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랜드』는 20세기 초 활약했던 사회개혁가이자 페미니스트 작가였던 샬럿 퍼킨스 길먼의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의 삼부작 중 두 번째 소설입니다. 19세기 후반 유토피아 소설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목도한 길먼은 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유토피아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고, 최초의 페미니즘 유토피아 소설 삼부작을 완성해냈습니다. 제목이 드러내듯 ‘그녀들만의 세계’를 다룬 이 소설 속 세계에는 남성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단성생식으로 재생산을 이루어나갑니다. 하지만 우연히 세 남성이 허랜드를 발견하고, 각기 다른 성격과 성향을 지닌 이들이 허랜드에 정착하면서 소설은 시작됩니다.
‼️ 대담 내용은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
1. 샬럿 퍼킨스 길먼의 생애와 『허랜드』의 시대적 맥락
상상: 길먼의 다른 작품 「누런 벽지」는 전에 읽은 적이 있습니다. 길먼의 자전적인 이야기인데, 신경쇠약을 가진 한 여성이 의사인 남편에게서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며 별장에서 휴식을 취하라는 조언을 듣습니다. 주인공은 그 상황을 억압적으로 느끼고, 벽지에서 쇠창살과 그 안에 갇힌 다른 여성을 보게 되는데요, 소설은 주인공이 벽지 속 여성을 마치 스스로인 것처럼 느끼면서 벽을 기어다니는 장면으로 끝이 나요. 그 당시 여자들을 쉬라는 명목으로 집에 가두는 요법이 유행했던 상황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작가 자신의 경험이기도 했고요.
오온: 「누런 벽지」라는 소설은 ‘다락방의 미친 여자’라는 표현의 레퍼런스이기도 합니다. 길먼은 당대에 여성 참정권 운동에도 동참한 액티비스트이기도 했고요.
만두: 허랜드에서는 우수한 양육자만 아이들을 기를 수 있는데, 당시 시대를 반영한다고 생각했어요. 인구통제와 우생학을 비롯한 발전주의 관점이 계속해서 등장하죠. 허랜드에서 우수한 양육자가 아이들을 (빼앗아) 키운다는 것 또한 식민지 시기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고요. 빈민들이 계속해서 아이를 낳아 ‘열등한’ 종자를 재생산할 것이라는 아이디어는 인구 폭발에 대한 공포와도 이어집니다.
오온: 유토피아 소설에서 재생산에 대한 문제는 매우 핵심적인 요소일 수 밖에 없습니다. 유토피아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전쟁이 유럽을 휩쓸기 전에 개량을 통해 더 나은 근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한 흐름 중 하나이지요. 참정권 운동 이후 마가렛 생어를 비롯한 여성운동가들이 인구 조절과 산아제한에 관심을 가졌는데, 생어의 주장과 이 소설의 내용이 많이 겹쳐요. 아니나다를까 대표적인 운동가였던 마가렛 생어가 길먼과 같은 시대의 사람이더라구요.
2. ‘여성만의 나라’에서 그려지는 욕망, 섹슈얼리티, 모성
유진: 길먼이 형상화한 유토피아인 ‘허랜드’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해볼까요? 허랜드는 욕망, 특히 섹슈얼리티가 제거된 사회로 그려졌지요. 물론 같은 조상을 공유하는 자매들이라는 설정이 있긴 했지만, 모든 여성이 무성적인 존재들로 그려지는 게 의아했습니다.
낑깡: 한편으론 모성이 모든 걸 초월하는 이상적이고 대단한 것으로 그려졌지요. 유성생식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모성은 그들이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숭배의 대상이 되고, 나아가 공동체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처럼 그려져요. 유토피아 사회에서 모성 외에는 그려낼 것이 없는 걸까요?
만두: 다른 사회를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그 모성에 대한 확신과 숭배가 훨씬 소름끼쳤어요.
주영: 어머니들이 갖는 특성에 관한 모든 단어를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대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모성을 얼마나 대단한 것으로 재의미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지만요.
오온: 이 작가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남편한테 격리당했던 경험으로 「누런 벽지」를 썼고, 이후에 여성참정권 활동가로 열렬히 활동했다는 걸 감안하면, 유토피아를 너무나 갈망해서 이런 글을 쓴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유토피아 소설을 재미없게 느끼는데, 이 책을 읽으며 욕망을 제거하기 때문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성들 사이에서도 존재할 수 있는 욕망의 문제를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죠. 이 부분이 저는 재미있기도 했지만, 읽으면서 가장 아쉽기도 했습니다.
주영: 여성들만의 세계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비롯해서 다른 욕망이 엿보이죠. 아예 여자들만 있어서 섹슈얼리티를 상상 못한 건 맞는데, 그 욕망은 사라져버린 게 아니라 모성으로 수렴한 것이 아닐까요? 또 다른 특이점은 아예 처음부터 섹슈얼한 것이 없었던 세계로 그려져요. 2000년 전부터 여자들밖에 안 살았다고 설명하면서 삭제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없었던 세계라고 그려냅니다.
낑깡: 맞아요. 작가가 통제되지 않는 욕망을 모조리 ‘거세’해버리는 방식을 선택했다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모성이란 단어 외에는 다른 욕망을 설명할 수 없도록 만들고요.
상상: 단성생식이 가능한 세계를 그렸기 때문에 성적인 관계가 다르게 의미화될 수 있다고 보여주는 것 같아요. 성적 욕망이야말로 대단히 학습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두: 이곳의 여성들을 벌이나 개미에 빗대는 내용이 중간에 나옵니다. 이 사회를 보면 생식 여부로 계급 차이가 생기는 것처럼 나오는데, 실제로도 단성생식을 하는 생물들에게서 모티브를 얻지 않았을까요? 모성을 둘러싼 권력이 계급을 만드는것이 우리 사회에서 젠더·섹슈얼리티 위계가 작동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져서 소름이 끼쳤어요.
상상: 모성과 종교를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느낌이 들었어요. 모성이 생물학적인 재생산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 걸쳐서 생활 방식을 구성하는 기본 원리가 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종교적인 방식으로 모성을 이해하고, 수행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온: 마지막 부분에 허랜드를 방문한 남성 중 한명인 테리가 강간을 시도하고 쫓겨나는데, 그 과정이 직접적인 묘사 없이 끝까지 두루뭉술하게만 설명됩니다. 그 부분도 섹슈얼리티와 욕망에 대해 대단히 조심스러운 자세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낑깡: 흥미로웠던 게, 출산을 억제하기 위한 방법 부분이었습니다. 묘하게 흥분되면 다른 일을 해서 에너지를 쏟는다는 부분. (모두 웃음)
오온: 머리에 힘을 주면 생식을 멈출 수 있다.
만두: 사춘기에 나가서 축구하고 철봉 하라는 얘기같은거 아니냐.
낑깡: 성욕을 다른 에너지로 전환을 하면 아이를 잉태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부분이 너무 웃겼습니다.
상상: 프로이트가 그렇게 이야기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주영: 그런데, 왜 이 남자들을 쫓아내지 않았을까요? 왜 그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얻을 게 없다는 걸 모를까요? (웃음) 이 남자들을 데리고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허랜드의 여성들은 남성 거래를 통해 양성을 갖추고 싶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 구체적인 목적이나 의미가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상상: 인류학적 호기심이 아니었을까요? 허랜드를 찾아간 남성들도 인류학적 호기심으로 허랜드에 찾아갔는데, 이 남성들이 허랜드 주민들의 관찰적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3. 이야기 밖의 이야기
미현: 남북전쟁 이후 분화된 미국 사회를 비유한 소설이라는 분석을 읽었습니다. 예컨대 가부장적인 남성인 테리는 미국 남부를 상징하는 식이죠.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하면 섹슈얼리티와 젠더에 대한 함의만 담고 있을 거라고 보통 생각하는데, 한 차원 더 나가서 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상상: ‘빈부격차’나 ‘애완 동물’을 기르는 관습, 종교 등 중산층의 일상적인 삶을 상대화하는 대화들이 등장하기도 했지요.
유진: 세 남성 다 굉장히 상징적인 인물이긴 한 것 같아요. 테리는 정말 마초적이고 폭력적인, 자신의 성적 대상이 되지 않는 여성은 가치가 없다고 보는 인물이고, 다른 인물은 너무 전형적인 여성 숭배자이지요. 하지만 여성 숭배는 여성혐오의 다른 일면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살아온 사회의 편견을 온건한 방식으로 재생산하는 인물이고요.
만두: 팁트리 주니어의 SF 소설인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 에서도 멍청한 마초와 로맨티스트, 그리고 관찰자이자 범생이 타입인 주인공 세 남자 구성이 나왔습니다. 전형적인 남성 셋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흔한 설정인 걸까 궁금합니다.
오온: 오마주인 것 같습니다. 팁트리 주니어가 『허랜드』를 오마주하면서도, 사카스틱하게 비꼰 것이 동시에 있는 것 같아요.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의 세 명의 남성은 전혀 매력적으로 그려지지 않으니까요. 허랜드가 갖는 헤테로 보편성을 벗어던지지 못했던 한계를 답답해 했을 것 같아요.
만두: 허랜드의 경우 주인공인 서술자가 꽤 ‘괜찮은’ 남성입니다. 하지만 팁트리 주니어는 그게 너무 싫었던 것 같아요. 거기서의 주인공은 알파 메일이 되지 못한 열등감에 찌든 인간으로 나오거든요. 그렇게 보면 비꼬기가 맞을 수도 있겠네요.
오온: 유토피아 소설을 읽을 때의 재밌는 지점은, 작가가 생각하는 유토피아의 조건이 충족이 되었을 때 누락되거나 넘치는 사회적 모순들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이라는 소비에트 유토피아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여성을 묘사할 때마다 얼마나 여성혐오적인 숭배를 하는지 몰라요. 흑인의 검은 피부와 근육질 몸을 묘사하면서 인종적 타자 또한 숭배하는 묘사가 있고요. 우주 시대의 소비에트 유토피아를 세밀하게 그리는 소설이긴 하지만, 작가가 이상적인 사회를 상상하면서 어떤 부분을 놓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죠.
유진: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너무 슬픈 헤테로 여성이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실에서 그렇게 불행하게 살았으면서 왜 유토피아 사회에서도 이성애를 그려야만 했을까? 하는 왜 멀쩡한 세 여성이 멍청한 세 남자와 사랑을 할 수 밖에 없게 그렸을까? 하는 마음으로 답답했습니다.
오온: 페미니스트 이론가인 이리가레가 여성들만의 상상계를 만드는 작업을 하는데, 이리가레에 따르면 여성들의 상상계가 생길 때 기존의 남성적인 상징계에 새로운 여성적인 상징계가 더해져 이원론적 세계가 형성되고 그때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성애’가 가능해지죠.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성적인 것’의 이원론을 주장하는 건데요, 이런 관점에서 유토피아를 분리된 또 하나의 세계로 가정한다면, 길먼도 이렇게 분리된 세계가 존재할 때야말로 우리의 세계가 완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요? 양자가 충만해야 우리 세계가 제대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고가 지배적인 시기여서 이런 소설이 나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시대적 한계도 있고 슬픈 헤테로 여성인 것도 맞지만, 발전과 완전성, 통합에 대한 시대적 요청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상상: 길먼은 여자들만의 세계를 그리면서, 이 세계를 이상화하고 ‘분리주의’로 가자고 하는 게 아니라, 남성들의 인식적인 혁신을 가져오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세상의 기준이 여자들인 세상에서야 비로소 남녀관계나 여성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든지 클래식한 페미니즘으로 볼 수 있는 구절들이 남성의 입을 통해 나오잖아요.
주영: 길먼이 쓴 “What is Feminism” 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요, 제 2물결 페미니스트들의 가치인 여성의 주체성과 같은 것을 이야기 하다가 결론부에는 페미니즘이 여성해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향상, 종의 향상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길먼의 관점을 통해 보면 이 소설이 좀 더 이해가 되는 것 같아요.
『허랜드』는 최초의 페미니즘 유토피아라는 타이틀로 소개되지만, 소설을 읽으며 작가가 설정한 유토피아 세계의 시대적 한계와 모순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완전한 이상향의 세계를 상상하기란 불가능하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현실과는 다른 세계를 그려내며 기존 세계의 조건과 위계를 탈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유토피아 SF소설이 제공하는 통찰일 것입니다. 유토피아는 원초적인 논리를 훼손하고 친족과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서사를 제공함으로써 대안적인 깨달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다음 시리즈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샬롯 퍼킨스 길먼은 ‘허랜드’에서 바깥 세상으로 나온 여성과 그의 파트너가 남성들의 세계를 탐험하는 소설인 『그녀와 함께 내 나라로(With Her in Our Land)』를 차기작으로 발표했습니다. 완전히 분리된 공간에 살고 있던 ‘원더우먼’ 같은 여성이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이 여성참정권 운동가가 어떻게 그렸을지 궁금해집니다.
*해당 독서모임을 위한 책은 『허랜드』를 번역출판한 아르테에서 제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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