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여성서사를 말할 때

최가은

1. 한녀문학 플로우

2020년 4월, ‘한녀문학’이라는 키워드가 트위터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른다. 한녀문학은 “열등감”과 “패배 의식”, “우울감만 전시”하여 “페미니즘적으로 의의를 찾을 수 없는” 서사들을 향한 일종의 멸칭으로서 확산되었는데, 페미니즘 대중화와 더불어 각별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여성서사, 그중에서도 특히 ‘순문학’이라 일컬어지는 한국소설을 향한 문제제기였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 플로우를 이끌었던 이들은 위와 같은 속성을 근거로 순문학 판에서 생산하는 서사들이 페미니즘적으로 무의미하다고 규정하며, 이들 서사보다 ‘여성-자기계발서’ 종류의 책들이 현실 속 여성들의 삶에 훨씬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여성서사란 “여자들만 나오지만 다 시궁창 인생이고 결국 자살하는 이야기”가 아닌 “가끔 시련은 있지만, 연대해서 이겨가는 이야기[1]”인데, 순문학 판의 생산물은 대부분 전자를 표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 인용 부호 속 문장들은 이 논쟁에 참여했던 몇몇 트위터 게시글을 인용한 것.

이처럼 ‘진정한’ 여성서사로서의 기준을 설정하고, 이에 미달하는 작품을 향해 부정적인 평가를 제출하는 것, 나아가 해당 작품이 속한 장르 전반에 대한 불매 운동을 이끄는 것 등은 한국문학에 한정하여 나타난 이례적인 현상은 아니다. 이는 ‘여성 우선 페미니즘’을 외치는 특정 입장이 여성과 관련된 문화적 생산물에 대해 일관되게 제기해왔던 부정적 반응의 연장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녀문학’에의 거부가 ‘한국 문단’이라는 특유의 폐쇄적 공간 전체를 향한 부정을 넘어, 지적 허영과 학계 페미니즘에 대한 조롱으로 확장되면서 펼쳐진 이후의 풍경은 특기할 만하다. ‘한녀문학’이라는 멸칭에 반대하는 측의 대응이 순문학 내부의 페미니즘 담론을 소위 ‘렏펨’의 여성-본질론적 입장으로부터 확실하게 구별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한녀문학’ 플로우에 대응하는 트위터 내부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문학사’에 대한 이들의 무지함을 지적하는 것. 말하자면 이들이 한녀문학의 주요 키워드로 내세우고 있는 우울감과 패배의식이 비단 여성문학만의 것이 아니라 남성 주류 근대문학의 ‘자기반성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가르침’으로서의 대응이다. 이것은 여성의 ‘연대’와 ‘승리’에 방점을 찍을 때 축소되는 ‘여성서사’의 개념을 확장하려는 시도이면서, 동시에 서사라는 장르와 ‘여성’이라는 범주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즉 이것이 ‘진짜’ 페미니즘이라는 자부심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둘째는 ‘한녀문학’이라는 키워드가 통칭하고 있는 ‘여성’이 내부의 차이를 소거한다는 점에 대한 지적이다. 모두 다른 이야기를 생산하고 있는 다양한 여성 창작자의 작품을 한 데로 묶는 것이 부당하다는 논리로서의 대응인 것이다. 이와 같은 반응은 ‘한녀문학’이라는 호칭을 재전유하여 ‘내가 좋아하는 한녀문학’ 리스트를 작성함으로써 다양한 여성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타래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로써 한녀문학 사건은 한국문학 판 내외부의 여성서사들을 되 비추는 기회로 작용하여 ‘한국여성문학’의 생산자와 향유자가 일종의 승리를 획득한 것처럼 마무리된다.

그렇다면 실제로 ‘여성-서사’라는 범주 아래에 이들 작가와 작품을 성실히 호명해왔던 최근 한국문학 비평 장의 입장은 어떨까. 아이러니하게도 ‘한녀문학 플로우’에 대한 반대 입장으로 제출되었던 ‘진짜 페미니즘적’ 여성문학의 정의는 한국문학 비평계가 강조해온 ‘새로운’ 여성서사의 특징들과는 그다지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근래의 문예지가 기획했던 ‘여성’과 ‘여성서사’의 의미는 외려 여성-본질론적 입장을 추구하는 이들이 말하는 ‘진정한’, 혹은 ‘새로운’ 여성서사와 가깝다는 인상 때문이다.

2. 한국문학 비평 장의 ‘여성-서사’

‘문단 내 성폭력 말하기 운동’에서부터 시작된 한국 문학을 향한 고발성의 문제의식은 이른바 페미니즘 대중화의 흐름에 힘입어, ‘페미니즘-퀴어 서사’의 생산으로, 더불어 이를 향한 호명과 해석의 장인 ‘페미니즘-퀴어 문학비평’으로 가속화된 바 있다. ‘페미니즘-퀴어 비평’이 일궈낸 담론적 승리는 새로이 의미화된 공론장을 본격적으로 생성해내기 시작하면서 현재 한국문학 ‘판(paradigm)’의 근간을 해체, 재구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간 『문학동네』 2019년 겨울호, 2020년 봄호, 2020년 여름호, 『자음과모음』 2020년 여름호, 『문학과사회』 하이픈 2016년 겨울호, 월간 『웹진 비유』 ‘캡처’란, 비평 무크지 『크릿터』 1호 등이 모두 ‘페미니즘’, ‘여성-서사’, ‘퀴어-서사’와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잡지를 기획한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야 한다. 아울러 위 문예지들은 한국문학 내에서 ‘공론장’이라고 칭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공간이며, 이곳에서 기획된 ‘여성’은 문학비평의 담론 형성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것이 문학장 안팎에서 다양하고 성실하게 생성되고 있는 ‘페미니즘 문학비평’의 성과와는 별개로 이들 문예지의 ‘여성’ 기획 자체가 지닌 정치적 함의와 그 효과를 검토하는 작업이 요청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한녀문학’ 플로우와 유사한 시기에 발간되었던 『문학동네』 2020년 봄호의 기획은 ‘여성, 장르, 서사’를 키워드로 한다. “지금 우리에게 여성 서사란 무엇인가”(6)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해당 호의 기획은 ‘여성 서사를 사유하는 새로운 시각과 정교한 독법’을 발굴하기 위해 스릴러, 역사, SF, 판타지, 팬픽이라는 각각의 장르에서 생성되는 여성서사에 관한 총 다섯 편의 비평을 소개한다. 흥미로운 점은 ‘여성’과 ‘장르’ 중 장르가 아닌 ‘여성’에 방점을 찍은 몇 편의 글들이 전개에 앞서 ‘여성서사’를 개념화하는 방식이다. 장르를 막론하고 이들은 작금의 여성서사를 “새로운 여성 서사”로 의미화하는 일에 주력하는데, 이러한 주장의 논리적 구축을 위해 근래의 작품들은 기존의 남성중심적 문학뿐만 아니라 앞선 세대의 여성서사들과도 단호히 구별되기에 이른다. 이때 변별의 주된 요소로 호출되는 것은 피해자의 위치를 벗어난 ‘능동적 혹은 역사적 주체’로서의 여성이거나, 남성 인물의 후경화로 인해 전면화되는 ‘여성들의 공모’ 또는 ‘연대’와 같은 ‘여성 중심적 관계망’ 등이다.

여성 인물의 분노와 가학성을 용인할 수 있는 근거로 “현실에서 여성의 강한 권력power과 행위성agency을 보고 싶다는 열망”(89)을 불러오고, ‘여성 역사소설’이 마주한 난제를 1) 보편성의 범주를 반성적으로 검토하고 여성의 경험을 공통 경험에 올릴 것 2) 여성에게 서사적 주체성을 돌려주는 서사일 것(113)이라고 규정하는 것, 더불어 “여성 SF는 현실을 부풀리거나 대리하는 공상물이 아니라 여성의 실존을 진짜로 만드는 서사적 수행”(135)으로 정리하는 등의 문장들은 작금의 ‘여성서사’란 확실히 변화된 독법과 시각을 요구하는 ‘새로운’ 무엇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텍스트 분석과는 별개로, 위의 정의들이 ‘여성 우선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규정했던 ‘진정한’ 여성서사의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불편한 진실 역시 목격하게 된다. 여성의 능동성과 승리, 연대에 방점을 두는 해석, 혹은 ‘여성 인물’이라는 성별화된 범주 아래에 다양한 작가들의 텍스트를 무리하게 범주화하여 독해하는 방식 등이 특히 그러하다. 여성과 서사를 ‘새로움’이라는 세대 단절적 용어 내에서 제한하고, ‘여성서사’라는 범주 내에서 그들 텍스트를 과잉대표하는 독법은 오히려 여성문학 담론을 축소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는 작금의 한국문학 텍스트를 여성서사로서 의미화하기 위해 위 평문들이 전제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 전제를 이탈하는 독법까지 모두 ‘여성-서사’라는 범주로 포섭할 때 발생하는 문예지 기획의 담론적 효과는 무엇인지를 비판적으로 살피게 한다.

3. 문학 공론장의 조건과 ‘여성’

‘페미니즘-퀴어’ 문학 비평이 ‘여성’ 호명의 정당화를 위해 중요하게 앞세운 어휘는 ‘시의성’이다. ‘문단 내 성폭력 말하기 운동’을 통해 그간 한국 문학(문단) 장 내부에서 은폐, 재생산되어왔던 수많은 문제가 ‘남성’의 얼굴로 환원되면서 ‘여성’을 문학 공론장으로 소환해야 한다는 다급한 요청이 다른 모든 문제보다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이는 새삼 더 강조할 필요가 없으리만큼 타당한 문제제기이자, 관습화된 문학판의 남성성을 전복하는 데 있어 전략적으로도 효과적인 시도였다. 잘 알려져 있듯 문단 내 성별 위계와 성폭력에 대한 고발은 여전히 지속 중이며, 문학장 내외부에서 ‘여성’이라는 성별에 기반한 정체성이 글을 쓰거나 읽는 자 모두에게 특정한 억압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은 청산된 과거가 아닌 현실의 일면이기 때문이다. 왜곡된 여성상에 대한 능동적 수정과 배제되었던 여성의 가시화 등은 이러한 맥락에서 중요한 문제가 된다.

하지만 문학사의 입장에서 지금껏 여성은 한 번도 제대로 호명된 적이 없었던가. 말하자면, 지금의 비평적 호명으로 제시되는 ‘여성’은 평자들의 주장만큼 온전히 새로운 여성 주체, 여성 서사, 여성 관계망을 형성하는가. 이것을 ‘새로운 여성서사’로 정당화할 때 문학 공론장과 ‘여성’ 사이의 이질과 분화의 오랜 역사는 말 그대로 단순한 과거가 되어 시야 밖으로 사라진다. 김미정은 ‘여성’이라는 말을 둘러싼 문학 언어 간의 분열과 충돌에 주목하기 위해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의 1975년 방한과 그 방한을 기록한 (비)공식적 언어들을 관찰한 바 있다(김미정, 2016; 2019). 남성 중심의 공적 언어는 그가 “결코 여성 작가는 아니”라는 단언으로 루이제 린저를 보편성과 같이 위치시키지만, 동시에 그녀를 ‘독일 문학사’에서는 배제하는 지극히 투명한 모순을 보인다. 그런데 평자가 더욱 주목한 것은 이처럼 문학의 주어를 여성으로 상상하는 일에 대한 한국 문학장의 불안과 저항감이 ‘여성’ 호명에 미친 영향과 그 효과로써 재생산된 문학 언어의 한계이다.

루이제 린저를 한국에 최초로 소개한 작가 전혜린은 종합문예지 『새벽』에서 「생의 한가운데」를 “생에 관한 린저의 신념”으로 요약한다. 문제는 그가 자신의 내밀한 기록인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는 같은 작품을 “여성의 주체성”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묘사한다는 점에 있다. 공식적 평가에서 지워진 ‘여성’과 비공식적 평가에서 부각되는 ‘여성’을 통해 김미정이 지적하고자 한 것은 ‘여성’을 지움으로써만 개입할 수 있었던 문학장과 아카데미즘의 ‘당대적 조건’이다. 여성을 삭제해야만 획득할 수 있었던 공론장으로의 입장권과 ‘여류’라는 프레임 속에서 폄하, 비하되어왔던 문학사적 ‘여성’의 의미를 되 비춤으로써 ‘여성’ 호명이 시급한 과제였던 특정한 시기의 풍경을 상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로, 또한 다분히 긍정적이고도 전략적인 의도로 ‘여성’을 문학장 내부로 호명하는 작업이 이어진 것 역시, 앞선 장면만큼이나 분명한 문학사의 진실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이러한 호명은 반(反)여성주의 담론이 아닌 동시대 여성주의 내부의 의구심을 대면함으로써, 여성과 문학의 관계성에 대한 끝없는 성찰을 요구받았다는 사실 역시 중요한 문제이다. 예컨대 ‘여성문학 특집’을 내세운 『문학동네』 1995년 가을호가 공통 범주로서 호명하는 ‘여성’과 ‘서사’의 의미에 대해, 동시대의 페미니스트들이 상당히 비판적인 질문을 이어갔다는 사실을 먼저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여성’ 기획이 ‘새로움’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구성될 때, 누락되는 것은 ‘여성’과 ‘공론장’ 사이의 이분법적 관계 너머에 있는, 위와 같은 역사적 맥락들이다.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작금의 ‘여성서사’에 관해 질문해야 할 것은 무엇이, 얼마나 새로운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여성’과 ‘여성서사’라는 범주를 작동시키는 조건과 담론장의 역사적 구성 방식일 것이며, 그 결과로서 호명되고 (재)생산되어 온 ‘여성문학’의 맥락 속에 동시대의 서사들을 위치시키는 일인지도 모른다.

문학장의 형성이 곧 문학의 인식 틀이자 문학 역사가 되어왔다는 문학사가들의 지적에 따를 때, 나아가 그것은 문학에 관해서 “어떤 것을 누락시키고 배제하면서 보이는 것들만이 전부라고 믿도록 만드는 신념체계”(서영인, 2018)로서 기능한다고 강력하게 말할 수 있을 때, 작금의 ‘공론장의 조건’ 역시 여성과 호응/불화하며 형성되어 온 과정의 한 결과라는 점은 더욱 중요해진다. 문학의 공론장은 ‘여성’과 관련되거나 혹은 전혀 무관한(것처럼 보이는) 시대적 사건들이 중층적으로 개입하고 또 교차하면서 형성되어 왔다. 나아가 전혜린 이전과 그 이후의 사례들이 예시하는 것처럼 ‘여성’에 관해 생성되는 배제와 금기의 규율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끝없이 변화하며 존속하고 있다. ‘여성’이 호출되어야 하는 당위적 명목으로서 ‘새로움’이 부각될 때, 우리는 정치적 기획의 가능성이나 미학적 담론 전환의 대안체로서 ‘여성’을 상상하고 또 활용해 온 ‘공론장-권력’의 작동방식을 심문할 수 없으며, 이에 치열하게 대치하고 때로는 기여함으로써 문학사를 형성해온 ‘여성문학사/여성 비평사’의 복잡다단한 맥락을 소거할 위험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여기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론장-권력’과 ‘여성’의 관계를 냉정하게 질문할 가능성 역시 사라진다.

이는 “시대가 달라졌으니 더는 여성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와 같은 반여성주의적 속임수에 함께 올라타자는 의미가 아니며, ‘여성서사’라는 범주 자체의 무용함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여성서사’라는 ‘텅 빈 레테르’이자 ‘꽉 찬 멜팅팟’”에 대한 “작금의 기묘한 환대들을 더욱 면밀히”(오은교, 2020) 살펴야 한다는 뼈아픈 지적 아래 문학사가 호명해 온 ‘여성’이라는 범주와 그 범주를 (불)가능케 한 문학 공론장의 조건을 역사화하는 태도, 즉 범주에 들러붙은 특정한 가치들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권력’의 성격과 방식들로 질문의 초점을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새로운 여성서사’의 기획 아래 동시대 텍스트들의 의미를 제한적으로 구축하는 일보다 중요한 과제인 것은 아닐까. 페미니즘을 텍스트 해석의 ‘축소’ 틀로 인식했다거나, 반대로 해석의 ‘과잉’ 틀로 인식했다는 식의 이분법적 분류 속으로 문학사를 폐기하며, 과거의 여성문학과 단호히 결별하는 것이 작금의 ‘여성서사’가 지향하는 ‘새로움’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강지희(2020). “투명한 밤과 미친 여자들의 그림자”, 『문학동네』, 봄호.
  • 김미정(2016). “여성교양소설의 불/가능성”, 『문학과사회』, 겨울호.
  • 백지은(2020). “이것이 쓰이고 읽혀서 자기를”, 『문학동네』, 봄호.
  • 서영인(2018). “1990년대 문학지형과 여성문학 담론”, 『대중서사연구』, 24권 2호, 9-40쪽.
  • 안서현(2020). “기울어진 해석 지평에서의 쓰기/읽기”, 『문학동네』, 봄호.
  • 오은교(2020). “여성들의 잡스러운 독서사, 불투명한 문서고와 환상의 그림자들”, 『자음과모음』, 여름호.

글쓴이

Fwd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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