정 자본주의』에서, (현대 사회에서) “소통”은 바람직한 경영자와 유능한 사원에게 요구되는 감정적, 언어적 속성, 나아가 인성적 특질을 가리키는 개념이 되었다(에바 일루즈, 2010:46)고 지적한다. 경영에서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기업의 수행에 대한 반응을 수합하고 분석하는 노동이 필요한데, 피드백 운동에서는 이를 문제 제기자들이 수행한다. 행위자(기업)는 피드백 요구에 응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만으로 소통하는 기업 이미지라는 핵심적인 자본을 별다른 비용 지출 없이도 얻을 수 있게 된다. 

피드백 과정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내는 쪽은 전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들이며, 이 비용에는 노동뿐 아니라 감정 또한 포함된다. 피드백을 요구하고, 받아서 검토하는 과정에는 언제나 문제 제기자의 감정이 중심으로 들어와 있다. 즉 여성들은 행위자의 여성 혐오적인 행태와  성차별에 ‘분노하거나’, ‘불쾌감을 느꼈거나’, ‘실망하여’ 피드백을 요구한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소통 모델에서 감정 다루기가 중심적인 문제가 되고, 감정을 표출했다는 것 자체가 정당한 문제 제기로 여겨지는 현상에서 기인한다. 여성들은 문제에 대하여 집단적인 감정을 표출하고 유지해야 하는 필요를 떠안게 되는 것이다. 

피드백 운동에서 주체들의 감정이 중요한 문제로 등장할 때, 운동에 대한 관심은 피드백의 실효성과 이행 여부보다는 그 과정 안에서 문제 제기자의 감정이 적절하게 다루어졌는지(만족할 만큼 빠르게, 자주 소통하였는지)에 집중되게 된다. 또한, 감정을 올바르게 헤아렸는지 역시 중요한 평가의 요소가 된다. 가령 불법 촬영 문제에 대한 안일하고 편파적인 정부의 대응에 대하여 피드백을 요구한 2018년 ‘불편한 용기’시위의 사례에서, 시위자들이 내세운 감정인 ‘여성의 분노’를 ‘여성들의 원한’으로 오독하고 입장을 발표한 대통령에게 비판이 일었던 것이 예가 될 것이다(원문 보기). 감정이 적절히 다루어지지 않은 경우, 그것을 비판하기 위해 운동의 주체들이 직접 문제 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감정을 끌어올리고, 진단하고, 설명하는 노력을 수행하게 된다. 반면 문제 제기자의 감정이 적절하게 이해되고 다루어졌을 때는, 문제 제기자의 감정적인 충족으로 인해 실질적인 문제 해결 의지가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즉, ‘어쨌든 피드백을 내놓았으니 다른 기업보다 나으므로 계속 소비하며 관계를 유지하겠다’라는 선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특히 지속적인 피드백 운동이 어려운 상황에서 운동을 중단하였다는 비난으로부터 면피하고자 할 때에 쉽게 동원된다. 또한, 문제 제기자의 감정을 중심으로 가져오는 해결 과정은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주로 피해자)와 문제 제기자 집단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행위자가 사과와 피해보상 등을 직접적인 피해자에게 제공하기보다, 비용이 덜 드는 선택지로서 문제 제기자의 감정을 달래는 쪽을 택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4. 피드백의 값을 이야기하기

피드백 운동의 방식 안에서, 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자신들의 시간적, 금전적인 비용을 지출하며 적법한 소비자로서 인정을 받아야만 피드백의 과정으로 진입할 수 있다. 여기서 참여자들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주체는 피드백을 요구받은 행위자로, 피드백을 내놓거나 내놓지 않음으로써 문제 제기자들의 지위를 결정한다. 문제 제기자들은 능동적으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 방안을 강구하는 노력을 다하면서도 행위자의 인정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위치에 놓이게 된다. 

정당성을 인정받아 피드백의 과정으로 진입한 뒤에도, 그 과정을 지속하는 비용은 여성들의 노동과 감정으로 지불된다. 여성들은 문제에 대하여 분노하는 동시에, 언제든 사과를 받으면 상대를 용서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로 협상 테이블의 한 쪽에 줄곧 앉아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피로감을 견디는 것 역시 문제 제기자의 몫이다. 이렇듯 여성들이 차려놓고 여성들이 유지하는 테이블 위에, 행위자(기업)는 잠시 앉는 것만으로도 소통 능력의 인정이라는 가치를 획득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조리는 기업 대 소비자의 구도에서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한 안고 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드백 운동이 현재 페미니스트 운동에서 중요한 비중을 점유해가는 이유는, 소비자의 지위가 다수의 여성들이 쉽게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는 지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수가 주체가 되어 쟁취한 성과는 무엇보다 가시적이고 또한 고무적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인터넷상에서의 피드백 운동을 기존의 사회운동 방식과 비교하여 ‘진짜 운동’이 아니라고 폄하하거나, 여성들이 손해만 보는 장사라고 단정 짓는 편리한 결론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여성들이 피드백 운동에 지불하는 막대한 노동과 감정 자본이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에 주목하고, 그것을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지 고민을 시작하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피드백의 값’을 치르는 데에서 오는 여성들의 소진을 페미니스트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제대로 다룰 것인지, 이야기를 시작할 때다.


참고문헌 

  • 김수아(2017). “연결행동(Connective Action)? 아이돌 팬덤의 트위터 해시태그 운동의 명암”, 『문화와사회』, 통권 제25권, 297-336쪽.
  • 이현재(2018). “디지털 도시화와 사이보그 페미니즘 정치 분석: 인정투쟁의 관점에서 본 폐쇄적 장소의 정치와 상상계적 정체성 정치”, 『도시인문학연구』, vol.10, no.2, 127-152쪽.
  • Illouz, Eva.(2007). Cold intimacies : the making of emotional capitalism, Suhkamp Verlag Frankfurt am Main:Polity Press, 김정아 옮김(2010), 『감정 자본주의』, 돌베개.

글쓴이

Fwd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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